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을 받들고 다시 살아나다.
당나라 종산(種山) 개선사(開善寺)의 지장보살 존상에 얽힌 실화이다
이 지장보살은 높이는 三척인데 그 둘레에서는 항상 큰 광명이 났으며
배광(背光)이 四척 五촌이나 뻗었다고 한다.
그런데 개선사가 있던 양주(揚州)의 도독 등종(鄧宗)이 나이 61세
되던 해, 가벼운 병으로 눕더니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의 가족들은
너무 급히 당한 일이고, 또한 가슴이 따뜻하므로 염하지 않고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하루를 지낸 다음날 밤중에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말없이 슬피 통곡하더니 이윽고 자손들에게
입을 열었다.
” 나를 개선사에 데려다 다오”
할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개선사에 도착한 등도독은 말없이 지장보살 앞에 나아가더니, 한번
쳐다보고는 그만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울고
나서 또한 여러번을 우러러보면, 예경하더니, 이윽고 주위
사람에게 말문을 열었다.
” 내가 죽을 때 四품 벼슬로 보이는 관인이 와서 나를 끌고 가더니,
마침내 당도한 곳이 염라대왕 앞이었습니다. 대왕은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너는 아직 죽을 때가 멀었으니 다시 인간에 돌아가거라
그리고 부처님 법을 받드는 것으로 너의 집 사업을 삼도록 하여라.
이곳 지옥이라는 데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세상
사람들로는 전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네가 지옥을 한 번 구경하고
가겠느냐? 네가 돌아가서 지옥이라는 곳이 과연 무섭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하셨습니다.
관인을 따라 동북방 쪽으로 三–六리 가량이나 가니, 거기에는 쇠로
만들어진 큰 성이 있는데 쇠문이 꽉 닫혀 있었고, 성 안에 들어서니
맹렬한 불길이 솟아오를고 쇠 녹은 물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를 자세히 살펴보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고초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을 본즉, 맹렬한 불길을 헤치며
고초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교화하고 계시는 스님이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스님이 가시는 곳은 금방 불꽃이 멎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지옥 구경을 하였는데 한 성에 이르니,
그 가운데는 또 무서운 지옥이 있어서 十八이나 되는 큰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양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또 앞서의 스님이 보였는데 불길을 멎게 하고, 죄인을
교화하는 것은 앞서와 같았습니다. 내가 차마 볼 수 없는 지옥의
가지가지 광경을 낱낱이 구경하고 돌아올 때에 그 스님도
지옥에서 나오시며 나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네가 나를 알겠느냐?>
저는 사실대로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였더니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개선사에 있는 지장보살이니라. 옛날 智滿법사가 三도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나의 형상을 만들어 모셨으므로
내가 지만 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매일 한 번씩 지옥에 까지 다니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에서 보면 지옥 속에서도 혹 선근이 남아 있어 착한 마음이
강한 자는 내말 한 번에 곧 발심하여 지옥고를 벗어나며, 사견만
많은 자는 고통을 벗어나기 어려우니라.
그 중 선근이 미약한 자는 오히려 교화하기 쉬우나, 한 번 지옥에
들어가기만 하면 좀체로 구제하기 매우 힘드느니라.
그런데도 세간에서 악한 업력만 기른 사람은 자기 허물을 깨달을 줄
모르고, 오직 고통받는 일과 빠져나올 것만 기다리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세상에 살면서 선근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는 마음을
낼 것이니, 너는 부처님의 법력을 받아 세상 사람들이 지옥고를
받지 않도록 일러주고 힘쓰도록 하라.
어서 인간에 나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 뜻을 전하여라.>
이 말씀을 듣고 고개를 들어 스님을 처다보니, 이제까지의 스님의
몸은 어느덧 적어져 키는 三척 정도로 보이고 이마에서 환하게
광명이 났으며 눈이 유난히 빛났습니다.
내가 공손히 예배를 드리고 돌아서려 하니, 스님께서는 이런 글귀를
일러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있어도 도 닦을 수 있나니
모든 선근 끊인 자도 발심하면 다 되네.
악도에 떨어져서 죄업이 익어지면
깨달을 맘 못내니 구원하기 어려워라.
노쇠한 사람들이 길을 가고자 할 때
팔다리를 부축하면 나아갈 수 있어도
누워서 부동하면 어찌 할 수 없나니
중생들이 지은 바 정업도 그같니라.
스님께서는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그 스님이 일러주신 말씀을 잊을까봐 그것만을
생각하느라고 아무에게도 말못하고,
지금까지 와서 이제 여기 지장보살의 존상을 우러러 뵈오니,
지옥에서 보던 바와 똑같고 또한 그때에 말씀하신 것이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이 말을 들은 개선사 스님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던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고, 또한 기이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몇 번이고 지장보살을
우러러보았다.
그리고서 신심이 두텁고 솜씨좋은 화공을 청하여 앞서부터 모셔왔던
지장보살 탱화를 본떠서 다시 그리게 하고 앞서의 탱화와 함께
그대로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