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묘색왕인연경(佛說妙色王因緣經)

불설묘색왕인연경(佛說妙色王因緣經)

대장(大唐) 삼장법사(三藏法師) 의정(義淨) 한역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세존[薄伽梵]께서 실라벌성(室羅伐城: 사위성) 서다림급고독원(逝多林給孤獨園: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 때 세존께서 선정[定]에서 일어나신 뒤에 여러 4부 대중을 위하여 위없는 감로묘법(甘露妙法)을 연설하시었다. 그 때에 한량없는 백천(百千)의 대중이 앞뒤로 둘러싸고 모든 근(根)을 움직이지 아니한 채 법요(法要)를 들었다. 그 때 여러 필추(苾芻: 비구)들이 대중들의 몸과 마음이 적정하여 법을 은근히 듣고 있음을 이미 보고 모두 다 의심을 두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자비로서 의심 그물을 끊어 주시옵기를 원하옵니다. 여래·큰 스승[大師]·위없는 법왕[無上法王]이시여, 이제 이 좌중에서 법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무슨 까닭으로 은근히 몸과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묘법 듣기를 감로(甘露)를 마시듯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대 비구들이여, 내가 지난 옛적에 법을 구하기 위하여 공경한 마음이 은근하고 중하였다. 그대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내가 마땅히 그대들을 위하여 저 인연을 말하겠느니라.

지나간 옛적에 바라니사(婆羅痆斯: 바라나시) 큰 성 가운데 왕이 있었는데 이름이 묘색(妙色)이었다.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여 국토가 풍부하고 인민은 극히 성하였으며 모든 전투(戰鬪)·속임·거짓·원수와 도적이 없었으며, 또한 병·괴로움·재횡(災橫) 같은 일이 없었으며, 벼·사탕수수·소와 염소가 곳곳에가득 찼었고, 또한 기와 깨진 것과 거친 가시덤불도 없었으며, 백성[兆人]을 은혜로 기르기를 외아들 보듯 하였다.

그 왕은 어질고 착한 이를 공경하고 믿고 뜻으로 즐기며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견고한 원을 발하였다. 자비한 마음을 가지고 큰 법[大法]을 희망하였으며, 중생을 어여삐 여기고 여러 관리들을 사랑하였으며 인색함과 탐욕을 여의어 항상 큰 희사를 하였다.

왕의 부인은 이름이 묘용(妙容)인데, 얼굴이 단정하고 위의(威儀)가 점잖으며 여러 가지 덕이 원만하여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겨하였다. 그 왕에게 오직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이름이 단정(端定)이었다. 아들은 나이가 비록 어렸지만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우며 인자(仁慈)하므로 왕이 사랑하여 좌우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 뒤 다른 때에 묘색왕이 마음으로 수승한 법을 희망하여 모든 신하를 불러 말하였다.

‘내가 묘한 법을 몹시 바라노니 경등은 나를 위하여 찾아오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 때에 여러 대신들이 앞으로 나아가 왕께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시옵소서. 크게 깨달으신 세존[大覺世尊]께서 세상에 나오셔 세상을 흥하게 하여야 바야흐로 묘한 법이 있는 것이옵니다.’

왕이 신하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비록 부처님은 계시지 않지만 나를 위하여 시험 삼아 구해보시오.’

그 때에 왕은 곧 상자에다 묘한 금과 보배를 가득 채워서 기[幢] 위에 달고 북을 울리며 선전하여 널리 사방에 고하였다.

‘만일 나를 위하여 수승한 법을 베푸는 이가 있으면 내가 금상자로 그 은덕을 갚고 널리 음악을 베풀어 그를 드높여 찬탄[慶讚]하겠노라.’

이와 같이 조서하여 불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결국 한 사람도 법을 말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 때에 왕은 애타게 기다리다 근심을 품고 살아갔다.

이 때 제석께서 하계(下界)에서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하며 누가 수승한 인연으로 게으름이 없는지 두루 관찰하다가, 드디어 이 왕이 법을 위하여 근심하고 고뇌함을 보고 곧바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묘색왕이 오랫동안 수승한 법을 구하였는데, 내가 그 일이 헛된지 진실한지 시험해보는 것이 마땅하리라.’

드디어 곧 몸을 변화시켜 큰 야차[藥叉]가 되니 몸과 손·발이 이상(異常)하고 얼굴과 눈은 무서워할 만하였다. 대중 가운데로 와서 왕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수승한 법을 구한다 하는데, 내가 말할 수 있습니다.’

왕은 법이란 소리를 듣고 환희하고 용약하여 약차에게 말하였다.

‘밀적주(密跡主)는 묘한 법이 있는 것이니, 설해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제가 마땅히 정성껏 듣겠습니다.’

약차가 말하였다.

‘왕이 이제 법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하며 곧 바로 말하라고 하지만, 일이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굶주려서 속이 텅 비었는데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을 듣고서 곧 음식 맡은 이에게 명하여 갖고 있는 중에서 으뜸가는 음식을 속히 받들어 올리라고 하였다.

약차가 말하였다.

‘왕의 부엌에 있는 음식은 내가 먹는 것이 아니요. 오직 사람의 뜨거운 피와 고기, 나는 항상 이것을 먹지요.’

왕이 말하였다.

‘사람의 피와 고기를 어떻게 갑자기 구하겠습니까?’

약차가 말하였다.

‘왕이 사랑하는 아들을 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오랫동안 힘을 들여 수승한 법을 구하였지만, 이제 법음을 들으니 곧 가치 없는 것이다.’

이 때 단정이 아버지 곁에서 있다가 이 말을 듣고서 꿇어 앉아 왕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건대, 부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바를 마땅히 만족하게 하겠사오니, 제 몸을 가져다 밀적주에게 바쳐서 먹게하시면 됩니다..’

왕이 말하였다.

‘법을 구하는 것을 네가 보고 사랑하는 몸을 희사하는구나. 착하구나, 장부여! 네가 좋아하는 대로 따르리라.’

단정은 곧 몸을 야차에게 바쳐 올렸고, 야차가 받고 나서 왕과 대중 앞에서 그 몸을 찢어 살을 먹고 피를 마셨다. 왕이 비록 이를 보았으나 법을 사모하는 정이 깊어서 끝내 놀라고 두려워하는 일이 없었다.

이 때 밀적주가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아직 배가 부르지 않으니, 그대의 아내를 주시오.’

그 때에 묘용 부인이 옆에 있다가 이 말을 듣고 또한 그 아들과 똑같이 몸을 야차에게 바쳤다. 야차가 받고 나서 피와 고기를 먹고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그래도 내가 주리고 배가 텅 비어서 아직 충족치 못하오.’

왕이 곧 말하였다.

‘밀적주여, 외아들을 이미 보시 하였고 또한 아내를 거듭 먹고도 오히려 주리고 비었다고 하니, 뜻대로 취하는 것이 마땅하리다. 원하옵건대 나를 바칠지라도 물러설 마음이 없소.’

야차가 말하였다.

‘왕 자신을 내게 주어서 먹게 하는 것이 마땅하리다.’

왕이 말하였다.

‘좋소. 진실로 아끼지 않겠소. 그러나 내 몸이 죽으면 어떻게 법을 듣겠소이까? 이제 내가 먼저 그 묘한 법을 들어서 이미 받아 지니고서 곧바로 몸을 희사하겠소이다.’

이 때 야차가 왕과 약속하고서 한량없는 백천만억(百千萬億) 대중 가운데서 수승하고 묘한 가타([伽他: 게송)를 말하였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생겨나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생겨나나니
만일 사랑을 여의면
근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네.

왕이 이 수승하고 묘한 법을 이미 듣고 나자, 마음으로 경사스럽고 다행하게 여기고 기쁨이 한량없어서 밀적주에게 말하였다.

‘제가 이미 법을 들어 말씀대로 받들어 갖겠사오니, 이제 제 몸을 뜻대로 드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때에 천제석(天帝釋)은 왕이 법을 위하여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이 묘고(妙高)산과 같음을 보고 그가 반드시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할 줄 알고 야차의 모양을 버리고 천제(天帝)의 모양으로 돌아갔다.

믿음과 기쁨이 안에 충만하여 기쁜 얼굴로 앞으로 나오며, 한 손으로는 아들을 이끌고 한 손으로는 아내를 데리고 왕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도다. 이 착한 장부는 견고한 갑옷을 입어 번뇌의 군대를 깨뜨리고 어리석고 흐림[愚迷]을 제도하여 생사의 바다를 벗어났도다. 이 용맹을 보건대, 오래지 않아 위없는 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이룰 수 있으리다. 그대의 아내와 아들을 내가 이제 보내노라.’

그 때에 왕이 곧 천제께 아뢰었다.

‘착하고 착하십니다, 하늘의 주인인 교시가(憍尸迦)시여! 큰 자비를 내리고 선지식이 되어 제가 법을 즐기는 마음을 이미 가득 차게 하실 수 있었나이다.’

이 때 천제가 대중 가운데서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이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의 뜻이 어떠한가? 다른 생각을 내지 말라. 저 때 묘색왕의 몸이 곧 내 몸이고 단정이라는 아들은 라훌라(羅怙羅)이며 아내 묘용은 곧 야소다라(耶輸陀羅)이니라. 그대들은 알아야 마땅하느니라. 내가 지난 옛적에 법을 구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내·아들과 자기 몸을 희사하고서도 오히려 인색한 것이 없었는데, 하물며 다른 물건이겠는가.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제 있는 바의 일체 대중이 나를 따라 법을 듣고, 마음을 오로지 하여 듣고 받아도 피곤하고 싫어하는 일이 없는 것이니라. 또 내가 옛적에 법을 구하여 수고로움을 잊었으므로 이제 긴 밤을 대중을 위하여 법을 말하여도 또한 피곤하고 게으름이 없으니, 그대 비구들은 나한테 배워서 공경하고 존중하며 부지런히 수승한 법을 구하며, 이미 법을 들은 뒤에는 말과 같이 수행하여 방일(放逸)하지 않아야 마땅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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