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무희망경(佛說無希望經)
서진삼장(西晋三藏)축법호(竺法護)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영취산(靈鷲山)에서 노니시며, 큰 비구 대중 5백 인과 함께 계셨다.
보살은 6만이었으니, 일체 큰 성인의 신통을 이미 통달하였고, 총지(總持)를 얻었으며 말재주가 교묘하여 걸림이 없었다. 경의 도를 널리 펴되 항상 두 말이 없었으며, 신통력의 변화무쌍함은 불가사의하였고, 여러 행을 두루 갖추어 깨닫지 않음이 없었다. 그 이름은 무손진(無損進)보살ㆍ도향뢰진위(度響雷震威)보살ㆍ약야월화(若夜月華)보살ㆍ대우전언사(大雨電言辭)보살ㆍ관무저도경계(觀無底度境界)보살ㆍ기산정(起山頂)보살ㆍ흔락영열(欣樂令悅)보살ㆍ다리구막능당광(多離垢莫能當光)보살ㆍ결중생성의도(決衆生性誼度)보살ㆍ득견강여금강(得堅强如金剛)보살ㆍ어제음향최묘(於諸音響最妙)보살ㆍ월범위성(越梵威聲)보살ㆍ칭자재가외막능범(稱自在可畏莫能犯)보살ㆍ적제덕본여루보(積諸德本如壘寶)보살ㆍ문수사리동진(文殊師利童眞)보살, 이러한 이를 우두머리로 한 6만 보살이었다.
이 때 어진 사리불은 외딴 곳에 있으면서 선정에 들었다가 좌선[燕坐]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처소로 나아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나무 아래 앉아서 적수향(寂隨響)삼매ㆍ정정(正定)에 이르셨다. 이 때에 사리불은 세존과 떨어져 머물면서 멀리서 큰 성인의 위의와 예절이 고요하며 온화하고 고상함을 바라보았다. 곧 풀을 구하여 한쪽에 자리를 펴고 결과부좌하고 그 몸을 똑바로 하여 기울거나 의지함이 없이 앉자마자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제껏 없었던 일이다. 여래ㆍ지진의 위엄ㆍ신력ㆍ빛나는 거동은 헤아릴 수 없으며, 도의 근본에 편안하시구나. 이를 말미암으셨기에 중생은 편안함을 얻으며, 최고의 바른 지혜를 이룩하셨으므로 공덕을찬탄할 만하고, 모든 법을 환히 깨달아 통달하셨구나’라고 하였다.
그 때에 큰 성인은 조용히 편안하게 계시다가 삼매에서 일어나 기침 소리를 내셨다. 때에 사리불은 부처님ㆍ세존의 기침 소리를 듣고 좋은 마음이 일어나서 그 본원(本願)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에게 나아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머무르며 머리를 조아려 귀명하고 기뻐 뛰었다. 이어 게송으로 찬탄하며 말하였다.
만일 중생으로서
희망을 품지 않고
부처님의 모든 경전에
집착심을 내지 않으면
세간에 놀며 거닐더라도
평등하여 홀로 즐기며
이 경법에서 항상
편안할 것이다.
중생들은
그 단점과 흠을 보지 못하나니
이러한 믿음과 이해는
환상이 그러하듯이
선택된 모든 법들은
허공 같은 줄 분명히 알고
나[我]라는 소견 없으면
그러하고야 크게 편안하리라.
일체 중생을
사모하지 않고
중생을 생각하지 않아서
만일 중생이 없으면
이제껏 없었던 것을 얻을 것이요
일체 생각에서
나를 보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크게 편안하리라.
먼 과거로부터
서로 만나지 않고
상이 있다고 하여
미혹하지 않으며
일어나게도 하지 않고
머무름도 없으며
수명을 보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밝은 지혜 갖고 있는 이
중생이란 데에 의지하지 않으면
법계에 대하여
다툼이 없을 것이요
중생이며 사람이라고
하는 생각을 온통 버리고
약간의 생각도 없어지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지켜야 할 계율바라밀
언제나 세워 있어서
일체 것에 어질 수 있고
간탐과 질투 품지 않으며
법에서 일어나는 것
헤아리거나 셈함이 없고
겁내는 소견 없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인욕의 바라밀로써
평온하게 화합시켜서
대중에서 탁월한 그야
다투는 탐욕을 볼 수 없으며
정진도 하려 하지 않으며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인욕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진리에 굳게 머물며
한마음으로 선정 닦아서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없으면
그 번거로움이 없어지며
모든 법을 환히 깨닫고
삼매에 머물러 있되
선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분명하게 통달 못하고
지혜까지 또한 없으며
또 무지의 가르침을
좇지 않되 환히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미련함도 또한 없으며
지혜라는 생각 없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한가한 데 머무는 것같이
마을에서도 그러하여서
이와 같은 두 가지 일에
평등하게 닦을 것이니
시끄러운 마을이라고
미워하지 않고
한가히 삶에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끼니 때에 마을에 나가
위의 갖추어 탁발하여도
나의 몸은 밥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는 다니며 걸식한다고
몸소 찬탄하지 않아서
탁발이라는 생각 없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오래고 오랜 옛날로부터
누덕누덕 누더기 옷을
언제나 이 몸 위에는
받아서 지녔더라도
나는 추한 옷을 입었노라고
스스로 탄식하지 않고
남에게 또한 교만 없으면
그러하고서야 편안하리라.
그것만으로 안주하라고
부처님들께서 가르치시고
신칙하신 세 가지 옷은
그 몸에서 여의잖나니
나는 예의를 안 어겼다고
몸소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기뻐하는 마음 없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부처님의 미묘한 법을
널리 펼 수 있어도
나라고 헤아리지 않고
중생에도 집착 않으며
나는 법을 강론한다고
스스로를 기리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여러 가지의 덕의 근본에
망령된 생각 품지 않으며
견고하다는 생각 없으며
삶의 일도 생각하지 않나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
맑다 흐리다 생각하지 않고
몸에도 행을 짓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혹 일어나더라도
일어난다는 생각도 없고
머물고 서서 있는 곳이 있어도
그곳까지도 생각하지 않나니
밤낮으로 정진하여
경행에 절도(節度) 있으며
그 언사도 없어지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니라.
만일 짓거나 짓지 않음을
두 가지 모두 생각하지 않고
항상 망령된 생각과
기특하다는 생각이 없고
부처님 교와 외도의 교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훌륭하다는 생각 품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조용하고 편안한 생각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평등하여 허공 같다는
그 생각에 나을 것 없나니
나라고 하고 중생이라는
그런 마음 품지 않으며
다르다고[殊特] 보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만일 허깨비라고 환히 깨닫고
꿈과 같은 줄 분명히 알아
변론의 재주를 얻고
뜻을 잊지 않으며
세간에 노닐되
물 속의 달과 같이
나아가고 물러남 없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좋은 방편을 환히 잘 알고
참된 이치를 분명히 보아
가진 몸은
하나도 견고하지 않다고 말하며
고요한 법을
환히 깨달아 잘 알고
망령된 생각 행하지 않으면
그러하고야 편안하리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사리불을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는 것이 심원(深遠)하여 지혜의 이치를 받들어 행하였고 마지막까지 이르렀구나. 법담(法談)을 말하여 도에 상응하고 오묘하게 돌아왔으니 얼마나 상쾌하냐. 이제 사리불은 모든 곳에 노닐고 멈추어 있거나 기사굴산에 돌아다니면서 배우는 비구ㆍ보살들을 널리 여기에 모이게 하여, 도의 가르침을 받도록 하여라.”
이 때 사리불이 이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그들을 청하여 모이게 하는 일은 감당해 내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모든 보살 등의 위엄과 덕망은 용보다 뛰어나고 도의 지혜는 그지 없어서 제가 미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몸으로부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니, 그 때의 부처님 세계 모든 보살들이 이 빛나는 광명을 받고, 한 생각을 하는 동안에 모두 영취산에 모여와서 부처님에게 나아가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도로 공중에 가서 머물렀으며, 한적한 데 살던 비구와 여러 보살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고, 왕사성 큰 성중의 무수한 인민 수백 수천의 대중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무수한 대중들이 모두 와서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그 존안을 들어 문수의 얼굴을 보시면서 곧 웃으셨다.
문수사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까 웃으신 것은 무슨 변화의 감응이십니까? 여래 지진(至眞)께서는 일찍이 함부로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영취산에 1만 보살이 있으면서 함께 경전을 강설하고 있으니, 경의 이름은 『유상경(喩象經)』이요, 옛적에도 또한 일찍이 강론한 일이 있었느니라.”
현자 아난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의복을 정돈하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려 스스로 귀명하며 여쭈었다.
“거룩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어 길이 편안에 이르도록 이 『유상경』을 널리 펴시옵소서. 이 법은 만나기 어렵고 대중은 드물게 듣는 것입니다. 이제 일체의 모든 부(部)를 말씀하려 하시므로 모두 구름처럼 모여왔으니, 이 경전을 들으면 반드시 깊이 들어가서 광명이 그윽하고 현묘(玄妙)함을 얻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여래ㆍ지진은 높아서 견줄 데 없고 삼계(三界)에 짝할 이 없으며, 아까 존안으로 문수의 얼굴을 보시고 때에 맞추어 웃으셨으므로, 이는 함부로 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뜻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난아, 네가 다른 덕의 근본을 보며 살폈구나. 알아야 할 바의 지혜야말로 한정할 수 없다. 아난아, 너에게 아까 웃은 뜻을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 때 아난과 대중들은 분부대로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 법을 믿고 즐기면 기거 동작은 코끼리가 노닐며 걷는 것과 같고, 이 법을 믿으면 그들의 무리는 큰 코끼리가 노니는 것 같고 또한 용이 걷는 것 같으며, 이 법의 참된 이치를 좋아하고 기뻐하면 사자의 걸음인지라 기거 동작이 높아서 짝할 이가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의 법요는 모든 보살을 기쁘게 하며 이 경법의 가르침은 보살들을 수순하는 것이므로 묻고 받아야 하리니, 본래 전생의 공덕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내가 간 후에 이 경전을 모든 보살에게 돌려서 손에 잡고 지니게 하면 뜻은 고요하고 마음은 안정되므로 공으로 돌아갈 것이요, 입으로 외우고 마음에 이 보살의 갈무리[藏]를 생각하면 박덕하고 어둡고 막힌 보살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요, 독을 품고 아첨하며 거짓된 보살의 몸으로도 돌아가지 않고 소망과 망상이 많은 보살의 손으로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상서로운 징조를 나타내어 문수를 감동시켰다. 문수사리는 곧 그것을 알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여래ㆍ지진께 심원(深遠)한 법을 여쭈려고 하는데, 일체의 성문과 연각들은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보살들은 상서로운 징조를 겪고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문수사리는 앞에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 여쭈려고 하오니, 만일 허락하신다면 감히 스스로 여쭙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마음껏 물어라. 모든 대중들도 여기에 모여왔으므로 아울러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이다.”
문수사리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이 보살로서 모든 공덕의 법을 세울 수 있으며, 일체의 보살의 행을 널리 나타내며 수없이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을 일깨워 교화하고, 부처님 국토에 물 위에 비친 달처럼 나타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앞서 물은 것은 다만 그 핵심만 거론했을 뿐이니, 여래는 당연히 충분히 분별하여 공덕을 세워 이루게 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문수사리와 모든 대중들은 분부대로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여섯 가지 법을 행하면 도의 이치의 가르침을 구족하고 일체 공덕을 세울 수 있다. 여섯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어떤 보살이 보시바라밀을 받들어 행할 적에 일체의 가진 것을 보시하되 탐하거나 아끼는 바가 없으며 순행(順行)을 두루 갖추고 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다. 계율을 이룩하여 여러 악을 범하지 않고, 나[我]라고 보지 않으며 요의(了義)를 깨닫는 것이다. 인욕을 성취하여 부드럽고 편안하여 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아 이미 해탈하여 맺히고 엉긴 데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은근히 정진하여 몸은 행하는 일이 없고 마음은 일체를 분별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선정의 바른 뜻으로 해탈문이 마땅함을 분명히 깨달아 정의(定意)ㆍ정수(正受)로 마음이 항상 길이 편안하며 하나의 뜻도 사모하지 않고 지혜를 통달하여 도업으로 삼는 것이다. 스스로 그 몸이 5취를 여의지 못했음을 보아 여러 나는 곳마다 모두 제도를 받게 하는 이것이 여섯 가지 법이다. 보살이 행할 때에 이 법을 갖추면 일체의 공덕을 구족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이 여섯 가지 법을 완전히 갖추면 일체 공덕의 법을 세울 것이다. 여섯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보살이 지옥에 나아가서 불에 타고 구워지는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여 천상에 나게 하는 것이다. 그가 축생에 있으면서 요란하고 불안하거나 심란하고 시끄러워 의리를 모르면 그 성품을 거두어 잡아 부드럽고 온화하며 미묘한 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가 작은 성(姓)을 쓰는 하천한 서민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전륜성왕의 세력 있고 귀한 지위를 열어 보이는 것이다. 5취(趣)에 나는 것에 모두 널리 나타내어 고루 일깨워 제도하여, 태어나는 곳의 중생에서 뛰어나고 유다르게 한다. 수시로 부처님 국토에 들어가되 법신에는 움직이거나 옮기는 바가 없음을 밝게 알고,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면서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두루 나타나는 것이다. 만억 가지 음성을 부연하여 가르침을 널리 펴 내어서 각기 들을 수 있어서, 그 마음이 항상 일정하여 치우치지도 않고 쏠리지도 않으며 뜻과 성품을 넓고 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일체의 공덕을 세우는 여섯 가지 법이다.”
문수사리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보살이 지옥중생을 거두어 천상에 나게 하는 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대연화(大蓮華) 삼매정수로써 지옥중생을 돕고 나아가 구제하여 곧 그 중생들이 천상에 올라가 편안한 복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중생들이 괴로우므로 도리천의 가장 으뜸되는 궁전을 나타내 보인다. 이 액난을 보고 그 때문에 싫증을 내어 괴로움을 받는 데서 모두 벗어날 수 있고 지옥의 인간들을 위하여 경전을 말하여 수없이 많은 수백 수천의 무리를 지옥의 고통에서 건진다. 이것이 보살이 지옥중생을 거두어 불에 타고 구워지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그리하여 항상 법을 따라서 어기거나 잃는 바가 없게 하는 것이다.”
문수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보살이 축생들의 요란하고 헛갈리며 시끄러운 액난을 거두고 구제하여 인간 세계의 안락한 곳에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삼매정(三昧定)이 있는데 적멸(寂滅)이라고 한다. 이 삼매로써 정수하는 때에는 그로 인하여 축생에 있는 자를 거두어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뜻과 성품이 온화하며 기뻐지게 하면, 편안하게 인간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 3사(事)를 수호하며 경법을 강설하고 수없는 중생들에게 도의 법을 이룩하게 하는 이것이 보살이 축생의 헷갈리고 시끄러운 액난을 거두어 인간 세계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보살이 작은 성을 쓰는 하천한 작은 성바지의 서민으로 태어나 전륜성왕의 안온한 덕을 받는 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삼매가 있나니, 이름은 입어청징(入於淸澄) 정의ㆍ정수이다. 그 삼매로인하여 여러 쇠약한 종족에서 초월하여 모두 청정하게 하며, 비록 작은 성을 쓰는 서민으로 태어났더라도 곧 다시 전륜성왕의 안온한 덕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보살이 작은 성을 쓰는 하천한 서민에 태어나서 전륜성왕의 안온한 덕을 받는 것이다.”
문수는 또 물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살이 모든 5취에 나되 중생들보다 뛰어남을 두루 나타내는 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삼매가 있나니, 견제행조명수특(遣諸行照明殊特)이라 한다. 이 정의ㆍ정수로써 보살이 이 정(定)에 머물렀을 때에는 5취에 두루 나타나서 중생을 제도하고, 뛰어나고 특별한 행을 얻게 하여 모두 최고의 바르고 참된 도를 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문수사리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보살로서 때에 알맞은 방편으로 널리 일체의 부처님 국토에 들어가되 본래 법신은 움직이거나 옮기지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면서, 일체의 부처님 국토에 달이 물 위에 나타나듯 두루 나타난다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삼매가 있나니, 이름은 함입제음(咸入諸音)이라고 한다. 보살이 이 정의ㆍ정수를 세울 때에 자기의 몸을 시방의 동ㆍ서ㆍ남ㆍ북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나타내되 본자리에서 움직이거나 옮기지 않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면서 그 정의(定意)에 머물러 시방의 모든 부처님ㆍ세존을 뵙고 말씀하시는 경을 듣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이 움직이거나 옮기지 않으면서 때에 알맞은 방편으로 일체의 부처님 국토에 나타나되 달이 물 위에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것이다. 보살도 그와 같아서 두루 다니며 교화하되, 오고 감이 없다.”
문수사리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보살로서 만억 가지 음성을 내어 가르침을 널리 펴서 각기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이에 보살은 한량없이 굴리는 총지(總持)를 얻었으므로 한이 없는 중생의 뜻과 성품을 환히 알고, 그 언어를 따라 각기 말을 늘어 놓는다. 무수한 여러 소리들을 분별하여 가르치되 그 뜻에 맞게 하고, 이 총지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통달한다. 일체의 음성을 부연하여 널리 들을 수 있고 각각 부연하는 말이 잘못되지 않게 한다. 이것이 보살로서 억만 가지 음을 내어 가르침을 널리 펴서, 각기 그 자리를 얻게 한다는 것이다.”
그 때에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러 보살 등의 좋은 방편은 미치기도 어렵거니와, 아주 뛰어나서 짝할 바가 없습니다. 이 경전의 법요는 여러 보살들이 배워서 늘 받아야 할 것이지만, 어떤 일[業]을 하여야 믿고 해탈하는 문[信脫門]에 이르게 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이 경전을 배우고자 하면, 곧 허공(虛空)의 문을 믿고 알아야 한다.”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허공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그 허공이란 곧 텅 비어서 없는 것을 말하니, 티끌과 더러움도 없고 성내거나 해치려는 마음도 없으며, 또한 어리석지도[忽忘] 않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더러움도 없고 해침도 없고 또한 어리석음도 없다. 또 마치 허공이 보시도 행하지 않고 계율도 갖추지 않고 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도 영원히 미치지 않는 것과 같으니 문수여, 그와 같이 일체의 법도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이루지 않는 것이 허공과 같다.
또 그 때문에 풀 것도 없고 없앨 것도 없는 것처럼, 일체의 법도 그와 같아서 풀 것도 없고 없앨 것도 없는 것이 허공과 같다. 행하는 것은 있어도 증득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일체의 법도 그와 같아서 곧 행하는 것도 없고 증득하는 것도 없는 것이 허공이 어둡고 컴컴함도 없으며 밝고 빛남도 없는 것과 같다.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는 것이 허공과 같다.
또 텅 비어서 끝이 없으므로 잡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이와같아서 넓고 넓어 한도가 없어서 잡아 가질 수 없는 것이 허공과 같다. 또 바른 길도 없고 삿된 길도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큰 길도 없고 샛길도 없으며, 삿되거나 바름이 없는 것이 허공과 같다. 또 몸을 세우지 않고 여러 번뇌의 행을 떠나 성문도 배우지 않고 연각도 뜻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에 집착하지도 않는 것처럼, 최고의 대승의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성문ㆍ연각ㆍ대승을 배우지 않는 것이 허공과 같다. 또 생각도 없고 분별도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망상도 없고 분별도 없는 것이 허공이 들어올릴 것도 없고 내릴 것도 없으며 나아갈 것도 없고 게으를 것도 없는 것과 같다.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나아가는 것도 없고 게으른 것도 없는 것이 허공과 같다. 또 응하거나 응하지 않을 것도 없고 쌍도 없고 짝도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응하거나 응하지 않을 것도 없으며 쌍이나 짝도 없는 것이 허공과 같다.
또 두루 중생을 비추어서 더러운 티끌을 깨끗치 못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멸도에 이르러 영원히 티끌과 더러움이 없다. 그 때문에 없애거나 제거할 수 없고 옮겨서 떠나 보낼 수도 없는 것이 허공과 같다. 세울 것도 없고 머무르는 바도 없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며 처소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중생들이 머무르는 곳도 없는 줄을 알 것이요, 처소가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 본제(本際)에 이르게 되면,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머무르지 않지도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이처럼 그 법은 스스로 그러하여서[自然] 그가 여래ㆍ지진을 만나보려고 하면 곧 삿된 소견이 된다. 삿된 소견이면 바른 소견을 구하여 들어가는 것이요, 바른 소견이면 이것이 바로 열반으로서, 큰 덕의 결과도 아니며 큰 공덕도 없는 것이다. 열반에 이르는 것이 큰 덕의 결과도 아니고 공덕도 없으면 곧 세상 중생의 복이 되며, 세상 중생의 복이 되면 곧 중생의 복에서 바라는 바가 없을 것이다. 중생의 복에서 바라는 바가 없으면 곧 비고 고요한 지혜를 구족할 수 있을 것이요, 비고 고요한 지혜를 구족하면 거기에서부터 빨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이룰 수 있다.”
이 때에 그곳 대중 모임의 60비구는 모두 아주 교만한 생각을 품고 각기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여래께서 어두운 길에서 미혹한 교훈을 널리 펴시고 계신다. 외도들과 삿된 교에서도 모두 이런 말을 하는데 무엇으로 행을 삼는다는 말인가. 아까 세존께서는 다시 이 가르침을 말씀하셨는데, 불란가섭(弗蘭迦葉)ㆍ마하리구야루(摩訶離瞿耶樓)ㆍ아이제기야(阿夷帝基耶)와 같은 이들과 지금의 리피휴가전선(離披休迦旃先)ㆍ비로지(比盧持)ㆍ니건자(尼揵子) 등도 모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또한 이 말씀을 하실까? 무슨 특수한 것이 있는 것일까? 어떻게 그를 본받으며, 따르고 닦아야 할까? 어떤 것으로 업을 삼는다는 것일까?”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 60인들이 아주 교만한 생각을 품는 줄 아시고, 곧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여래ㆍ지진ㆍ정각이 되어 경전을 널리 펴셨고, 외도들과 모두 꼭 같아서 차별이 없지만, 외도들은 여래의 설법하는 이치가 귀결되는 곳을 분별할 수 없다.”
60비구는 바로 이 말씀을 듣고 더욱 근심하고 걱정하며 기뻐하지 않았다. 이 경의 이치를 강론하심이 아주 즐겁지 않았으므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떠나가려 하였다.
문수사리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디에 가려고 합니까?”
그 때 여러 비구들이 문수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법에서 말씀하신 것이 어디로 귀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사리불이 여러 비구에게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 이치는 훌륭합니다. 이 일로 그 뜻을 다시 여쭈어보겠으니, 잠깐 기다리시오. 내가 여래ㆍ지진께 어째서 이것을 말씀하셨는가를 여쭙겠습니다.”
그 때 여러 비구는 사리불의 이 같은 가르침을 듣고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 때에 사리불은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다.
“왜 여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어 여러 비구들에게 모두 의심을 품게 하셨습니까?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가엾이 여기시어 은혜로이 맺힌 의심을 풀어 주소서.”
그 때 세존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하여 맺힌 의심이 없는 비구로서 내 가르침을 들으면,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겠는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미 진리를 보고 비구의 행을 받드는 이도 일체의 음성과 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으며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데, 하물며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하여 맺힌 의심이 없는 비구로서 의심과 두려움을 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리석은 사람은 뜻이 막히고 어둠에 빠져 이제껏 없었던 법에 대해 망령된 생각을 품고 허공을 다니는 것같이 될 것이다.”
이 때에 사리불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원하옵나니, 큰 성인이시여, 이 교법의 글귀의 의미를 풀어주셔서 여러 모인 이들이 근심에 잠겨서 신음하지 않고, 마음을 트이게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꿈 속에 여래를 보는 이가 있으면 참된 사람[眞人]의 형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고 하겠는가? 이 꿈 속에서 본 여래는 진실한 것이 아니고 요긴한 것이 아니며, 모두가 생각으로 인하여 생각의 대상을 헤아렸으므로 진실로 생각은 없으며 만났다는 생각도 없는 것이다. 있는 대상이 없으면 여래는 생각으로 분별할 것도 없고 자세히 살피는 생각도 없는 줄 알게 되어 생각도 품지 않고 만난다는 생각도 없어질 것이다. 있는 대상이 없으면 일체의 중생과 만물이 모두 허망한 것으로 알고 진실하다고 보지 않으며, 모든 법은 헷갈리고 뒤바뀌고 제멋대로 노는 것임을 환히 알 수 있다. 모든 법이 헷갈린 것인 줄 환히 알게 되므로 여래는 헷갈리고 삿된 소견을 충분히 말하며, 일체의 모든 법이 다 삿된 소견인 것을 분별하면 다시는 62견에 따라 미혹하거나 삿되게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사리불아, 이것이 만일 여래ㆍ지진을 보려고 하면 삿된 소견에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여래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여래의 몸을 보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삿된 소견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요,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없애버리면 여래를 보아 삿된 소견이 없게 된다.”
이 때에 사리불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그 삿된 소견 가진 이를 바른 소견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어리석고 고지식한 범부들은 모든 망상의 대상과 응하거나 불응할 것을 생각하여 일으킬 만한 곳에 처소를 세우므로, 이 일에 대해 건립ㆍ정진ㆍ게으를 것도 없고 한 쌍도 없고 한 짝도 없다 함을 믿지 않는다. 스스로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 ‘수명’이라는 것을 일으키고, 스스로 나를 의지하며 헤아리고 나라는 탐착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대상의 형상ㆍ봄ㆍ들음ㆍ생각함ㆍ아는 것을 분별하여 환히 깨달으면, 기뻐하여 말할 대상이 없게 된다. 이렇게 있는 것도 없는 것으로 살펴 아는 것이니, 이것이 생겨난 것이 되고, 생겨난 것이 없는 것이 되고, 허망한 것이 되며, 모두가 없다고 진실로 말하는 것이다. 그 허망한 것은 짝이 없고 형상이 없음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짝이 없으면 삿된 소견을 이루게 된다.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이러한 형상이 모두 허망하다고 보면 미혹된 것이 아니다’고 분명히 알리는 것도 바로 삿된 소견이고, 이 때문에 외도의 삿된 소견과 모두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그 삿된 소견에 떨어지면 바른 소견에 인연하여 이루게 되는 줄 알아라.”
사리불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일러 바른 소견을 남에게 베풀어 주면 그 복이 크지도 않고 공덕이 멀지도 않는 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형상으로 남에게 온갖 복을 베풀어 주면 무위를 이루고 무위를 가까이 하게 된다. 그 무위란 조그마한 복도 없고 큰 공덕도 없으며, 작은 명칭도 없고 큰 명칭도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무위란모두 일체 공덕의 보답을 여의었고 처소도 없기 때문이다.”
그 때 사리불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ㆍ지진은 어찌하여 무위를 처소가 없다고 강설하시면서, 본래 무위는 가장 기특하여 그 공덕이 한량없는 것이라 찬탄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는 여러 가지 행동이 왕성하고, 나가 있고 사람의 수명이 있다고 헤아리므로 여래는 일부러 무위의 공덕이 한량없다고 찬탄하여 그 처소를 드러낸다.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끝끝내 환난을 끊게 하려고 일부러 다름을 찬탄하는 것이다. 또 사리불아, 성현은 어질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고 또한 중생의 복도 아닌 줄 살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성현을 성취할 것이요, 욕심을 여읜 중생의 복은 마치 농부와 같아서 그 종자에 따라서 각기 그 종류를 얻을 것이다. 도리어 곡식의 싹에 의지하면 어떤 경우는 가시덤불ㆍ풀ㆍ기음과 같은 차이가 생겨난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농부가 곡식 열매를 얻겠는가? 본래 가시덤불ㆍ풀ㆍ기음과 같이 차이나는 씨를 뿌렸는가?”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으니라. 사리불아, 설령 농부가 씨를 땅에 뿌렸더라도 이것에 의지하여 가시덤불이 나며, 땅이 황폐하여 소루쟁이로 변하는 것과 사리불아, 이처럼 성현에게 공덕을 세우려고 베풀어도, 기뻐할 수가 없다. 이는 좋은 종자가 아니어서 열매를 맺지 못해 얻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무위(無爲)의 밭에 건립하지 않으면 생사의 과보가 됨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평등을 이루려면 이것은 무위와 같은 것이니, 큰 복도 아니요 큰 공덕도 아니다.”
그 때 사리불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무위를 닦아야 큰 복이 있는 것도 아니요 큰 공덕도 아닌 것이 되고, 이들에게 보시하는 그 복이 어떻게 세상에서 중생의 복(福)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조그마한 복이라는 생각도 품지 않으며 큰 복이라는 생각도 없으면, 중생의 복의 덕을 심는 것이니, 중생의 복의 덕을 심으면 밝아서 빛나지 않음이 없고 과보를 받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곧 더할 나위 없는 세간 여러 종류의 중생의 복이다. 만일 사리불아, 이 보시를 끝없는 덕의 밭에 세우면, 그 꽃도 받지 않고 그 열매도 얻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보시는 큰 복이 있는 것도 아니요 큰 공덕도 아니며, 이 세상 중생의 복으로서 과보를 받지 않는다.”
사리불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에게 복을 보시하여 중생의 복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과보를 받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중생의 복에 베풀되 무위에 의지하면서, 또 그 법에 응보가 있다고 여기겠는가?”
사리불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위로써 중생에게 복을 베풀면서 응보를 받지 않으면, 과보로서의 깨달음[果證]도 없습니다. 무위란 곧 구하는 바가 없는 것이니, 성현들도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불아, 진실로 너의 말과 같아서 세상에는 중생의 복이 있느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이 중생의 복을 베풀어도 곧 바라는 바가 없을 것이다.”
그 때 사리불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보시하되 응보가 없어서 공혜(空慧)를 구족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법이 모두 스스로 그러한 줄[自然] 환히 깨달으면, 그 이치는 진실이냐, 허망이냐?”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모든 법이 스스로 그러한 줄 환히 깨달을 수 있으면, 스스로 그러하여 환상과 같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으며, 그 모든 법이 환상과 같다는 것을 환히 깨달으면 그는 허무에 응하고 허무의 지혜를 환히 압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법은 스스로 그러하여 환상과 같기 때문이며 이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입니다. 환상과 같다는 것은 허무와 허무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모든 법이 스스로 그러하여 환상과 같다는 것을 환히 깨달으셨습니다. 왜냐 하면 법을 헤아려도 이루어지는 바가 없으며, 얻는 바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불아, 네가 말한 바와 같다. 가령 어떤 법이 실로 처소가 있고 있는 바가 있고 진리[眞諦]를 행한다고 생각한다면 중생의 멸도와 무위의 이치를 또한 알지 못한다. 일체의 법이 허무하고 진리도 없으며 진실됨도 없는 것이므로, 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5취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여 멸도를 얻게 할 수 있다. 중생들이 덜거나 줄어듦이 없는 것은 중생이 모두 허무로 인하여 나왔기 때문이다. 그와 같아서 사리불아, 그 때문에 중생이 생각하는 대상도 허무하고 그 생각하는 것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허무의 지혜를 갖추었다고 이름하는 것이요, 이렇게 배운 것을 인하여 중생의 복에 베풀어도 인과 응보가 없으며, 허무의 지혜를 갖춘 것이다.”
그 때 사리불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허무의 지혜를 구족하며, 거기에서 생겨나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빨리 이룰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허무에서 증득하지 않나니, 이것을 허무의 지혜를 갖추었다고 한다. 또 사리불아, 무엇을 허무라고 하느냐? 몸도 허무하고 나라는 것, 사람이라는 것, 수명이라는 것도 허무한 줄 안다. 단멸한다고 보고 항상하다고 헤아리지만, 여러 가지 일이 서로 얽혀 관련되어 있으므로 또한 허무한 것이다. 부처님과 법과 성중(聖衆)과 열반[無爲]이라는 생각과 심의(心意)를 치료하는 것과 모든 생각과 마음에 즐거운 것도 모두 다 허무하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이러한 여러 가지 형상을 묻고 이 지혜를 환히 알면 해탈에 이르게 된다.
사리불아, 허무의 지혜를 갖추어 이렇게 분별하면, 빨리 무생법인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할 때에 4만 보살은 곧 모두 무생법인에 이르렀고, 이 때에 6천인은 큰 도의 뜻을 내었으며, 3만 6천 천자(天子)는 지혜에 들었을 때에 도의 자취에 가까워졌다.
아주 교만한 생각을 품었던 60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하여 일어나거나 남은 것이 없는 데에 이르자, 이구동성으로 함께 소리를 높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이후부터 6사(師)의 가르침을 받들어 출가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스승이 아니요, 법도 받들어 받지 않을 것이며 거룩한 대중에게도 귀의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후부터는 모두 할 일도 없고 응보도 없으며, 무거운 허물도 일어나지 않고 나쁜 길도 없습니다.”
모인 일체의 대중은 이런 말을 듣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어쩔 줄 모르면서 각기 생각하기를, ‘이 비구들이 장차 미혹됨을 구하여 부처님을 멀리하며 법을 어기고 계율을 버리어, 외도로 나아가는구나. 그래서 지금 이런 말을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그 때 사리불은 여러 대중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고 곧 이 여러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들 자신은 지금부터는 부처님ㆍ세존이 없으니 외도를 따라가서 사문이 되겠다’라고 말하였는가?”
그 때 여러 비구들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부터 6사를 공경하며 섬기려는 것은 일체가 귀결되는 것이 하나의 형상[一相]일 뿐이며, 6입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종류의 스승도 보지 않으며 출가하여 사문이 되는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 그대들은 또 ‘오늘부터는 부처님을 거룩한 스승으로 모시지 않겠다’고 말하는가?”
여러 비구들은 말하였다.
“오늘부터는 자신의 땅에서 자재하고 타향 땅에 있지 않으며, 스스로 자기에 귀의하고 타인에게 귀의하지 않으며 자기를 스승으로 섬기고 남을 스승으로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전처럼 부처님을 거룩한 스승으로 삼지 않겠습니다. 왜냐 하면 그 부처님ㆍ정각도 나를 여의지 않았고, 그 나[我]도 부처님을 여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사리불이 또 물었다.
“여러 비구 현자들이여, 어째서 ‘지금부터는 법을 받지도 않고 거룩한 대중들에게도 귀의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는가?”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귀의하고 생각할 만한 아무 법도 얻지 못하였고 모임도 없었기 때문에, 거룩한 대중들과 법에 귀의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사리불은 다시 여러 비구에게 물었다.
“어째서 ‘오늘부터는 지을 업도 없고 할 일도 없다’고 말하였는가?”
여러 비구는 말하였다.
“오늘부터는 모든 법은 일체가 지음이 없다는 것을 환히 깨달았습니다. 지을 것이 없다는 것이 짓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후부터는 지을 업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리불이 그 때에 다시 물었다.
“그대들은 어째서 아까 ‘지금 이후부터는 과보도 없다’고 말하였는가?”
여러 비구가 대답하였다.
“어리석음을 벗하여 해탈하지 못하므로 죽고 사는 데에 나아가 시종 얽매인 것이나, 우리들은 어리석음이 다하여 인연도 없고 과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후부터는 과보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사리불은 다시 물었다.
“그대들은 어째서 다시 ‘지금 이후부터는 재앙과 허물이 없다’고 말하였는가?”
여러 비구들은 말하였다.
“우리들은 일체의 법은 모두 고요하며 멸도임을 환히 깨달았으며, 우리들은 일체의 법은 법도 없고 과보도 없는 줄을 환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과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 이후부터는 재앙과 허물이 없다 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그대들은 어째서 다시 ‘지금 이후부터는 나쁜 길[惡趣]도 없다’고 말하였는가?”
여러 비구들은 말하였다.
“우리들은 지금부터 일체의 법이 나아가는 곳에 영원히 나쁜 길도 없고 일깨워 교화하거나 교화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계율이나 계율 아닌 것도 없는 줄을 환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나쁜 길도 없으며 길 아님도 없고, 계율이나 계율 아닌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여러 비구는 이렇게 차례대로 말하고 스스로 크다고 하는 뜻[羲]을 버렸다. 그 말을 듣던 3천 6백 비구(比丘)도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하여 일어나거나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을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모든 법에 있어 얻은 바가 없는 것이 참으로 얻은 것이다.”
또 세존께 여쭈었다.
“무엇을 모든 법에 있어 얻은 바가 있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얻었다는 것은 무생법인(無生法忍)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문수는 또 여쭈었다.
“만일 어떤 보살이 무생법인을 즐거이 얻고자 하면 어떻게 배워야 하며, 어떻게 건립해야 하며, 무엇을 받들어 행한다고 합니까?”
이 때에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가 더할 나위 없이 법을 배우고, 일체지와 모든 신통과 지혜의 이치에 노닐며, 항상 무생법인을 좇고 익히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온갖 지혜 안에서 가장 높으신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려면
일체의 모든 법은 받을 것 없고
또 버릴 것도 없느니라.
법이란 얻을 것이 없는 것이요
이룩한다 하는 것이 또한 없나니
모든 법은 있는 바가 없는 것이나
미련한 이 없는 것을 있게 하려네.
이러한 행을 제거하려고
일부러 중생 위해 설하거늘
도리어 생겨나는 것에 뜻을 두고 즐기면
일어남이 없다는 것 믿지 못하리.
만일 악마의 일 버릴 수 있으면
부처님 도 높아서 그 이상이 없네.
만일에 어리석고 미련을 내면
그 까닭에 이 이치를 모르게 되리.
여러 가지 일들을 일으키고서
미련한 이 제각기 소견 다르니
나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없고
온갖 것은 한 모양이니라.
부처님은 세간에서 슬기로운 이
범부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나
나[我]가 있다고 헤아리므로
도를 닦고 받들 수 없게 되느니라.
생각하기를 오래 지날 동안
탐욕과 음심을 없애버리며
성내고 어리석음 멀리 여의고
내게는 번뇌 없다 생각하리니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고
열반을 아주 없다 생각하나니
탐욕과 성냄을 일깨우려고
일부러 고요한 공(空)을 말했느니라.
어둠이 다하고 태어남이 없거니
일부러 열반을 찬탄하였고
다해짐을 방편으로 칭찬한 것도
불법에서 떨어져 아주 멀도다.
보시를 생각하고 계율 받들며
만약 낙도(樂道)를 희망하면
이것은 부처님 교 닦음 아니요
사상을 그리며 배운 것이나라.
미련한 이 허망에 헷갈려 있고
텅 비어 없는 법을 알지 못하느니라.
모든 법은 한결같은 모양이거니
도리어 여러 가지라 생각한다.
만일에 모든 법이
스스로 그러하다[自然]는 생각을 밝게 깨달으면
다섯 개의 손가락 보는 것처럼
도를 얻어 이루기 어렵지 않느니라.
도는 사람에서 멀지 않으며
또다시 가까이도 있지 않나니
망상을 구하기에 힘을 쓰므로
사람에서 떨어져 멀리 되느니라.
미련한 이 다른 것만 제각기 행해
차례차례 서로의 단점 구하여
그 사람은 계율을 받드는 이요
이 사람은 나쁜 짓을 범한 이라며
잘 보시하고 바른 법을 행하여도
유위(有爲)는 모두 다 비어 있는 것
다시금 신식(神識)을 받지 않으면
환상과 같아서 보이는 것 없느니라.
계율을 받드는 모양도 없고
나쁜 짓을 범한 것도 없나니
모든 법은 인연이 합한 것이니
거기에 나라는 것 있을 수 없느니라.
만일 억천 겁을 지내오면서
보시한 데 견줄 이가 아무도 없고
계율을 잘 지녀서 그 몸 길러도
도사(導師)는 이에게 수기(授記) 않나니
만일에 생각까지 없애버리고
보시하되 보답을 바라지 않고
여러 가지 구하는 것 버리고 나면
그제야 도사께선 수기하시리.
보시하면 훌륭한 복 얻는다 하고
계율 지녀 천상에 난다 말해도
그것에서 얻어진 바 없고 나서야
비로소 최상의 도를 얻나니
미련한 이 뒤바뀜을 의지하여서
망상으로 구한 바가 있지만
나는 으레 법인을 이루어
무위업(無爲業)도 짓지 않느니라.
그곳에서 생겨나는 것이 없는 법[無生法]으로
마음은 생겨나는 것을 생각잖으면
법인에 이르기 어렵지 않아
억천 겁을 다시 지날 필요 없나니
법의 이름이 있다고 임시로 말하나
모든 법은 지을 바 없는 것이니라.
근본 없고 머무를 곳 또한 없으면
생각은 모두 다 허공 같으리.
수없이 많은 수억 명의 부처님들이
훌륭하고 묘한 법 널리 펴시어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없애려 하지만
모든 법 또한 다함이 없어라.
모든 법이 실제로 있다고 하나
모두가 다함에 돌아가나니
있는 바가 없기에
그러므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한량없어서
헤아려도 밑도 끝도 없으니
밑과 끝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곧 근본이 없느니라.
심었으되 싹이 없다고 하면
무엇으로 인하여 열매가 나며
만일 잎사귀가 없다 하면
무엇에 인연하여 꽃이 있으리.
그곳에서 생기는 것이 없는 법이면
사람이니 종족이니 있음도 없고
중생이라 이름하나 중생 없나니
나지 않고 또다시 죽지도 않느니라.
비유하면 음란한 여자에게
아들 딸이 없는 것과 같으니
아들 딸 모두 없으므로
아들 딸의 근심이 또한 없노라.
모든 법은 나는 바가 없다고
밝고 밝은 지혜로 이렇게 보면
거기에는 두려움 없고
생사 괴로움에 헤매는 것 또한 없나니
미련한 이 거짓에 미혹되어서
모든 법은 환상인 줄 알지 못하고
허공을 어깨에 받아 메고서
거룩하고 선한 교법 싫어하누나.
만일에 이 가르침을 분별해 보면
한량없고 가이없고
무수해서 한정도 할 수 없나니
그러하고서 비로소 싫증 안 나리.
부처님이 말씀하신 본제(本際)가
끝도 밑도 없다고 하심과 같이
미래제 그것도 그러하며
현세도 하나의 형상이로세.
끝없는 것 끝 있다고 생각하여도
밑도 없고 끝도 없어 허무하거니
나는 이미 이 이치를 환히 알아서
두 갈래가 없다 함을 깨달아 있느니라.
본제는 비어 있는 허공의 형상
무수한 중생은 말로 할 수 없으며
그 끝은 비유하면 그림자 같나니
이 지혜는 분명히 알 수 없노라.
망령된 생각을 함으로 인해
아래로 전락하는 마음이 생겨 나니
그러한 그물을 없애버려라.
그러찮고 무슨 인연으로 부처 이루랴.
바른 깨달음에는 생각할 바 없는 것이요
거기에는 이룩할 바 또한 없으며
일체의 모든 법은 날 바 없거니
미련한 이는 이루려 하네.
허공은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묵고 지날 여러 처소 또한 없나니
허공에는 머물 곳이 없는 것이요
아무 할 일 없으며 형상도 없느니라.
비어 있는 허공을 찬탄함 같아
도를 알고 나면 또한 그러하리
만일 도를 환히 깨달아서 분별하면
중생을 아는 것도 또한 그러하리
중생 세계 모두가 평등하여서
허공계와 같아서 평등하나니
이러함을 분명히 알 수 있으면
부처님 도 이루기 어렵지 않느니라.
정진과 바라밀을 구하지 않고
합당하게 따르려고 생각지 않고
모든 법 구하려고 원치 않으면
부처님 도 구하기 어려움 없느니라.
도는 모든 소원 떠나 있으며
온갖 요법(要法)ㆍ서원이 끊어졌나니
마음 속에 바라는 바 품지 않으면
부처님 도법에서 최상이 되느니라.
보시한 이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 공덕에 도를 얻게 되리라 하나
도라는 것 얻는 바가 없는 것이니
최상의 도에도 얻는 것 없느니라.
뜻은 늘 계율을 품고 있으며
정진은 진실하다 생각하여도
그는 부처님 가르침 받들지 않으니
과보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니라.
모든 법은 부지런히 닦을 것 없지만
도리어 정진을 나타내나니
정진을 하는 일이 없는 이어야
이것이 상품의 정진바라밀이니라.
이런 생각을 내는 사람은
그 법에는 어떤 번뇌도 없건만
이 법은 번뇌 있다 생각하면
그 마음은 합당하게 따르는 것 아니니
강론하는 바 생각 없는 법
허공과 같다고 칭찬하면서
얽히지도 않고 해탈 없으면
이 지혜가 더할 나위 없는 것이니라.
계율 받드노라 희망을 하고
계율을 범했다고 생각하는 이
이 두 가지 모두 다 계 범했나니
두 가지 다 없어질 제 훌륭한 계율이니라.
모든 법은 다름이 없는 것이요
생각 없고 특별함도 또한 없나니
만일에 통달하여 소견 없으면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 받듦이니라.
그 마음엔 생겨나는 바가 없어서
비유하면 허공 같나니
이와 같은 결정을 고루 받으면
참으로 고요한 뜻 되었다 하리.
그것에 생각할 것 없다는 것은
일체에 생각할 것 없다 함이니
마음 없고 나는 것 없으면
부처님 도 얻기에 어렵지 않느니라.
탐욕도 받지 않으며
욕심에 부림도 받지 않는 사람은
탐욕도 나는 바가 없어지리니
부처님 도 얻기에 어렵지 않느니라.
만일 겁(劫)의 수도 싫증 안 내며
억(億) 수의 본제도 두려워하지 않고
생사의 고난도 걱정하지 않으면
부처님 도 얻기에 어렵지 않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 게송을 마치시고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과 범부로서 이 경전을 독실하게 믿는 자가 그것을 듣고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는 생각을 품지 아니하며, 받아 지니고 외우고 다른 이를 위하여 강설하되 완전히 그 이치를 해득하면, 곧 스무 가지 공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스무 가지 공덕이란 첫 번째 모든 천신[天神]이 모두 좌우에서 묵으며, 두 번째 여러 큰 교룡이 와서 그를 보호하며, 세 번째 여러 큰 귀신이 함께 와서 그를 도우며, 네 번째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편안하여 어지럽지 않으며, 다섯 번째 태어나는 곳의 대중의 존장이 되며, 여섯 번째 태어나서 죽는 수천 세상마다 살고 있는 곳에서 항상 과거의 생애를 알며, 일곱 번째 태어나서 죽는 수천 세상마다 처하는 곳에서 늘 다섯 가지 신통을 얻으며, 여덟 번째 빨리 법인을 얻고 게다가 다시 미륵보살을 보게 되고, 아홉 번째 오로지 이 경전의 법요를 닦되, 졸음과 몹시 피곤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열 번째 만일 잠잘 때는 항상 꿈 속에서 여러 부처님을 만나뵙고 또 여러 보살을 만나보게 되며, 열한 번째 이 경전을 독실하게 믿기 때문에 빨리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게 되고, 열두 번째 만일 이 경전의 책을 받는 이가 있으면 현재의 세상에서 다툼과 송사가 없어지게 되며, 열세 번째 만일 독사와 독벌레 있는 곳에 갈 적에 이 경전을 생각하면 마침내 두려움이 없으며, 열네 번째 이 경전을 생각하면 곧 원수와 혐의 있는 이에게 항복받을 수 있고, 열 다섯 번째 이 경전을 오로지 생각하는 이는 곧 보광(普光)삼매를 얻게 되며, 열여섯 번째 이 경전을 환히 깨달을 수 있는 이는 곧 일체의 죄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며, 열일곱 번째 이 경전을 강설하면 헤아릴 수 없는 수백수천의 법문을 얻게 되고, 열여덟번 째 태어나서 죽는 수천 세상마다 있는 곳에서 도의 마음을 잃지 않게 된다. 열아홉 번째 태어나는 곳에서 부처님들을 직접 만나보며 한량없는 총지의 법요를 굴리게 되고, 그가 이 경전을 생각할 때는 여러 악마와 파순도 틈을 얻지 못하며, 몸을 받아 태어나는 곳에서는 언제나 여러 부처님을 만나뵈며, 스무 번째 이 경전을 생각하면 원한 바가 반드시 이뤄지며, 두 발ㆍ세 발ㆍ네 발의 독한 벌레가 모두 함께 그를 보호하므로 만일 어떤 사람 아닌 것이 와서도 그를 두렵게 하려고 하거나 왕과 여러 신하와 비시(飛屍)ㆍ악귀가 와서 그를 두렵게 하려고 해도 자연히 보호하는 이가 있어 아무도 범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이어 말씀하셨다.
“이것이 스무 가지의 공덕이다. 법사와 비구가 이 경전을 듣고 기뻐하며 독실하게 믿고서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는 생각을 품지 아니하여 받아 지니고 외우고 마음 속에 품고 있으면서 구족하게 분별하여 다른 이를 위하여 설명하면 그 공덕이 이와 같다.”
문수사리는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비유하자면 보료라고 이름하는 약나무가 일체의 질병을 모두 낫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경전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질병과많은 생각을 품는 병환을 다스려 낫게 합니다.”
부처님은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아서 진실로 다름이 없다. 이 경전은 실로 일체 중생의 5음(陰)ㆍ6쇠(衰)ㆍ3독(毒)ㆍ5개(蓋)ㆍ12인연ㆍ96경(徑)ㆍ62의(疑)ㆍ 삿된 소견의 장애를 없앤다. 왜냐 하면 아주 오랜 옛날 과거 세상 때에 그 겁은 한이 없고 헤아릴 수 없고 그 수는 이보다 많은 그 때의 세상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명호는 낙사자보(樂師子步)였다. 수없이 많은 수의 인민이 모이고 그 대중 가운데서 이 경전을 강설하셨다. 이 때에 낙사자보 여래ㆍ지진ㆍ등정각에게 금강당(金剛幢)이라 하는 한 보살이 있었는데, 그는 부처님에게서 이 경전을 듣고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는 생각도 품지 아니하여, 곧 이 경전의 공덕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읽고 지켜서 아끼며 그 마음에서 여의지 않았다. 작은 나라ㆍ군ㆍ읍ㆍ시골ㆍ성중ㆍ큰 나라를 들어가면 그를 보고 기뻐하며 모두 말하기를, ‘좋은 의원이 왔으니 우리의 여러 질병을 다스려야겠구나’ 하고 한마음으로 서로 믿고 즐거워하였다. 이 때에 수백 수천 이들이 모여 모두 함께 금강당보살이 있는 곳에 나아가 각기 보호를 바랐다. 그 때 금강당은 곧 독실한 믿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이 경전으로 여러 사람들을 축원하여 주고 이 경전 속의 신주(神呪)의 여러 구절을 취하여 여러 사람을 보호하고, 공덕으로써 그들을 위로하고 지키며 도왔다. 문수사리여, 그가 행한 신주의 구절이 무엇인가?” 하시며 주문을 말씀하셨다.
거짓을 떠나야 후환이 없고 율(律)로써 집을 삼아야 잘 건너가리.
참다운 것이 없고 처(處)도 없어 미혹을 떠나며 허공을 받드네.
황(은 환상과 같아 생겨나는 바도 없고 얻을 수도 없네.
좋은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불쌍히 여기며
일체에 낮추며 지름길을 구하여 합당하게 정진하면
고통이 없으리니, 이것이 신주(神呪)이다.
이 신주의 글귀는 중생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일 괴로운 병을 얻어서 중한 병에 이르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여러 질병들과 약간의 질병도모두 낫게 되며, 여러 하늘ㆍ용ㆍ귀신과 사람 아닌 것에게 홀림을 당한 이와 또 독충ㆍ구렁이ㆍ범ㆍ이리ㆍ모기ㆍ등에ㆍ거미ㆍ벌도 인자한 마음으로 이 경전을 생각하는 사람은 침노하지 못하며, 창병ㆍ종기ㆍ나병이나 혹은 수질도 다 낫게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이 때에 금강당보살은 이 경전을 써서 중생들을 위하여 여러 질병을 고쳐 주어 다 편안케 하였다. 문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때의 금강당보살은 다른 사람이겠는가. 그렇게 보지 말라. 왜냐 하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세상에서 이 경전을 받아 독실하게 믿고 좋아하여 지니고 외우며 읽어서 일체의 중생을 일깨워 교화하고 이익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문수여, 이 경전을 보료 약나무와 같이 보아야 한다.”
문수사리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보살이 이 신주 장구(章句)의 이치를 받들어서 지니고 외우고 읽으려면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이 신주 장구의 이치를 받아서 읽고 외우려면, 그 사람은 뜻을 세워 이 경전을 받들어 행하고, 고기를 먹지 말며, 향수와 기름을 그 몸에 바르지도 말고, 항상 인자한 마음으로 중생을 불쌍히 여기며, 보료 약나무처럼 온갖 것에 이익을 주고, 늘 일체지에 가까이 하고, 여러 신통과 넓은 지혜로 그 틈을 얻는 이가 괴롭히거나 해침이 없게 하여야 한다. 이 경을 외우려면 항상 청정하고 온화하여 그 마음에 더럽고 흐린 행이 없어야 하며, 이 경을 외울 적에는 땅을 깨끗이 소제하여 티끌이 없게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쁘고 즐겁게 하여야 한다.”
문수사리는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어떤 보살이 이 경을 읽을 때에는 탐애를 버리고 몸과 목숨도 아끼지 않으며 형상도 없는 것처럼 하여야 비로소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말한 바와 같아서 하나도 다름이 없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현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받아서 지니고 외우고 읽어서 무수한 중생을 이익되게 할 것이니, 이 경전은 이익되는 바가 한량없다.”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거룩한 세존의 분부를 받들어 부처님 말씀대로 널리 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현자 아난아, 이 경전을 받아 받들어 지니고 외워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부처님 일을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