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긴나라왕소문경(大樹緊那羅王所問經)
대수긴나라왕소문경(大樹緊那羅王所問經) 제1권
구마라집(鳩滅什)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祇闍堀山)에서 큰 비구들 6만 2천 인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 7만 2천 인은 널리 알려진 사람들로서 시방세계에서 모두 모여왔다.
그들은 모두 다라니를 얻어 변재(辯才)에 걸림이 없었고 생각하는 지혜에 들어가 부끄러워할 줄 알았다. 또 그 뜻은 금강처럼 견고하고 일체 불법을 잘 닦아 성취하였으며 청정한 의지를 완전히 성취하였다. 그 자신도 보리의 마음을 잃지 않았고 또 남에게도 잃지 않게 하며, 마음을 길들여 부드러워졌고 모든 감관을 거두어 억제하여 좋아하는 물건을 잘 버릴 줄 알았다.
청정한 계율로 스스로 장엄하고 중생들에 대해 그 마음이 평등하며 부드럽고 인욕 하는 힘으로 장엄하였다. 한량없는 나유타 아승기겁 동안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였으며, 온갖 선정의 해탈 삼매에서 유희하고 신통 자재 하여 걸림이 없었다. 지혜로 일체 법구(法句)의 뜻을 잘 분별하며, 그 마음은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중생에 대한 마음이 땅·물·불·바람처럼 평등했다.
애욕과 성냄을 떠나 항상 그 마음이 인자하고, 인자한 광명을 늘 보내어 중생들을 두루 비추었다. 대비에 안주하여 항상 일체 중생을 부지런히 관찰하고, 큰 기쁨에 머물러 법을 구족함을 즐거워했으며, 큰 평등에 머물러 이익과 손해·헐뜯음과 기림·칭찬과 비방·괴로움과 즐거움 등에 대한 둘이 없는 지혜를 얻어, 이와 같이 세상 법을 초월했다.
지혜의 광명으로 자신과 타인을 제어하고 온갖 악마를 항복 받았으니, 세상에서 그들을 만나기가 마치 우담바라꽃이 피는 것을 보는 것처럼 어려웠다. 중생들 가운데에서 큰 사자처럼 외쳤으며, 열반을 완성하여 그 기쁨과 즐거움이 매우 깊고, 네 가지의 두려움이 없어 부처의 인가를 얻었으며, 틀림 없이 기억하고 말대로 행하였다.
깊은 경전의 뜻과 잘 상응하여 저 해와 달을 가리우고 그 이름은 시방세계에 두루 퍼졌으며, 모든 부처님의 보호를 받고 법장(法藏)을 잘 지켜 3보의 종자를 끊어지게 하지 않고, 가없는 부처님의 세계에 두루 노닐어 그것을 잘 알았다. 모든 부처님을 알맞게 공양해 모시어 그 법을 들어 수지하고 부지런히 늘 정진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방편의 지혜로 저쪽 언덕에 이르렀다.
일체 중생의 근기에 잘 따라 알맞게 설법하고 일체 중생들 마음의 작용을 잘 알며, 청정한 마음과 묘한 방편의 말로 큰 의사가 되어 온갖 병을 잘 다스렸다. 한량없는 과거 아승기겁 동안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심은 갖가지 선근으로 상호(相好)와 복덕을 모아 잘 장엄하고,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 등 삼매를 잘 알며 모든 현상은 환(幻)과 같고 불꽃 같으며, 물 속의 달과 같고 꿈이나 거울 속의 영상과 같음을 잘 알고, 모든 현상은 허공에 있는 모습과 같음을 잘 알았다.
모든 중생들의 음성과 말을 잘 알고 법을 잘 분별하여 즐겨 설함에 다함이 없으며, 출세간의 지혜를 잘 관찰하고 큰 힘을 이루어 부처님의 열 가지 힘[十力]에 근접하였다.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眼)·법안(法眼)·불안(佛眼) 등을 모두 얻고, 조도법(助道法)의 분(分)들로 잘 장엄하였으며 뛰어난 일체의 도를 잘 알고, 보살의 법장에 포섭된 것을 밝게 알아 불퇴전의 법륜을 잘 굴렸다.
삼매의 인(印)을 얻어 금강장(金剛場)삼매에 이를 줄을 잘 알고, 모든 법의 자재한 삼매가 항상 그 앞에 나타나 있으며, 큰 보배 횃불을 들고 중생들에 대한 마음은 겸손하였다. 일체 중생들 마음과 또 그들의 지혜를 잘 관찰하여 부처님의 지혜에 근접하였고, 또 중생들로 하여금 보시하고 불사(佛事)를 짓게 하여 일이 완성되고 모두 모였으니, 그 일체의 공덕이 미래의 세계에까지 뻗쳐 그 공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이름은 보주(寶住)보살·보유(寶有)보살·보수(寶手)보살·보화(寶花)보살·보왕(寶王)보살·희견(喜見)보살·애의(愛意)보살·애안견 (愛眼見)보살·지지(持地)보살·작희(作喜)보살·대세(大勢)보살·대덕 (大德)보살·항마(降魔)보살·마구제(摩鳩提)보살·유천(儒天)보살·만다라향(曼陀羅香)보살·실(實)보살·등관(等觀)보살·무고하(無高下)보살·선어(善御)보살·일체중생불청우(一切衆生不請友)보살·미륵(彌勒)보살·운음(雲音)보살·지산엄(持山嚴)보살·산적(山積)보살·상우(上友)보살·용우(勇友)보살·광명(光明)보살·광덕(光德)보살·등왕(燈王)보살·관지(觀志)보살·광장엄(光莊嚴)보살·잡채관(雜綵冠)보살·천관(天冠)보살·천왕(天王)보살·천안관(天眼觀)보살·관세음(觀世音)보살·선비(善臂)보살·사지등(思質)보살·선주지(善住志)보살·선주업(善住業)보살·부동족집(不動足集)보살·금강족진(金剛足進)보살·월삼계족(越三界足)보살·질변(疾辯)보살·속변(速辯)보살·무단변(無斷辯)보살·주변(住辯)보살·묘음(妙音)보살·범음(梵音)보살·희일체중생음(喜一切衆生音)보살·문수사리법왕자(文殊師利法王子)보살 등 상수(上首) 7만 2천 인이었다.
또 이 삼천대천세계의 제석천·범천·사천왕과 큰 위덕이 있는 모든 하늘·용·야차·건달바·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비인(人非人)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등이 모두 모여와 법을 들으려 하였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백천 대중에게 둘러싸여 공경을 받으며 설법하셨다.
그 때에 천관(天冠)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르게 하고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다음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세상을 뛰어넘었으면서 세상을 위해 등불이 되시며
지혜로 이 세간을 이롭게 하시고
어둠에 얽매인 이에게 광명을 얻게 하시나니
저는 지금 세간을 떠난 이께 머리를 조아립니다.
시방세계에 가장 뛰어난 보시를 행하시고
그 마음을 잘 다루어 저 언덕에 이르시고
사람·하늘·용·귀신 등의 공양을 받으시나니
번뇌를 다 태워버린 이께 머리 조아려 예배합니다.
뛰어난 모습으로 세간을 많이 이롭게 하시고
금빛의 원만한 광명을 두루 널리 펴시며
깨끗하고 묘한 계율과 크고 아름다운 음성을 가지셨나니
삼계에 비할 이 없는 이께 머리를 조아립니다.
중생들 제도하여 저 언덕에 이르게 하시고
온갖 주장을 조복하여 움직일 이 없으며
중생들의 마음을 모두 환히 아시나니
뛰어나신 대비에 머리 조아려 경례합니다.
온갖 번뇌 다 끊어 집착하는 마음 없고
힘으로 원수에게 항복 받고 계율에 잘 머무시며
하늘 중의 하늘은 온갖 번뇌를 깨끗이 하셨나니
머리 조아려 온갖 원수 항복 받은 이께 예배합니다.
온갖 보배 가운데 가장 더러움 없고
항상 지혜를 즐기는 우두머리 되시며
탐욕·분노·어리석음의 번뇌를 끊으셨나니
그 마음이 허공 같은 이께 머리 조아립니다.
네 가지 진리를 연설하여 네 가지 번뇌를 건너시고
감로(甘露)의 법을 연설하여 깨끗한 눈을 베푸시며
삼계에 유행하시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시니
윤상(輪相)을 가진 이께 머리 조아려 예배합니다.
항상 하늘과 사람의 공양을 받고
언제나 중생들 교화하여 해탈하게 하시며
허공과 사람과 하늘의 공양을 받으시나니
인간에서 뛰어난 이께 머리 조아려 예배합니다.
언제나 바르고 좋은 법 모으기를 즐기고
인자한 마음으로 평등하게 세간을 대하며
사람 중에 거룩하신 부처님께서는 바른 도에 머무시나니
일체 공덕 가지신 이께 머리를 조아립니다.
깨끗한 음성으로 하시는 말씀 훌륭하고 묘하며
뜻에 맞으며 부드럽고 깨끗한 음성으로
온갖 음성 다 알아 저 언덕에 이르게 하시나니
미묘하고 진실한 말씀에 머리 조아립니다.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 등 삼매에 나아가고
매우 깊어 보기 어려운 법을 잘 취하며
잘 정진하여 해탈에 드시나니
해탈의 길을 잘 아시는 이께 머리 조아립니다.
세존께서는 인연의 법을 잘 아시고
언제나 양극단의 견해를 잘 끊으시며
인연과 업의 과보를 진실로 말씀하시나니
머리 조아려 세간을 보시는 이께 예배합니다.
오는 것도 없고 또 가는 것도 없으며
교만함 없이 모든 현상을 잘 관찰하시되
환영이나 불꽃이나 물 속의 그림자와 같다고 보시나니
훌륭한 법안에 머리 조아려 예배합니다.
생(生)은 무생(無生)과 같아 전연 생(生)이 없으며
생도 멸함도 무멸(無滅)과 같으며
그 머무를 곳에 법다이 머무나니
부처님께서는 이런 곳에 잘 머무십니다.
하시는 그 말씀은 진실하시고
여여(如如)에 잘 머물러 기울거나 움직임이 없으며
금강산과 같은 몸 흔들림이 없나니
움직임이 없는 이께 머리 조아려 예배합니다.
행동과 말과 마음, 다름이 없고
그 이름은 한량없어 삼계에 널리 퍼지네.
저는 지금 훌륭한 장부님께 여쭙고자 하나니
부처님께선 주저 마시고 말씀하여 주소서.
그 때에 천관보살은 이렇게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여래·응공·정등각의 훌륭하고 묘한 법에 대해 조금 여쭙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허락하시면 감히 여쭙겠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천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의심이 있으면 마음대로 물어라. 내가 설하여 너의 마음을 기쁘게 하리라.”
천관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갖가지 장엄한 변재를 이루며, 어떻게 보살은 훌륭한 지혜를 얻어 매우 깊은 법을 잘 알아 분별하며, 어떻게 보살은 온갖 근기를 잘 알고, 어떻게 보살은 아는 그대로 잘 설법하며, 어떻게 보살은 모든 중생들 마음의 작용을 잘 알고, 어떻게 보살은 일체의 인행(因行)과 과보(果報)를 잘 알고, 또한 뛰어남을 잘 알아서 행하는 바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보시를 장엄하고, 어떻게 보살은 계율·인욕·정진·선정·지혜 등을 장엄하며, 어떻게 보살은 깨끗한 도를 장엄할 줄을 잘 알고, 어떻게 보살은 신통을 잃지 않으며, 어떻게 보살은 온갖 번뇌를 끊고, 어떻게 보살은 저 언덕에 가며, 어떻게 보살은 일체의 성문(聲門)·연각(緣覺) 및 모든 중생들과 다름없는 형상과 위의를 나타내고, 어떻게 보살은 생사를 관하되 열반에 머물지 않습니까?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중생세계와 움직이지 않는 법계를 관찰하고, 보살은 어떻게 이익을 잃는 것에서 물러나지 않고 이익을 잃는 것을 나타내며, 보살은 어떻게 많은 재물과 보배가 있고 봉읍(封邑)이 다함이 없어 방편의 힘으로 빈궁한 이를 위해 나타내고, 보살은 어떻게 온갖 행을 행하여 유위문(有爲門)에 있는 이를 무위문(無爲門)에 들어가게 하며, 보살은 어떻게 모든 법을 잘 관찰하고, 보살은 어떻게 모든 법을 분별하여 결정하며, 보살은 어떻게 세상법을 행하면서 거기에 더러워지지 않습니까?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법에 자재하여 남의 힘을 바라지 않고, 보살은 어떻게 항상 부처를 보며, 보살은 어떻게 자신을 잘 제어하여 어떤 악법도 없고, 보살은 어떻게 길잡이가 되어 법을 아끼지 않으며, 보살은 어떻게 중생들의 진실한 의지할 곳이 되고, 보살은 어떻게 모든 부처의 법바퀴를 잘 굴리며, 보살은 어떻게 모든 법에서 관정위(灌頂位)를 얻습니까?”
그 때에 부처님께서 천관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의 그 물음은 이익이 많아 세상을 안락하게 하고 사람과 하늘을 이롭고 편하게 하며 미래의 보살들을 거두어 제도할 것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과거에 항상 항하(恒河)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께 청해 묻더니, 지금 또 큰 이익을 얻어 미래의 보살들을 안락하게 하고 이 대승(大乘)의 법을 이 세상에 오래 머물게 할 것이다. 선남자여, 그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잘 들어라. 내가 마땅히 설하리라.”
천관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가르침을 받아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갖가지로 장엄한 변재(辯才)를 얻는다. 그 네 가지란, 보살은 중생들을 침해할 생각이 없고, 사랑하는 물건을 보시하되 후회하거나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설법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말을 중단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뛸 듯이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켜 ‘잘 합니다’라고 설법을 청하며, 밤낮으로 승방이나 불탑(佛塔)에서 보리심을 앞세워서 법에 대한 욕심을 내고 그 법을 즐거워한다. 그리하여 마음을 오로지 법을 보시하는 데 쓰되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갖가지 장엄한 변재를 얻는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훌륭한 지혜로 매우 깊은 법을 잘 분별해 안다. 그 네 가지란, 인연의 법을 따라 나[我]라는 실제의 성품을 알고, 중생들의 실제의 성품을 알며, 생사의 행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음을 알며, 모든 현상은 허공에 찍힌 모양임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온갖 근기를 안다. 그 네 가지란, 법계(法界)의 문을 잘 알고, 모든 법을 관찰하되 걸림이 없으며, 온갖 신통을 알고, 마음을 잘 억제하여 두 가지 행동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아는 그대로 잘 설법한다. 그 네 가지란, 변설의 지혜와 중생을 제도하는 지혜와 법을 분별하는 지혜로 자기 마음도 깨끗이 하고 중생들의 마음도 깨끗이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중생들 마음의 작용을 잘 안다. 그 네 가지란, 뛰어난 지혜와 걸림 없는 지혜로 방편을 잘 써서 온갖 행동에 후회함이 없고 자기를 잘 깨닫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짓는 인(因)과 얻어진 업보를 잘 알고 또한 뛰어남을 알되 행하는 바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 네 가지란, 단멸(斷滅)을 말하지 않고 상인(常因)도 말하지 않으며, 그 업보를 여실히 알고, 모든 법의 보이는 현상 가운데에는 나[我]도 없고 내 것[我所]도 없음을 그대로 나타내며, 그 업의 과보는 없어지지 않음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보시를 장엄한다. 그 네 가지란, 32상으로 장엄하고, 80가지 호(好)로 장엄하여 비유할 데 없는 좋은 몸과 다함이 없는 봉읍(封邑)과 또 그 보배로운 손[寶手] 등을 쓰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계율을 장엄한다. 그 네 가지란, 전륜왕이 되어 보리의 마음을 잘 장엄하고, 제석천왕이 되어 보리의 마음을 잘 장엄하며, 대범천왕이 되어 보리의 마음을 잘 장엄하고,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고 인간이나 천상의 좋은 곳에 나서 보리의 마음을 잘 장엄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인욕을 장엄한다. 그 네 가지란 깨끗한 음성과 가릉빈가의 소리를 내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그 마음이 즐거우며, 좋은 법을 굳게 닦아 금빛의 피부를 얻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정진을 장엄하여 무너지지 않게 한다. 그 네 가지란, 어떤 중생도 그를 무너뜨릴 수 없고, 중생들의 청하지 않는 벗이 되며, 하는 일이 있으면 뜻에 전념하여 게으르거나 싫어하지 않고, 즐겨 많은 지식을 모아 굳건한 지혜로 장엄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선정을 장엄한다. 그 네 가지란, 모든 어지러움이 없고, 방일함이 없으며, 인색함과 교만함이 없고, 단련된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지혜를 장엄한다. 그 네 가지란, 나·사람·중생·수명을 말하지 않고, 걸림 없는 변재가 있으며, 일체 문구의 뜻을 잘 분별하고, 일체 법에 의혹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깨끗한 도를 장엄한다. 그 네 가지란, 한적한 곳에서 인자한 마음을 일으키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며, 바른 법을 지켜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여래의 지혜를 내어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신통을 잃지 않는다. 그 네 가지란, 4선(禪)에 들어 물러나 잃지 않고, 4공정(空定)에 들어 방편을 알며, 마음이 자재하여 일체의 법을 알고, 신통으로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에 노니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온갖 번뇌를 끊는다. 그 네 가지란, 안도 고요히 하고 바깥도 고요히 하며, 잘 관찰하여 모든 현상은 환영이나 허깨비 같음을 알며, 큰 지혜의 힘이 있으나 교만한 힘이 아닌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저쪽 언덕에 간다. 그 네 가지란, 욕류(欲流)를 알아 유(流)를 버리려 하지 않고, 유류(有流)를 알아 마음대로 가서 나며, 견류(見流)를 알아 어떤 견해도 버리지 않고, 무명류(無明流)를 알아 인연의 법을 거스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일체의 성문·연각 및 모든 중생들과 다름이 없는 형상과 위의를 나타낸다. 그 네 가지란, 여환삼매(如幻三昧)를 잘 일으키며, 일체의 법의 모양을 여실히 알고, 다섯 가지 신통을 잘 관찰하며, 자신을 관찰하여 환화(幻化)와 같음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생사를 관찰하여 열반에 머물지 않는다. 그 네 가지란, 모든 부처님의 보호를 받고, 큰 자비의 마음과 선교방편과 본래의 원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중생세계와 움직이지 않는 법계를 관찰한다. 그 네 가지란, 자신의 실제 성품[實性]을 알고, 법의 성질을 알며, 중생의 성질을 관찰하여 지혜의 성질을 의심하지 않고, 중생들이 열반의 성질과 같음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이익을 잃지 않는 것에서 물러나지 않고 이익을 잃는 것을 나타낸다. 그 네 가지란, 마음을 오로지 하여 열반으로 나아가고, 수행하여 생사에 들어가며, 오로지 모든 불법에 뜻을 두고, 성문이나 연각(緣覺) 등을 억제하기 위해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많은 재물과 보배가 있고 다함 없는 봉읍(封邑)이 있어 방편의 힘으로 아무 재물이 없는 빈궁한 이들을 위해 나타낸다. 그 네 가지란, 존귀한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전륜왕이나 제석천왕·범천왕이 되어 나타내고, 빈궁한 중생들을 위하여는 빈궁한 이가 되어 나타내며, 구걸하는 이를 보면 가진 재물을 다 주고, 큰 부자를 보면 다함 없는 보배와 자재한 힘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유위(有爲)의 문에 있는 이를 무위(無爲)의 문에 들어가게 한다. 그 네 가지란, 일체의 모든 현상은 무상하다고 설명하고, 지혜의 행을 깨끗이 하며, 일체 법에는 나[我]가 없다는 것을 알고, 온갖 견해를 떠나 열반의 법을 얻고 고요한 지혜로 나아가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모든 법을 잘 관찰한다. 그 네 가지란, 혜안(慧眼)을 깨끗이 하고, 밝은 법안(法眼)을 얻으며, 불안(佛眼)이 앞에 나타나고, 모든 법에서 관정위(灌頂位)를 얻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모든 법을 분별하여 결정한다. 그 네 가지란, 변설의 지혜와 걸림 없이 진리를 아는 지혜와 4의(依)에 머무는 지혜와 다라니를 버리지 않는 지혜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세상 법을 행하면서도 그것에 더러워지지 않는다. 그 네 가지란, 세상 법을 관찰해 알고, 세간의 중생들보다 뛰어나고, 애욕과 분노를 끊어 그것에 물들지 않고, 끝까지 밝고 깨끗한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법에 자재로워 남의 힘을 바라지 않는다. 그 네 가지란, 선정으로 자재함을 얻고, 지(智)로 자재함을 얻고, 혜(慧)로 자재함을 얻고, 방편으로 자재함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언제나 부처를 본다. 그 네 가지란, 자신도 가서 부처를 보고 또 중생들에게도 보기를 권하며, 자신도 가서법을 듣고 또 중생들에게도 듣기를 권하며, 자신도 보리의 마음을 내고 중생들에게도 마음을 내기를 권하며, 언제나 염불삼매(念佛三昧)를 버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자신을 잘 제어해 어떤 악법도 없다. 그 네 가지란, 세상을 넘어선 밝은 지혜로 지견(知見)을 관찰하고, 해탈을 드러내 보이고, 법인(法忍)을 잘 모아 온갖 나쁜 법의 습관을 끊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좋은 스승이 되어 법을 아끼지 않는다. 그 네 가지란, 마음을 다해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뜻이 견고하여 원한이 없으며, 항상 중생들을 교화하며, 자신의 즐거움을 버리고 지혜를 닦아 모으며, 언제나 중생을 위해서 이익을 짓고 자신의 이익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중생들의 진실한 의지할 곳이 된다. 그 네 가지란, 항상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하며, 자신의 즐거움을 버리고 중생들을 위해 법의 즐거움을 구하며, 들은 법 그대로 남들에게 널리 설명하되 피로해 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옷이나 음식으로서가 아니고 법으로 그 목숨을 기르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모든 부처님의 법륜을 굴린다. 그 네 가지란, 다라니를 얻고, 끊임없는 변재의 지혜를 얻고, 중생들 마음의 작용에 들어가며, 종성(種姓)을 보지 않고 설법하여 열반으로 이끄는 것이니, 이것이 그 네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모든 법에서 관정위(灌頂位)를 얻는다. 그 네 가지란, 모든 행에서 벗어나 보살행에 머물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되 생사를 나타내 보이며, 불퇴전(不退轉)의 인장[印]에 찍혀 여래의 법에 들어가며, 10지(地)에 머물러 모든 지위를 잘 아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모든 법에서 관정위를 얻었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런 네 가지 법을 말씀하셨을 때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큰 광명은 허공을 두루 비추었으며, 백천억 하늘들은 천상의 풍악을 울리고 노래를 부르며 천상의 만다라 꽃을 비처럼 내리면서 이렇게 찬탄하였다.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모으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 네 가지 법 가운데서 열어 보이고 드러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중생이 이 법을 듣고 받들어 지녀 읽고 외우거나 쓰거나 대중에게 두루 분별해 설명하면, 그는 조그만 공덕으로 이 세상에 온 이가 아닐 것입니다.
또 어떤 중생이 이런 네 가지 법을 듣고는 믿고 이해하며 받들어 지녀 읽고 외우거나 대중에게 널리 설명하고 보리의 마음을 떠나지 않으면, 그는 오래지 않아 지금 부처님처럼 사람과 하늘 등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크게 외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도 이런 네 가지 법을 듣고 또 이것을 믿고 이해하며 연설하면 좋은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그 때에 8만 4천의 사람과 하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1만 2천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었다.
그 때에 천관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몇 가지 법을 성취하여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이 법을 듣고 받들어 지녀 읽고 외우거나 또는 쓰며 대중 가운데서 널리 말해 나타내 보입니까?”
부처님께서 천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은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여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이 법을 받들어 지녀 읽고 외우며 대중 가운데서 널리 분별하여 설명하느니라. 그 여덟 가지란, 뜻을 굳게 가져 오로지 보리로 향하고, 중생들에게 끝까지 인자한 행동을 행하여 침해하는 마음이 없으며, 대비에 머물러 중생들을 교화하고, 항상 법의 이익을 구하되 법을 즐기고 법을 가지려 하며 법을 구하고 법을 보아, 저 바다가 온갖 물을 삼키는 것처럼 만족할 줄 모르며, 목숨을 버려 바른 법을 지키고, 선근을 많이 심어 갖가지 복덕을 모으며, 큰 원(願)을 일으켜 모든 부처님의 보호를 받고, 악마에게 항복을 받고 대중의 두려움을 떠나는 것이니, 천관이여,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여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이 법을 받들어 지녀 읽고 외우거나 또는 쓰며 대중에게 널리 연설한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연설하실 때 또 이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여 더러운 구덩이·언덕·산 등과 강·못·큰 바다 등이 다 없어지되 물에 사는 중생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 때에 삼천대천세계는 모두 손바닥처럼 편편하여 미묘하고 장엄하였으며, 그 삼천대천세계의 100년 동안 말랐던 나무들도 다 꽃과 잎을 피워 부처님을 향했으며, 온갖 숲과 나무의 꽃·잎·익은 과실 등도 다 부처님을 향해 기울었다. 대지에 난 연꽃들은 수레바퀴만큼 크고, 온갖 빛깔은 사랑스러우며, 묘한 향기는 마음에 맞고 큰 광명은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허공의 천자들은 그 형체는 나타내지 않고 온갖 풍악을 울렸다. 설산(雪山)과 향산(香山)에 있던 모든 천자들은 이 소리를 듣고 갑절이나 묘한 소리를 내어 크게 이 삼천대천세계를 다 향기롭게 하였다.
그 때에 설산과 향산 중에서도 묘한 꽃들이 내려와 모두 부처님께로 흘러갔고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였으며, 나머지 나무들도 다 꽃을 뿌렸다. 허공에는 만 유순을 덮는 보배 일산이 있었다. 이 큰 보배 일산은 진주를 꿰어 만든 방울 그물을 드리워 장엄하였는데, 그 방울 그물에서 나는 소리는 부드러워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또 크고 묘한 소리가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들렸다.
그 때에 대덕 사리불(舍利佛)이 신기한 변화를 보고는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어떤 빛나는 징조이기에 일찍이 없었던 현상이 나타나 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장엄하여 매우 즐겁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대수긴나라왕이 향산에서 한량없는 긴나라들과 한량없는 건달바, 한량없는 천자, 한량없는 마후라가 등 대중에 둘러싸여 와서 부처님을 뵙고 예배하고 공양하려는 것이다. 이 대수긴나라왕이 와서 부처님을 뵈려 할 때는 먼저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지 오래지 않아 대수긴나라왕이 한량없는 긴나라 무리들과 한량없는 건달바, 한량없는 천자, 한량없는 마후라가 등 대중에 둘러싸여 8만 4천의 풍악을 울리는데, 깨끗하고 묘한 노래는 갖가지 풍악 소리와 잘 조화되었다. 또 한량없는 백천 중생들도 다 따랐고, 보살들은 신통의 큰 힘으로 허공에 올라 온갖 꽃을 두루 내렸다.
그들과 시종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한 뒤에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부처님 앞에 서 있었다.
그 때에 대수긴나라왕은 유리로 만든 거문고를 가졌는데 염부단금의 꽃잎으로 장엄하였으니 그것은 깨끗한 업보로 만든 것이었다. 그는 부처님 앞에서 거문고 줄을 잘 고르고 또 8만 4천의 풍악을 울렸다. 대수긴나라왕이 이 거문고를 타고 온갖 풍악을 울릴 때 그 소리는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들렸고 이 거문고 소리와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욕계의 여러 천상의 음악소리보다 뛰어났으므로, 그 때 욕계의 천인들은 다 악기를 버리고 부처님께로 왔다.
대수긴나라왕이 이 거문고를 탈 때 삼천대천세계의 여러 우거진 숲과 산들, 즉 수미산·설산·목진린타산·마하목진린타산·흑산(黑山) 등과 온갖 약초와 나무, 우거진 숲들은 다 솟았다 사라졌다 하는데, 차츰 솟아서는 두루 평등하게 솟고 차츰 움직여서는 두루 평등하게 움직이며, 차츰 흔들려서는 두루 평등하게 흔들렸다. 마치 술에 아주 취한 사람이 앞으로 갔다 뒤로 물러났다 쓰러졌다 하며 그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처럼 수미산과 파아(頗峨)산 등이 솟았다 사라졌다 하는 것도 그와 같았다.
또 대수긴나라왕이 거문고를 탈 때 부처님 대중 가운데 있던 왕들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제석천·범천·사천왕 등의 사람인 듯 하면서 사람이 아닌 것과 욕심을 떠난 이 등으로서,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있는 보살을 제외한 일체 대중은 이 거문고 소리와 다른 음악 소리를 듣고 다 흥에 겨워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다.
이 때 모든 성문 대중들도 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 흥에 겨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위의를 돌보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마치 어린애가 춤 놀이를 하면서 어쩔 줄 모르는 것과 같았다.
그 때에 천관보살이 그 큰 성문과 큰 가섭 등에게 말하였다.
“여러 대덕 스님들은 번뇌를 떠나 여덟 가지 해탈을 얻었고 네 가지 진리를 보았는데 지금 왜 모두 위의를 돌보지 않고 저 어린애들처럼 일어나 춤들을 추십니까?”
이 때에 대덕 성문들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우리는 지금 여기서 자재하지 못합니다. 이 거문고 소리 때문에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일어나 춤을 추면서 어쩔 줄 모르며, 또 마음을 가만히 있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 때에 천관보살이 대덕 가섭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장로로서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두타를 수행하여 항상 한적한 것을 즐기므로 하늘과 사람·아수라 등은 당신을 탑처럼 존경하는데, 왜 그 몸을 가누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춤을 추시면서 이 대중들 마음을 단속하지 않습니까?”
가섭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큰 회오리바람이 나무나 약초나 우거진 숲에 불 때 그것들은 부지할 힘이 없습니다. 그것이 본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지마는 스스로 부지할 수 없어 흔들리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지금 이 대수긴나라왕이 타는 거문고 소리와 아름답고 부드러운 노랫소리와 퉁소·젓대 소리들이 내 마음을 두드리는 것은 마치 회오리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그 몸을 부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훌륭한 장부의 서원과 위세·복덕·신력 등은 저 성문·연각 등의 위덕보다 뛰어났습니다.”
천관보살이 대덕 가섭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이 불퇴전(不退轉)의 자리에 있는 보살의 위덕의 힘을 보시오. 저 거문고 소리도 그들을 흔들지 못합니다. 대덕 가섭이여, 누가 이것을 보고 위없이 바르고 참된 보리의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까? 왜냐 하면 이 한량없는 지혜가 가진 위력은 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 스스로 부지하지 못하는 저런 위덕을 가진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대승을 향해 물러나지 않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대수긴나라왕은 다시 거문고 줄과 8만 4천의 악기를 고루었다. 부처님의 위신의 힘과 또 대수긴나라왕의 전생 선근의 힘 때문에 그 거문고와 다른 악기 소리들은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법은 다 적정(寂靜)으로 향해 나아가나니
그리하여 상중하까지 있게 되었다.
비고 깨끗하며 아주 고요해 고뇌 없으며
번뇌 없는 최상의 법 지금 나타났어라.
중생이라 하지만 실로 중생 없나니
과거와 현재도 그러하여라.
음성으로 말하여 중생들 듣게 하나니
이 소리는 평등하기 법계(法界)와 같네.
모든 세계라 하지만 세계 없음과 같고
설명하는 일도 허공의 모양 같아
생기거나 늘거나 또한 멸하는 것도 없나니
허공처럼 허망함을 드러내 보였네.
모든 부처의 다 같음과
법계는 결코 무너지지 않음을 깨닫고
보시·계율·지혜 등은 한 모양으로 평등하여
모양 없는 것과 같음을 환히 알았네.
온갖 번뇌 아주 멸해 번뇌 없건만
망상(妄想)으로 거기서 분별하는 마음 내고
안도 바깥도 중간도 없는데
망령된 생각과 뒤바뀐 견해로 그것이 있네.
법도 법 아님도 망령된 생각도 없어
어떤 법을 찾아보나 아무 것도 없으면
그 명색(名色)이 실성(實性)과 같음을 깨달으리니
그는 세상 살아가도 물듦이 없으리.
과거와 미래는 그 끝과 한계가 없고
연설되는 그 법도 그러하나니
본제(本際)는 적멸(寂滅)하여 멸함이 다함도 없고
일정한 방위 없고 머무는 곳도 없네.
문자(文字)를 쓰기 때문에 이 법을 말하지만
이 문자란 원래 없어지는 모양이네.
이 문자가 없어지는 모양임을 깨닫고 나면
온갖 법에 대해 어떤 망상도 없어지리.
마음 가지기를 평등하게 가지면 가지는 바 없어
그것들은 법의 모양과 어긋나지 않으며
마음이나 수법(數法)이나 아무 생(生)이 없나니
모든 법은 평등으로 들어감을 알아야 하네.
끝이라 해도 끝이 없고 끊는다 해도 끊는 것 없으며
앞도 뒤도 중간도 다 얻기 어렵나니
3세가 다 평등한 줄을 밝게 알면
그 지혜는 끝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리.
세상 사람들 그 명색(名色)을 탐해 집착하지만
있다는 견해도 없다는 견해도 다 고요하나니
인연법의 모양 밝게 깨닫고 나면
나·중생·목숨이라는 망상이 없어지리.
내가 있다는 견해 일으키지 않고
일체의 법도 일으키지 않아
만일 일으킨 것이 본래 일으킨 것이 없으면
그는 언제나 법인(法忍)을 따라 그대로 행하리.
그 성질은 마치 구름 속의 번개와 같아
모든 법은 다 나의 실성(實性)과 같고
나·사람·중생 등의 성질은 본래 빈 것이거니
이런 다라니 인(印)의 모양에 들어가라.
세 가지 해탈의 문(門)을 깨달은 바에 따라
한 모양과 모양 없음도 다 같은 모양이며
일체 존재하는 모든 법은 끝과 한계가 없지만
어떤 법에도 망령된 생각 본래 없도다.
문자(文字)로써 법을 분별해 말하되
위이니 중간이니 아래이니 하지만
문자에는 또 망령된 생각 없나니
진실한 이치를 찾아 분별해야 하네.
이치와 문자는 서로 응하므로
소리로서 두 가지 이치 없음을 말하나니
만일 그 본성이 항상 적정함을 안다면
그 본제(本際)의 성질은 언제나 저절로 끊어지리.
만일 본제의 성질이 항상 저절로 끊어지거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온갖 행을 닦아
본제를 찾아 봐도 본제 없나니
그 큰 자비는 가장 청정하리라.
만일 그 큰 자비가 가장 청정해지면
괴로움에나 즐거움에나 다 같이 수행하여
높은 것도 낮은 것도 그에게는 없으리니
그야말로 이로움을 아는 대장부이니라.
법의 눈은 고요하고 가장 고요하나니
만일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항상 고요하면
또 늘어나거나 줄어듦도 없으리니
그 성질은 번뇌를 떠나 언제나 고요하리.
허공의 소리를 붙잡기 어려운 것 같아
들어 알 수는 있으나 말할 수는 없나니
이 연설하는 것이나 그것을 듣는 것은
모두 진실이 아니어서 자재를 얻으리.
이렇게 거문고와 다른 악기들이 이 게송으로 법을 말할 때 8천 보살들은 다 생사가 없는 법인을 얻었다.
그 때에 천관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묘한 게송 소리는 어디서 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가 직접 대수긴나라왕에게 물어 보라. 그는 반드시 답해 줄 것이다.”
이 때에 천관보살이 대수긴나라왕에게 물었다.
“대수긴나라왕이시여, 이런 묘한 게송 소리는 어디서 나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그것은 중생들의 음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그 중생들 소리는 어디서 나옵니까?”
답해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 중생들의 소리는 허공에서 나옵니다.”
천관보살이 다시 물었다.
“긴나라왕이시여, 중생들 소리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긴나라왕이 되물었다.
“선남자여, 이 중생들 소리는 몸에서 나옵니까, 마음에서 나옵니까?”
천관보살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몸에서 나오지도 않고 마음에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몸은 어리석고 무지하여 초목이나 기왓장이나 돌과 같고, 마음은 형상이나 빛깔이 없으므로 볼 수도 없고 부딪침이나 걸림도 없어서 말할 수도 없는 것이 마치 저 환화(幻化)와 같기 때문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일 그것이 몸도 마음도 떠났다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천관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만일 허공이 없다면 그 소리는 무엇에 의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천관보살이 대답하였다. “허공이 없다면 소리는 끝내 날 수 없습니다.”
긴나라왕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러므로 모든 소리는 허공에서 나오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소리는 바로 허공의 성질로서 듣고 나면 곧 없어지고 없어진 뒤에는 허공의 성질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허공의 성질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허공의 경계를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니 모든 법은 소리와 같습니다. 음성으로 법을 말한다 하나 그 소리에서는 법을 구해도 얻을 수 없고 그 법에서 소리를 찾아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러므로 모든 법은 말로써 말할 수 없고 다만 소리로 말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도 말함이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음성으로 말한다 하지마는 그 음성은 본래 머무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머무는 곳이 없다면 그것은 견고하거나 진실한 것이 아니면서 곧 진실한 것이요, 진실하면 무너뜨릴 수 없으며, 무너뜨릴 수 없으면 일어남이 없고, 일어남이 없으면 사라짐이 없습니다.
사라짐이 없으면 그것을 청정이라 하고 그것은 희고 깨끗하며, 깨끗하면 그것은 더러움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면 그것은 광명이요, 광명이면 그것은 심성(心性)이며, 심성이면 모든 것을 뛰어나고, 모든 것을 뛰어나면 그것은 모든 모양을 뛰어나며, 모든 모양을 뛰어나면 그것은 바른 위치이니, 만일 보살이 바른 위치에 있으면 그것은 생사가 없는 법인을 얻은 것이요, 생사가 없는 법인을 얻었으면 일체를 다 알아 허공도 알고 사람도 압니다. 왜냐 하면 사람을 떠나지 않은 것을 허공[空]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즉 공(空)으로서 그는 무상(無相)도 알고 상(相)도 압니다. 왜냐 하면 이 상의 실성(實性)이 곧 무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무원(無願)도 알고 원도 압니다. 왜냐 하면 원의 실성(實性) 모양은 곧 무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일체 법의 성질과 중생의 성질과 모두는 멸한다는 인(忍)도 그렇게 압니다. 왜냐 하면 일체 중생의 나고 죽는 성질은 마치 환상이나 꿈과 같기 때문이니, 보살이 생사가 없는 법인을 얻었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일체의 법과 어긋나지 않고 일체의 법을 거슬리지도 않아 이 법인을 그대로 따르면 법인도 모든 법을 그대로 따라 가는 것이니, 가는 것이 없으면 오는 것도 없을 것이요, 만일 가고 옴이 없으면 일체 법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주(常住)의 성질은 법의 성질과 같으며 중생도 그러합니다. 만일 이 경지를 얻어 여법하게 그대로 수행하면 그것이 곧 생사 없는 법인을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말은 곧 소리이니 남에게 말하기 위해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생사가 없는 법인은 말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 이치는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이 법인은 소리도 아니요, 말도 아닙니다.
선남자여, 여래 세존께서는 큰 위덕이 있어서 얻을 수 없는 이치와 동일하나니, 얻을 수 없는 이치로서 얻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