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악(五惡)의 고통

오악(五惡)의 고통

석존께서 여러 제자들과 함께 라자가하성의 영취산에 계시면서 아마타불의 대자비와 서방 정토에 대하여 설교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석존께서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을 돌아보시며,

『미륵보살, 그대도 이미 들은바와 같이 아미타불의 나라가 아름다운 안락의 정토이고 청정한 국토임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이렇게 훌륭한 나라이므로 그대들은 열심히 왕생(往生)의 길을 열어주는 염불을 수행해야 한다.

이와 같이 오악(五惡)이 없는 세계에 왕생하려면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것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여 속세에 집착해서 서방 정토를 찾지 않는 것일까! 다만 세속 일에 애착을 느끼고 존비, 빈부, 장유, 남녀, 모두가 논이나 집, 금전이나 의복 그리고 음식과 하인의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선악의 길을 식별하지 않고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등의 현세의 애욕에 현혹되어 어두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로 가엾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고, 석존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현실의 향락(享樂)에 취해서 암흑의 세계에서 암흑의 세계로 전전 방황하고 있는 생활에 대하여 슬퍼하신 나머지 다음 같이 이야기 하셨다.

『미륵보살, 세상 사람들이 바라고 있는 부귀영화라든가 사랑이라는 것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언젠가는 떨어져나가는 것이므로 그것은 참된 기쁨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깊이 생각해서 여러 가지 악에서 벗어나서 착한 것을 취하여 마음으로부터 안락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제멋대로의 행동을 일삼고 가르침과 계명을 거역해서 낙오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경문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물어 보아라. 나는 기꺼이 질문에 답하여 주리라.』

『세존의 말씀대로 세상은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세존께서 자애로우심으로 깨달음의 길을 교시(敎示)하여 주셨으므로 듣는 것과 보는 것이 밝아졌습니다. 천인도, 인간도, 아니 벌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애로운 은혜를 입어서 근심과 고통에서 해탈(解脫)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미륵보살은 양쪽 무릎을 꿇고 말씀드렸다.

『그대의 말이 옳다.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깨달음의 길을 열고 불도를 가르쳐서 사람들의 의혹(疑惑)을 풀고 애욕의 뿌리를 끊고 모든 악의 근원을 끊고 아직 인생 고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을 인도하여 생사와 열반과의 길을 교시하였다.

그리고 현세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행실을 바로 가져서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자기 자신을 닦고 마음의 때를 씻어서 언행이 일치하여 표리(表裏)가 없이 공덕과 적선을 쌓으면 내세에는 아미타불의 정토(淨土)에 태어나서 언제나 즐거우며, 깨닫지 못함에서 영원히 벗어나며, 번민의 고뇌에서 해탈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그대들은 꾸준히 정진해서 정토를 찾도록 하라.』

『저는 지금 세존님의 간곡하신 교시를 받사와 열심히 수도하여 가르침에 보답하고자 생각합니다.』

『그 결심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깨달음이 없는 세계에서 이탈하려는 소망을 가지고 오악 등의 여러 가지 악행을 범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덕이라는 것을 우선 알아야 한다. 이 사바세계는 많은 악업(惡業)에 넘쳐 있어서 시방의 정토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더럽혀져 있다.』

시방 정토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연히 선행만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으므로 교화하기가 대단히 쉬우나 이 세상은 그렇지가 않아서 교화하기가 매우 힘든 것이다.

지금, 이 속세에서 오악을 저질러 그 업보를 받는 사람들을 교화하기란 어려운 일 중에 어려운 일이고, 또 괴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오악을 버리고 오통(五痛)을 떠나서 오소(五少)-(살(殺),도(盜),음(淫),망(妄),주(酒)의 오악을 행하는 자는 죽어서 악도에 빠짐을 오통이라고 하며 그 고통의 심한 것은 몸이 불에 타는 것과 같다는 비유로 하는 말)를 면하게 하고 마음으로 다잡아 오선을 행하게 하고 현세의 복덕과 내세의 왕생, 즉 장수와 깨달음을 얻게 하고자 한다.

그러면 이 오악과 오통과 오소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또 오악을 소멸하고 오선을 행하여 얻는 복덕과 왕생이 무엇인가를 다음에 이야기 하리라.

첫 번째의 살생악(殺生惡)이라는 것은 인간이나 짐승이나 모두 원래의 번뇌에 의하여 여러 가지 악을 행하려 함은 똑같아서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못살게 굴며, 서로 싸우고 죽이고 물고 뜯어서 조금도 적선을 쌓으려고 하지 않고, 극악 무도한 짓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죽은 후에는 그 업보(業報)를 받아서 자연히 악도에 떨어져서 한없는 고통을 받는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은 그 죄과를 기록하여 살생죄를 범한 자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현세에서 보는 가난한 자, 천한 자, 거지, 고독한 자, 귀머거리, 벙어리, 어리석은 자, 편벽하고 비굴한 자, 꼽추, 미치광이, 못난 나들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존경 받는 사람, 부자, 재지(才智)가 높고 지혜가 풍부한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전생에서 윗사람을 잘 섬기고, 아랫 사람은 가엾게 생각하고 적선과 공덕을 쌓은 사람들이다.

나라에 국왕이 제정한 법률에 의한 감옥이 있어도 이것을 겁내지 않고 나쁜 짓을 범하여 감옥에 갇혀서 벌을 받는다. 일단 이렇게 된 다음에는 아무리 그 곳에서 빠져 나오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현세에는 이러한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저승에 가서 받는 고뇌는 현세의 그것보다도 더한층 심각하고 가혹한 것이다.

그래서 죽은 다음에는 고통스러운 삼악도에 태어나서 귀축(鬼畜)의 괴로움을 받는다. 그 괴로움은 마치 국법으로 주어지는 가장 무거운 형벌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인과에 따라서 삼악도에 떨어져서 끝없는 고뇌를 받게 되는 것이니, 그 몸이 아귀나 짐승으로 몇 번이고 바꿔 태어나면서 어두움의 세계를 방황한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노여움을 갖는 자와 함께 태어나서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고 서로 죽인다. 악의 뿌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지은 업보로 인하여 원수는 언제까지나 떨어지지를 않는다.

이렇게 삼악도 중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언제까지나 방황하는 이러한 인과응보의 도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서 응보가 곧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여도 선악의 업보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즉,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인 것이다.

이것을 제1의 대악, 제1의 아름, 제1의 불탐이라고 하며, 그 고통은 자기의 몸이 불속에서 이글이글 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렇게 더럽혀진 세상에서도 살생을 삼가고 몸을 다듬으며, 행실을 옳게 가지고 오직 불살생의 착함을 쌓고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생사의 경지를 이탈하여 현세에서는 복덕을 얻고, 후생에서는 정토에 태어나서 장수를 누리고 깨달음에 들어갈 수가 있다. 이것이 제1의 선근(善根-좋은 과보를 가져오게 하는 원인이 되는 행위)이라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훔치고 빼앗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부자, 형제, 부부, 친척간에도 효순자애(孝順慈愛)의 의리를 지키지 않고, 나라의 법률과 관습을 따르지 않으며, 거만하게 탐욕을 즐기며, 자유 방종을 일삼고, 서로 속이며, 마음과 언어가 부동하며, 진실성이 전연 없다. 속으로는 간계(奸計)를 꾸미면서 겉으로는 친한 척하며 행함에 신의가 없으며, 윗사람에게는 아첨을, 동료간에는 시기를, 선인을 보면 사도(邪道)에 빠뜨리려고 한다.

만약, 일국의 국왕이 어리석어서 분별없이 신하를 신임하면 신하는 왕이 어리석은 것을 기화로 제멋대로 놀아나서 함부로 불량한 짓을 행하고 왕의 비위를 맞추면서 불충한 일을 꾸미고 왕의 위력을 빌려서 자기의 배를 채우려고 한다. 이렇게 왕이 어리석으면 불충한 신하에게 배반을 당한다. 때문에 충신은 떨어져 나가고 천심(天心)을 해치게 된다.

이러한 신하는 왕을 속이고, 아들은 어버이를 속이고, 형제도, 부부도, 친척도, 친구도 서로 속이고 헐뜯게 된다. 이것은 모두 번뇌심 때문에 자기 일신의 이익만을 생각해서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귀한 자나, 천한 자나,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탐욕을 가지고 있기는 모두 같아서 이렇게 되면 나라를 망치고 가정이 파괴되고 자기의 신세를 그릇칠 뿐 아니라, 친척까지도 화를 입어서 결단이 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재산이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인색하여 조금도 남에게 베풀줄을 모른다. 재물을 아끼는 욕심만이 앞서서 스스로 자기의 마음과 몸을 괴롭힌다. 아무리 재화를 모아도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 사람은 빈손으로 혼자 왔다가 혼자가는 것이고, 아무 것도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단지 그 몸을 따르는 것은 인과의 도리뿐이다.

인과의 도리는 「영혼」에 붙어 다니며 혹은 악도에 떨어져서 오랫동안 고통을 받게 한다.

악도에 떨어진 다음에 이미 지은 죄를 뉘우쳐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어리석어서 선악, 인과의 도리를 모르고 착한 사람을 미워하고 그를 따를 생각을 아니한다. 마음내키는 대로 나쁜 짓을 하고 법을 범하고 언제나 흉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한다.

그리고 자기가 얻은 재물은 함부로 낭비하고 탕진(蕩盡)하며 또 재물을 긁어모으기에 혈안(血眼)이 된다. 사심(邪心)에 가득차 있으므로 남을 두려워하는 기색(氣色)이 얼굴에 서려 있다.

세상에는 국법에 의한 감옥이 있어서 도적질을 한 사람은 죄의 경중에 따라서 형벌을 받는다. 이것은 전생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안 믿고 선근 공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세에서도 또 악을 범하였기 때문이다.

천지신명은 그 죄의 크고 작음을 하나도 빠짐없이 명부에 기록해 두었다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 업보를 받아서 악도로 떨어지게 한다. 이렇게 해서 삼악도에 떨어진 다음에는 한없는 고통을 받으며, 악도에서 악도를 방황하며 언제까지나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 고통은 말로는 이루 형언할 수가 없으니 이것을 제二의 대악 제 二의 아픔, 제二의 불탐이라고 하며, 그 고통은 자기의 몸이 불속에서 이글이글 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혼탁한 세상에서도 도적질할 마음을 갖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실을 좋게 가져서 여러 가지 착한 일을 하면, 이 사람은 생사의 바다를 떠나서 현세에서는 복덕을, 내생에서는 정토에 태어나서 장수와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을 제二선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 세 번째의 사음악(邪狀惡)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남녀가 서로 만나서 부부, 부녀, 모자가 되어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장수·단명의 차이는 있어도 조만간에 모두 죽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 중에는 현명한 사람, 훌륭한 사람, 귀한 사람, 재산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 천한 사람, 약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또 음탕한 마음이 있어서 불륜(不倫)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가슴속에 정욕이 불타서 애욕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여 좌불안석(坐不安席)으로 어떻게든 여자를 자기의 것으로 하려고 고민을 한다. 남자도 여자도 정욕에 사로잡혀 음란(淫亂)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아내를 마다하고 첩을 두고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만다.

또 작당을 해서 살인 강탈을 하는 극악무도한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악(邪惡)한 욕심은 언제나 타인의 재산을 엿보고 자기는 놀면서 훔쳐낼 생각만 하며 약간의 재물이 손에 들어오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어 마침내는 도둑질이 손에 익어 그것으로 처자를 먹인다.

이와 같이 쾌락에 몸을 던져 언제까지나 환락(歡樂)에 젖어든다. 그리고 친족간에도 구별 없이 간음(姦淫)을 하고 일가친척은 이 때문에 근심 걱정에 쌓인다.

이런 사람은 국법을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악행은 사람이 알게되고, 귀신이 알고, 해와 달, 그리고 하늘도 이를 기록한다. 그래서 죽은 다음에는 악도에 떨어져서 무진 고통을 받는다.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악도에서의 고통은 말로서는 표현할 수가 없으니 이것을 제三의 대악, 제三의 아픔, 제三의 불탐이라고 하며, 그 고통은 자기의 몸이 불속에서 이글이글 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혼탁한 세상에서도 사음심(邪狀心)을 억누르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여러 가지 적설 공덕을 쌓아서 악행을 범하지 않으면 현세에서는 복덕을 얻고 사후에는 정토에 태어나서 장수와 깨달음의 길에 들어갈 수가 있다. 이것을 제三의 선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네번째의 망어악(妄語惡)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착한 일은 별로 하지 않고 흔히 남에게 거짓말이나 욕을 하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말로 지껄여서 서로 싸우며 마음을 해치고 있다.

그리고 착한 사람을 비방(誹謗)하며, 현명한 사람을 모함(謀陷)하려고 한다. 집에서는 부부의 즐거움만 알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스승과 선배를 경멸하며, 친구지간에는 신의를 저버리고 자기만이 옳다고 위세를 떨며, 남을 업신여기고 분수를 차리지 못한다.

나쁜 짓을 하고도 창피한 줄 모르고 자기만을 내세우며 남이 경원(敬遠)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그리고 천지신명과 해와 달을 공경하지 않고 착한 일을 조금도 행하지 않으므로 선근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으며, 이런 사람에게는 가까이 가서 가르치지도 못한다. 그것은 건방지게 버티고 자기의 행위만이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고난은 조금도 개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못된 사람을 천지신명은 낱낱이 기록하지만, 이 사람은 전쟁에서 약간의 복덕을 쌓았으므로 해서 그 덕택으로 업보를 잠시 동안은 면할 수 있으나, 현세에서 다시 악을 범하였기 때문에 그 복덕이 모두 없어져 버려서 홀로 외로이 의지할 것이 없어져 버린다. 죽은 다음에는 현세에서 범한 악행의 업보가 일시에 나타나서 자연히 악도에 떨어진다. 이와 같이 범한 죄의 업보는 반드시 있는 법이어서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이 사람은 곧 불속에 던져져서 몸과 마음이 찢길듯한 고통을 받는데, 그때 가서 후회를 한들 별 도리가 없다. 인과응보의 도리는 명명백백(明明白白)한 것이어서 조금도 어김이 없다.

이렇게 삼악도에 떨어지면 도저히 그 곳에서 헤어날 수 없고, 그 받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는데 이것을 제四의 대악, 제4의 아픔, 제四의 불탐이라고 하여 전생의 업보로 받는 고통은 자기의 몸이 불속에서 이글 이글 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 더럽혀진 사바 세계에서 망어에 조심하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갖고 여러 가지 착한 일을 하고 악행을 하지 않으면 현세에서는 복덕을 얻고 내생에서는 정토에 태어나서 장수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을 제四의 선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의 음주악(飮酒惡)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모두 게으른 생활을 하며 착한 일은 하지 않고 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므로 가족들은 모두 허기가 지고 구차한 생활을 하게 된다. 부모가 타일러도 듣지 않고 오히려 눈을 곤두세우고 반목하며 거칠게 말대꾸를 한다.

마치 원한을 품은 사람이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이, 이러한 자식은 차라리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편안하리라. 부모는 친족들과 함께 근심 걱정에 쌓인다. 은혜를 저버리고 의리 부동하며, 은혜에 보답할 줄을 모르므로 가난과 곤란을 당하여도 누구 하나 불쌍히 여기지를 않는다. 그뿐이랴, 타인의 재물을 가로채서 멋대로 놀아난다.

주지육림에 빠져서 호의호식에만 정신을 쓰니 그 성격은 우둔(愚鈍)하고 남의 괴로움은 아랑곳 없이 타인의 물건을 갈취(喝取)하기 일쑤다. 착한 사람을 미워하고 욕하고, 사람의 의리나 예의 범절을 망각(忘却)하고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까닭에 충고를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일가 일족의 재산에 유무도 생각하지 않으며, 부모의 은공도 모르는 채, 스승과 선배와 친구의 의리를 저버리고 악행만 거듭하며 선근을 쌓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부처와 성인의 가르침을 믿지 않고 불도를 닦으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 영혼이 다른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도 믿지 않으며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도리를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더욱 나쁜 것은 아라한의 자리에 오른 성자를 해치고 교단을 문란케하며 부모 형제까지도 죽이려고 하므로 일가 일족의 사람들은 미워하는 나머지 어서 빨리 죽어버리라고 저주한다.

이렇게 술을 마시는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같아서 전생의 일이나 죽어서 가는 곳을 알지를 못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동정하는 일과 이를 행하는 마음도 없이 천지의 도리에 어긋난 무도한 짓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요행을 바라고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사람은 반드시 한번은 죽어야 한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악인에게 자비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깨우쳐서 올바른 길과 선악 인과의 도리를 타일러 주어도 도무지 믿지를 않아서 그 효험이 나타나지를 않는다.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므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 사람이 임종시에 후회하는 마음이 생겨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천지간에 있는 인과의 도리는 너무나 명백하여서 선악의 행실에 의한 화와 복의 업보는 반드시 오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인데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의 도리에 따라서 자기가 행한 업보는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다.

악을 행한 업보는 『영혼』에 붙어 다녀서 결코 사라지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선인은 착한 일을 행하여서 행복한 인생에서 천상의 안락처로 가고 다시 천상으로부터 인간계에 태어날 때에도 부귀한 신분으로 태어난다. 이와 반대로 악인은 악을 행한 결과, 고통으로 가득찬 삼악도에 태어나고 다행히 인간계에 다시 태어난다하여도 수명이 짧은 가난하고 비천한 몸으로 태어나게 마련이다.

이같은 인과응보의 도리는 아무도 알고 있는 자가 없고, 오직 한분 부처님만이 알고 계실 뿐이다. 부처님은 이 도리를 교시하시지만 이것을 믿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생사의 유전(流轉)은 영원히 계속되며 삼악도도 또한 없어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이같이 악을 행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은데 이들에게 자세히 설교하기란 매우 곤란한 일이다.

음주악을 범한 자도 역시 삼악도에 빠져서 무한정한 고통을 받으며 언제까지고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며 그 고통 또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데, 이것을 제五의 대악, 제五의 아픔, 제五의 불탐이라고 하며, 악도의 고통은 마치 자기의 몸이 불속에서 이글이글 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음주하는 마음을 억제하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갖고 언어 행동이 성실하고 모든 일에 진실하여 많은 적선 공덕을 쌓으면 인생 고해를 넘어서 현세에서는 복덕을 받고 후생에서는 정토에 태어나서 장수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제五의 선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오악을 범하여 현세에서는 오통의 쓰라림을 받고 죽은 다음에는 오소의 업보를 받아 삼악도를 전전 방황하면서 결코 벗어나지 못함은 이상과 같은 것이다.

난치의 악병에 걸려서 괴로움을 못 이겨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고 오통의 쓰라림을 받고 있는 사람을 흔히 보는데 이것은 모두 오악의 소지인 것이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악업으로 인하여 삼악도에 빠져서 불에 그슬리는 고뇌를 받는데 다행히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전생의 업보로 원한을 품고 사소한 일로도 대죄를 범하게 된다.

이러한 업보는 재산이나 애욕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며, 어리석고 못남과 정욕에 흔들리어 마음을 어지럽히고 번뇌로 인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이 묶여서 감히 이 사실을 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 자기의 이익만을 쫓아서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하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혹시 부자나 훌륭한 신분으로 태어났어도 쾌락만을 즐겨서 자제(自制)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선 공덕을 쌓지 않으면 그 신분이나 위세는 오래가지 못하며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악행을 범하면 현세에서는 형벌의 고통을 받고 죽은 다음에는 이보다 몇천 몇만배의 대단히 지독한 고통을 받는데, 업보의 길은 곧장 이어서 굽히지 않으며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으니 악을 행하면 반드시 그 응보가 나타나서 귀천상하의 구별 없이 업보의 그물에 걸려서 사정없이 홀로 고뇌의 그물에 엉켜 들어간다. 예나 지금이나 이 이치에는 추호의 변함이 없다. 애처롭기 그지없으며 가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세상, 오악의 형상(形相)이 실로 이러하니 부처님은 악에 물드는 것을 긍휼히 여기시어 신통력으로 이 오악의 줄을 끊고 적선 공덕하기를 교시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오악지심을 버리고 불도를 받들어 오선을 쌓으면 능히 암흑의 바다를 건너서 정토에 태어나서, 깨달음을 터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석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도,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오선오악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하라. 오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마음 바르게 행실을 삼가면서 살아야 하느니라. 윗사람은 착한 일을 하면서 아랫사람을 너그러이 보살피라. 사람을 가르쳐 인도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부터 올바르게 하라. 성자를 공경하고 성인을 따르고 인애와 자비심을 가지고 널리 모든 사람을 대하라.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거역함이 없이 깨달음의 길을 찾을 것이며 악업의 근원을 끊어버리고 한없는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힘쓰라.

그대들은 아무리 혼탁한 이 세상이라 할지라도 널리 공덕의 근원인 육바라밀의 수행을 쌓고, 은혜를 베풀며 부처님이 계명을 범하는 일 없이 인욕과 정진과 지혜와 선정(禪定-참선하여 삼매경에 이름)의 수행을 게을리 말지어다.

또 서로가 가르치고 이끌어서 공덕을 쌓도록 노력하라. 오악을 물리치고 오선을 닦는 올바른 마음을 먹고 하룻동안 팔재계(八齋戒-득도해탈을 위하여 一일 一야 동안 지키는 여덟가지 금계 즉 살생, 투도, 음욕, 망어, 음주, 부작업 관화, 도향, 부좌광대상, 부비시식)를 지키면 그 공덕은 아미타불의 정토에서 백년 동안 선근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그 까닭은 안락정토는 깨달음 도리에 들어맞은 청정한 곳이므로 모두가 선행을 행하여 털끝만한 악행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바세계에서 열흘 동안 선행을 하면 그 공덕은 다른 부처님의 나라에서 천년 동안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그 이유는 부처님의 나라는 선행하는 자가 많아서 복덕이 스스로 모여서 악이 없는 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이 세상만이 악이 많아서 복덕이 적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헛되게 괴로워하며 욕심을 내고 서로 거짓과 속임으로 심신을 다치고 독을 마시고 고통을 당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세상 살아가기에 바삐 굴어서 한번도 편안한 마음을 가져보지 못한다.

나는 그대들과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에 빠져 있는 것이 측은해서 간곡히 가르쳐 깨닫게 하고 선을 닦고 그 능력에 따라서 각각 설법을 하고 제각기의 염원에 맞는 깨달음을 얻도록 하였다.

그런고로 부처님의 발이 닿는 나라와 마을은 모두가 그 가르침의 은덕을 입어 천하는 태평하고 일월풍우(日月風雨)가 순조로와 재해와 질병이 없고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편안하여 군사나 무기는 소용이 없으며 사람들은 서로 인덕(仁德)을 존중하고 예의에 맞는 길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세상 사람들을 불쌍하고 가엾게 생각해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크고 넓게, 지금 이 세상에서 부처가 되어 오악을 멸하고 오통을 덜어주고 오소를 제거해서 선을 권하고 악을 없애서 오선을 얻게 하고 득도(得道)의 세계로 인도하려고 한다.

내가 열반에든 후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차차 자취를 감추면 사람들은 또다시 어두운 마음을 먹고 오악을 행하여 오토, 오소의 업보를 받게 되어 그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날로 심하게 될 것이다. 그 모양을 지금 자세히 이야기 할 수는 없고 지금은 단지 그대들에게 세상의 오악에 대하여 간단히 이야기했을 뿐이다.』

긴 설법을 마치신 석존께서는 다시 미륵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깊이 생각하여 서로 가르치고 인도해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따를 것이며, 혹시라도 가르치심이나 계명을 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미륵보살은 석존을 합장해 모시며 말씀 올렸다.

『세존께서 설법하신 가르치심은 지극히 간절하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오악에 빠져서 고통을 받고 있는 모양은 정말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여래께서는 대자비심으로 일체의 것을 가엾게 보시고 우리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셨습니다. 저희들도 세존님의 간곡하신 가르침을 받들어 굳이 어긋남이 없겠습니다.』

<佛說無量壽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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