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지본혜업품(智本慧業品)

25. 지본혜업품(智本慧業品)

그 때에 지적(智積)보살이 그 모임에 있다가 부처님 앞에 나아와 여쭈었다.

“보살이 어떻게 해야만 보요 다라니를 얻어 다시 잊어버리지 않고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또 그 다라니의 힘으로 스스로 업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지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야, 그 어떤 보살이든지 지혜의 근본에 머물러 지혜의 업을 일으켜야만 비로소 보요 다라니를 얻어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고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느니라.”

지적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거룩합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해설하여 주옵소서. 어떤 것을 지혜의 근본이라 하고 어떤 것을 지혜의 업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를 위해 해설하리라.”

지적보살은 분부를 받아 들었다.

“족성자야, 이치를 자세히 듣고서 마음에 간직하여 잘 생각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법을 들은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원만히 해설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관찰하여 분별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대중을 계몽시켜 그들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차례에 따라 잘 관찰하여 그 근원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때에 맞추어 중생을 일깨워 건립(建立)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평등한 행을 닦아 치우침을 없애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고르고 반듯한 행을 받들어 삿되거나 의심스러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마음에 아무것도 나는[生] 것이 없으며 전연 집착하지 않음이 지혜의 근본이고, 마음은 비록 나는 것이 없더라도 경전을 널리 설할 수 있음이 지혜의 업이다. 한가한 곳에서 고요히 생각하여 적막한 마음을 지님이 지혜의 근본이고, 몸과 마음이 함께 조용하여 어지럽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다. 마음이 항상 집중하기를 즐겨해 만 가지 일이 일어나지 않음이 지혜의 근본이고, 1승의 이치를 분별하여 어기거나 버리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다. 오로지 담박한 마음을 닦아 널리 관찰함이 지혜의 근본이고, 밝은 해탈을 얻어 뭇 어두움을 깨끗하게 제거함이 지혜의 업이다.

오롯하게 해탈의 문을 따름이 지혜의 근본이고, 과거·미래·현재 3세의 일을 증명함이 지혜의 업이다. 도(道)의 이치를 독실히 믿어 의혹을 없앰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거리낌을 다 벗어남이 지혜의 업이다. 그 마음이 겁약하지 않고 용맹스러운 슬기를 지님이 지혜의 근본이고, 몸과 마음이 여유가 있어 급급하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다. 그 뜻이 조용하여 급작스럽게 움직이지 않음이 지혜의 근본이고, 멀고도 오래된 일을 생각하여 다 기억함이 지혜의 업이다. 헐뜯기는 일이 있더라도 곧 마음을 억제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마음이 항상 바르고도 안정되어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올바른 뜻을 닦아 그 뜻으로 법을 통달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뜻은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는 것도 아님이 지혜의 업이다.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으로 그 나쁜 근원을 버리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이미 근원을 깨끗이 하고서 뭇 결함을 아주 제거하여 모든 법을 깨닫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신족(神足)을 배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이미 행하는 곳이 없으면서도 멀리까지 신족을 구사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다섯감관[五根]을 조복하여 그 근원을 항상 고요하게 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감관의 그 귀취(歸趣)를 분별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다섯 가지 힘[五力]에 머물러 움직일 수 없는 세력을 지니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악마와 진로(塵勞)를 제거하되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일곱 가지 깨달음[七覺]을 요달하여 유순하는 인[柔順忍]을 얻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법을 분별하되 그 법이 다 자연스러운 것이 지혜의 업이다. 바른 길을 모두 통창하여 막힘 없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떠돌아다니는 뗏목[浮筏]의 비유를 식별하여 법답지 못한 자를 법에 세우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괴로움과 집기[集]를 분명히 알아 도업(道業)을 닦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진리를 다하는 지혜의 근본이란 끝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경전을 외워 그 문장과 구절의 이치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이미 경전에 통달하여 받들어 행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들은 것을 모두 그대로 기억하여 간직함이 지혜의 근본이고, 뭇 이치를 실행에 옮기되 그 이치를 어기지 않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음향(音響)을 받아들이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경전에 수순하여 그 바른 뜻을 아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모든 만물은 덧없는 것임을 관찰함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법에 지어감[行]이 없음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모든 만물은 죄다 괴로운 것임을 관찰함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법은 본래 다 공하여 허무한 것임을 깨달음이 지혜의 업이다. 모든 법에는 내가 없음을 관찰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중생들은 본래가 다 청정하다고 관찰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진리의 법을 듣고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법의 그 귀취(歸趣)를 분별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열반이란 고요하고도 담박한 것임을 관찰함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법은 본래가 청정하고도 적멸한 것임을 깨달음이 지혜의 업이다. 경전의 이치를 듣고서 주저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의리(義理)를 분명히 깨달아 그 올바른 귀취를 아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진리다운 법을 듣고서 그 깊고 넓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분별하는 변재로써 그 근본을 판단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어떤 음성을 들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수시로 널리 법을 펼쳐 각각 그 처소를 얻게 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부처님의 변재를 듣고서 겁내거나 약해지지 않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변재를 알고서 두루 퍼뜨리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중생을 위해 인자한 마음으로 법행(法行)을 받드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자비심을 버리지 않고 그 자비를 중생들에게 더욱 더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나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비를 일으키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러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일에 다 집착을 떠나 다함이 없는 자비를 일으키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도법(道法)을 사랑하여 기쁜 마음을 내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도법을 함부로 높이거나 낮추지 않는 동시에 어기거나 잃어버리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다. 얽매임과 위태로운 일을 떠나서 관찰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자신의 위치를 알고서 행동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항상 부처님을 기억하며 마음에 다른 생각을 두지 않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법의 몸[法身]을 분명히 알아 치우침 없는 것이 지혜의 업이며, 항상 경전을 염하여 그 의리(義理)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러면서도 그 의리를 분별하여 욕법(欲法)을 여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항상 성인들을 기억하여 모든 도를 공양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무위법을 얻어 더러움 없음을 관찰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항상 혜시(惠施)를 기억하여 모든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번뇌를 버리고서 도의 뜻에 수순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항상 금계를 기억하여 스스로가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러면서도 자기의 소행에 있어서 행한 바 없으면서 그 금계를 식별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항상 하늘을 염하여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법이 청정하여 더러운 번뇌를 여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어떤 것을 듣더라도 그 들은 것에 대한 이치를 풀이하여 통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세속과 더불어 덮거나 계교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하는 사업에 있어서 조용하고도 자세하여 실수 없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하는 주체도 없고 갚음도 없음을 환히 깨닫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스스로 훌륭한 체하여 교만을 부리지 않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끝없는 총명을 얻어 큰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지혜의 근본이고,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일을 일으키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8만 4천의 경법 갈무리[藏]를 다 간직한다면 이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8만 4천의 모든 행을 분별한다면 이것이 지혜의 업이다. 그 시기를 알아 때맞추어 경전을 널리 설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응하는 그대로 경전을 강설하되 어기거나 잘못됨이 없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중생을 개화하여 도를 건립(建立)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지혜바라밀과 착한 방편으로 중생을 가르쳐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세우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다섯 갈래[五趣]에 태어남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태어나는 곳마다 많은 중생을 이끌고 보호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스스로 정근하여 음향의 인[音響忍]을 체득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항상 올바른 수행으로써 생멸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스스로 그 절도를 지켜 유순하는 인[柔順忍]을 얻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얻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부지런히 수행하고자 발심하여 퇴전하지 않는 지위에 서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초연하게 열반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그 행을 이룩하기 위해 보리수 아래에 앉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의심과 거리낌을 끊고서 이 평등을 수행하기 위해 발심할 때마다 이치에 수순하여 더 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성취함으로써 가장 올바른 깨달음을 얻는 것이 지혜의 업이니라.”

그 때 부처님께서 거듭 이 이치를 선창(宣暢)하시려고 게송을 읊으셨다.

만약 그 법을 받음에 있어서
받들어 여쭙되 게으르지 않으면
이는 곧 청정한 사람으로서
지혜의 근본을 받드는 것이고

들은 것을 능히 연설하되
인자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펼치면
이는 수승한 보살로서
지혜의 업을 일으키는 것이네.





착한 뜻으로 생각함은
지혜의 근본을 밝힘이고
그 소행을 분별하여 연설함은
지혜의 업을 일으키는 것이네.





수순하는 행을 생각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행을 다른 사람에게 널리 설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생멸 없는 마음을 얻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마음에 행을 일으키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바르고 참된 행을 깨끗이 닦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소행을 잘 펼치는 것이
이 지혜의 업이다.





오롯하게 고요한 도를 행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몸과 마음에 다 나를 계교하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생사의 두려움을 없앰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1승을 즐거워하고 사랑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고요한 관찰을 좋아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해탈하는 일을 생각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3해탈문에 정근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3달지(達智)를 증명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4정근(正勤)을 닦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나 없음을 염원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나쁜 행을 버리고 착한 행을 닦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본래가 청정하여 선악의 법을 다 제거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4신족(神足)을 부지런히 이룩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신족을 탐내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청정한 해탈을 독실히 믿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거리낌을 다 벗어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정근하되 치우치지 않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몸과 마음이 급급하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그 뜻이 조용하고 상세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어떤 처소에도 집착하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스스로 선정을 깨달아 앎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청정한 선정을 행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5근(根)을 잘 건립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중생들의 모든 근을 앎은
이 지혜의 업이다.





5력(力)을 받들어 행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성스러운 지혜 얻기에 정성을 다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유순한 인을 깨달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법에 다 환히 통달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부지런히 도를 닦아 정진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법과 법 아닌 것을 다 벗어남은
이 지혜의 업이다.





괴로움을 알아 자연의 도업을 닦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멸진(滅盡)하지 않고 진리를 증명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경전의 이치를 닦아 지님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이치를 실행에 옮김은
이 지혜의 업이다.





바른 법 듣기를 싫어하지 않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법대로 순조롭게 행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응함에 따라 그 진리를 구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성스러운 진리를 받들어 행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수명에 의지하지 않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법의 가르침대로 생각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만물을 덧없다고 관찰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만물은 나고 죽는 일 없다고 앎은
이 지혜의 업이다.





만물은 괴롭다고 믿는 것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법을 함이 없다고 생각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모든 법은 나 없다고 믿는 것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법성은 본래 청정하다고 생각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열반이 고요하다고 믿는 것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중생도 아주 열반할 수 있다고 생각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그 심오한 이치를 관찰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이치를 깨달아 분별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경전을 독실히 믿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경전의 법을 널리 베풂은
이 지혜의 업이다.





모든 음향(音響)을 두려워하지 않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음향의 귀취를 깨달아 앎은
이 지혜의 업이다.





부처님의 변재를 여의지 않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변재를 깨달아 마음대로 설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풂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자비를 베풀되 반연을 없앰은
이 지혜의 업이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이롭게 하되 집착된 생각을 없앰은
이 지혜의 업이다.





항상 기쁜 마음을 지님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일부러 기쁜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은애(恩愛)를 조작하지 않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은애에 벗어난 마음을 갖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항상 부처님을 기억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법신의 가르침에 따름은
이 지혜의 업이다.





항상 경전을 생각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법의 보응을 분명히 앎은
이 지혜의 업이다.





성인의 뭇 공덕을 기억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공덕의 함이 없음을 깨달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보시하기를 마음껏 좋아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보시하되 온갖 욕심을 버림은
이 지혜의 업이다.





계율로서 청정을 갖춤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계율에 머물되 번뇌를 없앰은
이 지혜의 업이다.




큰 신천(神天)을 기억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청정하고도 더욱 청정하기를 기억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들은 것에 다 통달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세속에 같이 더럽히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삼가고 조심스레 업을 잘 닦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업을 일으키되 조작이 없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겸손하여 제 잘난 척하지 않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자신을 슬기롭게 여기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몸소 항상 정근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중생을 위해 수행에 힘씀은
이 지혜의 업이다.





모든 법장(法藏)을 다 간직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중생의 행을 요달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온갖 악을 스스로가 벗어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세 갈래의 중생을 제도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어질고 자애로워 보시하는 일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중생을 개화하되 더러움을 여의게 함은
이 지혜의 업이다.





중생을 다 평등하게 봄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이익을 베풀되 부처님의 공덕에 따름은
이 지혜의 업이다.





생사에 두려움을 없앰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생사에 생각까지도 일으키지 않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성내지 않고서 진지(盡智)를 얻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생멸 없는 지혜를 일으킴은
이 지혜의 업이다.





만약 음향의 인[音響忍]을 얻는다면
이 지혜의 근본이고
그 생각하는 대로 행한다면
이 지혜의 업이다.




유순한 법인(法忍)을 이룩함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생사 없는 인(忍)을 얻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퇴전하지 않는 지위에 머묾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열반의 자리에 나아감은
이 지혜의 업이다.





보리수 아래에 앉음은
이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통달하는 지혜를 얻음은
이 지혜의 업이다.





그 지혜의 근본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도의 마음이고
이 마음에 의지하여 하는 일은
곧 지혜의 업이다.





항상 이 도의 마음에 머물러
수시로 행동에 옮기되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면
이 업이 곧 지혜의 일이다.





만약 불도를 수행한다면
그 마음이 바로 도의 근본이니
부처님의 신력(神力) 이러하며
또 분별하는 변재 또한 그와 같다.




무수한 겁에 걸쳐
이 공덕을 찬탄하여도
부처님의 공덕과 광명은
끝이 없나니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과
현재의 부처님들이 그러하듯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미래 부처님도 다 그러하다.





그러기에 이 한량없는 부처님을
누구나 공양하려면
도의 마음을 따라야만
게으르지 않는 행을 성취하리라.

부처님께서 지혜의 근본과 지혜의 업을 말씀하시자 그 때 시방의 한량없는 불국토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보배로 장엄한 높은 자리도 그러하였다.

이에 지적보살이 부처님께 나아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무엇 때문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그 무수한 불토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허공에 높이 서 있는 보배 자리도 그러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답하셨다.

“족성자여, 이 지혜의 근본과 지혜의 업은 바로 경전의 법품이요, 과거 여래께서도 이 법품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는데, 그 때에도 지적보살이 허공에서 이 법품을 크게 보호해 지니면서 여래께 여쭈었고 여래께서도 그를 위해 해답하셨기 때문에 이제 온 땅이 크게 진동하고 광명이 또한 널리 비친 것이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