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돈진타라소문여래삼매경(佛說惇眞陀羅所問如來三昧經) 03. 하권

불설돈진타라소문여래삼매경(佛說惇眞陀羅所問如來三昧經) 03. 하권

돈진타라(眞陀羅)의 아들은 모두 이 설법(說法)을 듣고 환희신인(歡喜信忍)을 얻었다. 그들은 각각 몸에 걸린 진귀한 보배를 풀고 부처님께 공양 올리면서 말했다.

“이제 저희들에게 법을 베풀어주셨으므로, 이 보배들을 부처님께 올려서 모든 법을 들려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이어 각각 부처님께 아뢰었다.

“너무도 신기합니다. 이 음악 소리가 이렇게 묻고 앉아 계신 화신보살께서 그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셨으니, 이 법회대중이 다 의심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저희들의 헤아릴 수 없는 번뇌의 어둠도 깨우쳐 밝혀 주셨습니다. 누가 베푸신 일이기에, 온갖 음악 소리가 어려운 점을 질문하고, 앉아 계신 화신[化生]보살이 다 낱낱이 밝혀서 풀어 주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 이 여래[怛薩阿竭]가 베푼 일이니라. 비록 내가 허공에서 소리를 내려고 할지라도 언제든지 소리를 낼 수 있으니, 더욱이 악기와 모든 나무들이겠는가. 그러므로 여래의 일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돈진타라의 아들은 모두 다 말했다.

“모든 사람들도 여래와 다르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자 돈진타라의 8만 4천 부인들도 각각 하늘 구슬을 가지고 부처님께 받들어 올렸다. 그 구슬들은 즉시 부처님의 머리 위에 흩어지더니 곧 8만 4천 교로장(交露帳 : 大臺)으로 변했다. 그 낱낱 교로장 안에는 다 하늘 비단이 깔린 보배 의자가 갖춰져 있었고, 그 의자마다 32상(相)과 80종호[諸種好]를 갖춘 부처님께서 앉아 계셨다. 8만 4천 부인은 이 변화를 보고 모두들 기뻐하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일으켰다.

이 부인들은 모두가 뛸 듯이 기뻐하면서 한 소리를 내어 여래를 찬탄하였다.

“스스로 청정하게 닦으시고, 다른 사람들도 청정하게 닦게 하시면서 다 번뇌를 제거하여 없애주셨으나 집착하지도 않으시고 물들지도 않으시니, 그 밝음은 너무도 훌륭하시어 그 눈은 마치 푸른 연꽃[優鉢華]처럼 맑습니다. 이제 달처럼 어둠을 밝히시는 분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을 뵙는 일보다 더한 기쁨이 없음은 부처님께서 모두를 위하여 그 죄업[罪]을 끊게 하시니,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고요한 곳[廬野]을 찾아 즐겨 닦으시면서 온갖 보배의 법을 쌓아 두셨다가, 진귀한 법장[法寶藏]을 열어 보이십니다. 이제 저희들은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해주시는 분께 귀의합니다.

비록 나고 죽음의 괴로운 바다를 넘어 피안(彼岸)에 이르셨을지라도 외도(外道)를 물리쳐 모든 사견(邪見)을 항복시키시고, 연꽃보다 더 청정하게 행하시어 공(空)의 도리로 이끌어 교화하시면서 바른 법으로 길을 가르치십니다. 이제 저희들은 모두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께 귀의합니다.

네 가지 사나운 흐름[四竇 : 四暴流]을 건너시고 네 가지 도리[四諦]로 사람들을 이끄시어 세상을 다니시면서 사람들의 안목을 열어주시려고 발바닥에 천 폭(幅)의 법륜상(法輪相)을 두셨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설법하시는 음성이 안온하고 훌륭하신 분께 귀의합니다.

그 누구보다 훌륭하신 몸매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니, 그 어떤 힘도 부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열 가지 힘을 갖추신 분께 귀의합니다.

욕망의 번뇌를 끊으셨으니 소득이 있어도 좋아하지 않으시고 소득이 없어도 근심하지 않으시면서, 세상의 눈 먼 이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제 저희 들은 등불처럼 어둠을 밝혀주시는 분께 귀의합니다.

이미 마음을 굴복시켜 열 가지 힘을 성취하시고 스스로 이 힘을 베푸시어 즐기시면서 몸도 이미 굴복시켜 고요히 해탈하셨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더없이 고요한 경지[無何]에 머무신 분께 귀의합니다.

가장 훌륭하신 상호(相好)를 지니시고 일체의 윗자리에 계시면서 일체중생을 위하여 시현(示現)하시니, 그 근본을 얻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 법인(法忍)과 대자(大慈)를 베푸시면서 스스로 즐기십니다. 이제 저희들은 모두가 존경하는 분께 귀의합니다.

선장(船長)이 건너지 못할 곳이 없는 것처럼, 훌륭하신 부처님께서는 삼독(三毒)을 불사르고 온갖 어둠을 무너뜨리시니, 어두운 어리석음으로 허덕이는 일체중생은 모두 다 그 은혜를 입고 공양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모든 악이 다 사라져 고요하신 분께 귀의합니다.

빛나는 7척(尺)의 몸은 황금빛처럼 찬란하시고, 그 소리는 매우 훌륭하시고 그 울림[響]은 무척 맑으시니, 모든 사람은 높이 받들어 존경합니다. 저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시는 분께 귀의합니다.

교만[貢高]과 온갖 어둠을 다 이미 제거하시고, 일체중생을 제도하시는 가운데, 스스로 도(道)를 그대로 지키시면서 대중을 이끌어 주시니, 말씀마다 다 진실하여 차별이 없으십니다. 이제 저희들은 어둠을 밝혀주시는 분께 귀의합니다.

너무나 위대하신 분으로 받들어 모시기 때문에 이름[名字]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으시고, 설하신 법은 말씀그대로 진실하시니, 그 소문(所聞)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법으로 큰 기쁨을 주시는 분께 귀의합니다.

이미 그 진리의 자리에 머무시면서 스스로 교만한 마음을 항복시키시고, 일체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시니, 지극히 훌륭하신 분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사람들을 욕망의 번뇌에서 해탈시켜 주시는 분께 귀의합니다.

그 울림이 범천(梵天)까지 들리도록 매우 곱고 맑은 음성으로 설법하시면서 중생의 죄와 복을 다 아시고 사람들의 번뇌를 없애 주시며 5음(陰)을 환하 게 알게 하시니, 쌓아 이루신 귀중한 공덕은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버리신 분께 귀의합니다.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중생을 보호하시려는 뜻을 세우시고 상대를 환하게 아시면서 이미 도에 머무셨으니 하시는 일이 다 바르시고, 가르치시는 일이 다 진실하시어 해탈시키지 못할 경계가 없으십니다. 이제 저희들은 알맞은 때를 아시고 교화하시는 분께 귀의합니다.

사람들에게 도를 보여 주시는 덕(德)이 부드럽고 훌륭하시어 그 말씀을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없으시고, 아무리 많은 마군(魔軍)일지라도 항복시키지 못하는 일이 없으시니, 일체는 다 스스로 온갖 교만을 꾸짖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온갖 악을 물리치신 분께 귀의합니다.

누구라도 찾아오면 근기에 맞춰 가르쳐 주시지 않는 일이 없으시니, 모두들 와서 존경하며 받들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비록 부처님께서는 미묘한 경지를 얻으셔서 만나기 어렵사오나 누가 찾아와서 물을지라도 기쁘게 설하지 않음이 없으십니다. 이제 저희들은 그 덕을 따를 자 없는 분께 귀의합니다.

그 뜻의 힘으로 아시지 못할 일이 없으시므로 좋은 일이든지 추한 일이든지 그 마음을 알맞게 맞춰서 평등하게 대하시니, 이미 견고하게 머무신 자리는 어느 누구도 흔들 수 없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모든 힘을 다 갖추신 분께 귀의합니다.

그 손가락 발가락 사이의 망사(網紗)처럼 부드러운 막과 그 발바닥의 법륜상(法輪相)으로 생사를 해탈시키시면서 언제나 일체를 눌러 건지십니다. 이제 저희들은 하늘처럼 두루 다 덮는 덕(德)을 갖추신 분께 귀의합니다.”

돈진타라의 부인들은 이렇게 부처님을 찬탄하고 나서 각각 또 여쭈었다.

“비록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일으킬지라도, 여자의 몸으로는 스스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을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한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일으켜서 헤아릴 수 없는공덕을 짓고 그 공덕을 잊지 않는 일이니, 이것이 한 가지 일이니라.

또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두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말대로 행하여 모든 하늘을 섬기지 않고 오직 부처님께 귀의하는 일이며, 둘째는 바르게 닦으면서 사도(邪道)를 믿지 않은 일이니, 이것이 두 가지 일이니라.

또 세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세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의 셋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몸을 청정하게 지키는 일이요, 둘째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의 넷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입을 청정하게 지키는 일이며, 셋째는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의 셋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뜻을 청정하게 지키는 일이니, 이것이 세 가지 일이니라.

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보시하면서 아첨하거나 사특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계율을 지키면서 아첨하거나 사특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항상 스스로 보호하면서 아첨하거나 사특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그 법을 들으면서 아첨하거나 사특하지 않는 일이니, 이것이 네 가지 일이니라.

또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다섯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법을 좋아하는 일이요, 둘째는 법대로 행하는 일이며, 셋째는 법을 듣고 바르게 머무는 일이요, 넷째는 여자의 몸을 좋아하지 않는 일이며, 다섯째는 항상 남자되기를 바라는 일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일이니라.

또 여섯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여섯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게으르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닦은 행을 잊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일이요, 넷째는 순수한 마음을 지녀서 아첨하거나 사특하지 않는 일이며, 다섯째는 방자한 태도를 행하지 않는 일이요, 여섯째는 닦는 법에 정성을 다하는 일이니, 이것이 여섯 가지 일이니라.

또 일곱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일곱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법신(法身)을 얻으려는 일이요, 둘째는 언제나 법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지혜를 얻으려는 일이며, 셋째는 항상 비구승(比丘僧)을 생각하면서 내세에 승려가 되기를 원하는 일이요, 넷째는 언제나 계율을 생각하면서 깨끗하게 닦기를 원하는 일이며, 다섯째는 항상 보시[施與]를 생각하면서 모든 번뇌를 없애려는 일이요, 여섯째는 언제나 천상(天上)을 생각하면서 보살의 마음과 같기를 바라는 일이며, 일곱째는 항상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생사(生死)를 벗어나게 하려는 일이니, 이것이 일곱 가지 일이니라.

또 여덟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여덟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음식을 탐내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주연(酒宴)을 스스로 즐기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꽃으로 장식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향료 바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일이며, 다섯째는 여러 가지 색깔을 어울려 단장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일이요, 여섯째는 환락가(歡樂街)에 가지 않는 일이며, 일곱째는 악기를 연주하며 즐기지 않는 일이요, 여덟째는 노래하며 춤추지 않는 일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 일이니라.

또 아홉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아홉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끊어야 할 대상이 없는 일이요, 둘째는 집착할 대상이 없는 일이며, 셋째는 나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사람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는 일이며, 다섯째는 오래 살겠다[壽命]고 생각하지 않는 일이요, 여섯째는 생명 있는 존재[命]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이며, 일곱째는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이요, 여덟째는 생기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일이며, 아홉째는 인연의 법칙을 믿는 일이니, 이것이 아홉 가지 일이니라.

또 열 가지 일이 있으니,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얻어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는 일이니라.

열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모두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요, 둘째는 이로운 일체 재물을 탐내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다른 남자를 생각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죽을지라도 대중을 속이지 않는 일이며, 다섯째는 두 말로 이간질하여 남이 매도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일이요, 여섯째는 거짓말하지 않는 일이며, 일곱째는 노래와 악기를 다루는 재주가 있을지라도 즐기는 마음을 갖지 않는 일이요, 여덟째는 노래와 악기에 뜻을 일으키지 않는 일이며, 아홉째는 즐기지 못할지라도 한을 품지 않고 바르게 머무는 일이요, 열째는 삿된 죄와 복의 일을 찾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일이니, 이것이 열 가지 일이니라.

이 일들을 닦으면 여자는 반드시 남자의 몸을 얻어서 보다 빨리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으리라.

여인들이여, 보시의 마음과 법(法)의 마음을 지니고 온갖 색상[諸色]을 물거품처럼 보라. 그러면 스스로 색상[色]을 가지고 교만하지 않으리라.

편안한 느낌과 괴로운 느낌[痛 : 受]도 비속의 거품처럼 보면서, 편안할지라도 좋아하지 말고 고통을 받을지라도 성내지 말라. 그러면 안온해도 기뻐하지 않고 고통을 당해도 근심하지 않으리라.

생각[思想 : 想]도 아지랑이[野馬]처럼 보고 알라. 그러면 그 마음에 남자도 있지 않고 여자도 있지 않으리라.

생사(生死 : 行)도 속 빈 파초(芭蕉)처럼 생각하면서 생사(生死)에는 생사라고 할 만한 근거가 없음을 알라. 그러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리라.

그 식(識)도 환영(幻影)과 같고 그 마음과 뜻도 환영과 다르지 않다고 보라. 그러면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몸은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요소로 이뤄졌으니, 일체 존재는 마치 풀과 흙과 나무의 세 가지 재료[三事]를 가지고 지은 집과 같다고 알라. 사람은 우리도 없고 나도 없고 목숨[命]도 없으나 짓는 일이 하는 일과 같이 한없이 걸리니, 여기에 본래 눈은 자연이면서 보는 작용이 있느니라. 그러나 눈은 물거품처럼 단지 고기 덩어리를 의지하고 있을 뿐 속이 비었으므로, 본래 공하여 청정하느니라. 귀 코 입 몸 뜻도 마찬가지니라.

그 육신(肉身)도 그림자와 같다고 보고, 그 소리도 메아리와 같다고 보며, 그 마음도 환영(幻影)과 같다고 알라. 이렇게 아는 자는 보다 빨리 여자의 몸을 벗어나서 남자의 몸을 얻고 스스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느니라.”

이 때 돈진타라의 부인은 모두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머리를 부처님의 발까지 조아려 예를 올렸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입으로 광명을 놓으셨다. 셀 수 없는 온갖 색깔이 어우러진 그 광명은 시방을 두루 비추고 나서 다시 돌아오더니 부처님의 몸을 세 번 돌고 정수리로 들어갔다.

아난(阿難)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르고 길게 꿇어앉아 찬탄하면서 여쭈었다.

“달처럼 밝으신 얼굴빛이 불 속의 황금처럼 찬란하시니 그지없이 훌륭하십니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왜 웃으셨는지 묻고자 하옵니다.

총지법문(摠持法門)의 위대한 지혜로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를 보이시니, 수행의 자리[因地]에 있는 이들은 받들어 섬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이 법회 가운데 어떤 점이 기뻐서 웃으셨는지 묻고자 하옵니다.

법으로 베푸시는 일을 스스로 좋아하시면서 청정한 계법과 인욕의 힘도 이미 갖추셨습니다. 누구의 본보기를 보이시려고 웃으셨는지 묻고자 하옵니다.

정진(精進)을 근본으로 힘을 성취하시고, 선정의 해탈[禪惟務]을 스스로 즐기시니, 그 출세간의 지혜는 허공[天]처럼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누구의 본보기를 보이시려고 웃으셨는지 묻고자 하옵니다.

언제나 사랑[慈]에 가엾게 여김[哀 : 悲]을 더하시어 중생을 기쁨으로 맞이하시고[護 : 喜] 고루 알맞도록 평등하게 대하시면서[等 : 捨] 특별한 인연을 가리지 않으십니다. 누구의 본보기를 보이시려고 웃으셨는지 묻고자 하옵니다.

이미 3독(毒)을 끊으시고 3안(眼)을 지니셨으니, 말씀하신 법은 감로수(甘露水)와 같습니다. 누구의 본보기를 심어주시려고 웃으셨는지 묻고자 하옵니다.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키시고 모든 외도(外道)도 물리치시면서 네 가지 도리[四諦]로 교화하셨습니다. 누구의 본보기를 성취시키시려고 웃으셨는지 묻고자 하옵니다.

열 가지 힘을 훌륭하게 갖추시고 온갖 의심에 결단하셨으니,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누구의 본보기를 성취시키시려고 웃으셨는지 묻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돈진타라의 모든 부인과 그 권속이 나에게 예배하는 모습을 보았으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인이 기뻐하면서 나에게 예배하고 스스로 발심(發心)하여 공덕을 쌓았으니, 이 공덕으로 수명이 다한 뒤에는 마땅히 여자의 몸을 벗어나서 남자의 몸을 받고 도솔천상(兜率天上)에 태어나리라. 여기서 미륵보살(彌勒菩薩)을 만나 서로 보살의 일을 강론하다가 미륵보살이 성불(成佛)하면 모두 미륵불을 공양할 뿐 아니라, 현겁(賢劫 : 波羅劫) 동안에 성불(成佛)한 분들도 찾아가서 공양하게 되리라. 이렇게 현겁 동안에 점차 보살행(菩薩行)을 성취한 부인들은 돈진타라가 성불하면, 모두 그 부처의 세계에 태어나서 보살도(菩薩道)를 행하게 되리라.”

돈진타라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저희들의 닦은 공덕이 만일 부처님처럼 생사를 벗어나고도 단지 천상과 인간 세상에 살면서 불도(佛道)에 머물려고 한다면, 이제 이미 법장(法藏)을 갖춰서 출세간의 지혜에 머물러야 하고, 이미 공덕을 닦아서 진실한 도[諦道]를 보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선교방편(善巧方便)을 설하시어 보살심(菩薩心)을 이루는 온갖 법을 깨우쳐 결단해 주셨습니다. 들려 주신 말씀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없이 기쁩니다.”

이 법을 들었을 때 법회(法會) 대중과 모든 보살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돈진타라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 성불하면 이름은 무엇이라 하며, 그 세계와 보살들은 무엇을 소유하는가?’

부처님께서 이들의 생각을 다 아시고 곧바로 아난(阿難)을 불러 말씀해 주셨다.

“돈진타라왕은 앞으로 7만 4천8백 겁을 지낸 뒤 성불(成佛)하여 이름을 군나라야파피사(群那羅耶波披沙)[한(漢)나라 말로는 덕왕명(德王明)이라고 함]라 하고, 그 세계의 이름은 전타유마라(栴陀惟滅)[한나라 말로는 일월명(日月明)이라고 함]라고 하며, 그 겁(劫)의 이름은 나타나삼피(羅陀那三披)[한나라 말로는 보등유(寶等有)라고 함]라고 하리라. 그 평평한 땅은 다 하얀 유리[白琉璃]로서, 해처럼 밝고 티끌 한 점 없이 청정하니라. 허공에는 온갖 보배로 장엄한 교로장(交露帳)이 있고, 그 교로장 안에는 보살들이 앉아 있으리라. 모든 보살은 다니는 곳마다 각각 부처님을 뵙는다. 부처님을 뵙고 나의 소견이 이렇다고 생각만 해도 부처님들은 모든 보살의 의심을 교화해 주신다. 부처님을 뵐 적마다 이렇게 그 의심을 깨우쳐 풀어 주시니 보살들은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또 이 때의 세상에는 성곽 언덕 도회지 왕이 다스리는 국토가 없다. 모든 사람은 교로장(交露帳) 안에서 살아가면서 여자의 모습을 보는 일도 없고 여자란 말을 듣는 일도 없으리라. 또 여기에 태어나는 이들은 다 연꽃 사자의 자리에 화생(化生)하는데, 많은 보살들은 선정(禪定)을 즐기면서 법의 기쁨을 먹고 사느니라. 또 외도[異道]가 없으니 외도란 말은 일체 듣는 일이 없으며, 단지 대승을 행하는 수많은 보살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부처를 믿지 않는 사도(邪道)도 없고, 마군(魔軍)의 무리도 없으며, 또한 마의 백성도 없고, 원하여 찾는 일도 없으며, 괴로운 일도 없느니라. 저들은 부처님의 법장(法藏)으로 공(空)의 법인(法印)을 받으므로, 모든 하늘과 사람이란 말을 들을지라도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니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니라.

그 부처님은 10소겁(小劫)의 수명(壽命)을 누리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로 승보(僧寶)를 삼으니, 이 보살들은 다 반드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해탈(解脫 : 惟務)을 얻느니라. 이 부처님이 열반에 들 무렵에 이르면, 반드시 미리 보살에게 수기(授記)를 내린다. 그 부처님은 구다유수(漚多惟授)라는 보살에게 ‘너는 이 다음에 성불하여 마하유수(摩訶惟授)[한나라 말로는 대엄(大嚴)이라고 함]라고 이름하리라’는 수기를 내리게 되리라. 이 나타나삼피겁 동안에는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가 없어지지 않으므로 이 겁(劫)의 이름을 나타나삼피(羅陀那三披劫 : 寶等有劫)라고 하느니라.”

돈진타라왕은 부처님께 수기를 받자 뛸 듯이 기뻐하였다. 이에 모든 법회(法會) 대중을 기쁘게 하려고 공중으로 140길을 날아올랐다.

돈진타라왕은 자신이 쌓은 공덕에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들어서 찬탄하였다.

“모든 법은 본래 청정하여 허공처럼 자연 그대로 진실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자연 그대로 진실하므로 더러움이 없습니다. 이렇게 아는 사람을 부처님의 훌륭한 제자라고 합니다.[1]
꿈속의 모양은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붙들 수 없는 허공처럼 가질 수 없습니다. 모든 법을 꿈과 같다고 안다면, 나고 죽음을 괴롭게 여기지 않습니다.[2]
환술사(幻術師)가 나타낸 모양에서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다섯 가지 쌓임[五陰]도 환술에서 나타나는 모양과 다르지 않습니다.[3]
그 색의 모양[色]은 본래 물보라와 같고, 그 받는 느낌[痛痒 : 受]도 물거품처럼 자연입니다. 생각[想 : 思想]도 아지랑이처럼 얻을 수 없고 생사(生死 : 行)도 속 빈 파초처럼 얻을 수 없습니다.[4]
마음과 뜻으로 아는 일[識]도 단지 이름[字]만 있을 뿐이므로, 부처님께서는 ‘환상(幻像)과 같다’고 하셨으니, 5음(陰)이 본래 허공처럼 텅 빈 줄 알면 생사에서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5]
4대(大)를 그에 맞도록 칭한다면 독(毒)과 다르지 않으므로, 6쇠(衰: 六入)도 텅 빈 들[空野]과 같습니다. 이렇게 법을 알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습니다.[6]
보시로 자신을 굴복시키면 편안하고, 그 몸을 깨끗이 하면 바로 지계(持戒)이며, 여기에 생각이 없어지면 인욕이고, 자제하여 그대로 고요하면 바로 정진입니다.[7]
닦는 일이 변함이 없으면 선정(禪定)이요, 인연의 대상에 걸림 없이 알고 행하면 바로 출세간의 지혜이니, 이들을 지키고 배우면 저 언덕에 이릅니다[波羅蜜].[8]
나와 남이 없는 행이 평등한 사랑[慈]이요, 청정한 행이 가엾게 여김[哀 : 悲]이며, 고요한 자체가 남과 함께하는 기쁨[護 : 喜]과 평등하게 맞이하는 행[等 : 捨]이니, 이렇게 행하면 범천(梵天)에 오릅니다.[9]
네 가지 일[布施 愛語 利行 同事]을 조화롭게 베풀면서 부처님의 법인[佛忍]을 받고 성내거나 탐내는 일이 없으면, 이미 초월하여 온갖 존재에 걸리지 않습니다.[10]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의 길이도 없고 목숨도 없으며, 6쇠(衰: 六塵)도 텅 비어 다 고요한 경지입니다. 이렇게 아는 사람을 바로 보살이라고 합니다.[11]
보살은 원하거나 바라는 일이 없으므로 사람의 존재가 있고 없음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의 존재가 있고 없음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 마음에 둘이 없기 때문에 집착하는 일이 없습니다.[12]
법은 존재하지도 않고 의지할 곳도 없으며, 가도 간 곳이 없고 와도 온 곳이 없으면서 법신(法身)에 머물러 걸림이 없으니, 진리에서 오심[怛薩]은 깨치신 자리와 평등합니다.[13]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자리가 법의 인연[法緣]을 따라 인연하는 일들이 곧바로 존재하지만 번개가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14]
생사(生死)를 따라 행(行)이 있을지라도 그 마음을 볼 수 없음은, 바람 같은 마음을 붙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본래 청정하니, 만일 본래 청정한 마음을 안다면 생사에 물들지 않습니다.[15]
담과 벽과 경계의 칸막이가 흙과 풀과 나무로 만들어진 것처럼, 몸 자체에 아는 작용이 없음은 본래 무심한 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몸에서 더 이상 기대할 일이 없습니다.[16]
소리는 붙잡을 수 없는 바람과 같으니 마치 산 속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메아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만일 이 소리도 역시 무심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메아리에도 바라는 생각을 내지 않습니다.[17]
저 허공은 떨어지는 일도 없고 머무는 일도 없고 있는 자리도 없습니다. 모든 법이 다 허공처럼 머무는 일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다고 안다면, 이렇게 아는 이를 평등하게 머물렀다고 합니다.[18]
큰불이 일어날지라도 허공을 태울 수 없습니다. 모든 법이 청정한 상태가 허공과 같다고 아는 사람이 다른 세계에로 가서 큰불을 만나 그 불 속에 있을지라도, 그 불은 그를 해칠 수 없습니다.[19]
이 법을 알면 수미산(須彌山)과 수미산의 주위를 두르고 있는 온갖 산들의 장애를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는 이는 온갖 세계를 두루 다닐지라도 걸리는 일이 없습니다.[20]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요소는 다 평등하여 허공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법을 아는 이는 헤아릴 수 없는 세계[億億刹土]를 다 다닐지라도 걸리지 않습니다.[21]
욕계 색계 무색계[三界]의 온갖 소리가 위와 중간과 아래로 구별되어 백억 겁(百億劫) 동안 소리를 내면서 그침이 없이 이어옴은 본래 자연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22]
부처님께서 몸[色]과 마음이 평등하시어 똑같이 일치하시고 미묘하심은 청정한 경지에 드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부처님께서도 몸과 마음이 평등하시어 똑같이 일치하십니다.[23]
오래도록 보살행(菩薩行)을 닦으셔서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합하여 쌓으시고, 이미 훌륭한 마음의 공덕과 모든 법이 다 평등함을 아셨으므로, 뒤에 그 수기를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24]
모든 보살은 자신의 경계가 청정한 법신(法身)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매우 청정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경지를 아는 보살은 뒤에 반드시 수기를 받습니다.[25]
색(色)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도 생각하지 않고, 수(受 : 痛痒) 상(想 : 思想) 행(行 : 生死) 식(識)도 생각하지 않아야 수기를 받습니다. 이 법의 수기[受決]는 5음과 4대로 받는 수기가 아닙니다.[26]
그러므로 공(空)의 경지는 다 남김없이 평등하여 일치합니다. 이 공의 경지를 아는 이를 생사가 없는 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고 하니, 뒤에 반드시 수기를 받습니다.[27]
없어지는 경계도 스스로 알 수 없고 없어지지 않는 경계도 스스로 알 수 없으니, 없애고 또 없애어 계속 없애면서 모든 법인(法忍)을 얻어야만 뒤에 수기를 받습니다.[28]
생각이 없으면 바른 도와 같고, 생각이 있으면 사도(邪道)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아야 삼세(三世)를 뛰어넘습니다. 이 경지를 아는 이는 반드시 수기를 받습니다.[29]
스스로 나도 자연이요, 모든 법도 다 자연이며, 무아(無我)도 자연임을 알아야 합니다. 공(空)이기 때문에 자연입니다. 공은 자연으로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3익(益 : 法, 無我, 空)을 안다면 마음은 텅 비어 평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연이라고 합니다.[30]
수기 받는 이는 반드시 수기 내림을 알거나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수기 내림을 알지라도 마음도 내지 않고 뜻도 일으키지 않는 가운데 수기를 받아야만, ‘수기 받음’이라고 합니다.[31]”

이어 돈진타라는 법회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다 땅에 있고 나는 허공에 있습니다. 비록 땅에 있을지라도 마음이 허공처럼 평등하여 치우치지 않아야만, 삼세(三世)에 두루 집착하는 일이 없습니다.[32]”

돈진타라는 이렇게 찬탄하고 허공으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을 위하여 세상에 계시면서 법을 남김없이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서원(誓願)을 세우고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無央數阿僧祗劫] 동안 보살도(菩薩道)를 닦아왔습니다. 이제 그 공덕을 잃지 않았으므 로 이제 부처님께서 설해 주신 법을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법회(法會)의 모든 보살은 각각 생각하였다.

‘본래 돈진타라는 과거 어떤 부처님에게 발심하였을까?’

부처님은 모든 보살의 생각을 아시고 그 의심을 풀어주시기 위해 제무리(提無離)보살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헤아릴 수 없는 먼 과거에 부처님이 계셨느니라. 이 부처님의 이름은 나타나지두(羅陀那頭)[한나라 말로는 보영(寶英)이라고 함]요, 그 세계의 이름은 수가(首呵)[한나라 말로는 정모(淨貌)라고 함]이며, 그 겁(劫)의 이름은 파라림(波羅林)[한나라 말로는 청정모(淸淨貌)라고 함]이다.

이 여래[怛薩阿竭]께서 거느린 12억 보살은 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법인(法忍)을 얻고 물러섬이 없는 경지[阿惟越致]에 들었으며, 그 부처님의 수명(壽命)은 60억 세(歲)였다. 또 그 세계는 장엄(莊嚴)되어 마련되지 않음이 없었고, 그 땅은 다 유리(琉璃)로서 곡식을 심지 않아도 배고프거나 갈증이 나면 맛있고 좋은 음식들이 다 그들 앞에 차려졌다. 또 그 곳에는 다른 도는 없고 모두 다 대승[摩訶衍]뿐이었다.

이 시기에 니미타라(尼彌陀羅)라는 전륜성왕(轉輪聖王 : 遮迦越羅)이 사방을 다스렸다. 이 왕은 부처님과 60억 보살을 공양하여 천억만 세를 지내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닦았다. 그리고 8만 4천 부인과 천 명의 아들과 8만 4천 관속(官屬)들도 왕과 함께 발심하여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서 억만 세에 이르렀다.

그 뒤 화타파라림(和陀波羅林)이라는 태자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니미타라(尼彌陀羅)는 나라의 정사를 버리고 사문(沙門)이 되었다. 왕위에 오른 태자는 부왕(父王)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다스리면서 그 부처님과 60억 보살을 공양하며 천억만 세를 지내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닦았다. 뒤에 그 화타파라림왕(和陀波羅林王)도 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라의 정사를 떠나서 사문이 되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대를 이어가면서 전대(前代)의 법을 따라 그 부처님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받들어 모셨다. 그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최후의 왕은 국법[制]으로 불법(佛法)을 보호 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제무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그 때의 전륜성왕(轉輪聖王) 니미타라(尼彌陀羅)가 누구인지 아느냐? 바로 지금의 돈진타라이니라.”

제무리가 말하였다.

“부처님의 지혜는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토록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일을 다 아시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말대로 여래의 지혜는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사람의 마음은 과거에 어떻게 행해 왔는지 미래에 어떻게 행할지 현재는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닦는 근거[所因]가 있는지 닦는 근거가 없는지, 공덕이 있는지 공덕이 없는지를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怛薩阿竭]의 지혜는 걸림이 없다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걸림이 없는 지혜를 설하시자 8만 4천 사람이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

돈진타라는 중궁전의 권속들과 함께 7일 동안 부처님께 올리는 음식공양이 끝나자, 소유한 국토를 다 부처님께 바치면서 말했다.

“이 국토를 다 여래께서 소유하시고 때때로 높으신 덕을 낮추시어 이곳에 오셔서 일체를 가엾게 여겨 설법하여 주옵소서.”

이 때 유마라열(遺滅涅)이란 돈진타라의 태자가 마니보주(摩尼寶珠)의 교로(交露)를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면서 아뢰었다.

“지금 저희 돈진타라들은 음악을 지나치게 애착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법의 가르침을 내리시어 음악의 애착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부터 너희들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하여, 너희들이 음악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예순네 가지 법의 소리로 듣고 그 법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하리라.

예순네 가지 법의 소리란 무엇이겠느냐?

무상법으로 들리는 소리[但聞無常聲] 괴로운 법의 소리[苦聲] 공의 소리[空聲] 무아의 소리[無我聲] 적멸의 소리[寂聲] 청정의 소리[淸淨聲] 생사가 없는 소리[無生死聲] 본 바탕이 청정한 소리[本淨聲] 무생법인의 소리[無所從生聲] 본바탕 그대로의 소리[如其本聲] 근본 진리의 소리[本際聲] 본래 아무것도 없는 소리[本無聲] 법신의 소리[法身聲] 여래의 소리[怛薩阿竭聲] 인간의 존재가 없는 소리[無人聲] 수명의 길이가 없는 소리[無壽聲] 목숨 자체가 없는 소리[無命聲] 오는 일이 없는 소리[無來聲] 미래가 없는 소리[無當來聲] 과거가 없는 소리[無過去聲] 현재가 없는 소리[無現在聲] 처소가 없는 소리[無處所聲] 소득이 없는 소리[無所得聲] 더없이 훌륭하다는 소리[無所上聲] 보시의 소리[布施聲] 청정한 계법의 소리[淨戒聲] 인욕의 소리[忍辱聲] 정진의 소리[精進聲] 선정의 소리[一心聲] 지혜의 소리[智慧聲] 대자의 소리[慈聲] 대비의 소리[哀(悲)聲] 대희의 소리[喜(護)聲] 대사의 소리[等(捨)聲] 부처님의 소리[佛聲] 법의 소리[法聲] 비구승의 소리[僧聲] 보살행을 잃지 않는 소리[不忘菩薩聲] 네 가지의 바른 마음에 머무는 소리[意止聲] 네 가지의 바른 마음으로 번뇌를 끊는 소리[意斷聲] 네 가지의 신통을 갖춘 소리[神足聲] 다섯 가지의 뛰어난 작용의 소리[根聲] 다섯 가지 힘의 소리[力聲] 일곱 가지로 깨달아 아는 마음의 소리[覺意聲] 여덟 가지의 바른 도로 들어가는 소리[道入聲] 선정의 소리[響聲] 지혜의 소리[觀聲] 선교방편의 소리[漚和拘舍羅聲] 네 가지 동사섭으로 보시하는 소리[四事雜布施聲]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소리[敎一切聲] 법을 지키는 소리[護法聲] 마군을 항복시키는 소리[降伏魔聲] 환술처럼 여기는 소리[幻聲] 꿈에서 보는 모양과 같다는 소리[夢所見聲] 해처럼 밝다는 소리[若日明聲] 허망함이 메아리와 같다는 소리[若響聲] 물 속의 그림자와 같다는 소리[若水中影聲] 법신은 무너뜨릴 수 없다는 소리[不壞法身聲] 여래의 열 가지 힘의 소리[十種力聲] 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 소리[四無所畏聲] 열여덟 가지의 누구도 함께하지 못할 법의 소리[十八法不共聲] 더없이 바르고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의 소리[阿耨多羅三耶三菩提聲] 물러남이 없는 소리[阿惟越致聲] 국토를 장엄하는 소리[莊嚴國土聲]가 예순네 가지 법의 소리니라. 온갖 음악의 소리는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에 따라 단지 법의 소리로 들릴 뿐이니라. 이렇게 법의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면 곧 불도(佛道)를 돕는 서른일곱 가지의 법을 얻으리라.”

이 때 법회대중은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모두들 머리를 땅에 대고 예를 올리면서 각각 말했다.

“보살들이 매우 뛰어나서 이렇게 법에 머물면 그들은 다 부처님의 보호를 받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이 말한 바와 같이 보살들이 이렇게 법에 머문다면 부처님들께서는 그들을 다 보호하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을 보호하는 일이 일체중생을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그 이유는 일체중생을 건지려고 발심한 보살은 큰 서원[僧那]을 세우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보호하면서 생사를 해탈시켜 열반에 이르도록 하기 때문이니라.”

이어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보살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모든 사람을 보호한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발우와 침구[震越]와 의복을 얻어서 보살에게 베푼다면, 모든 사람에 베푼 것이니라. 그 까닭은 보살이 숨을 쉬면서 살아가려면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이를 근거로 만족하게 살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살들은 숨을 쉬는 사이에도 언제나 중생에게 넉넉한 이익을 주려고 생각하느니라.”

모든 욕계천자(欲界天子)와 온갖 색계천자(色界天子)와 청정천자(淸淨天子)와 긴나라(緊那羅 : 眞羅)와 건달바(乾闥婆 : 揵陀羅)와 마후라가(滅伽 : 摩休勒) 등 법회 대중은 권장하고 도와 주신 부처님의 말씀을 찬탄하면서 여러 가지 꽃을 가지고 부처님께 뿌렸다.

돈진타라는 혼자 생각하였다.

‘모든 비구와 보살은 부처님을 모시고 본처소로 되돌아가시리라.’

이렇게 생각한 돈진타라는 신통으로 교로거(交露車)를 만들었는데 높이와 너비는 각각 3백 리에 달했다. 온통 여러 가지 보배로 짜여진 교로거는 헤아릴 수 없는 보배로 온갖 나무를 이루었다.

여래[怛薩阿竭]의 사자좌(師子座)는 그 높이가 4길 9자로서 온갖 색의 하늘 비단이 깔려 있었다. 보살들과 비구들이 앉을 모든 의자에는 각각 피륙이 깔려 있으며, 모든 제석(帝釋)과 범천(梵天)과 사천왕(四天王)의 좌석은 하늘의 좌석과 다르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돈진타라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여기에 타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와 보살과 함께 다 돈진타라의 수레에 타셨다.

이 때 돈진타라는 신통으로 땅에서 140길의 허공에 그 수레를 띄었다. 8천 천자(天子)와 모든 긴나라[眞羅]와 건달바[揵陀羅]는 다 함께 뒤를 따랐다. 돈진타라는 금줄을 가지고 권속들과 함께 교로거를 끌어당겨 알맞게 조종하면서 길을 떠났으며, 부처님께서는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다 비추셨다.

왕사성(王舍城)의 아사세왕(阿闍世王)과 모든 신하와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와 우바새(優婆塞)와 우바니(優婆尼)들은 광명을 보자, 부처님께서 곧 오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모두 비단 일산과 비단기와 꽃과 향 등을 갖추고 왕사성[羅閱城]을 나와서 부처님의 행렬을 맞이하기 위하여 떠났다.

돈진타라의 8만 4천 악사(樂師)들은 거문고와 비파로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소리는 먼저 영취산에 들려왔다. 돈진타라는 아들과 권속들과 함께 수레를 끌어 부처님을 영취산[耆闍崛山]으로 모셨다. 부처님께서는 수레에서 내리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모든 비구와 보살도 부처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사세왕(阿闍世王)이 거느린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니들은 낱낱이 다 뛰어난 사람으로서, 부왕(父王)을 내쳤을 때 아사세에게 귀속(歸屬)한 이들이다. 모두들 준비해온 비단 일산과 꽃과 향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예를 올리면서 각각 여래[怛薩阿竭]께 문안을 드렸다.

제무리(提無離)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돈진타라(眞陀羅)와 모든 권속이 수레로 부처님을 여기까지 전송(傳送)한 공덕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돈진타라와 그 권속 가운데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을 일으킨 이는 이 공덕으로 다 마땅히 5신통(神通)을 얻으리라. 나아가 성불할 때까지 이 공덕을 잃지 않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 이를 때마다 모든 부처님[佛]을 공양하고, 또 그 법(法)을 듣고 공양하면서 모든 비구승[僧]을 보리라. 이러한 가운데 다 마땅히 지난 세상의 일[宿命]을 알고 끝없는 대비(大悲)를 성취하여, 언제나 법을 지키면서 항상 모든 사람을 교화하리라.”

아사세왕이 돈진타라에게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당신은 부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어 아사세는 또 돈진타라에게 말했다.

“당신이 지은 공덕을 나에게 조금 나눠줄 수 있겠습니까?”

돈진타라가 답했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이 공덕을 가지고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왜냐 하면 보살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공덕을 지으므로 공덕에 탐내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지은 공덕도 나 홀로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도 보살이 짓는 공덕은 모두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왜냐 하면 보살은 일체를 인연으로 점차 자신을 닦으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 돈진타라는 또 아사세에게 말했다.

“훌륭하게도 당신은 두 선지식(善知識 : 善友, 迦羅密)을 얻었습니다. 한 분은 부처님이요, 또 한 분은 문수사리(文殊尸利)입니다. 이 분들의 은혜를 입고 대왕은 자신이 범한 반역죄[非法]와 의심을 해결하여 없애버릴 수 있었습니다.”

아세세왕이 말했다.

“보살은 지은 공덕이 대단히 훌륭하여 이미 뜻에 법의 그릇[法器]을 갖추고 들은 온갖 법을 그 마음에 의심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또한 잃지도 않았습니다.”

제무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은 무엇으로 법의 그릇을 삼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서른두 가지 일로 법의 그릇을 삼아야 하느니라.

서른두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굳게 법에 머무른 보살로서 부처님의 보호를 받는 법의 그릇이요
두 번째는 그 뜻이 어긋나지 않고 말과 다름이 없는 공덕을 믿는 법의 그릇이며
세 번째는 보살의 일을 닦는 법의 그릇이요
네 번째는 들은 법이 뜻으로 작용하는 법의 그릇이니라.


다섯 번째는 이미 들어간 뜻이 점차 도에 이르고자 하는 법의 그릇이요
여섯 번째는 온갖 근본을 알고 들어가는 법의 그릇이며
일곱 번째는 보시(布施)를 닦아서 존경을 받는 법의 그릇이요
여덟 번째는 청정한 계율로 원하는 일을 갖춘 법의 그릇이니라.


아홉 번째는 인욕(忍辱)을 닦아서 서른두 가지의 장부상(丈夫相)을 성취하는 법의 그릇이요
열 번째는 정진(精進)을 행하여 일체의 불법(佛法)으로 나아가는 법의 그릇이며
열한 번째는 선정(禪定 : 一心)으로 그 병을 치료하는 법의 그릇이요
열두 번째는 지혜를 닦아서 걸림이 없는 경지에 드는 법의 그릇이니라.


열세 번째는 사랑[慈]으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법의 그릇이요
열네 번째는 널리 가엾게 여기는 마음[哀 : 悲]으로 가난한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법의 그릇이며
열다섯 번째는 남을 따라 기뻐하는 마음[護 : 喜]으로 모든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법의 그릇이요
열여섯 번째는 평등한 마음[等 : 捨]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법의 그릇이니라.


열일곱 번째는 사람들의 선지식(善知識 : 迦羅密)이 되어 일체중생을 위하여 공덕을 짓는 법의 그릇이요
열여덟 번째는 아무리 많은 법을 들을지라도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지혜바라밀[般若波羅蜜]을 닦는 법의 그릇이며
열아홉 번째는 비록 수행자[沙門]가 되어 부모 친족과 이별할지라도 그 마음에 괴로워하지 않는 법의 그릇이요
스무 번째는 조용한 산 속에 홀로 살면서 그 마음을 통일시켜 흔들리지 않는 법의 그릇이니라.


스물한 번째는 텅 비어 고요한 곳을 잘 참으면서 선정(禪定)과 신통[旬]을얻는 법의 그릇이요
스물두 번째는 아무것도 없는 이에게 자기의 소유를 베풀어주면서 교화하고 도로 이끌어들이는 법의 그릇이며
스물세 번째는 모든 법을 지니고 마음이 어두운 이들에게 마음을 밝혀 주는 법의 그릇이요
스물네 번째는 총지법문(摠持法門 : 陀羅尼)을 얻고 그 일을 환하게 알면서 사람들을 깨우쳐 바른 길로 인도하는 법의 그릇이니라.


스물다섯 번째는 원하는 곳이면 스스로 찾아가서 사람들에게 그 의심을 결단할 수 있는 법의 그릇이요
스물여섯 번째는 부처님을 생각하면 빨리 부처님을 뵐 수 있는 법의 그릇이며[스물일곱 번째와 스물여덟 번째의 두 법은 모든 본(本)에 다 빠져 있음]
스물일곱 번째는 성내거나 노하는 일이 없고 또 그 마음에 원망하지도 않으면서 끝일 줄 모르고 그 공덕을 닦는 법의 그릇이요
스물여덟 번째는 공(空)한 일을 알면서 온갖 소유에 애착을 버리는 법의 그릇이니라.


스물아홉 번째는 12인연(因緣)을 환하게 알면서 집착도 벗어나고 가장 훌륭한 것도 끊어 버리는 법의 그릇이요
서른 번째는 미리 법인(法忍)을 얻는 법의 그릇이며
서른한 번째는 이제 오래지 않아 수기를 받게 될 법의 그릇이요
서른두 번째는 물러섬이 없는 힘을 앞세워서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는 법의 그릇이니라.

이 서른두 가지 일이 보살이 갖춰야 할 법의 그릇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시자, 1만 사람이 다 더없이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을 일으켰다.

이들은 모두 큰소리로 말했다.

“모든 사람이 다 이 법의 그릇을 갖추도록 해주시고, 저희들에게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의 그릇을 마련케 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돈진타라에게 말씀하셨다.

“데리고 온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너의 처소로 돌아가도록 하라.”

돈진타라가 말했다.

“그 마음에 괴롭다고 생각한다면 보살이 아닙니다.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아야만 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 돈진타라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이 괴롭게 여김은 무엇이며, 보살이 괴롭게 여기지 않음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음 네 가지로 보살이 괴롭게 여기는 일을 알 수 있느니라.

괴롭게 여김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중생이 한량없이 많다는 말을 듣고 그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킴이 괴로운 일이요
둘째는 생사에서 다 해탈시킬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그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킴이 괴로운 일이며
셋째는 부처님의 지혜가 한량없다는 말을 듣고 그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킴이 괴로운 일이요
넷째는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한 모양[一相]이라는 말을 듣고 그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킴이 괴로운 일이니라. 이를 괴롭게 여기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다음 네 가지로 보살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일을 알 수 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모든 사람을 다 제도하여 열반(涅槃 : 泥洹)에 이르게 하려는 마음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스스로 한량없는 생사를 지키면서 더욱 그 공덕을 닦을지언정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부처님의 지혜가 한량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다 원만하게 갖추려는 뜻을 세울지언정 두렵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한 모양이란 말을 들을지라도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고 계속 공덕을 닦아 나가는 마음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일이니라. 이를 보살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다음 네 가지로 괴롭게 여기는 일을 알 수 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간간이 성문(聲聞)의 법을 좋아하고 즐기면서 그들과 만나 어울리는 일이요
둘째는 간간이 벽지불(辟支佛)의 법을 좋아하고 즐기면서 그들과 가깝게 지내는 일이며
셋째는 모든 법이 다하려고 할 때 더 이상 마음을 쓸 수도 없고 지키지도 못하는 일이요
넷째는 모든 법이 다하려고 할 때 사람들에게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게 할 수 없는 일이니라. 이를 보살이 괴롭게 여김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다음 네 가지로 괴롭게 여기지 않는 일을 알 수 있느니라.

첫째는 나한(羅漢)과 벽지불(辟支佛)의 법을 스스로 즐기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몸과 목숨을 바쳐서 법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만일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요
넷째는 배우려는 사람은 일부러 찾아가서 가르칠지언정 멀리 피하지 않는 일이니라. 이를 보살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다음 네 가지로 보살이 괴롭게 여기는 일을 알 수 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만일 가난한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 와서 구걸하면 문득 성을 내어 쫓아버리는 일이요
둘째는 단지 먹고 자고 일어나는 일에 자신의 편함만을 걱정하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배우고 묻는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나는 당연히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일이요
넷째는 때때로 출세간의 지혜를 듣고 배우려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급히 그 자리를 피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는 일이니라. 이를 보살이 괴롭게 여김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다음 네 가지로 보살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일을 알 수 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가난한 수행자가 구걸하러 오면 자기 소유를 베풀어주면서 선지식(善知識 : 善友, 迦羅密)처럼 보는 일이요
둘째는 부드러운 마음과 좋은 얼굴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일이며
셋째는 자신의 편안함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편안함을 생각하는 일이요
넷째는 불법(佛法)을 배우는 일에 만족하게 여기거나 싫증내지 않으면서 들은 대로 모든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가르쳐 주는 일이니라. 이를 보살이 괴롭게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다음 네 가지로 보살이 괴롭게 여기는 일을 알 수 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바라밀(波羅蜜)의 도를 구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4섭법(攝法)을 베풀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자신은 정진(精進)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에 게 나아갈 길을 가르치려는 일이요
넷째는 조금 듣고 사유한 법에 만족하여 더 이상 보살도(菩薩道)를 생각하지 않는 일이니라. 이를 보살이 괴롭게 여김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다음 네 가지로 보살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일을 알 수 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몸에 붙은 불이 더 심하기 전에 급히 끄듯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구하는 일이요
둘째는 게으름 없이 언제나 4섭법(攝法)의 보시를 충분히 갖추고 외도[逆]를 구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정진(精進)을 가르쳐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일이요
넷째는 싫증을 내지 않고 온갖 공덕을 알고 갖추려는 일이니라. 이를 보살이 괴롭게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아사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괴롭게 여기지 않는 법을 들었으리라.”

아사세왕이 답했다.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들었으니 이후부터는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는 이가 있으면 그 닦는 일에 싫증을 내거나 괴롭게 여기지 말라.”

아사세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행(菩薩行)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돈진타라와 건타라(揵陀羅 : 乾闥婆)와 법회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각각 알맞은 자리를 얻게 하리라.”

아사세왕은 부처님께서 설해주시는 보살행(菩薩行)을 들었다.

"첫 번째는 행해야 할 법을 들으면 바로 행하여 보살에 대해 괴롭게 생각하지 않는 행이요
두 번째는 일체중생을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는 행이며
세 번째는 견고한 행과 진실한 행과 그 뜻으로 짓는 청정한 행이 보살법(菩薩法)에 어긋나지 않는 행이요
네 번째는 보시행(布施行)과 주는 행과 가진 것을 아끼지 않는 행으로 보살행(菩薩行)을 닦고 가졌다는 생각을 일으키지않는 일이니라.


다섯 번째는 의지해야 할 청정한 계행(戒行)과 고요한 행[寂行]과 몸 입 뜻의 청정한 행은 보살이 항상 마음으로 생각해야 할 행이요
여섯 번째는 인욕의 행과 온갖 원한을 버리는 행으로 보살행을 닦으면서 닦는다는 뜻을 일으키지 않는 행이며
일곱 번째는 정진행(精進行)으로 이룩한 행과 생사를 괴롭게 여기지 않는 행으로 보살행을 닦고 그 마음이 겁내거나 약하지 않는 일이요
여덟 번째는 선정의 행[禪行]과 지식의 행[知行]과 몸과 마음이 안온한 행으로 보살행을 닦아서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는 일이니라.


아홉 번째는 보살은 지혜의 행을 반드시 법대로 행하면서 그 행하는 보살도에 소득(所得)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요
열 번째는 사랑[慈]의 행과 부드러운 마음의 행과 언제나 가엾게 여기는 행[哀行]으로 보살도를 닦고 행하면서 성냄이 없는 행이며
열한 번째는 뜻으로 행하는 공의 행[空行]과 모양을 떠난 청정한 행[無有相淸淨行]으로 원할 것이 없는 경지에 드는 일이요
열두 번째는 보살행을 반드시 행하여 마음에 온갖 지혜의 행을 갖춰서 보살이 행하는 대상에 걸림이 없는 일이니라.


열세 번째는 믿음의 행과 정진의 행과 뜻이 편하게 작용하는 삼매의 행[用意安三昧行]을 닦는 보살행이 단절되지 않는 일이요
열네 번째는 경계에 자유자재한 신통행[神足行]과 해탈행[惟務行]과 5신통[五旬]의 행으로 보살이 닦는 경지에 흠이 없는 행이며
열다섯 번째는 부처님의 행과 법의 행과 승보(僧寶)를 받드는 청정한 행이 보리를 수행하는 가장 훌륭하고 진실한 행이요

열일곱 번째는 인연을 빌리지 않고 짓는 행과 짓는 그대로의 행과 온갖 번뇌의 어둠을 끊어버리는 행이 보살이 닦는 일에 어긋나지 않는 깨끗한 행이요
열여덟 번째는 청정한 행과 모든 번뇌를 해탈한 행으로 보살도를 행하여 뉘우침이 없는 일이며
열아홉 번째는 안온한 행과 일체를 보호하여 두려움이 없게 하는 행으로 보살도를 행하여 소원을 갖추는 일이요
스무 번째는 해와 같이 밝은 행과 달처럼 어둠을 밝히는 행과 연꽃과 같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행으로 보살도를 행하여 모든 하늘과 일체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일이니라.

스물한 번째는 제석(帝釋)과 같은 행과 범천(梵天)과 같은 행과 도를 갖춘 행으로 보살도를 행하여 온갖 마군(魔軍)을 다 두렵게 하는 일이요, 스물두 번째는 받아 지닌 행과 훌륭한 행과 탐욕[] 성냄[怒] 어리석음[癡]을 다 없애는 행으로 보살도를 행하여 헤아릴 수 없는 모든 하늘에게 찬탄을 받는 일이며, 스물세 번째는 행할 바를 오래도록 닦아온 행과 지혜의 눈이 청정한 행으로 보살도를 행하여 원할 것이 없는 일이요, 스물네 번째는 적정(寂靜)한 행과 엄숙한 행과 명색(名色)의 집착에서 벗어난 행으로 보살도를 행하여 흠이 없으니, 보살이 닦은 이러한 행을 모든 하늘이 찬탄하는 일이니라.

스물다섯 번째는 말이 부드러운 행과 평등 그대로의 행과 사도(邪道)를 버린 행으로 닦은 보살의 소행을 출세간 지혜의 본보기로 삼는 일이요, 스물여섯 번째는 용맹스러운 행과 온갖 마군을 흔드는 행으로 반드시 보리수[佛樹]에 앉게 됨을 아는 일이며, 스물일곱 번째는 달라짐이 없는 행과 총지법문(摠持法門)을 얻은 행으로 보살이 닦아야 할 법에 있으면서 싫증을 모르는 행이요, 스물여덟 번째는 고요한 산간(山間)의 행과 참는 행을 항상 좋아하여 즐기고 사문(沙門)이 되기를 바라면서 보살이 행할 법을 행하여 처음 인연과 다르지 않는 일이니라.

스물아홉 번째는 해탈하려는 행과 마음의 행과 일체에서 가장 훌륭한 행으로 보살이 인연할 자리를 잃지 않는 행이요, 서른 번째는 말이 능숙한 행과 선교방편[漚和拘舍羅]의 행과 선정과 신통[禪旬]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행으로 보살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법을 행하는 일이며, 서른한 번째는 세속의 행과 세속이 아닌 행과 욕계의 행과 색계의 행과 무색계의 행으로 보살도를 행하여 두려움이 없는 일이요, 서른두 번째는 일체에 행하지 않는 곳이 없으면서 모든 사람을 다 아는 행이 마치 하늘처럼 덮지 못할 곳이 없는 일이니라.

부처님께서 보살행(菩薩行)을 설하시자, 이 때 5백 보살은 다 무생법인[無所從生法樂忍]을 얻었으며, 법회 대중 가운데 8천 사람은 모두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의 마음을 일으켰다.

이들은 다 부처님을 보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행해야 할 보살행(菩薩行)을 그대로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상서로운 감응[瑞應]을 일으키시어 돈진타라를 그들의 처소로 보내려고 하셨다. 돈진타라와 그 부인들과 권속은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나서 부처님 앞에 길게 꿇어앉아 하직 인사를 올렸다. 이어 그들은 몸으로 광명을 놓고 거문고와 비파로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러자 땅은 여섯 가지로 진동을 반복하고 하늘 꽃이 비 오듯 흩어져 내리는 가운데 그들은 곧 그 곳을 떠나 궁전으로 돌아갔다.

석제환인(釋帝桓因)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돈진타라가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과 모든 보살에게 공양한 공덕은 이미 저희들의 공덕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그 공덕은 홀로 너희들만 뛰어날 뿐 아니라,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제석(帝釋) 범천(梵天) 사천왕(四天王) 모든 성문(聲聞) 벽지불(辟支佛)보다도 뛰어나느니라. 무엇 때문에 뛰어나다고 하겠는가? 보살의 한번 발심하면 모든 성문과 벽지불과 일체 사람들은 마땅히 그 법으로 해탈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일체중생보다 뛰어나면서 부처님보다 뛰어날 수 없다고 하나, 분명 부처도 보살보다 뛰어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부처도 보살심(菩薩心)을 근거하여 스스로 성불(成佛)하고 나서 비로소 모든 성문(聲聞)을 성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석제환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말했다.

“지금 저는 대승의 종자[本]를 잃고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 그 자리에 있던 구혹(瞿或)이란 천자(天子)가 석제환인에게 말했다.

“불법(佛法)은 어느 하늘에도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게 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당신이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왜냐 하면 보살의 종자를 태워버려서 보살법의 그릇[法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혹(瞿或)이 이렇게 말하자 5백 도리천자(忉利天子)가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의 마음을 일으켰다.

구혹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난 겁에 보살법을 수행[本行]하시는 부처님을 보았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보살로서 연등 부처님[提和竭佛]으로부터 수기를 받으시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셨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여래[怛薩阿竭]께서 그 때 얻으신 무생법인에 대하여 듣고자 하오니 설해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덕이 없는 보살은 무생법인을 들을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구혹 천자에 말씀하셨다.

“그 보살은 네 가지 일로 무생법인을 얻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모든 부처님이 평등하여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없음을 안 일이요, 둘째는 모든 법이 평등하여 변함이 없음을 안 일이며, 셋째는 모든 세계가 평등하여 변함이 없음을 안 일이요, 넷째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여 변함이 없음을 안 일이니라. 이를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공(空)을 좋아하여 4선정(禪定)을 안 일이요, 둘째는 끝없는 동정[哀 : 悲]을 행하면서 3해탈[三活]을 좋아한 일이며, 셋째는 선교방편[漚和拘舍羅]을 행하면서 6바라밀(波羅蜜)을 좋아한 일이요, 넷째는 지혜로써 5신통(神通)을 좋아한 일이니라. 이를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보살이 5음(陰)에서 보살도(菩薩道)를 구하여 5음이 자연임을 안 일이요, 둘째는 그 보살이 4대(大)에서 보살도를 구하여 4대가 자연임을 믿은 일이며, 셋째는 그 보살이 6쇠(衰 : 入)에서 보살도(菩薩道)를 구하여 6쇠를 자연으로 본 일이요, 넷째는 그 보살이 모든 법에서 보살도를 구하여 모든 법이 자연임을 의심하지 않은 일이니라. 이를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또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근본실제[本際]에 머물러서 모든 법을 안 일이요, 둘째는 이미 여래[怛薩阿竭]에 안주(安住)하여 들어가지 못할 법이 없으면서 삼세(三世)에 평등한 일이며, 셋째는 법신(法身)에 들어가서 모든 법의 모양이 다 허공처럼 무너뜨릴 수 없음을 안 일이요, 넷째는 모든 법이 다 평등하여 변함이 없음을 본 일이니라. 이를 네 가지 일이니라. 이 모든 일에서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시자 5백 보살이 다 무생법인을 얻었고, 구혹 천자는 그 보살이 얻은 법인을 의심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이 경의 설법을 마치시려고 아난(阿難)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너는 돈진타라의 물음을 다 깨달았느냐?”

아난이 아뢰어 말했다.

“다 깨달았습니다. 이 법은 대단히 훌륭하여 그지없이 시원합니다. 매우 깊고 미묘한 경지를 본래대로 설해 주셨으므로, 본래대로 알고 모든 법을 환하게 깨달았습니다.”

이어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본래대로 법을 들려 주셨으니, 이제 이 법을 들은 사람은 마땅히 다 환하게 알았을 것입니다. 지금 저는 성문(聲聞)이면서도 말씀을 듣고 이 법을 다 환하게 알았으니, 더욱이 어찌 끝없는 지혜를 갖춘 보살이겠습니까. 바다와 같은 보살의 마음은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입니다. 또 보살의 지혜는 매우 넓어서 끌어안지 않음이 없고, 모든 법을 다 거둬들이지 않음이 없으니, 온갖 보배를 담는 큰그릇과 같습니다. 또 모든 사람을 위해서는 초청하지 않아도 자청(自請)하여 두터운 정을 보이니, 그 출세간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어 아난은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뒤에 이 법을 듣는 사람도 마땅히 이 법의 광명으로 향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이 여래[怛薩阿竭] 몸의 수많은 털 가운데 한 털의 광명만으로도 삼천대천세계의 수많은 햇빛과 달빛을 다 가려 버릴 수 있다. 여기에 여래가 온 몸의 털에서 다 광명을 놓을지라도, 이 법을 얻은 광명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니 이 출세간의 지혜는 뛰어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온갖 광명은 다 지혜로 얻으나, 법의 광명은 모든 사람을 알므로 매우 훌륭하여 그 무엇도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뒤에 이 법을 듣는 사람은 다 지혜의 광명을 얻어서 곧바로 이 경을 지니고 읊고 외우고 읽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법의 지혜를 받들게 하면서 보살도(菩薩道)를 떠나지 않으리라. 또 일체중생을 건지기 위하여 끝없는 동정[哀 : 悲]으로 큰 서원[摩呵僧那僧涅]을 세워서 사랑[慈]으로 갑옷을 삼고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키면서 좀더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가까워지리라.”

아난이 아뢰었다.

“이제 제가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이 법을 받들어 지니게 되었사오니, 만일 읊고 외우고 읽으면서 모든 사람에게 널리 설한다면 그 복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일곱 가지 보배를 가지고, 아래로 수다원(須陀洹)과 사다함(斯陀含)과 아라한(阿羅漢)과 벽지불(辟支佛)에서 위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천년 동안 베풀면서 공덕을 쌓았다면 그 공덕은 얼마나 되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단히 많겠습니다. 하늘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분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많은 공덕도 어떤 남자나 여자가 보살의 일을 받들어 행하여 밤과 낮[晝夜各三]으로 읊고 외우고 읽으면서 사람들에게 이 법사(法事)만을 설할지라도, 이 공덕은 저 공덕보다 뛰어나리니, 더욱이 이 법을 자세히 알고 설하는 일이겠느냐. 왜냐 하면 보살이 경(經) 가운데 네 가지 일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그 속의 뜻을 해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법보시[法布施]라고 하니, 온갖 보시 가운데 가장 훌륭하여 최고의 은혜를 베푸는 일이다. 법의 보시는 무엇보다 최상으로 받들어 지녀야 한다. 왜냐 하면 법의 보시를 통해서 바른 법을 듣고 마음의 더러운 번뇌를 없애어 해탈하기 때문이다. 온갖 재물로 베푸는 일은 단지 생사(生死)만을 기를 뿐이다. 생사를 해탈시키려면 마땅히 법을 베풀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법을 따라 베푼다면, 모든 사람은 이 가운데서 공덕을 얻으리라.

보살은 법을 베풀 때 서른두 가지 일을 얻는다.

서른두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뜻의 작용이 안온한 일이요, 두 번째는 짓는 공덕이 편안한 일이며, 세 번째는 행이 편안한 일이요, 네 번째는 애욕이 점차 적어지는 일이니라.

다섯 번째는 성냄이 점차 적어지는 일이요, 여섯 번째는 어리석음이 차츰 적어지는 일이며, 일곱 번째는 스스로 해탈하고 남을 해탈시키면서 생사에서 벗어나는 일이요, 여덟 번째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일이니라.

아홉 번째는 모든 하늘로부터 찬탄을 받는 일이요, 열 번째는 용과 야차(夜叉 : 閱叉)와 건달바(乾闥婆 : 揵陀羅)의 보호를 받는 일이며, 열한 번째는 지은 공덕을 시주(施主)에게 나눠 주는 일이요, 열두 번째는 옷과 발우와 잠자리의 침상과 와구(臥具 : 이불, 요 등)를 얻고 병들고 몸이 약할 때 의약(醫藥)을 얻는 일이니라.

열세 번째는 명성(名聲)이 멀고 가까운 곳에 들리지 않음이 없고 삿된 무리들이 그 틈을 엿볼 수 없는 일이요, 열네 번째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법을 행하여 보호할 수 있는 일이며, 열다섯 번째는 이로 인하여 법신(法身)을 얻고 악도(惡道)를 두렵게 여기지 않는 일이요, 열여섯 번째는 천상이나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어려움을 겪지 않은 일이니라.

열일곱 번째는 태어나는 곳마다 모든 불법(佛法)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이요, 열여덟 번째는 태어나는 곳마다 곧바로 지난 세상의 일을 아는 일이며, 열아홉 번째는 태어날 때마다 원하는 곳에 태어나는 일이요, 스무 번째는 몸을 받을 때마다 몸에 결점이나 모자람이 없는 일이니라.

스물한 번째는 서른두 가지 상호(相好)를 얻는 일이요, 스물두 번째는 총지법문(摠持法門 : 陀羅尼)을 닦아서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변재[欲]를얻는 일이며, 스물세 번째는 모든 인연을 알고 선정(禪定)으로 자신을 기르는 일이요, 스물네 번째는 대비(大悲)로 길을 닦는 일이니라.

스물다섯 번째는 어둠에서 밝음을 얻는 일이요, 스물여섯 번째는 그 마음에 삿된 생각이 없는 일이며, 스물일곱 번째는 세속에서 베푸는 일보다 뛰어난 일이요, 스물여덟 번째는 법장(法藏)에 끝없는 변재를 갖추는 일이니라.[스물여덟 번째의 일부분과 스물아홉 번째, 서른 번째, 서른한 번째, 서른두 번째의 네 법은 모든 본(本)에 다 빠져 있음] 이것을 서른두 가지 일이라고 한다.”

석제환인(釋帝桓因)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이 법을 받들어 지니고 행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뒤에 법의 그릇을 갖춘 사람이 있으면, 저는 마땅히 보호하여 이 법을 들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경에서 설하신 이러한 공덕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다. 석제환인이여, 그대는 내 앞에서 사자처럼 날쌔고 힘차게 뒤에 반드시 이 법을 보호하겠노라고 말했으니, 그대가 이 공덕을 짓는다면 비록 아수륜(阿倫)이 군대를 이끌고 침범해 올지라도 그대를 감당하지 못하리라. 왜냐 하면 이 법의 요의(要義)를 얻을 수 없는 자가 이 법을 보호하려고 한다면 두려워서 보호할 자신이 없겠으나, 그대는 소견(所見)이 삿되지 않으므로 법에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보호하겠노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범천(梵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라의 크고 작은 고을[郡縣]이나 성읍(城邑)이나 취락(聚落)에서 이 법을 설한다면, 저희들은 반드시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고 그 곳으로 가서 보호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과 제석(帝釋)과 범천(梵天)은 다 이 법에서 스스로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천왕(四天王)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도 부처님의 제자이니 반드시 이 법을 받들어 행해야 하며, 또 마땅히 옹호하여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희들의 소속 부주(部主)로서 불법을 믿지 않는 자이거나, 또는 용 야차 건달바 긴나라 마후라가 가운데, 불법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저희들은 항상 불법을 믿게 하겠습니다.”

이어 그들은 다 말했다.

“저희들은 불법을 믿지 않는 자를 위하여 저희들이 익힌 풍속에 따라서 다음과 같은 주문을 외우겠습니다.

다비옴비아렵비바 소렵비휴 안마휴안 이안견안 아화저유월저바리 면다나
多唵阿獵婆 少獵休 晏摩休晏 伊晏牽晏 阿和惟越波利 眄陀那
니문 면바가산나 이화이화유리알 면달면달마라이다
尼蚊 眄波袈散那 咿和咿和惟利頞 眄妲眄妲滅伊陀

이 주문으로 모두가 언제나 불법을 믿게 하여 삿된 뜻을 가진 자는 바른 마음으로 돌아오게 하고, 교만한 야차(夜叉: 閱叉)는 교만하지 않도록 하면서, 반드시 부처님을 찬탄하고 법을 보호하게 할 것입니다. 이 주문의 요지는 사천왕의 축원[祝]으로서 ‘남의 단점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과 제무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헤아릴 수 없는 겁[阿僧祗劫] 동안 보살도(菩薩道)를 닦아 왔다. 이제 너희들에게 이 법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부탁[遺囑]하노라.”

미륵보살이 제무리보살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우리들은 반드시 이 법을 보호하면서 마땅히 사람들을 가르치고 깨우쳐서 널리 그 일을 설해야 합니다. 후세에 만일 공덕을 쌓은 보살이 다시 이 경을 얻는다면, 우리들은 권장하고 도우면서 그를 보호해야 합니다. 만일 후세에 이 경을 얻은 이가 쓰고 읊고 외우고 읽으면서 안온한 경지를 얻는다면, 그는 반드시 이 미륵과 제무리보살이 옹호한 일임을 알 것입니다.”

이 때 법회에 마군이 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성문(聲聞)들을 위하여 설법하실 때는 두렵기는커녕 걱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께서 보살의 법인(法印)을 설하시어,여래[怛薩阿竭] 곁에 머무르게 하시고, 좀더 보살도에 가깝게 하시면서, 일체중생을 보호케 하셨습니다. 이제 제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근심하고 걱정하다 보니 마치 극도로 초췌한 늙은이처럼 땅에 쓰러질 지경입니다. 제발 여래께서는 가엾게 여기시고 일으켜 주옵소서. 왜냐 하면 들으면 들을수록 근심스럽고 괴롭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말씀을 거두시고 더 이상 계속하지 마옵소서.”

부처님께서 마군에게 타이르셨다.

“이제 더 이상 울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라. 지금 너의 벗들은 너무나 많다. 이 법을 듣지 않는 중생은 다 너의 벗이니 너의 많은 벗에 비하면, 이 법을 믿고 즐기는 이는 너무 적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흙을 집어 손톱 위에 놓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 법을 믿는 이의 수는 이 손톱의 흙에 지나지 않지만, 이 법을 믿지 않는 중생은 이 넓은 땅의 모든 흙과 같다. 모든 흙의 수만큼 믿지 않는 자가 다 너의 벗이니라. 너의 벗이 이렇게 많으니 이제 그만 걱정하고 오히려 홀로 기뻐하여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설법하시자,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세계의 사람들은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켰고, 9만 2천 보살은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며, 8만 4천 사람은 다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얻었고, 8천 비구는 모두 아라한(阿羅漢)을 얻었다.

이 때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을 반복하였고, 광명은 비추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하늘 꽃은 비 오듯 흩어져 내렸다. 또 거문고와 비파들과 온갖 악기들은 타지 않아도 저절로 음악 소리를 내어 울려 퍼졌다.

이런 가운데 허공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늘들이 모두 말했다.

“더없이 훌륭합니다. 우리들은 염부리[閻浮利]에서 또 다시 법륜(法輪)을 굴리시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여래께서 이전에 녹야원(鹿野苑)에서 법륜을 굴리셨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안온한 경지에 들었지만, 지금 이 설법에서는 그 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안온한 경지에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 경을 지니고 읊고 외우고 읽으면서 설하는 이가 있으면, 저희들은 그 법륜(法輪)이 잘 구르도록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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