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앙굴마경(佛說鴦掘摩經)

불설앙굴마경(佛說鴦掘摩經)

축법호(竺法護) 한역 김철수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대비구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사위성 안에는 신이(神異)한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3경(經)에 통달하여 의혹이나 걸림이 없었고 다섯 전적(典籍)에 막힘이 없었으며 질문에 대하여 자유자재로 뛰어나게 대답하였으니 우러러 숭앙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또한 나라의 원로로서 자문에 응했으며 무리 가운데 종장(宗長)이었다. 그 문도(門徒)가 수두룩하여 5백 명이나 되었는데 상수(上首) 제자는 앙굴마(鴦掘摩)[진나라 말로는 지만(指鬘)]였다. 그는 몸가짐이 훌륭하고 용맹하였으며 힘이 장사보다 더 셌고 손으로 활개치며 달리면 빨리 달리는 말보다 앞섰다. 총명하고 지혜로웠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성품이 온화하고 우아하였고 침착하면서도 민첩하여 어떤 의혹이나 걸림이 없었으며 모습도 아주 훌륭하여 스승이 그 기특함을 칭찬하였다.

그런데 스승의 부인이 그를 흠모하여 남편이 외출한 틈을 타 지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말하였다.

“그대를 바라보니 안색이 좋고 용모가 당당합니다. 나이를 따져보아 서로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으니 더불어 서로 즐거움을 누려 봅시다.”

지만은 그 말을 듣고 황망하고 두려워 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무릎을 끓고 답하였다.

“부인께서는 어머니에 견줄 만한 분이시고 스승께서는 당연히 아버지와 같으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천박하게 이런 말씀을 하시니 예의로 보더라도 감히 허용할 수 없으며 마음도 달갑지 않은 일이어서 심히 법답지 못합니다.”

스승의 부인이 다시 말하였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이 어찌 법답지 못하다는 것입니까?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따뜻한 옷을 보시하고 더위에 지친 사람에게 청량함을 베풀어주는 것이 어찌 법답지 못하다는 것입니까? 헐벗은 사람을 돌보고 위험과 액난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어찌 법답지 못하다는 것입니까?”

지만이 답하였다.

“병이 나 급한 사람에게 달려가 구제하여 잘 처리해 주는 것은 진실로 법답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인께서는 어머니와 같으시고 스승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분인데, 음욕을 따라 색신(色身)에 집착하여 교만하게 계를 범하신다면 옳지 못하니 비유하자면 뱀이 두꺼비의 몸에 있는 독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스승의 부인은 이 말을 듣고 곧 수치스러움과 분한 마음을 품고 돌아가, 결국 스스로 옷을 찢고 울금향(鬱金香)을 노랗게 얼굴에 바른 다음 근심으로 풀이 죽은 척하며 누워 있었다.

이 때 스승이 돌아와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보기가 흉하오? 어떤 놈이 강제로 욕을 보인 것이오?”

부인이 모함하여 말했다.

“당신이 항상 총명하고 지혜 있다고 찬탄하시는 그 제자는 성품이 부드럽고 어질며 정결하여 행실이 바른 줄 아셨지요? 그런데 당신이 아침에 집에 계시지 않자 저에게 와서 저를 강제로 끌고 가 제멋대로 어기고 방자히 굴다가, 제가 따르지 않자 능멸하고 모욕을 주며 누르고 머리채를 잡고 힘이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욕을 당했기 때문에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스승은 이 말을 듣자 슬프고 마음속에 치성한 분노가 일어 회초리로 체벌하고 고문으로 죄과를 다스리려 했으나 지만의 건장함과 패기를 고려할 때 힘으로는 조복시키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물러나 고요히 침묵한 채 부도덕하게 규방의 상하 질서를 더럽힌 것에 대해 깊이 사유하면서 서성거렸다. 그는 깊은 신음을 토하며 어찌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우울하게 탄식하여 말하길 ‘가르침을 은밀하게 바꾸어 전도된 가르침으로 그로 하여금 손가락 한 개씩을 꿰어서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도록 가르쳐야겠다. 살인죄는 그 죄과가 막대하여 회초리의 혹독함을 가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가 살륙의 죄로 위험을 자초하게 될 것이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져 벗어나려고 해도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라고 하였다.

이에 스승은 지만에게 명하였다.

“그대는 총명하고 지혜 있어 배운 바가 고루 미치고 면밀하여 비밀한 가르침을 전수 받아 정진하여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오로지 한 가지 재주만은 아직 행하지 못했느니라.”

지만이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그것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스승이 말하였다.

“속히 성취하려면 마땅히 잘 드는 칼을 집어들고 새벽에 네거리로 가서 몸소 백 사람을 죽여 사람마다 손가락 한 개씩을 취하여 장식물로 삼으면서, 낮 동안까지 손가락 백 개를 채우는 일을 지성껏 하면 도덕(道德)이 갖추어지리라.”

그리고 곧 스승은 칼을 건네 주었다. 지만은 칼을 받아들면서도 스승의 말에 놀라 두려워하였고 마음속에는 근심과 슬픔이 일었다. 가르침[敎旨]을 어기면 지극한 제자라 할 수 없고, 그것을 따라 행하자니 도리에 어긋나는 일에 빠져들어 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칼을 받들어 물러나면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는 것이 범지법(梵志法)이요, 부모에게 효도하고 잘 봉양하는 것이 범지법이며, 많은 종류의 선(善)을 닦아 행하는 것이 범지법이고, 그릇된 일을 하지 않고 바르게 나아가는 것이 범지법이며,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고 어질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 범지법이 고, 자(慈)·비(悲)·희(喜)·사(捨)의 네 가지 평등법을 널리 베푸는 것이 범지법이며, 다섯 가지 신통력을 얻는 것이 범지법이고, 범친(梵天)을 초월하는 것이 범지법인데 지금 폭력을 행사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법도 아니고 도리를 잃는 처사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였고 고뇌하면서 곧 나무 앞에 이르러 네거리의 옆으로 갔다. 슬픔과 분노가 이니 악귀가 화(禍)를 도와 그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였다.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고 울부짖으면서 사방을 바라보니 멀리서 보기에는 마치 악귀나 사자와 같았고, 호랑이나 이리 같은 짐승이 뛰어오르고 치달리는 것과 같아 그 모습이 두려워할 만했다. 길거리의 행인들은 네 방향에서 모여들어 모두 다 성(城)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곧 긴 칼을 치켜들고 많은 사람을 살해하니 사람들이 두려워 흩어지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마주친 이들은 도망치지 못했다. 우왕좌왕하며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원망과 비통으로 울부짖으며 왕궁으로 달려가 패역을 저지르는 도적에 대해 알렸다.

“큰길을 막고서 적지 않은 사람을 해치니 오직 원하옵건대 대왕[天王]께서는 백성들을 위하여 근심거리를 제거해 주십시오.”

그 때 여러 비구들이 성으로 들어가 공양을 받다가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공포에 떠는 것을 보고 음식을 거둔 다음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발 아래에 머리를 숙이고 세존께 아뢰었다.

“나라 백성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왕궁 앞으로 나아가 고하기를, 지만이라는 대역적이 예리한 칼을 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해(危害)를 가해 그 몸과 손이 피투성이로 물들었고 길에는 행인이 끊겼다고 하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그곳에 가지 말아라. 내가 직접 가서 그를 구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있는 장소로 찾아가셨다.

수행자와 가축 치는 사람과 짐꾼과 수레에 짐을 실어 나르는 사람과 경작하며 사는 사람 등 여러 백성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지금 대성(大聖)께서 오시는군요. 그러나 이 길로는 가지 마십시오. 앞에 패역을 저지르는 도적이 네거리 도로를 막고서 사람을 죽여 어질러 놓았으니 제발 가시는 곳을 바꾸십시오. 또한 홀로 걸어가시니 수행하여 호위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설사 3계(界)가 다하여도 원수를 포로로 잡은 적이 없는데 하물며 일개 도적이겠는가?”

지만의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식사 때가 되었어도 먹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이 필시 굶었을 것이라고 걱정을 하며 음식을 싸가지고 성 밖으로 나가 아들에게 주려고 했다.

지만은, 태양이 중천을 향하고 있었는데도 아직 백 개의 손가락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질 때까지 도업(道業)이 갖추어지지 않을까 염려하여, 다시 그의 어머니를 해쳐서 그 수를 채우려 했다.

부처님께서는 지만이 만약 그의 어머니를 해친다면 죄를 멈추게 할 수 없고 구할 수도 없으리라 생각하셔서 곧 홀연히 그의 앞으로 나아가 멈추어 섰다.

그 때 앙굴마는 부처님을 쳐다보고 그의 어머니를 포기하였다. 그는 마치 사자와 같은 걸음으로 세존께 다가가며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길 ‘열 사람이고 백 사람이고 나를 보면 흩어져 달아나 감히 나를 감당하지 못한다. 나는 항상 기운을 떨치고 위세를 부려 종횡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더구나 이 사문은 지금 혼자의 몸으로 왔으니, 나는 이 자를 얕잡아 보고 반드시 그의 목숨을 빼앗으리라’라고 하였다.

그는 곧 칼을 들고 부처님을 향하여 나아갔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힘을 다하여 빠르게 달렸지만 역시 따라잡지 못하자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강이나 시내도 뛰어 건널 수 있고 어떤 결박도 풀 수 있으며 던지고 쪼개고 하는 일에 용맹하여 일찍이 필적할 만한 자가 없었고 겹겹으로 지른 빗장이나 견고한 요새도 열어제치지 못한 것이 없었는데, 이 사문은 천천히 걸어 움직이는데도 내가 달려가 미치지 못하고, 또한 온갖 힘을 다 써도 끝내 가까이 가지 못하는구나.’

지만이 부처님께 말했다.

“사문이여, 멈추어라.”

부처님께서 패역한 도적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멈춘 지가 오래되었다. 다만 그대가 아직 멈추지 않은 것이다.”

이 때 앙굴마는 멀리서 게송으로 말했다.

적정(寂靜)에 뜻을 둔 이시여 
자신은 이미 멈추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무슨 의미이며, 
나는 왜 멈추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서있다고 말씀하시며 
몸이 움직여 머물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어 
도리어 내가 이와 같다고 하시는지 
원컨대 이 뜻을 설명해 주십시오.

이에 세존께서는 지만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지만이여, 그대는 내 말을 잘 들으라.


내가 그대의 허물을 없애 주리라.


그대는 지혜 없는 생각을 향해 달리고 있으니 
나는 멈추어 있으나 그대는 멈추어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세 가지 해탈에 안주하여 
법을 좋아하고 범행(梵行)을 닦으나 
그대는 어리석은 생각을 향해 치달아 
해칠 생각을 품었으니 아직 멈추어 있지 않은 것이다.



대성(大聖)이 한없는 지혜로 
네거리에서 조용히 일러주는 것이니 
말한 바 죄에 대해 깊이 새겨듣고 
법의 뜻을 잘 들고 음미하도록 하라.

이에 지만은 곧 마음이 열리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칼을 버리고 땅바닥에 자신의 머리를 대고 말하였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사람을 많이 해쳐 손가락을 모아 도(道)를 알고자 하였나이다. 다행히 자비하신 이를 의지하게 되어 원죄(原罪)를 빌게 되었사오니 불쌍히 여기시고 받아주시어 출가하도록 허락해 계(戒)를 성취하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그를 받아들여 사문이 되도록 하였다.

그 때 위신력이 우뚝하시고 지혜의 광명이 밝게 빛나시는 세존께서는 결가부좌하고 계셨고 현자(賢者) 지만은 부처님을 좌우로 날개처럼 모셨으며 부처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다시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오셨다.

지만은 부처님으로부터 감화를 받는 은혜를 입었으며 부처님[衆祐]으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많은 부처님의 훌륭한 제자들 역시 모두 그를 잘 받아들여 주었다. 그 족성자(族姓子)는 삭발을 하고 난 다음 법복을 입게 되었고 믿음을 내어 집을 버리고 도를 행하였다.

그는 궁극적이고 위없는 범행을 닦아 갖추고 여섯 가지 신통을 얻어 생사가 이미 끊어진 경지를 증득하였으며 청정한 덕을 지었다고 칭송되었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명색(名色)의 본질에 대해서 잘 이해하여 아라한[應眞]의 경지를 얻었다.

그 때 파사닉왕(波私匿王)[진나라 말로는 화열(和悅)]은 4부대중과 코끼리, 말, 보병, 기병을 거느리고 수레를 빈틈없이 무장하고서 그 패역 죄인을 벌하고자 하였다. 그 때 왕은 몸이 지쳐 피곤하였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세존의 발 아래에 머리를 숙였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물었다.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며 왜 몸은 흙먼지로 덮여 있습니까?”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름이 아니오라. 세존이시여, 앙굴마라는 대역적이 있사온데 흉포하여 살생의 마음을 품어 네거리를 가로막고서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들고 백성들 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네 부류의 군중을 통솔하여 그를 붙잡으려고 출정하였습니다.”

이 때 지만은 비구 대중의 무리 속에 있었는데 부처님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지만은 여기에 있는데, 이미 머리를 깎고서 비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미 도에 뜻을 두었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에게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 좌구(坐具) 및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바치겠습니다.”

왕은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그런데 대성이시여, 흉악한 대역죄인도 도에 이르러 적정(寂靜)의 뜻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지금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왕은 그를 멀리서 보고 마음에 두려움을 품어 털이 곤두섰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두려움에 떨지 마십시오. 지금은 인자하고 어질어 다시는 대역죄를 지을 미음이 없을 것입니다.”

왕이 그에게 예를 표하고 말하였다.

“현자여, 그대가 지만입니까?”

그가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인자(仁者)의 성은 무엇입니까?”

그가 답하였다.

“기각(奇角)씨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무엇 때문에 기각씨라 합니까?”

그가 답하였다.

“부친의 본성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기각씨의 자손이라면 나의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의복과 음식, 좌구와 와구 및 질병을 치료하는 약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공양하겠습니다.”

왕은 이렇게 약속하고서 머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리고 세존을 찬탄하며 말하였다.

“다스릴 길 없는 사람들을 능히 다스리시고 아직 성취하지 못한 사람들을 능히 성취하게 하시며 편안히 안주하신 채 대자비를 내리시어 도(道)로 나아가게 하지 않음이 없으시고 걱정거리를 소멸해 주시며 대역죄인을 조복시켜법회(法會)를 충만하게 하시고 또한 일반 백성들로 하여금 평정을 얻게 하셨나이다. 저는 나라 일이 많아 물러가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편하신 대로 마음에 따라 행하십시오.”

왕은 부처님의 발 아래에 머리를 숙이고 나서 물러갔다.

한편 현자 지만은 한적한 거처에서 5납의 (納衣)를 입고는 아침이 밝자 발우를 들고 사위성으로 들어갔다. 널리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탁발하다가 어떤 집에서 임신한 여인이 달이 차 출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인은 마음으로부터 귀의하여 의지하면서 지만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구제 받는 은혜를 입을 수 있겠습니까?”

지만은 음식을 받자마자 성 밖으로 나와서 식사를 마치고 발우를 씻은 다음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곧 더욱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찾아뵙고 머리 숙여 아뢰었다.

“저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성 안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여인이 산달에 이르러 출산하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난산의 고통으로 두려움에 떨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지만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속히 가서 그 여인에게 이르길 ‘이 지만의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면 나는 태어난 이래 일찍이 살생한 적이 없소. 과연 이와 같다면 누이는 당연히 편안하게 되어 걱정이 없을 것이오’라고 하여라.”

지만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지은 수많은 죄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며 또한 백 명이 다된 아흔 아홉 명을 죽인 형편인데 이런 말을 한다면 어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전생의 세상과 금생은 달라서 같지 않으니 이것이 진실이라면 거짓말은 아니기에 이를 빌리면 그 여인의 액난을 구하리라.”

지만은 곧 대성(大聖)의 가르침을 받들어 그 여인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시키신 대로 말하였다.

“내 말이 진실하여 거짓이 아니라면 나는 태어난 이래 일찍이 살생한 적이 없소. 과연 이와 같다면 마땅히 누이가 편안하게 출산할 수 있을 것이오.”

이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그 여인은 사내아이를 낳았고 또한 편안함을 얻었다.

그 때 지만은 사위성으로 들어갔는데 조무래기 아이들이 그곳에서 그를 보고는 기와 조각이나 돌을 던지고 화살을 쏘며 혹은 칼로 긋고 찌르고 장대로 두들겨 패고 하여서, 현자 지만은 머리가 깨지고 몸에 상처를 입고 옷은 찢긴 채 다시 부처님 처소로 돌아와 부처님의 발 아래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고 일어나 부처님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저는 전에 본래 도적으로서 
지만이란 이름으로 널리 소문이 나 
큰 연못의 물이 고갈되듯 하였으나 
이내 바른 깨달음에 귀의하였나이다.



이로써 인욕을 성취하여 
부처님께서 대중을 교화하시는 가르침을 얻고 
언제나 경전을 듣게 되었사오니 
장애가 없습니다.



지금 부처님께 귀의하여 
참된 진리의 법과 계를 받아 
세 가지를 체득하고 통달하고 
온갖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릅니다.



지난날 포악하게도 흉하고 악한 마음을 품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상하게 해서 
액난에 처하게 했으나 
저는 지금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이라 불립니다.



손과 입으로 죄과를 범하고 
뜻으로는 살해할 마음을 품었으나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액난에 빠뜨리지 않았고 
일찍이 온갖 액난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또한 다시 과거도 없고 
저 법을 지니는 것도 적연(寂然)하여 
흉포한 이름을 받았던 것을 
스스로 조어(調御)하여 어질고 현명하게 되었습니다.



재주 있는 사람은 한 번의 손놀림으로 
마치 갈고리로 코끼리를 다루듯 
여래께서 저를 성취시킬 때는 
칼이나 막대기가 없었습니다.


전에는 방일하였으나 
그 이후로는 능히 스스로를 제어하여 
세상을 밝게 비추니 
해가 구름 밖으로 나온 것과 같습니다.



설령 온갖 죄악을 범했더라도 
갖가지 선덕(善德)을 끊지 않으면 
세상을 밝게 비출 수 있으니 
마치 구름이 걷히고 해가 밖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만약 새로 배우는 비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닦으면 
그는 세상을 밝게 비출 수 있으니 
달이 가득 찬 때와 같습니다.



온갖 죄를 범하게 되면 
결국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되니 
다시는 여러 가지 병폐로 어지럽히지 않고 
옷이나 음식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또한 생(生)을 구하지 않고 
일찍이 훌륭한 죽음으로 알 수 없으니 
오직 모름지기 시일을 기다리며 
마음은 항상 선정(禪定)에 뜻을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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