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각의 고기와 양 한마리
석존께서 사밧티국의 기원정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어느 곳에서 수도승이 한 사람의 바라문과 함께 숲속에서 하안거(夏安居-여름 장마 때 중들이 방안에 모여서 수도하는 일)를 하고 있었다.
그 수도승은 가끔 바라문한테 갔다 왔다 하였지만 과히 친하게 하거나 그렇다고 멀리 하지도 않고 적당히 사귀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 친하게 굴면 그에게 교만심을 심어주고 또 멀리하면 증오심을 일으킬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이다. 수도승은 속으로,
『해가 중천에 떳을 때 단장을 세우면
가로나 세로에 그림자가 없다.
만약 단장을 벽에 기대면 그림자는 길게 생긴다.
그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멀고 가까움을 적당히 해서 적당한 시기를 기다렸다가
후에 올바른 설법을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조용히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두 사람은 차차 더 친해져서 이제는 서로 말을 친히 주고 받게 되었다.
어느 날 수도승은 바라문에게 물었다.
『자네는 매일 양손을 번쩍 쳐든 채로 오랫동안 태양을 바라보거나, 재(灰) 위에 벌거벗고 누워서 풀잎을 뜯어먹거나, 또는 하루종일 한 발을 쳐들고 서 있거나 하는데 그런 고통스러운 수행을 해서 대체 무엇이 되려는가?』
바라문은 수도승의 말을 듣고 매우 득의에 찬 낯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국왕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답이 오고 간지 여러 날 후에 바라문이 병에 걸렸다. 그는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의사는 그에게 육식을 해서 몸을 보호하라고 일렀다.
바라문은 돌아와서 수도승에게,
『실은 오늘 의사에게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의 말이 육식을 해서 영양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신에겐 좀 미안하지만 당신의 단가(檀家-절에 시주하는 사람이 있는 집)에 가서 고기를 조금만 얻어다 줄 수 없겠습니까? 부탁합니다.』
하고 간청했다.
바라문의 청을 듣고 수도승은 심중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를 교화 시키는 것은 바로 이때다.>
그래서 한 마리의 큰 양을 환상적(幻想的)으로 만들어 근처에 잡아 매 놓고,
『다녀 왔네, 부탁한 것을 얻어 왔으니 많이 먹고 충분히 기운을 차리게.』
『그 고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기 있네. 저기 매어 둔 양이 고기지 뭔가?』
바라문은 수도승의 말을 듣고 대단히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당신은 양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으란 말입니까? 아무리 내가 병이 났다지만 살생까지 해 가면서 고기를 먹고 싶지는 않습니다.』
수도승은 바라문의 이와 같은 말을 듣고 그를 구제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다음과 같이 설법을 하였다.
『그대는 지금 한 마리의 양을 불쌍히 생각하여
감히 양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
만약 장차 국왕이 되어
그대가 왕좌에 앉으면
소다 양이다 돼지다
닭이다 개다 하고 그 밖의 짐승을
수 없이 죽여서
이것을 밥상 위에 올리게 할 것이다.
만약 국왕인 그대가 한 번 화가 나면
금방 저 놈의 목을 잘라라,
저 놈의 손발을 베어라,
저 놈의 눈알을 도려내라, 할 것이다.
그대가 지금은 한 마리의 양을 불쌍히 여기면서
장차는 살생의 왕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대에게 참다운 자비심이 있다면 마땅히 국왕이 되고 싶은 마음을 버릴지어다.』
바라문은 수도승의 설법을 듣고 잠시는 묵묵히 아무 말도 못하다가 이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참으로 자비하시고 신통한 방편(方便)으로 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가르치심을 따라 왕위 같은 속세의 영광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올바른 해탈(解脫)의 도를 닦으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하며 수도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大莊嚴論經 第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