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음

참음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언젠가, 석가모니께서는 자기의 과거세(過去世)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시었다.

석가모니께서는 과거세에 데바닷다(提婆達多)와 함께 장사꾼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보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각각 5백명의 상인을 데리고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업연(業緣)으로 말미암아 큰 폭풍우를 만나, 아차 하는 동안에 배는 부숴지고, 일행의 전원은 모두 물고기의 밥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석존과 데바닷다의 두 사람만은 장수의 과보를 얻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좌우간 목숨을 건져 가지고 육지에 되돌아 올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일단 채취한 보물은 배가 가라앉을 때에 다 없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데바닷다는 뭍에 올라오자 잃어버린 보물에 대한 집념에서 원통하다고 울기 시작하였다.

『데바닷다야, 이제 새삼스럽게 울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

『아니야, 그렇게 쉽사리 단념할 수가 없어. 가령, 여기에 한 가난한 사람이 있어 그는 그날그날의 생활에도 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묘지에 가서 송장을 붙들고 말하기를

『제발 나에게 죽음의 즐거움을 줄 수는 없겠는가. 그러면, 나는 가난과 목숨을 당신에게 주리라.』

하니, 송장은 일어나서,

『가난한 사람아, 가난과 목숨은 당신이나 받으시오. 나는 죽음의 즐거움을 즐기고 있으니까 말이요.』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이렇게 가난하지만 죽지도 못하니 울지 않고는 뱃길 수가 없는 것이다.

『데바닷다야, 세상이란 그리 걱정할 거소 아니야, 나는 지금 여기에 값비싼 구슬 두 개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를 네게 주마.』

이리하여 나는 값비싼 구슬을 그에게 한 개 나누어 주었다.

『데바닷다야, 목숨이 살아 있기 때문에 이런 보배 구슬도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목숨이 없으면 손에 넣고 싶어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냐.』

그러나 그 때 나는 상당히 피로해 있었으므로 나무 아래에 누워서 잠이 들어 버렸다. 그 때, 데바닷다는 타고난 탐욕심이 무럭무럭 고개를 들어, 자기가 받고 남은 또 하나의 구슬이 탐이 나서, 느닷없이 나의 두 눈을 찌르고, 빨리 내 호주머니에서 구슬을 뺏아 가지고 도망쳐 버렸다. 나는 상처가 아파서 신음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와서 왜 신음하고 있느냐고 묻기에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몹시 동정하여,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실어(實語)라고 합니다.』

『실어, 그것참 이상한 이름이구려. 허나, 당신이 실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것은 사실이 무엇보다도 웅변적으로 증명해 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만일에 데바닷다에 대하여 원한을 품는다면 나의 눈은 영원히 멀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면 나의 두눈은 전과 같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맹세를 하였더니, 나의 두눈은 멀쩡히 회복되어 전과 같이 되었다.

또 나는 옛날, 남인도의 후단나성의 어느 바라문의 집에 태어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후단나성에는 가라후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성질이 몹시 포악하고 교만하였다. 그러나, 얼굴이 남보다 뛰어나게 아름답고 또한 장년이었으므로 마음껏 세상의 오욕에 빠져 있었다.

그 때에 나는 중생제도를 위하여 성밖 선경(仙境)에서 명상의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산에 봄이 찾아와 형형색색의 화초들이 울긋불긋 피고, 성의 안팎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계절이 되었다. 세상의 향락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는 가라후왕은 성밖의 봄경치를 구경하기 위하여 많은 궁인과 시녀들을 데리고 숲 사이에서 마음껏 산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시녀가, 바라문이 도를 닦느라고 명상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구도자를 그리워하는 나머지 왕을 버리고 나에게로 찾아왔다. 나는 이 불의의 아름다운 방문자에게 우선 탐욕을 끊을 것을 역설하였다.

한편, 왕은 갑자기 아름다운 시녀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으므로, 교외의 봄 경치도 눈에 보이지 않아 여기 저기 차자 돌아다닌 끝에 겨우 구도자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헐레벌떡 나를 찾아와 짖궂은 질문을 하였다.

『구도자여, 당신은 나한(羅漢)의 지위는 얻었는가.』

『아직입니다.』

『불환과(不還果)는?』

『아직입니다.』

『나한도 불환과도 못 얻었다면 아직 탐욕의 번뇌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도를 닦는 자로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눈독을 들인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짓이 아니냐.』

『말씀대로 나는 아직 탐욕이 있는 자입니다마는, 그러나 속마음은 청정하여 아무런 탐욕도 없습니 다.』

『이 바보녀석 같으니라고, 무엇이 어째, 오욕을 끊고 나무열매를 먹는 신선까지도 오히려 여색을 탐하고 있지 않느냐. 하물며, 너와 같이 나이도 젊고 탐욕이 왕성한 자가 여색에 집착하지 않을 까닭이 없지 않으냐.』

『대왕이여, 여색에 집착하고 안하고는 나무열매를 먹고 안 먹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여색에 집착하는 것은 무상(無常)과 부정(不淨)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깔보고 험구를 하다니 더욱 더 괘씸한 놈이로구나. 그래 가지고서 도계(戒)를 지키는 구도자라 할 수가 있겠느냐.』

『대왕이여, 남에 대한 비난은 질투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질투심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남을 비난한다는 나무람은 만부당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는데, 대체 계란 무엇이냐.』

『대왕이여, 그것은 「참음(忍)」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참음」이 「계」란 말이냐. 그렇다면 역서 네녀석의 귀를 잘라 보겠다. 만일에 그것을 참을 수가 있으면 네녀석은 비로소 지계자(持戒者)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포악한 가라후왕은 그 자리에서 나의 귀를 베어 떨어뜨렸다. 그러나 귀를 잘린 나는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았으나, 옆에서 보고 있던 신하들은 그 왕의 난폭한 행위에 얼굴을 돌리고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이러한 대사(大士)에게 해를 입힌다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옵니다.』

『뭐, 대사라고? 이자가 대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아느냐.』

『대왕이시여, 귀가 잘렸는데도 얼굴빛 하나 변치 않으오니, 그래서 대사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 그러나 나는 미처 몰랐다. 한번 더 고통을 주어 과연 얼굴빛을 변하지 않는가 어떤가 시험해 보리라.』

그렇게 말하면서 왕은 나의 코를 베었다. 다음에는 손을, 그 다음에는 발을 잘라 버렸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자비의 수행을 쌓은 덕택으로 사람을 원망하기보다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이 때, 하늘 위의 사천왕은 나쁜 왕의 포악함을 노여워하여 모래와 조약돌들을 왕의 머리에 비오듯 내려 뿌렸다. 그토록 나쁜 왕도 하늘의 노여움에는 못 이기는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까지 한 일은 거듭 거듭 사죄하옵니다. 제발 자비로써 저의 참회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대왕이여, 내 마음 속에는 탐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여움도 없소.』

『대덕(大德)이시여, 마음속에 노여움이 없다는 것은 어떻게 압니까.』

이에 나는 마음에 노여움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한 맹세를 하였다.

『내 마음 속에 참으로 노여움이 없다면, 나의 잘린 손발과 귀와 코를 전과 같이 회복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나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맹세는 바로 보답이 되어 온 몸은 눈깜짝할 사이에 회복 되었다.

「참음」이라는 것은 이렇듯 거룩한 것이다.

<涅槃經第二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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