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유

화성유

부처님께서 근기가 하열한 부루나 등 5백인 제자에게 수기를 주시기 위하여 과거의 대통지승(大通智勝)때에 법화경 법문을 들었던 인연을 말씀하시고, 다시 2승들이 소승 열반을 얻은 것은 참된 열반이 아니고 마치 변화하여 만들어 놓은 성시와 같음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마치 5백유순이나 되는 길이 험난하고 인적마저 끊어진 무서운 곳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서 보물이 많은 곳으로 가고자 하였다.

이 때 한 길잡이가 있었는데 총명하고 지혜가 많고, 이 험한 길의 통하고 막힌 형편을 잘 알아서,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데 중도에서 사람들이 물러갈 마음이 생겨 길잡이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극도로 피로하고 또 무서워서 다시 더 나아갈 수 없고 앞길은 아직도 멀어서 이제 그만 되돌아설까 하노라.」

길잡이는 방편이 많아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딱하구나. 어찌하여 큰 보물을 구하지 않고 물러가려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방편으로써 험한 길을 3백 나유타를 지나서 한 도성을 변화하여 만들어 놓고 여러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무서워하지 말고 되돌아가지도 말라. 저기 큰 도성이 있으니 그 안에서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느니라.

저 도성에 들어가면 편안히 살 수도 있고 앞으로 가면 보물이 있는 곳에도 갈 수가 있느니라.」

이 때에 피로해 있던 무리들이 매우 기뻐하며 처음 보는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우리가 이제는 험한 길을 벗어나서 편안히 쾌락을 얻었노라.」

이리하여 사람들은 변화하여 만든 도성에 들어가서

「이미 지내왔다.」

는 생각을 내고

「편안하다. 」

는 생각을 내었다.

이때 길잡이는 이 사람들이 잘 쉬어서 다시 피로하지 않을 줄을 알고는 변화하여 만든 도성을 없애고 여러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앞으로 나아가자. 보물이 있는 곳이 멀지 않느니라. 아까 있던 도성은 내가 조화로 만든 것이니 임시로 쉬어가기 위한 것이었느니라.」하였다.』

이 비유의 길잡이는 말할 것도 없이 여래이시고, 많은 사람들은 2승<성문 연각>들이다.

화성에서 소승열반까지는 왔으나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를 않으므로 화성을 없애고 정말 보배가 있는 곳까지 인도하심은, 마치 중생들이 1불승만을 들으면 부처님을 뵈오려고 하지도 않고, 친근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부처가 되는 길이 멀고 멀어서 오래 오래 애쓰고 닦아야만 이룰 수 있으므로 멀고 피곤한 길을 중도에서 잠시 쉬게 하기 위하여 화작(化作)한 성(城)이 소승열반이다.

그러므로 이 화성이 비유인 소승열반은 1불승을 위한 방편이지 진실이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일대시교 중에 화엄, 아함, 방등, 반야경 등을 설하시고 법화경의 서경인 무량의경(無量義經) 설법품에서,

「선남자야, 내가 일찍이 도량의 보리수 밑에 앉아서 6년 만에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이룩하여 얻었느니라.

부처님의 눈으로써 일체의 모든 법을 관하였으되 가히 선설하지 아니하였노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하면, 모든 중생의 성품과 욕망이 같지 아니함을 알았음이라.

성품과 욕망이 같지 아니하므로 가지가지로 법을 설함이니라.

가지가지로 법을 설하되 방편력으로써 하였으니 40여년에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노라.」

이상의 문증은 곧 법화경 이전에 설하신 모든 경은 방편으로써 쉬게 하기 위하여 화성에까지 인도함에 불과하고, 법화경이야말로 불승인 보배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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