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구색록경(佛說九色鹿經)
오(吳) 월지(月氏) 우바새(優婆塞) 지겸(支謙) 한역
옛적에 보살의 몸이 아홉 빛깔 사슴이 되었으니, 그의 털이 아홉 가지의 빛깔이었으며 그 뿔이 눈과 같이 희었는데, 항상 항수(恒水)가에 살면서 물과 풀을 마시고 먹었으며 항상 한 까마귀와 더불어 잘 알고 지냈다.
그 때 물 가운데 한 사람이 빠져서 물결에 휩쓸려서 흘러 내려오는데, 혹은 나오고 혹은 빠졌다가 나무를 잡고 머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산신(山神)과 수신(水神)과 모든 하늘과 용신(龍神)이시여, 어찌 저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십니까?’
사슴은 사람의 소리를 듣고 달려서 물 가운데 이르러 빠진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나의 등에 올라 내 두 뿔을 잡으면 내가 마땅히 너를 업고 물 속에서 나오겠습니다.’
언덕에 도착하자 사슴은 극도로 피곤하였다. 물에 빠졌던 사람은 땅에 내려 사슴을 세 바퀴 돌고 사슴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대가(大家)의 종이 되어 물과 풀을 채취(採取)하여 공급(供給)하게 해주십시오.’
사슴은 말하였다.
‘나는 받지 않겠으니 그대는 제 갈 길로 가십시오.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내가 여기에 있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나의 가죽과 뿔을 탐하여 반드시 와서 나를 죽일 것입니다.’
이에 물에 빠졌던 사람은 가르침을 받고 갔다.
그 때 국왕의 부인이 밤에 자다가 꿈에 아홉 빛깔 사슴을 보았는데, 그 털은 아홉 가지 빛이었으며 그 뿔은 눈같이 흰 것을 보고 곧 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였다.
왕은 부인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일어나지 못하느냐?’
부인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젯밤 꿈에 범상하지 않은 사슴을 보았는데, 그 털이 아홉 가지 빛이며 그 뿔이 눈과 같이 희었습니다. 제가 그 가죽으로 앉는 요를 짓고 그 뿔을 얻어서 먼지떨이 자루를 만들고 싶으니 왕께서는 마땅히 저를 위하여 사슴을 찾아주소서.
왕께서 만일 얻지 못한다면 나는 곧 죽을 것입니다.
왕은 부인에게 말하였다.
‘너는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내가 한 나라의 주인이 되어 무엇을 얻지 못하겠느냐?’
왕은 곧 나라 가운데에서 모집하되 ‘만일 능히 아홉 빛깔 사슴을 얻는 이가 있으면 내가 마땅히 그 나라를 나누어서 다스릴 것이며, 곧 금(金) 발우에 은(銀) 쌀을 가득 담아 주겠으며, 은(銀) 발우에 금(金) 쌀을 가득 담아 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물에 빠졌던 사람은 왕의 모집이 중함을 듣고 마음으로 악한 생각을 내어 ‘내가 그 사슴이 있는 곳을 말하면 부귀를 얻겠구나. 사슴은 축생(畜生)인데 죽고 사는 게 어디 있으랴?’하였다. 이에 물에 빠졌던 사람은 곧 모집하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아홉 빛깔 사슴이 있는 곳을 안다.’
모집하는 사람은 바로 물에 빠졌던 사람을 데리고 대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께 여쭈었다.
‘이 사람이 아홉 빛깔 사슴이 있는 곳을 안다고 하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크게 기뻐하여 곧 물에 빠졌던 사람에게 말하였다.
‘네가 만일 능히 아홉 빛깔 사슴을 얻는다면 내가 마땅히 너에게 나라의반을 주겠으니 이 말은 허망하지 않노라.’
물에 빠졌던 사람은 대답하였다.
‘제가 능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물에 빠졌던 사람의 얼굴 위에 문둥병의 종기가 났다. 물에 빠졌던 사람은 왕에게 여쭈었다.
이 사슴은 비록 축생이지만 크게 위신(威神)이 있사오니 왕께서는 마땅히 많이 사람들을 내어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곧 크게 군사의 무리를 내어 항수가에 이르렀다.
그 때 까마귀가 나무 꼭대기에 있다가 왕의 군사가 오는 것을 보고 사슴을 죽이려는가 의심되어 곧 사슴을 불러 말하였다.
‘선지식이여, 일어나십시오. 왕이 그대를 잡으려고 오고 있습니다.’
사슴은 일부러 깨어나지 않았다.
까마귀는 곧 나무에서 내려와서 그의 머리 위에 올라 그의 귀를 쪼면서 말하였다.
‘선지식이여, 어서 일어나십시오. 왕의 군사가 오고 있습니다.’
사슴은 놀라 일어나서 사방을 향하여 돌아보니 왕의 군사의 무리가 이미 백겁이나 둘러싸서 다시 달아날 땅이 없음을 보고 곧 왕의 수레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왕의 군사가 곧 활을 당겨 쏘고자 하였다. 사슴은 왕의 부하에게 말하였다.
‘아직 나를 쏘지 말라. 내가 스스로 왕의 처소에 이르러 할말이 있다.’
왕은 곧 모든 신하에게 명령하였다.
‘이 사슴을 쏘지 말라. 이는 보통 사슴이 아니니 혹시 하늘 신인가 하노라.’
사슴은 거듭 대왕에게 말하였다.
‘아직 나를 죽이지 마시오. 제가 큰 은혜가 왕의 나라에 있나이다.’
왕은 사슴에게 말하였다.
‘네가 무슨 은혜가 있느냐?’
사슴은 말하였다.
‘제가 저번에 왕의 나라 가운데 한 사람을 살렸나이다.’
사슴은 꿇어앉아 거듭 왕에게 물었다.
‘누가 제가 여기 있다고 말하였습니까?’
왕은 곧 수레 근처에 문둥이 낯을 한 사람을 가리켰다. 사슴은 왕의 말을 듣고 눈에서 눈물이 나와 능히 그치지 못하면서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이 사람이 전 날에 깊은 물 속에 빠져 혹 나오고 혹 빠지며 물에 휩쓸려 내려오다가 나무를 붙잡게 되었는데, 머리를 들고 우러러 하늘을 보고 부르짖되, (산신과 수신과 모든 하늘과 용신이시여, 어찌 저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십니까?) 하기에 제가 그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스스로 물 가운데 들어가서 이 사람을 엎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르길 나중에 나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기를 맹세하게 하였는데, 사람이라면 그것을 지켜서 되돌리지 않아야 할 것인데, 이는 물 가운데에 떠있는 나무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왕은 사슴의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서 그 백성을 꾸짖어 말하였다.
‘네가 남의 중한 은혜를 받고 어찌 도리어 그를 죽이고자 하느냐?’
이에 대왕은 곧 나라에 영을 내려 ‘이제부터 만일 이 사슴을 핍박하거나 내쫓는 이는 내가 마땅히 그 5족(族)을 베겠노라’하였다.
이에 뭇 사슴 수천 마리가 떼지어 와서 의지하였다. 물과 풀을 마시고 먹으며 벼의 이삭을 먹지 않았으며 바람과 비가 때를 맞추고 오곡이 풍요하게 여물었으며 사람은 병이 없으며 재앙과 해로움이 생기지 않아 그 세상이 태평(太平)하여 명대로 살다가 죽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