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다이다의 신통
아수가왕(阿輸迦王)의 아우에 수구다이다라는 사람이 있었다. 형 아수가왕은 열심히 불법을 믿어 八만 四천의 탑을 세우고, 중들에게 음식 공양을 하기도 하여, 불법을 위하여 많은 힘을 쏟았는데, 그의 아우 수구다이다는 외도를 믿고 불법을 자꾸 비방하고 있었다.
『부처의 제자들은 해탈을 얻었을 턱이 없어. 왜냐하면, 그들은 출가에서 소중한 고행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즐겨 편안한 수행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아수가왕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릇된 외도 따위를 믿어서는 안돼. 바른 불교를 믿어야 해.』
하고 늘 타이르는 것이었다.
어느 때, 아수가왕은 수구다이다를 데리고 사냥을 떠났다. 산속으로 들어가니 한 바라문의 수행자가 불을 견디는 고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수구다이다는 크게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그리고 가서 절을 하였다.
『대덕(大德)은 고행을 시작한지 몇 해나 됩니까?』
『열 두해가 됩니다.』
바라문은 이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태도로 대답하였다.
『늘 무엇을 먹습니까?』
『나무열매, 풀뿌리.』
『무엇을 입으십니까?』
『풀로 짠 옷.』
『잘 때에는?』
『땅바닥에 풀을 깔고.』
바라문이 말하는 것은 궁중에서 자라난 수구다이다에게는 모두가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러면 대덕께서 하고 계시는 고행 중에 무엇이 제일 고통스럽습니까?』
『벌레나 사슴이 교미하는 것을 보면 번뇌가 치밀어 올라오는데, 그것이 제일 괴롭지요.』
이것은 참으로 신선다운 초탈한, 그리고 거짓 없는 진심의 고백이었다.
『이 고행자로서는 오히려 이런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다. 불제자들이 늘 잘 입고, 맛있는 것을 먹는데 어떻게 번뇌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주제에 번뇌에서 벗어났다 따위는 가소롭기 그지없다. 형 아수가왕은 그것도 모르고 불제자들에게 속고 있다.』
수구다이다는 그의 깊은 감동을 이렇게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아수가왕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우를 불교신자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대신에게 의논했더니 명안이 있었다. 좋은 일은 빠를수록 좋다고, 왕은 곧 욕의(浴衣)로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갔다.
대신은 그 뒤에 아우를 불러,
『당신은 아수라왕께서 돌아가시면 아우로서 모름지기 왕위에 올라야 할 신분이십니다. 다행히도 지금 왕께서는 욕실에 드시어 왕관, 구슬목걸이, 옷들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시험 삼아 한번 입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계략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아우는 그러마 하고 기쁜 나머지 얼른 왕관과 옷을 차리고 왕좌에 앉았다. 이 일이 왕에게 귀띔 되자, 왕은 천천히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욕실에서 나와 이 꼴을 보고,
『형이 아직 죽기도 전에 너는 벌써 왕이 되었느냐. 괘씸한 녀석 같으니!』
하고 열화같이 격분하여 사방을 둘러보며,
『게, 아무도 없느냐?』
하고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하고, 한 진다라(망나니)가 달려왔다. 몸에는 푸른 옷을 걸치고, 머리는 까치 둥지 같은데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종을 쥐고 있다.
공손히 왕 앞에 나아가,
『대왕님, 무슨 일이십니까?』
『응, 이 수구다이다는 아주 무엄한 놈이다. 오늘부터 아우도 아니요, 형도 아니다, 너는 저 녀석의 목을 베어라.』
아우는 어느 사이에 벌써 창검을 든 많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였다. 이것을 본 대신은 겁에 질린 모습으로 왕 앞으로 나아가 발에 절하고,
『대왕님, 수구다이다님은 적어도 대왕의 아우님이십니다. 대왕님, 아무쪼록 참으시고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
『대왕님, 제발 부탁이옵니다.』
『정 그렇다면, 그대의 부탁을 들어주지, 그리고 아우의 소원이기도 하니, 이레 동안 왕위에 앉혀 주마.』
단, 이레 후에는 사형에 처한다는 조건 밑에 아우는 정식으로 왕좌에 앉게 되었다. 이 이레 동안이라는 것은 백천의 음악이 있지, 몇 천명의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시중을 받지, 모든 백성들은 다 찾아와서 축사를 올리고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이 세상에도 이런 호강이 있는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한편에서는 네 사람의 진다라가 손에 큰 칼을 들고 서서, 닿기만 하면 한 칼에 베어 버리겠다는 얼굴로 사방의 문에 지켜서서,
『하루가 이미 지나갔다. 앞으로 엿새 남았다………. 그 날이 오면 너의 팔 다리와 몸뚱이는 토막을 내어 숨통을 끊어 버리다. 그것도 멀지는 않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손에 든 종을 달랑달랑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매일 되풀이하여 제七일이 되었다. 아수가왕은 왕관을 쓰고 왕의를 입고 본래의 왕이 되었다.
대신과 여러 신하들은 수구다이다를 데리고 왕의 앞에 나왔다.
『수구다이다, 너는 이레 동안 최상의 왕위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 보니까 어떻더냐?』
『이레 동안 눈에 빛깔이 보이지 않고, 코에 냄새가 맡아지지 않으며, 혀는 맛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진다라가 큰 칼을 들고,
「너는 이미 하루의 왕이 되었다. 앞으로 엿새다.」
하고, 매일 고함을 지르니, 죽음의 공포가 몹시 나를 괴롭히어서 밤이나 낮이나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환락 따위가 어찌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레 동안의 왕 노릇이 환락보다도 고통이 더하였다면, 그럴수록 왕이 꾀한 함정에 깊이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왕은 속으로 잘됐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간곡히 설득하는 것이었다.
『너는 하루종일 이런 고급의 오욕의 세계에 잠겨 있으면서도 오로지 삶의 괴로움, 죽음의 두려움만을 생각하고 끝내 애욕을 탐하는 마음이나, 환락에 취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였다. 이 일은 너에게는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불제자들도 마찬가지로 날마다 생사의 덧없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곧 사람의 삶, 늙음, 병듦, 죽음, 걱정, 슬픔의 괴로움, 지옥의 불의 괴로움, 축생의 서로 해치고 무서워하는 괴로움, 아귀의 굶주리고 목마른 괴로움, 천상(天上)의 쇠패(衰敗)의 괴로움 등등, 삼계에 삶을 누리는 모든 것은 괴로움에 시달리는 몸이 아닌 것이 없으며, 괴로움의 세계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까, 일체는 모두가 다 괴로움이요, 헛것이요, 무상(無常)이요, 무아(無我)인 것이다. 불제자들은 언제나 이렇게 달관하고, 애오라지 해탈의 길에 정진 노력할 뿐이다. 어떻게 번뇌 따위를 일으킬 틈이 있겠는가. 그러니까, 불제자에게는 음식, 의복, 침구 등, 五욕의 도구도 모두 해탈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五욕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五욕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연꽃이 흐린물에 있으면서 오히려 흐린물에 물들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불제자들이 해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냐.』
현인 왕의 정성어린 갖가지 방편의 교화로 말미암아 수구다이다는 그 자리에서 합장하고 마침내 삼보(三寶)에 귀의할 것을 맹세하였다.
아수가왕은 아우의 풀죽은 모습을 바라보고, 기쁘기 한량없어 두 손으로 아우의 목을 끌어안고,
『나는 너에게 불법을 믿게 할 일념으로 이런 방편을 쓴 것이다. 절대로 너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니 않을 것이니 안심하여라.』
두 사람은 한없는 환희에 차 삼보를 공양하였다.
불문에 귀의한 수구다이다는 그 뒤, 계두마사(鷄頭摩寺)에 가서 상좌인 야사(那舍)의 설법을 들었다. 그때, 야사는 신통의 힘으로 수구다이다가 전세에서 이미 착한 업을 쌓았음을 알고, 출가한 아라한의 공덕을 들려주었으므로, 그는 매우 기뻐하여 출가할 것을 원하였다.
그러나 야사는 왕의 허락만 있으면 하는 이야기였으므로 당장 달려와서 왕에게 여쭈었다.
『나는 출가를 하고 싶습니다. 어서 허락해 주십시오. 나의 미친 듯한 본성이 사나운 코끼리에게 고삐가 없는 것과도 같았사오나, 왕은 방편으로써 나에게 고삐를 매어 줌으로써 순하게 될 수가 있게 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자비를 베푸시어 출가할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수가왕은 아우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수구다이다야, 너는 그런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돼. 출가하는 것은 포장으로 만든 똥치는 옷을 입고, 구걸하여 남이 버린 음식도 먹고, 나무 밑에서 풀잎을 깔고서는 자고, 병들면 낡은 약도 먹는 형편이다. 어쨌든 너는 나이도 어리니까 도저히 그 굶주림과 목마름, 더위와 추위는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니 단념하여라.』
『내가 출가를 원하는 까닭은 왕위를 싫어해서도 아니요, 하늘의 즐거움을 구해서도 아니며, 모든 번뇌가 달려들기 때문도 아니요, 돈이나 보물을 탐내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며, 원수의 해침을 무서워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두려워하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출가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소리를 내어 울며 슬퍼하였다. 수구다이다는 다시 말하였다.
『왕이여, 울고 슬퍼할 것 없습니다. 삶과 죽음은 바퀴처럼 돌고 돌아 쉬는 일이 없어서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 세상입니다. 결코 슬퍼할 것은 없습니다.』
아수가왕은 아우의 결심이 굳음을 알고 눈물을 닦으면서,
『그럼, 우선 걸식(乞食)이라는 것을 공부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 뒤에 출가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해라.』
하고, 뒤뜰의 큰 나무 밑에 풀을 깔고 아우를 앉히고,
그리고 바리때를 들려서 궁중을 걸식 시켰다. 그런데 궁중 사람들은 좋은 음식만을 공양하므로 왕은 꾸짖어 말하였다.
『어째서 거지에게 좋은 음식을 공양하느냐. 나쁜 음식을 공양하여 길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 후부터는 궁중 사람들도 나쁜 음식을 공양하게 되었다.
수구다이다도 연습이 충분히 되었으므로, 왕은 때를 보아 출가를 허락하게 되었다.
『출가한 뒤에도 꼭 내 얼굴을 보러오도록.』
하고, 왕은 계두마사로 아우를 보내었으나, 수구다이다는 이 절에서 출가하면 지장이 많았다하여, 먼 비다이국으로 가서 출가하고, 부지런히 수행에 정진하여 드디어 아라한의 지위를 얻었다.
수구다이다는 출가한 뒤에도 가끔 왕궁에 들르라는 왕의 말씀이 있었으므로, 오늘은 돌아가 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가사를 걸치고 바리때를 들고, 화씨성(華氏城)으로 향하였고, 차례차례 동냥하면서 왕궁의 문 앞에 도착하여 문지기에게 온 뜻을 알렸더니, 문지기는 왕에게 이 일을 전하였다.
『빨리 인도해 오너라.』
하고 분부하고, 왕이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데, 수구다이다는 조용히 왕궁으로 들어왔다. 왕은 얼른 왕좌에서 내려와 땅에 엎드리어 절을 하고 다시 일어서 합장하고 수구다이다를 보고, 그 거룩함에 기쁜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일체 중생은 모두 화친근원하여 반가와 하는데 지금 그대 눈에 화친 없으니, 반드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마음에 감로(甘露) 가득하리.』
대신 선오는 전날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똥치는 옷을 입고, 흙으로 빚은 바리때를 들고, 거지 행색의 수구다이다를 보고 찬탄하였다.
『왕족의 영광 화씨의 성, 곳간의 보물과 영광의 녹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가서 성인의 길에 정진한 끝에 길이길이 번뇌를 끊어 버리고, 마음은 언제나 선정(禪定)에 있고 몸은 언제나 탈이 없으며, 맑은 즐거움과 환희는 그지없네, 나라의 영광을 더욱 더하여 이제야 사해를 비치는구나.』
왕은 아우 수구다이다의 손을 붙잡고 그 손을 받들면서 자리에 앉히고, 친히 갖가지 음식을 권하였다. 끝나자 바리에 물을 떠다 입과 손을 씻고, 자리를 마련하며 설법을 청하였으므로 수구다이다는 왕을 위하여 한 마디 설법을 하여,
『왕위는 높고 위대한 것, 결코 방자하지 말라. 삼보는 만나기 힘드는 것, 정성들여 공양할지어다.』
하고 설법을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은 五백명의 대신과 나라 안의 백성들과 함께 고마운 인사를 하고 문밖까지 배웅하였다. 대신과 백성들은 모두 한없는 작별을 못내 아쉬워하며,
『큰형 아수가왕은 아우를 합장, 공경하여 보내노라. 출가하여 깨달음 있다고 들으니, 나타난 증거 두드러지셨네.』하는 게를 일제히 불렀다.
수구다이다는,
『지난날, 왕은 갖가지 방편으로써 나를 불법에 들게 하였고, 이제 나는 왕의 신앙을 더욱 증진시키리라.』하고, 신통력으로써 몸을 날려 공중으로 올라가 갖가지 조화를 부린 뒤에, 멀리 멀리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아수가왕은 비롯하여 대중 일동은 위대한 수구다이다 성자를 합장하고, 눈도 깜박하지 않고 그 쪽을 지켜보며 배웅하고 있었다고 한다.
<阿育王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