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분별보시경(佛說分別布施經)

불설분별보시경(佛說分別布施經)

서천(西天)역경삼장(譯經三藏)
조봉대부(朝奉大夫) 시홍려경(試鴻臚卿)
전법대사(傳法大師) 신(臣) 시호(施護)가 어명을 받들어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종(釋種)들이 사는 곳인 가비라성(迦毗羅城)의 니구다(尼拘陀)나무 동산에서 필추(苾芻: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필추니(苾芻尼:비구니)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堤)는 새로 지은 비단 옷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비단 옷은 세존께 드리려고 제가 손수 만든 것입니다. 원컨대 받아 주시어, 저로 하여금 긴 세월 동안에 큰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 마하파사파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 비단 옷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보시하시오. 거기서 얻는 훌륭한 이익은 내게 공양한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오.”

그러자 마하파사파제 필추니는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오직 부처님을 위하여 마음을 내어 이 옷을 지은 것입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받아 주시어, 저로 하여금 긴 세월 동안 큰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이렇게 세 번을 간절히 청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또한 다음과 같이 세 번을 대답하셨다.

“그대는 다만 골고루 대중에게 보시하시오. 거기서 얻는 훌륭한 이익은 내게 보시한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오.”

그 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가, 이 광경을 보고 부처님 앞으로 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마하파사파제 필추니는 부처님의 친족이시고 또 부처님에게 큰 은덕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선 그것을 아시고 그가 바치는 옷을 받아 주소서.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리하여 마하파사제로 하여금 긴 세월 동안에 큰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이 마하파사파제는 내 친족이요 또 내게 큰 은덕이 있는 줄을 나도 잘 안다. 지금 그가 손수 옷을 지어 나를 찾아와 보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무엇 때문인가? 아난아, 알아야 한다. 중생[補特伽羅]으로서 능히 깨끗한 신심을 내어 부처와 법과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니라.

또 중생으로서 살생하지 않기ㆍ도둑질하지 않기ㆍ음행하지 않기ㆍ거짓말하지 않기ㆍ술 마시지 않기 등 신도의 계법[近事戒法]을 지킨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하물며 불세존께 합장하여 공경하고 보시를 행한 뒤에 부처님을 깨끗이 믿어 의심이 없고 법과 승가(僧伽)에 대해서도 의혹이 없으며, 나아가서는 괴로움[苦]과 그 원인[集]과 그 사라짐[滅]과 그 사라지는 길[道]의 4성제에 대하여 의심하는 소견을 아주 끊은 사람이야 어떠하겠느냐?
아난아, 지금 이 마하파사파제 필추니는 능히 깨끗한 신심을 일으켜 부처와 법과 승가에 귀의하고 살생하지 않기ㆍ도둑질하지 않기ㆍ음행하지 않기ㆍ거짓말하지 않기ㆍ술 마시지 않기 등, 신도의 계법을 받아 지키며, 부처와 법과 승가와 나아가서는 괴로움과 그 원인과 그 사라짐과 그 사라지는 길의 4성제에 대해서 이미 의혹을 끊었다. 이 필추니는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아느니라.

아난아, 열네 가지 비교되는 보시가 있다. 열네 가지란, 첫째는 병으로 고생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계율을 범한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계율을 지키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넷째는 더러움을 떠난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수다원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수다원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사다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사다함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아나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열째는 아나함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열한째는 아라한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열두째는 아라한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열셋째는 여러 연각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열넷째는 여래ㆍ응공ㆍ등정각에게 보시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너는 이제 알라. 병으로 고생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두 배의 복을 얻고, 계율을 범한 이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복을 얻으며, 계율을 지키는 이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복을 얻고, 더러움을 떠난 이에게 보시하면 백천 배의 복을 얻으며, 수다원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수다원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야 어떠하겠느냐?
또 사다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사다함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야 어떠하겠으며, 아나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아나함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야 어떠하겠으며, 아라한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아라한의 결과를 얻은 이에게야 어떠하겠으며, 여러 연각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거늘 하물며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에게야 어떠하겠느냐?
이것이 이른바 열네 가지 보시 공덕의 비교이니라.

다시 아난아, 알아야 한다. 대중에게 보시하는 데에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이 계신 현재의 여러 필추들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여러 필추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여러 필추니들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넷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필추ㆍ필추니의 두 대중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각처로 다니면서 교화하는 필추들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각처로 다니면서 교화하는 필추니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각처로 다니면서 교화 하는 필추ㆍ필추니의 두 대중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일곱 가지 대중이니, 이들에게 마땅히 보시하여야 하느니라.

다시 아난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이 있다. 네 가지란, 첫째는 보시하는 이가 청정하면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이요, 둘째는 보시하는 물건이 청정하면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이며, 셋째는 받는 이가 청정하면 보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요, 넷째는 받는 물건이 청정하면 보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보시하는 이가 청정하면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인가? 이른바 보시하는 이가 그 상(相)을 취하지 않는 것이니, 즉 몸의 업이 청정하고 입의 업이 청정하며 뜻의 업이 청정하고 바른 생활이 청정하며 그 소견도 청정한 것이다. 이런 것을 완전히 갖추면 곧 보시한다는 상(相)이 없게 되고 보시한다는 상이 없으므로 곧 받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보시하는 이가 어떤 상을 가지고 있으면 곧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이 청정하지 않고 생활도 청정하지 않으며 소견도 또한 청정하지 않게 된다. 만일 이런 상을 떠나면 곧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가 둘 다 청정하느니라.

또 어떤 것이 ‘보시하는 물건이 청정하면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인가? 만일 받는 이가 몸의 업이 청정하지 않고 입의 업이 청정하지 않으며, 뜻의 업이 청정하지 않고 생활이 청정하지 않으며, 소견이 청정하지 않으면 곧 보시를 받는다는 상이 있게 되느니라.

그러나 만일 받는 이가 세 가지 업이 청정하고 생활이 청정하며 소견이 청정하여 이런 것을 완전히 갖춘다면, 곧 보시를 받는다는 상이 없게 되며 그 상을 떠났으므로 곧 보시받는 물건이 청정하니라.

또 어떤 것이 ‘받는 이가 청정하면 보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인가? 만일 받는 이가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이 청정하지 않고 생활이 청정하지 않으며 소견이 청정하지 않으면 곧 받는다는 상이 있게 되지만, 만일 그 상을 떠나면 곧 보시하는 이가 없게 되느니라.

또 어떤 것이 ‘받는 물건이 청정하면 보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인가? 이른바 보시하는 이가 세 가지 업이 청정하고 생활이 청정하며 소견이 청정하면 곧 보시하는 물건이 없게 되고, 보시한다는 상을 떠났기 때문에 받는 물건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받는 물건이 청정하게 되느니라.

아난아, 만일 이런 줄을 밝게 알면 곧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을 얻느니라.”

그 때 마하파사파제 필추니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갖가지 보시법을 듣고 곧 그 옷을 여러 대중들에게 보시하였다. 그러자 필추들은 그를 위해 그것을 받아 주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미래 세상에 어떤 신심이 있는 선남자 등이 대중에게 깨끗한 신심을 일으켜 보시를 행한다면,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이다. 하물며 현재에서 보시를 행함이야 어떠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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