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십주행도품(菩薩十住行道品)

보살십주행도품(菩薩十住行道品)

서진(西晋) 월지국삼장(月氏國三藏)축법호(竺法護) 한역

담매마제(曇昧摩提)보살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고, 곧 부처님 앞에서 아난파유가(阿難波渝迦)삼매에 들어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다 보았다. 시방의 모든 부처란 그 수가 천 불찰의 티끌 수와 같았으니 한 티끌이 한 불찰이 되었다. 이와 같이 시방세계의 사면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장하고 장하구나, 담매마제보살이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다 담매마제보살에게 지혜를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석가모니부처님 전생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공덕과 위신이 더욱 증장하고 모든 경전을 더욱 잘 알고자 한다면, 부처님의 위신으로 모든 경에 깊이 들어가 시방의 모든 허공법에 마음이 집착하는 바 없음을 보이고 아무 장애 없이 들어가게 하며, 또한 모두 큰 도 가운데 들어가 속히 부처님을 가까이하고 모든 경과 시방 사람들의 생각을 다 알며 시방의 모든 경전을 다 배워 알아서 그것을 쓸 줄 알도록 한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들을 위해 보살의 10법주(法住)를 설명하고 또 부처님의 위신을 입어 그것을 설할 수 있게 하느니라.”

그 때 담매마제보살이 하는 말은 아무 걸림이 없고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다할 때가 없고 헤아릴 자가 없으며 아주 그칠 때가 없고 따를 자가 없으며 흠잡을 자가 없고 잊어 버리는 일이 없으며 밝히지 못할 것이 없고 모두 평등하며 나태하거나 교만한 적이 없고 아무도 미칠 수가 없었다.

이런 삼매의 힘을 지녔으므로 시방 부처님께서 모두 각각 오른손을 펴서 담매마제보살의 머리 위에 두어 담매마제보살로 하여금 삼매에서 깨게 하고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불자들이여, 다들 들어라. 보살의 집은 매우 커서 다 허공과 같다. 무슨 까닭으로 보살의 집은 매우 큰가. 과거의 부처님도 다 거기서 나오셨고 미래의 부처님도 다 거기서 나오실 것이며 현재의 부처님도 다 거기서 나오시기 때문이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대도에 들어갔고 무슨 인연으로 이 대도에 들어가며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되는가?

보살에게는 열 가지 법주(法住)가 있어서 과거·현재·미래 모든 부처님의 말씀을 분별하나니 어떤 것이 보살의 열 가지 법주인가?

첫째는 파람기도파(波藍耆兜波) 보살의 법주요,
둘째는 아사부(阿闍浮) 보살의 법주며,
셋째는 유아사(渝阿闍) 보살의 법주요,
넷째는 사마기(闍摩期) 보살의 법주며,
다섯째는 파유삼반(波渝三般) 보살의 법주요,
여섯째는 아기삼반(阿耆三般) 보살의 법주요,
일곱째는 아유월치(阿惟越致) 보살의 법주요,
여덟째는 구마라부(鳩滅浮) 동남(童男) 보살의 법주며,
아홉째는 유라사(渝羅闍) 보살의 법주요,
열째는 아유안(阿惟顔) 보살의 법주다.

첫째, 파람기도파 보살의 법주란 어떤 것인가? 부처님의 머리 위를 보면 단정하기 비할 데 없고 안색을 보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 미칠 자가 없고 그보다 존귀한 자 없으며 그보다 잘 나는 자 없고 그보다 잘 가르치는 자가 없다.

이 보살은 부처님의 위신과 의법이 이러함을 보고 차츰 불도에 들어가 점차 깨우침을 받고 인도되어 부처님의 뜻을 따라 중생들을 가르치고 제도한다. 그리하여 곤고한 자를 보면 다 가엾이 여겨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 부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믿고 나아가게 한다.

이 보살이 새로이 뜻을 일으켜 불법을 배우는 것은 다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 열 가지 어려운 곳을 모두 알기 위함이니 그 열 가지 어려운 곳이란 곧 열 가지 힘이다.

파람기도파 보살의 가르침도 열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부처님과 보살에게 공양하고,
둘째는 그 즐김을 따라 가르치며,
셋째는 그 태어나는 곳이 다 존귀하고,
넷째는 천상 천하에서 그를 따라 잡을 자가 아무도 없으며,
다섯째는 부처님의 지혜를 다 얻고,
여섯째는 파라세(波 羅世)의 태어나는 곳에서 항상 무수한 부처님을 보며,
일곱째는 모든 깊은 삼매경을 다 얻고,
여덟째는 끝없는 생사의 곳에서 오며,
아홉째는 목숨을 버린 지 오래지 않고,
열째는 시방 사람들을 모두 해탈시키는 것이니, 어째서인가? 불법 가운데 깊이 들어가기 때문이니라.

둘째, 아사부 보살의 법주란 어떤 것인가? 열 가지 뜻[意]으로 시방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니 그 열 가지 뜻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세간 사람의 선(善)을 모두 생각하고,
둘째는 깨끗한 마음이며,
셋째는 모두 안온한 마음이요,
넷째는 유연한 마음이며,
다섯째는 모든 사랑이 평등하고,
여섯째는 다만 남에게 보시하려는 마음뿐이며,
일곱째는 마음을 잘 보호하고,
여덟째는 남과 내 몸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아홉째는 시방 사람들을 내 스승과 같다고 생각하고,
열째는 시방 사람들을 부처와 같다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니라.

아사부 보살의 법은 경전을 많이 배워야 하고, 경전을 많이 배우려면 혼자 있어야 하며, 혼자 있게 되면 좋은 스승을 섬겨야 하고, 좋은 스승을 섬기려면 좋은 스승 곁에 있어야 하며, 좋은 스승 곁에 있으면 심부름을 잘 해야 하고, 심부름을 잘 하려면 때를 맞추어 일해야 하며, 때를 맞추어 일을 하려면 용감하게 일을 해야 하고, 용감하게 하게 되면 슬기 가운데 들어가며, 슬기 가운데 들어가면 받는 법을 다 잘 지니고, 받는 법을 잘 지닐려면 잊지 않아야 하며, 잊지 않으면 안온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시방 사람들을 더욱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니라.

셋째, 유아사 보살의 법주란 어떤 것인가? 10사(事)로 모든 법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모든 것이 다 무상하다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것이 다 괴롭다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것이 다 공이라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것이 다 머무름이 없다는 것이요,
여섯째는 모든 것이 다 이익이 없다는 것이며,
일곱째는 모든 것이 다 그침이 없다는 것이요,
여덟째는 모든 것이 다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며,
아홉째는 모든 것이 다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이요,
열째는 모든 것이 다 소유가 없다는 것이니,

모든 법은 다 이 가운데 들어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유아사 보살의 교법은 다 시방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시방 사람들을 생각한 뒤 법처(法處)를 생각해야 하며, 법처를 생각한 뒤 모든 불찰을 생각해야 하고, 모든 불찰을 생각한 뒤 지법(地法)을 생각해야 하며, 지법을 생각하고는 수법(水法)을 생각해야 하고, 수법을 생각하고는 화법(火法)을 생각해야 하며, 화법을 생각하고는 풍법(風法)을 생각해야 하고, 풍법을 생각하고는 욕법(欲法)을 생각해야 하고, 욕법을 생각하고는 색법(色法)을 생각해야 하며, 색법을 생각하고는 욕과 색의 법이 없음을 생각하고 욕과 색의 법이 없음을 생각한 뒤엔 마음에 탐욕이 없나니, 왜냐 하면 이로 인해 법의 밝음을 모두 얻기 때문이니라.

넷째, 사마기 보살의 법주란 어떤 것인가? 항상 부처님 계신 곳에 나기를 생각하는 것이니, 여기에 열 가지 일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음이요,
둘째는 부처를 깊이 사랑함이며,
셋째는 법을 깊이 생각함이요,
넷째는 시방 사람들을 다 인자한 마음으로 봄이며,
다섯째는 시방에 마침내 소유가 없음을 생각함이요,
여섯째는 시방의 불찰이 다 공(空)인 것이며,
일곱째는 숙명으로 지은 것이 끝내 아무것도 없음이요,
여덟째는 모든 소유가 다 공이어서 요술과 같다는 것이며,
아홉째는 모든 괴로움이 없다는 것이요,
열째는 열반도 공이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니 이 때문에 불법 가운데 나는 것이다.

이것이 사마기 보살의 교법으로서,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텅 비어 없는 것이요,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텅 비어 없는 것이며, 현재의 모든 부처님도 텅 비어 없는 것이요, 과거의 모든 불법도 텅 비어 없는 것이요, 미래의 모든 불법도 텅 비어 없는 것이며, 현재의 모든 불법도 텅 비어 없는 것이요, 과거의 모든 불법이 어디서 나왔는가 생각해 찾아보아도 있는 곳이 없고, 미래의 모든 불법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 생각해 찾아보아도 있는 곳이 없으며, 현재의 모든 불법이 어디서 나오는가 생각해 찾아보아도 있는 곳이 없으니, 모든 법은 필경 텅 비어 없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이 삼세의 법은 다 같이 끝내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파유삼반 보살의 법주란 어떤 것인가? 짓는 바 공덕으로 시방 사람들을 다 제도하는 것이니, 거기에 열 가지 일[事]이 있으니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시방 사람들을 다 보호함이요,
둘째는 시방 사람들을 다 선하게 함이며,
셋째는 시방 사람들의 목숨이 안온하기를 생각함이요,
넷째는 시방 사람들을 다 사랑함이며,
다섯째는 시방 사람들을 다 가여워함이요,
여섯째는 시방 사람들을 다 인도해 보살도에 둠이요,
여덟째는 시방 사람들을 다 깨끗이 함이며,
아홉째는 시방 사람들을 다 제도함이요,
열째는 시방 사람들을 다 해탈시켜 열반에 들게 하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시방 사람이요, 셀 수 없는 시방 사람이며, 논의할 수 없는 시방 사람이요, 일컬을 수 없는 시방 사람이며, 한량없는 시방 사람이요, 말할 수 없는 시방 사람이다. 시방 사람이란 무엇인가? 온 시방 사람은 다 허공 사람이요 다 내 것이 아닌 사람이며 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며, 특별할 것이 없는 사람이다. 어째서인가? 마음에 집착이 없기 때문이다.

여섯째, 아기삼반 보살의 법주란 깊은 자비심의 열 가지 법이 있나니, 무엇이 그 열 가지 법인가?

첫째는 부처님의 선악을 말해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요,
둘째는 법의 선을 말하거나 법의 악을 말해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며,
셋째는 보살의 선을 말하거나 보살의 악을 말해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요,
넷째는 보살도를 구하는 사람이 서로 선악을 말하여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며,
다섯째는 어떤 사람이 시방 사람이 많다거나 시방 사람이 적다거나 말하여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요,
여섯째는 온 시방 사람이 서로 선악을 말하여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며,
일곱째는 어떤 사람이 시방 사람을 해탈시키기 쉽다거나 해탈시키기 어렵다거나 말하여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요,
여덟째는 법이 많다거나 법이 적다거나 하여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며,
아홉째는 법이 무너진다거나 무너지지 않는다거나 말하여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요,
열째는 법처(法處)가 있다거나 법처가 없다거나 해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니, 이러한 법이 없음을 이 보살은 마땅히 배워야 한다.

다시 또 열 가지 일이 있는데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법은 있지 않음이요,
둘째는 모든 법은 볼 수 없음이며,
셋째는 모든 법은 허깨비의 지음과 같음을 배움이요,
넷째는 모든 법은 다 허공이요,
다섯째는 모든 법은 여러 가지의 허공이며,
여섯째는 모든 법은 장애가 없으니 지극히 텅 빈 것이며,
일곱째는 모든 법은 요술이 지은 것과 같음이요,
여덟째는 모든 법은 꿈 속에서 존재하는 것과 같음이며,
아홉째는 모든 법은 헤아릴 수 없음이요,
열째는 모든 법은 볼 수 있는 것이 없음이니 어째서인가? 더욱 깊은 불법 안으로 들어가 아무도 이길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유월치 보살의 법주는 어떤 것인가? 보살은 열 가지 일을 듣고 굳게 머무르니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부처가 있든 없든 동요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법이 있다거나 법이 없다거나 해도 동요하지 않음이며,
셋째는 보살이 있든 없든 동요하지 않음이요,
넷째는 보살도를 구하는 자가 있든 없든 동요하지 않음이며,
다섯째는 이 법을 얻든 얻지 못하든 동요하지 않음이요,
여섯째는 과거의 모든 부처가 있든 없든 동요하지 않음이며,
일곱째는 미래의 모든 부처가 있게 되든 있게 되지 않든 동요하지 않음이요,
여덟째는 현재의 모든 부처가 있든 없든 동요하지 않음이며,
아홉째는 부처님의 지혜가 다하든 부처님의 지혜가 다하지 않든 동요하지 않음이요,
열째는 과거 세상 일과 미래 세상 일과 현재 세상 일이 여러 가지든 한 가지든, 끝내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또 이 보살은 이 열 가지 일을 가르쳐 배우게 해야 하는데 그 열 가지란

첫째는 한 슬기를 향하되 여러 슬기에 들어가고,
둘째는 여러 슬기를 가지고 한 슬기에 들어가며,
셋째는 한 슬기로 여러 일에 들어가고,
넷째는 여러 일에서 한 슬기에로 들어가며,
다섯째는 시방의 사람을 허공에다 두고,
여섯째는 허공으로 시방의 사람에게 들어가며,
일곱째는 생각으로 동요하지 않음에 들어가고,
여덟째는 동요하지 않음으로 생각 속에 들어가며,
아홉째는 허공을 가지고 생각 속에 들어가고,
열째는 생각을 가지고 허공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모든 공덕의 법은 그 가운데 들어가나니, 그러므로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여덟째, 구마라부 동남 보살은 어떤 법주인가? 보살은 열 가지 일 가운데 머무르는데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행과 입의 말과 마음의 생각이 정결하고,
둘째는 아무도 그 장단(長短)을 얻을 수 없으며,
셋째는 마음은 오로지 욕심이 어디서 생기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넷째는 시방 사람 누구에게 인자한 마음이 있는지를 알며,
다섯째는 시방 사람의 믿음을 다 알고,
여섯째는 시방 사람이 여러 종류임을 다 알며,
일곱째는 시방 사람의 지음을 다 알고,
여덟째는 모든 국토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다 알며,
아홉째는 신족으로 날아갈 곳을 생각하고,
열째는 모든 법의 청정함을 배우는 것이다.

이 보살은 다시 열 가지를 더 배워야 하는데 어떤 것인가?

첫째는 모든 불찰을 배워 알아야 하고,
둘째는 모든 불찰을 감동시킴을 배워야 하며,
셋째는 자재하게 짓는 위신을 배워야 하고,
넷째는 모든 불찰을 관찰하기를 배워야 하며,
다섯째는 한 불찰에서 다시 한 불찰로 가기를 배워야 하고,
여섯째는 무수한 불찰에 가기를 배워야 하며,
일곱째는 무수한 법에 대해 묻기를 배워야 하고,
여덟째는 변화가 환술처럼 자재로이 짓는 것임을 배워야 하며,
아홉째는 부처님의 소리를 배워야 하고,
열째는 무수한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한 번 생각만 해도 곧 그곳에 두루 이르게 됨을 배워야 하나니 어째서인가? 한 법 속에 들어가 행함이 많기 때문이다.

아홉째, 유아라사 보살은 어떤 법주인가? 보살은 열 가지 일로써 얻는데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시방 사람의 출생을 다 알고,
둘째는 시방 사람이 얽매이는 은애(恩愛)를 다 알며,
셋째는 시방 사람들 생각의 본말(本末)이 나온 곳을 다 알고,
넷째는 시방 사람이 지은 전생의 선악이 나아가는 곳을 다 알며,
다섯째는 여러 가지 모든 법을 다 알고,
여섯째는 시방 사람 생각의 여러 가지 변화를 다 알며,
일곱째는 모든 불찰의 무너짐과 선악을 다 알고,
여덟째는 과거·미래·현재의 무수한 세상 일을 다 알며,
아홉째는 시방 사람들의 같고 같지 않음을 다 알고,
열째는 시방 사람들을 가르쳐 불법을 설명할 줄을 압니다.

이 보살은 또 10처(處)를 배워 알아야 하는데 어떤 것이 10처인가?

첫째는 불법의 궁전을 배워야 하고,
둘째는 불법 궁전을 짓는 법을 배워야 하며,
셋째는 불법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배워야 하고,
넷째는 불법 궁전에서 가르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다섯째는 부처가 출입하는 궁전을 배워야 하고,
여섯째는 법의 궁전을 배워야 하며,
일곱째는 법왕의 궁전을 배워야 하고,
여덟째는 법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며,
아홉째는 안행법왕(安行法王)을 배워야 하고,
열째는 법왕의 가르침을 다시 지어 받들어 사용함을 배워야 하나니, 어째서인가? 마음이 점차 부처님의 대도로 들어가서 들었던 법을 스스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열째, 아유안 보살의 법주는 어떤 것인가? 보살은 여러 지혜 가운데 들어가 모두 분별해 아는데 그 열 가지 지혜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무슨 인연으로 무수한 불찰을 감동시킬까 하는 것이요,
둘째는 무수한 불찰 안의 일을 밝히는 것이며,
셋째는 나는 날마다 무수한 불찰 안에 보살을 두리라 하는 것이요,
넷째는 나는 날마다 무수한 불찰 안의 사람을 제도하리라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나는 무수한 불찰 안의 중생들을 안온하게 하리라 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시방의 무수한 사람들이 다 내 소리를 듣게 하리라 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시방의 사람들을 다 아는 것이요,
여덟째는 시방 사람들 생각의 선악을 나는 다 알리라 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시방 사람들을 나는 다 불도 안으로 인도하리라 하는 것이요,
열째는 시방 사람들을 나는 다 제도하리라 하는 것이다.

유라사 보살은 아유안 보살의 몸의 행과 입의 말과 뜻의 생각으로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아유안 보살의 일을 도저히 알지 못한다. 또한 그 신족을 알지 못하고 그 비상[飛]을 알지 못한다. 아유안 보살의 과거·미래·현재의 일을 알지 못하고 그가 생각하는 불찰을 알지 못하며, 또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그는 지혜로 열 가지 일을 행하기 때문에 유라사 보살은 아유안 보살이 행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아유안 보살은 부처님의 열 가지 지혜에 들어갈 수 있는데 어떤 것이 열 가지 지혜인가?

첫째는 과거·미래·현재의 끝없음을 부처님께 속히 배우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불법을 다 구족함을 부처님께 배우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법에 걸림없음을 부처님께 배우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불찰을 내가 호지하리라는 이 공덕과 위신을 부처님께 배우는 것이요,
여섯째는 헤아릴 수 없는 불토의 끝없음을 다 밝게 알리라 함을 부처님께 배우는 것이요,
일곱째는 시방의 무수한 불찰을 다 안온하게 하리라 함을 부처님께 배우는 것이요,
여덟째는 시방 사람의 행을 다 부처님께 배우리라 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모든 법의 지혜에 다 들어감을 부처님께 배우는 것이요,
열째는 부처님의 모든 지혜를 다 알고자 하여 부처님께 배운다.

어째서인가? 다 구족히 알아서 부처님의 지혜를 환히 깨치면 누구에게 다시 도를 배우는 일이 전연 없기 때문이니, 이것이 아유안이 열 가지 법으로 보살의 도를 행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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