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색가(好色家) 묘우꼬우왕(王) 밀정(密偵)의 고생

호색가(好色家) 묘우꼬우왕(王) 밀정(密偵)의 고생

왕을 납치 당한 교우센비국에서는 온 나라안이 벌집 쑤신듯 했다. 왕의 보좌관 역이던 유켄나는 어떻게든 왕의 소식을 탐지하려 했다. 납치 당해간 왕을 하루 빨리 본국으로 모셔올 궁리에 침식을 잊고 조바심했다.

유켄나에겐 지모(智謀)와 책략이 오라버니를 능가하는 킨만이라는 누이동생이 한 사람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너무나 답답하여 킨만을 불렀다.

『얘, 너 내가 시키는 일 한 번 협력 해 주지 않겠니?』

『오빠, 무슨 일인데요? 대왕전하에 관한 일이에요?』

『음, 바로 그 문제다. 너 한번 온세이니국(國)에 가서 대왕전하의 안부를 좀 알아오지 않으련? 만약 대왕께서 이미 변고가 있으시다면 왕위를 계승할 사람을 당장 세워야 하고, 다행히 아직 무사하시다 면 환궁하시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 일은 중대한 임무이니까 영리한 네가 가 주었으면 하는 데…….』

킨만은 오빠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대왕의 소식을 탐지할 것인가. 그 방법에 골몰했던 것이다.

『오빠, 너무 심려 마세요, 아무튼 제가 다녀오겠어요.』

그녀는 각오를 얼굴에 나타내며 쾌히 승낙했다.

『그래? 참 고맙구나. 그러나 어렵고 위험한 일이니까 아무쪼록 조심해라. 부탁한다, 킨만아.』

킨만은 복장을 고쳐 입었다. 길을 방황하는 여자거지로 변장했다. 그리하여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국왕을 위해 멀고 무서운 적국을 향해 떠났다. 오직 나라와 국왕을 위한 붉은 충성심에서 킨만은 신산과 고난을 모두 겪으며 겨우 적국의 서울 온세이니성(城)에 도착했다.

이 여자거지는 궁성 앞 문지기에게 물어 보았다.

『슛꼬우왕이란 사나이는 아직도 죽이지 않았나요?』

『아니, 그걸 물어서 뭘 하려구 그래? 거지인 주제에……』

『아니예요. 사실 저는 슛꼬우왕에게 뼈에 사무친 원한이 있어서 그래요.』

『어떤 원한이냐?』

『오빠, 너무 심려 마세요, 아무튼 제가 다녀오겠어요.』

『네, 저 슛꼬우왕은 포악무도해서 내 남편과 내 귀여운 자식을 죄도 없는데 학살했어요. 게다가 재산 까지 몰수해 버렸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죽지도 낳고 목숨은 살아서 거지 신세죠.

슛꼬우왕은 저에겐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그건 참 가엾은 일이군. 그 원수인 왕은 아직 무수하지. 현재 텐쥬공주님에게 상술(象術)의 경서를 강의해 드리고 있어.』

『아직도 살아있군요. 가르쳐 주셔서 고마워요. 아저씨.』

여자거지는 절룩거리며 사라졌다.

킨만은 다시 성문 여러 곳 문지기들에게 같은 수법으로 슛꼬우왕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모두 동일한 대답이었다. 비로소 아직까지 슛꼬우왕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는 수단방법을 다해서 슛꼬우왕을 면대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킨만은 충분히 주위를 휘둘러 본 뒤 작은 목소리로 재빨리 슛꼬우왕에게 말했다.

『대왕전하, 안녕하십니까? 킨만입니다.』

왕은 뜻밖이라 매우 놀랬다.

『오오, 킨만. 용케 만날 수 있었구나. 나도 이 며칠간은 아직 죽지 않을 것 같다.』

『대왕전하, 구원해 드리려 왔습니다. 아직 잠시 더 견디시옵소서.』

킨만은 말을 마치자 다람쥐처럼 어디론가 잽싸게 사라져 버렸다.

먼저 대왕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던 킨만은 우선 안심했다. 다시 그는 방법을 다해 텐쥬공주와 친히 면접할 기회를 얻었다.

『공주님, 공주님께서는 누구에게 상술(象術)을 배우십니까?』

『응, 나는 열여덟 가지 악상을 지닌 추남에게 장막을 드리우고 배우고 있어.』

『아유, 열여덟 가지 악상이라구요? 하지만 원 이 세상에 열여덟 가지 악상을 모두 갖춘 악상이 어디있겠어요. 공주님, 그것은 공주님께서 지금 속고 계시는 거예요. 상술을 가르치는 분은 이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미남인 슛꼬우왕인 걸요. 만약 제 말이 믿어지지 않으시면 한 번 장막을 밀치고 잠깐 엿보면 되시잖아요. 깜짝 놀랄 만큼 미남일 꺼예요.』

『어머나, 정말 그럴까? 그럼 한 번 장막을 열고 보아야겠구나.』

텐쥬는 그 말을 들은 뒤 장막을 몰래 열어 보았다. 추남인 커녕 너무나 늠름한 풍채를 지닌 미남이었다. 그는 일국의 군주로서의 위품마저 겸비한 참으로 나무랄 데 없는 호남아였다. 텐쥬의 마음속에 사랑의 잔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그녀는 킨만을 다시 만나 말했다.

『정말 그대 말이 맞아요. 너무나 훌륭한 남자, 내 마음속에 그를 사모하는 물결이 일기 시작했어요.』

공주는 말을 하면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공주님께서 사모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옵니다. 슛꼬우왕을 본 여성이면 누구나 사모하게 될 거 예요. 일국의 군주로서 지존의 자리에 계시구 또한 세상에도 드문 미남이시건든요. 저는 공주님 심중 을 너무나 잘 이해해 드릴 수 있어요. 제 힘이 미치는 데까지 공주님의 편이 되어 사랑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

텐쥬는 부끄러움에 대답은 없었으나 빛나는 눈이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킨만은 슛꼬우왕과 텐쥬 사이에서 그들의 사랑을 성취시켜 주었다. 그들은 은밀히 뜨거운 사랑을 속삭였다. 왕과 그녀는 열렬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풀려날 수 있을까 안타깝게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킨만은 슛꼬우왕의 근황을 자세히 적어 오빠 유켄나에게 밀사를 보냈다.

유켄나는 누이동생 킨만의 수고로 대왕의 안부를 자세히 알고 우선 안심했다. 유켄나는 다섯가지 영락(瓔珞)으로 장식한 화려한 의복을 입고 그 위에 다시 삼으로 짠 허름한 옷을 덮쳐 입었다. 그는 슌까(春花)라는 가명을 쓰며 미친 간질 병자로 행세하며 온세이니성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는 사람들의 왕래가 붐비는 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날마다 다음과 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봄에는 놀고, 봄에는 즐겨야지, 내 이름은 슌까 곧 봄꽃이라네, 나와 함께 놀고 나와함께 즐기세.』

이 길거리의 미치광이를 벌써 유켄나가 변장한 것이라고 재빨리 간파하고 쑤근거리는 사람도 더러 있었으나 대부분은 집 없이 떠도는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뜬 소문에는 아랑곳없이 그는 여전히 왕가와 대신의 저택을 가릴 것 없이 찾아가 밥을 빌어 굶주림을 채웠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슛꼬우왕과의 면회를 은근히 노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 숙원의 기회가 찾아와 그는 잠시 극비리에 슛꼬우왕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짧은 말로 왕에게 온 뜻을 알린 후 눈짓으로 자신의 어떤 결의를 비추고 사라졌다.

슛꼬우왕고 텐쥬공주의 사랑은 날로 깊어갔다. 어느 날 공주는 슛꼬우왕을 향해 의논했다.

『대왕과 저와의 사이에 대해서 이미 궁중에서도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모양이어요. 만약 우리들 사이가 부왕께 탄로가 나는 날이면 우리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이 궁중을 탈출해 서 우리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맺어지도록 해야해요. 대왕님,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그야 공주가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사랑하는 대왕을 위하고 우리들의 사랑을 위한다면 물불인들 제가 어찌 가리겠어요?』

『그러면 부왕께 이렇게 말씀드리시오.

(저는 이제 조상술에 대한 이론은 충분히 체득했아오나 아직 이것을 실지로 응용하지는 못합니다. 꼭 한 번 시승(試乘)해보고 싶사오니 현선모상(賢善母象)을 빌려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쯤 여쭈는 것은 문제없어요. 그 현선모상을 빌려서 어떻게 하시는 거지요?』

『그것을 타고 둘이서 도망치면 되는 겁니다.』

『과연 그렇군요.』

사랑하는 남녀의 의논은 곧 결정됐다. 텐쥬는 슛꼬우왕을 위해 부왕인 묘우꼬우왕에게 모상(母象)을 빌려줄 것을 원했다. 부왕은 공주의 깊은 책략을 알 길이 없었으므로 흔낙하게 모상을 빌려주게 했다.

공주는 모상을 빌리자 아침에 타고 나가면 정오에는 돌아왔다. 또한 정오에 타고 나가면 저녁때엔 돌아왔다. 오후 일곱 시에 나가면 한 밤중에는 돌아온다는 식으로 출발시각과 귀성시간을 일정하게 정하지 않았다. 그것도 역시 그들의 책략이었다.

슌까라는 가명으로 가두의 미친 간질 병자 행세하는 유켄나는 이것을 이용해서 슛꼬우왕을 탈출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등에 코끼리 똥을 걸머지고 성문을 나서려고 했다. 이것을 본 문지기가 물었다.

『어이 슌까, 똥을 지고 가서 뭘 하나?』

『이것으로 왕이 베푸는 대절회(大節會)에 맛나는 음식을 만드는거야. 모두들 맛나게 먹을 걸. 히히히……』

문지기는 미치광이가 횡설수설 한다고 별로 개의치도 않고 내보내 주었다. 성문을 나서자 후유 안도의 숨을 내쉰 그는 풀로 그 상분(象糞)을 싸서 자기 나라 교우센비국(國)으로 가는 통로의 나무가지에 걸어 두었다. 또 코끼리 오줌을 병에 넣어 들고 성문을 나서다가 문지기에 들켰다.

『슌까, 그것은 또 뭐야?』

『히히히, 코끼리 오줌, 이것은 왕가의 대절회 때 모인 사람들에게 마시게 할 술이야 술.』

문지기들은 미치광이의 허튼 소리라고 모두들 껄껄거리고 한바탕 웃기만 하고 통행인 명부에도 기입하지 않았다.

그는 이 상뇨(象尿)를 넣은 병도 또 교우센비국으로 가는 통로의 나무가지에 걸어 두었다. 이것으로 우선 도주할 준비는 다된 셈이었다. 어느 날, 슛꼬우왕과 텐쥬공주와 유켄나 남매가 모여서 남몰래 모든 탈주 계획을 짰다. 그리고 탈주를 결행할 날짜도 결정했다.

슛꼬우왕은 언제와 같이 공주와 함께 모상(母象)을 타고 외출했다. 궁중 사람들은 여느 때도 늘 있던 일이라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외출을 하면 반드시 얼마 후에는 궁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역시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웬일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죠우요우, 텐쥬가 아직 돌아오지 않는데 웬 일일까?』

하고 왕은 근심스럽게 물었다. 이 말을 들은 죠우요우는 선뜻 머리에 오는 것이 있어다.

『그러면 그들은 도망쳤을지도 모릅니다. 곧 추적해야 겠습니다.』

그는 황급히 대답했다. 곧 병사를 풀어 그들을 추적시켰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다급해진 죠우요우는 자신이 이잔 대상을 타고 슛꼬우왕의 뒤를 쫓았다. 이잔은 질풍처럼 달렸다. 그리하여 차츰 그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것을 본 유켄나는 미리 걸어두었던 상분(象糞)을 길에 던졌다.

코끼리 똥의 고약한 냄새가 풍기자 질주하던 이잔대상의 발길이 늦춰졌다. 그 동안에 그들이 탄 모상은 멀리로 달아나 버렸다. 원기를 회복한 이잔 대상이 다시금 질주하여 접근하려고 하자 이번엔 상뇨(象尿)병을 던졌다. 대상은 그 코끼리 오줌의 고약한 냄새를 맡자 이번에는 걸음이 늦춰진 것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고 조금도 전진하려 하지 않았다.

이 틈을 타서 도망자들은 벌써 본국으로 무사히 도망쳐 가버렸다.

아무리 죠우요우라도 어쩔 수 없었다. 이잔 대상의 힘과 속력을 빌려서도 추적이 실패에 돌아가자 죠우요우는 풀이 죽어서 초연히 본국으로 돌아왔다.

『죠우요우, 어떻게 되었는가?』

왕은 안색이 초췌한 그를 보고 다그쳐 물었다.

『그들은 이미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젠 더 쫓을 수가 없습니다. 분한 노릇이오나 도리 없습 니다.』

죠우요우는 왕 앞에 부복해서 어쩔바를 몰랐다. 이것을 들은 왕은 너무나 실망해서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추연히 고개를 떨구고 말없이 내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