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와 탐진의 가시

가시나무와 탐진의 가시

석존께서 사밧티국의 기원정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바라문의 고행자(苦行者)가 길에서 소고행(小苦行)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이 보고 있을 때는 가시덤불 위에 눕고 사람이 없을 때에는 다른 곳에서 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보고,

「자네는 가시덤불 위에 딩굴며 자시의 몸을 괴롭히고 있는데 이왕이면 살살 하는 것이 어떤가? 일부러 몸을 딩굴러서 억지로 상처를 크게 할 것은 없지 않은가 말일세.」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바라문은 노여운 마음이 생겨서 보라는 듯이 몸을 가시덤불에 내던지며 전보다도 더 심하게 가시 위를 데굴데굴 굴러 다녔다.

그때 또 한 사람의 우바소쿠가 와서 그 옆에서 보고 있었다. 바라문은 보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생겼으므로 더욱 더 요란스럽게 굴러 다녔다.

우바소쿠는 이 어리석은 바라문에게,

「자네는 지금까지는 작은 가시로 몸을 상하게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노여움이라는 큰 가시로 자기의 온 몸을 상처투성이로 하고 있다.

먼저 가시는 아주 작아서 상처가 대단치 않았는데 탐진(貪嗔-탐욕과 노여움)이라는 가시는 매우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그리고 가시에 찔리는 고통도 보통이 아닌데 탐진의 고뇌는 아주 먼 훗날 무량신(無量身)까지도 몸을 찔러서 그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것이다.

자네는 하루 속히 마음의 눈을 떠서 그 독의 가시를 제거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충고를 하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빨리 뽑아 버려라, 마음의 가시

탐진의 상처는 독이 깊다.

힘써라, 이지(利智)의 칼로,

잘라 버려라 마음의 가시

탐진에 깊이 집착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여러 가지 사견(邪見)에

오래도록 두고 두고 사로잡히는 까닭에

진리의 길을 찾을 수 없다.

가시덤불에 누워 몸을 괴롭히며

괴로움을 가지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탐진 때문에 괴로움만 더 하여

언제까지나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다.」

<大莊嚴論經 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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