사랑하면 번민이 생긴다는 이야기
세존께서 기원정사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한 아이를 지나치게 사랑하며 애지중지 양육하고 있는 한 사람의 바라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우연히 병이 나더니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죽고 말았다. 바라문의 슬픔은 보기에도 딱할 정도여서 음식도 전폐하고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미친 사람모양으로 매일 어린아이의 무덤에 가서 울고만 있었다. 어느날 바라문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석존에게 왔다.
그래도 일단 예의바르게 절을 하고 대좌해서 앉았다.
석존은 바라문이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시더니,
『바라문, 그대의 심신은 편안한가?』
하고 물으셨다.
바라문은 무엇이 들떠 있는듯한 표정으로 석존에게 애걸하듯이,
『저는 요즘 정신이 멍하여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된 셈인지를 모르겠읍니다. 나보다도 더 아끼고 사랑했던 자식을 잃어서 저의 마음은 비통에 젖어 있읍니다. 음식도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옷이나 향료(香料)나 그밖에 아무 것도 싫어졌읍니다. 그저 매일 아이의 무덤에서 울고 지낼 뿐입니다.』
하고 말하면서 또 눈물을 죽죽 흘리는 것이었다.
『그럴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대가 슬퍼하는 것을 그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슬픔은 그대가 그 아이한테 사랑을 느꼈을 때부터 당연히 받게끔 약속되어 있던 것이었으니까, 사랑이 생기면 동시에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煩悶) 그 밖에 많은 고뇌(苦惱)가 생기는 것이다.』
바라문은 석존의 말을 채 알아듣지 못하고 의아한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다.
『석존님, 사랑이 생기면 동시에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 그 밖에 많은 고뇌가 생긴다는 말씀입니까? 사랑이 생기면 동시에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 그것은 그렇지 않다. 내가 말하는 것은 동시에 슬픔이 생긴다는 것이다.』
바라문은 그래도 이해가 안가서 재삼 물었으나 석존의 말씀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했다.
<석존은 사랑이란 슬픔을 동반한다고 하시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인 것이다.>
그는 석존의 말씀에 불만을 품으며 고개를 흔들면서 석존 곁을 떠나갔다.
돌아오는 도중 기원정사의 문전에서 마을 사람들이 여럿이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을 본 바라문은,
『노름꾼들 만큼 세상 물정(物情)에 밝은 사람도 없는 저 사람들과 의논을 해보자.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이렇게 생각한 그는 노름판으로 가서 석존의 말씀을 옮기면서 얘기를 했다.
『바라문, 그럴 리가 있읍니까? 사랑이 생기면 기쁨과 즐거움이 동시에 생기게 마련입니다요.』
노름꾼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바라문은 그러면 그렇지 하고 그것이 진실인 줄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노름꾼들에게,
『덕분에 잘 알았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며 고마운 뜻을 표하고 그곳을 떠났다.
이 일이 입에서 입으로 자꾸 퍼져서 왕실에까지 들리게 되어 고오사라 국왕 하시노쿠의 귀에도 들리게 되었다.
왕은 석존이 「사랑이 생기면 동시에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 그 밖에 많은 고뇌가 생긴다.」고 설교하셨다.
하므로 마쯔리왕비를 보고,
『부처님은 사랑은 슬픔을 가져온다는데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왕비는 왕의 말을 듣더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왕후, 그대는 스승의 말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겠지, 그대는 부처님의 제자니까 제자로서 스승의 말을 옳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전하, 그렇게 의심이 되시면 사람을 보내서 부처님께 여쭈어 보심이 어떠십니까?』
왕은 곧 바라문의 나리오오카를 부르신 다음,
『너는 부처님께가서 내 대신 문안 인사를 올려라. 부처님을 뵈옵거든 성체건승 하시냐고 공손히 인사를 한 다음에 듣자 옵기에 부처님께선 「사랑이 생기면 동시에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 그밖에 많은 고뇌가 생긴다.」고 말씀 하셨다 하옵는데 진실로 그러 하옵니까? 하고 여쭈어 보고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하나 하나 그대로 암송(暗誦)해 오너라, 부처님의 말씀을 한마디 한 구절도 틀림이 없는 것이니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잘 듣고 와야 한다.』
왕의 자세한 분부를 받은 나리오오카는 석존을 찾아 뵙고 하시노쿠왕의 말을 전하였다.
석존은 바라문의 말을 들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리오오카, 내가 지금 너에게 묻노니, 생각하는 대로 대답해 보아라. 이런 경우에 너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가령 여기 한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어머니가 사망했다.
그는 너무나 큰 슬픔에 마침내 미쳐버려서 옷을 벗은 알몸으로 큰길을 뛰어 다니면서,
「여러분, 저의 어머니를 보지 못했읍니까?」하고 온종일 떠들어댔다고 하자, 나리오오카, 이것은 사랑에서 생긴 걱정, 슬픔, 그리고 괴로움, 번민, 고뇌가 아니겠는가? 또 어떤 부인이 자식을 잃고 낙심한 나머지 발광(발광(發狂))하여머리는 산발하고 거지꼴로 대로를 뛰어 다니며 「내자식을 돌려달라, 내 자식을 돌려달라.」고 외쳤다고 하자, 이것도 사랑하는 까닭에 생긴 번뇌(번뇌(煩惱))가 아니겠는가? 나리오오카, 옛날에 한부인이 있었는데 남편 곁을 떠나서 잠시 친정(친정(親庭))집에 가 있었다.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를 이혼시켜서 다른 집으로 재가(재가(再嫁))시키려고 했다.
이것을 안 그 부인은 놀라서 남편에게로 달려가서 사정을 털어놓고,
『여보, 저의 친척들은 무정하게도 당신과 나를 갈라놓고 저를 딴 곳으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고 있어요. 제발 저를 놓지 말고 도와주세요.」하며 울었다.
남편은 놀라움과 슬픔에 미쳐버린듯 아내의 손을 잡고 내실을 들어가서,
「이젠 다른 도리가 없다. 우리는 저승에 가서 다시 만나 살기로 하고 이 괴로움에서 구원을 받읍시다.」
하더니 칼을 들고 사랑하는 아내를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고 말았다. 나리오오카, 이 이야기는 사랑하는 까닭에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 그 밖에 많은 고뇌가 생긴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지 않는가?』
석존의 설법은 끝났다. 나리오오카는 석존의 말씀을 그대로 외우며 왕에게로 돌아와서,
『임금님 부처님께서는 정말 사랑이 생기면 동시에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 그 밖에 많은 고뇌가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석존의 말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자세히 왕에게 전하였다.
그래서 왕은 마쯔리왕비에게
『부처님도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셨다하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왕비는,
『전하께선 아직도 부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시지 못하시는 모양입니다만 제가 여쭈어보는 말에 대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임금께서는 히루라대장을 사랑하십니까?』
『나는 그를 돌도 없는 충신으로 사랑하고 있다.』
『만약 히루라대장에게 만일에 무슨 변이 생긴다면 임금님께선 어떻게 하시겠읍니까?』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서러움과 비통(비통(悲痛))에 젖어 대단한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전하께서는 시리아대신을 사랑하십니까? 또 훈다라리코리를 사랑하십니까? 또 바이리처녀를 사랑하십니까? 우리치가부인을 사랑하십니까? 또는 카아시국과 고오사라국을 사랑하십니까?』
『나는 그 모든 것을 전부 사랑하고 있음을 왕비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전하, 만약 이 사람들에게 만일의 변이 생기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시겠읍니까? 특히 사랑하는 카아국과 고오사하국에 이변(異變)이 일어났다고하면 임금님은 어찌 하시겠읍니까?
만일 이 나라에 이변이 생긴다면 나의 한 몸 나의 오욕(五慾-사람의 다섯 가지 욕심 즉 색욕, 성욕, 향욕, 미욕, 촉욕)의 즐거움은 모두가 이 두 나라를 소유함으로서 얻어지는 것인만큼 나의 슬품과 한탄(恨歎). 괴로움과 고뇌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나의 생명은 끝장이 난 것입니다.』
『전하, 사랑이 있는 곳에 반드시 걱정과 슬픔과 괴로움이 있고 반드시 번민과 고뇌가 뒤따르지 않읍니까? 전하께서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나는 그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만약 저에게 무슨 변이 생긴다면 어찌 하시겠읍니까?』
『마쯔리, 그대에게 변이 생긴다면 그런 말을 듣는 것조차 소름의 끼치는 일이다. 만일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나는 그야말로 슬픔과 한탄에 빠져 괴로움과 외로움의 화신(化身)이 되어 내가 죽는 것 이상으로 울고 불고 할 것이다.』
『전하, 부처님께서 사랑이 생기는 곳에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 그 밖에 많은 고뇌가 동시에 생긴다고 하신 말씀은 이런 일들을 이해하실 수가 있지 않겠읍니까?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된 것이며 조금도 그릇됨이 없습니다.』
하시노쿠왕은 마쯔리왕비의 말에 의하여 비로소 부처님의 진실한 깨달음을 알게 되어 마음으로부터 부처님을 믿게 되었다.
『왕비, 나는 오늘부터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 그리고 부처님과 법과 승려들에게 귀의해서 종신토록 그 신앙을 변치 않을 것이다. 부처님께 나를 잘 인도해 주시도록 부탁을 해주기 바라오.
이렇게 해서 하시노쿠왕은 마쯔리왕비의 도움을 받아서 석존의 제자가 된 것이다.』
<中阿含經制六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