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탄회품(嘆會品)
그 때 잠깐 사이에 시방 보살들이 모두 모여들어 모습을 나타내니, 그 보살들의 숫자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들은 다 광명의 권유를 받아 사바세계에 모여서 높은 보배 자리에 나아가 부처님 앞에 서게 된 것이었다.
때에 부처님께서 조용히 선정으로부터 일어나시자 그 광명이 더욱 빛나고 저절로 소리가 울렸는데, 그 자연의 음성이 널리 삼천대천세계에 퍼져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니, 온 불국토의 믿음이 있거나 믿음이 없는 모든 이들이 이미 다 법기(法器)에 응하게 되었고, 비구·비구니·동남(童男)·동녀와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무리인 하늘·용·귀신·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들도 부처님의 음성을 듣더니, 몸과 마음이 흐뭇해지면서 공경하는 마음과 두려움을 더 느끼며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이어받아 저절로 생겨난 미묘한 보배 궁전에 모두 다 나아가 잠깐 사이에 높은 보배 자리에 이르러서 엎드려 예배하고 세 번 돌고 나서 각각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 광명의 음성이 또 널리 범천에 고하자, 범인천왕(梵忍天王)·범신천왕(梵身天王)·범만천왕(梵滿天王)·범도착천왕(梵度著天王)·대범천왕(大梵天王)과 광요천(光曜天)·소광천(少光天)·무량광천(無量光天)·광음천(光音天)·정엄천(淨嚴天)·소정천(少淨天)·무량정천(無量淨天)·난환천(難還天)·정신천(淨身天)·용과천(用果天)·무건천(無揵天)·어시천(於是天)·선시천(善施天)·선소시천(善所施天)·일선천(一善天) 들도 잠깐 사이에 높은 보배 자리에 모여 엎드려 예배하고 일곱 번 부처님을 돌고 난 뒤에 땅 위에 머물지 않고 각자 자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에 세존께서 대중들이 다 모여온 것을 보시고 그 현현제보살력(顯現諸菩薩力)이란 이름의 눈부신 빛을 내비치셨다. 눈썹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이 빛은 보살들을 일곱 겹 돌고는 보살들의 정수리 위에서 사라졌다.
때마침 수장화제법자재(首藏華諸法自在)보살이 이 빛을 쪼이자 곧 일체장엄정의적삼매(一切莊嚴定意的三昧)에 들었다. 그러자 그 높은 보배 자리가 저절로 부처님을 위해 사자좌로 변했는데 높이는 80억해(億)이고 백천 길[尋]이며, 아름다운 보석이 다리를 이루고 미묘한 뭇 보배가 주위의 난간이 되었고, 그 위에는 아름다운 옷을 깔고 또다시 온갖 꽃을 뿌리는 등 마음을 기쁘게 하는 갖가지 보배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이 인연의 변화를 보게 된 보살들은 다른 사모하던 생각을 끊었고, 모임의 대중도 다 그 빛을 스스로 보게 되자 크게 기뻐하고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마음으로 바라는 일들을 주저 없이 모두 나타내 보였다.
때에 수장화제법자재보살은 다시 찬탄시제악취(讚歎施諸惡趣)란 삼매에 들어 여래의 큰 사자좌를 별도로 만들어 놓은 뒤에 조용하고도 편안히 그 삼매로부터 일어나 마음껏 공경하면서 합장하고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저 태양의 밝은 광명은
세속을 비출 뿐이고
제석천왕의 위신과 공덕은
거느린 도리천을 즐겁게 할 뿐이고
저 범천 세계의 무리들은
범천왕을 높여 사모할 뿐이지만
부처님의 그 성스러운 위신은
삼천세계를 변화로 움직이시네.
자유롭게 모든 법을 관찰하시며
자연스럽기 허공과 같은
모든 법은 요술 같은 아지랑이 같으며
물에 비친 달과 같으니
온갖 유위법은
주장할 것이 전혀 없으며
허망하기 그지없음을 환히 아시고
중생의 청정함을 밝게 보시네.
중생의 마음이란 물질을 그리워하지만
이 물질이 그 어느 곳에 있을까.
실체 없음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그 자연스런 마음을 얻을 수 있네.
일체가 비록 청정하다 할지라도
그 청정함마저도 요술과 같네.
자연스런 그 마음에
거짓이 어찌 자리잡으리.
그러므로 본래의 청정함을 깨달아
선결(鮮潔)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 오는 경계가 곧 조용하여서
세속의 욕망이 모두 없어지고
모든 생각에 마음이 이미 해탈되어
갖가지 물질을 다 환화(幻化)처럼 본다네.
허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법왕(法王)께 공양하기 위해
이 국토의 모든 보배 구슬로
사자좌를 만들었으니
부디 이 사자좌에 앉으시어
억천 중생을 일깨워 주소서.
여기에 건립한 깃발·일산과
장엄하게 꾸민 깃대들은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습니다.
오는 것 없고 가는 것도 없는
그 모든 법을 깨우쳐 주시려면
곧 이 중생들을 위해
수승한 변화를 나타내 주소서.
큰 성인께서 깨끗한 음성으로 펴시는
그 연설은 거룩하고 상쾌합니다.
이 세간의 큰 횃불이 되시니
위신과 공덕이 한량없습니다.
이제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셔서
이 높은 사자좌에 오르시어
그윽한 이치의 경전을 풀어 주셔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끊어주소서.
그러므로 시방의 청정한 중생들
모두 다 여기에 모여 와서
각각 차례대로 자리에 앉아
법의 이치를 듣고자 합니다.
이 중생들이 발심한
그 본래의 서원을 헤아리셔서
큰 성인께선 사자좌에 오르시어
자세하게 법을 펼쳐 주소서.
그 때 세존께서 수장화제법자재보살의 그 청정한 뜻을 아시고는 곧 청정한 사자 법좌에 앉아 즉시 여러 보살들에게 보살로서 수행해야 할 모든 보살행을 강설하셨다. 또 부처님의 법력으로써 보살도를 청정케 하는 무개문(無蓋門)이란 경전을 강설하셨고, 다음에는 그 성스러운 보신(寶身)을 성취하는 근본을 말씀하셔서 일체 법에 자유를 얻게 하고, 다라니에 들어가 그 이치를 분별 해설하기도 하고, 큰 신통의 지혜에 들어가는 법문을 분석하기도 하며, 또 물러나거나 되돌아오지 않는 미묘한 법 바퀴를 굴리셔서 모든 교리[乘]를 말씀하시되 1승 교리에 들어가 법계를 헐지 않으시고,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그 나아갈 길을 말씀하시되 모든 법을 풀이하여 이끌어 주시며, 다시 마군들을 굴복시켜 법에 수순하게 하시되 모든 번뇌와 62종의 삿된 소견을 버리고 유순(柔順)한 법에 들어가게끔 개화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모든 애욕과 나쁜 소견과 어지러운 계율을 벗어나 거리낌 없는 지혜에 들게 하셨다.
이와 같이 온갖 공덕을 권유하기 위해 널리 접촉하시고, 방편의 지혜를 펼쳐 일체 부처님의 그 평등한 경계에 다 들게 하되, 그 어떤 번뇌도 없고 드나드는 자취도 없는 그러한 경계에서 법을 신설하고 그 진리를 분별하시며, 나아가서는 모든 법문에 들게 하되, 생각도 생각 아님도 없고 순응도 순응 아님도 없는 그러한 경계에서 깊고도 미묘한 12연기를 깨닫게 하시니, 이는 바로 성스러운 지혜의 공덕이 마천(魔天)에까지 도달함이며, 또 부처님의 몸과 입과 뜻이 다 장엄함으로써 그 생각하심에 따라 다함이 없는 밝은 지혜로서 성문들에게는 바로 4성제로 개화하시고, 연각들에게는 계율로써 그 마음을 깨우치시고, 보살들에게는 일체의 지혜 경계를 널리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법에 자재롭게 하기 위해 여래의 공덕과 이름을 널리 펼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러한 끝없는 법전을 강설하실 때에 그 교화를 받은 보살들은 지극하게 바라던 바를 모두 다 이루었고, 여래께서 나타내신 변화에 감동되어 모든 의심의 그물을 찢고 일체 마군의 경계를 벗어나서 그들을 항복 받았다. 그리하여 여래께서 훈계하신 그 이치를 더욱 빛내고 여래의 근본 업을 완전하게 갖추려고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세존께서 사자좌에 앉아 무개문(無蓋門)을 널리 설하셨으며, 이에 따라 첫째로 보당(寶幢)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불장엄(佛莊嚴) 삼매에 들어서 그 모임의 대중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불장엄을 이룩하여 위신을 세우게 하였고, 둘째로 명문력(名聞力)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홍련화(紅蓮華) 삼매에 들어서 모임의 대중으로 하여금 모든 꽃을 다 법의 꽃[法華]으로 만들어 그 법의 꽃을 세존과 여러 보살들에게 뿌리게 하였다.
셋째로 해각(海覺)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중향(衆香) 삼매에 들어서 모임의 대중으로 하여금 그 털구멍으로부터 전단향(栴檀香)의 미묘한 맛을 연출하게 하며, 넷째로 명망(明網)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광명(光明) 삼매에 들어서 일체의 광명을 내어 모임의 대중으로 하여금 다 안락하게 하며, 다섯째로 대애념(大哀念)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무순(無眴) 삼매에 들어서 모임의 대중으로 하여금 감히 여래의 깜박이지 않는 눈을 우러러 바라보게 하였다.
여섯째로 이구찰무저(離垢察無底)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법열(法悅) 삼매에 들어서 그 모임의 대중으로 하여금 바른 법과 좋은 법을 생각하여 법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뜻을 갖게 하며, 일곱째로 변엄(辯嚴)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원적(願迹) 삼매에 들어서 모임의 대중으로 하여금 다 다섯 가지 덮개[五蓋]에 대한 우환을 깨끗이 제거하게 하며, 여덟째로 변제법왕(變諸法王)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무홀망(無忽忘) 삼매에 들어가서 그 모임의 대중으로 하여금 불도에 뜻을 두어 여래의 행을 사모하게 하며, 아홉째로 심용(心勇)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그 모임의 대중으로 하여금 모든 마군과 외도의 원망과 해치려는 마음을 굴복시켜 다 교화를 따르게 하였다.
열째로 항제마(降諸魔)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훼마장(毁魔場) 삼매에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항제마보살이 이 삼매에 들자 때마침 삼천대천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마군의 무리와 마병(魔兵)들이 황급히 자기 궁전에서 홀연히 사라지더니 부처님의 높은 보배 자리 앞에 나아와서 엎드려 예배하고 한량없이 돌며 공경하였다. 그리고 기이하고도 미묘한 물건을 큰 성인께 공양하면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합장하여 천사(天師)에게 이 경전을 선포할 것을 권하였다.
“원컨대 수시로 저희들을 일깨우고 가르침을 주소서. 저희들은 오늘 항마(降魔)보살의 위신력 때문에 여기에 와서 청합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저희들은 이제부터 마군이 하던 일을 다 버리고 중생을 어지럽게 하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법을 듣기 위해 여기에 왔으니 큰 성인께서는 저희들의 뜻을 살펴 주소서.”
그 때 세존께서 마군들의 생각을 살펴보시고 칭찬하셨다.
“너희들은 참으로 훌륭하구나. 너희 무리들은 이제 마군이 하던 일을 다 버리고 여래에게 이 경법을 널리 펴도록 권하니, 이 인연으로 너희들은 일체 마군의 업을 다 벗어나는 그 과보를 얻으리라. 왜냐 하면 수백 수천 년 동안 어둠에 휩싸여 있던 방도 그 안에 등불 하나만 켜면 곧 어두움을 다 없앨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백천 겁 동안 번뇌와 어리석은 욕심을 일으켰더라도 하나의 착한 뿌리를 심는다면 그 마음의 힘으로써 뭇 근심을 남김없이 다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이 하루나 한 달 동안 궁전 안에 있더라도 큰 보배 구슬 하나만 가진다면 언제나 눈부시게 빛을 내어 그 뭇 어두움을 제거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한마음으로 착한 뿌리를 지니고 그 수행을 잘 관찰하며 그를 따라 수행할 것을 생각한다면 일체의 무명과 62가지 삿된 소견과 96가지 뭇 환란을 다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너희들이 여래에게 와서 문안하고 설법을 청한 그 공덕의 뿌리를 말미암아 앞으로는 그 어떤 어리석고 어두우며 슬기롭지 못한 짓이라도 점차 제거하고서 이 끝없는 도법(道法)의 문을 얻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