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문수사리보살불찰공덕장엄경(大聖文殊師利菩薩佛刹功德莊嚴經) 02. 중권
그 때 여래께서는 자씨(慈氏)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지금 나를 위해 법좌(法座)를 만들어라. 나는 거기 앉아 과거에 즐겨 닦은 모든 행과 방편으로 낸 모든 불찰토(佛刹土)의 공덕 장엄과 나아가 정행(正行)의 법문을 설명하리라.”
그 때 자씨 보살은 생각했다.
‘지금 세존께서는 무슨 뜻으로 나를 시켜 자리를 준비하라 하시고, 아난타(阿難陀)나 대목건련(大目揵連) 등에게는 시키지 않으시며, 또 저 모든 성문이나 연각은 버리시는가? 그것은 오직 청정한 모든 보살만을 위해서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혹은 저 성문이나 연각은 이 법문의 그릇이 아니기 때문에 보살만을 위하므로 나를 시켜 자리를 펴라 하시는 것인가?’
그리하여 자씨 보살마하살은 곧 신통을 부려 행경계(行境界)를 나타내어 이 신통으로 말미암아 사자좌(師子座)를 만들었는데, 높이는 4만 유선나(踰繕那)였고, 한량없는 보배로 두루 꾸미고 천상의 묘한 옷으로 그 위를 덮었다. 그 옷은 부드러워 닿는 사람은 안락을 얻었으며, 그 자리에서 갖가지 광명을 내어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었다. 이 때 여래께서 본래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 오르시니,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여 보통 때와 달랐다.
그 때 세존께서는 구수(具壽) 사리자(舍利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그 본원을 다 만족하게 한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보리의 의요(意樂)를 내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유정들에 대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요, 셋째는 정진을 일으키는 것이요, 넷째는 선지식(善知識)을 친근하는 것이니, 보살이 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큰 소원을 원만히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은 한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깨끗한 국토를 성취하나니, 그 한 가지란, 이 보살은 부동(不動) 여래가 보살로 있을 때 본래 수행한 바 큰 서원을 내어 ‘내가 어디서 나든지 만일 출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방의 모든 불세존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사리자야, 이것이 모든 보살로서 따라 배워야 할 것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나오시지 않거나, 보살은 일체 나는 곳에서 결정코 집을 버리고 집 아닌 데로 가야 한다. 왜냐 하면 모든 보살의 가장 훌륭한 이익이란 이른바 출가이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즐겨 출가하면 열 가지 공덕을 섭취(攝取)할 수가 있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모든 욕심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아란야(阿蘭若)를 즐기는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의 행을 행하는 것이요, 넷째는 처자에 집착하지 않고 재리(財利)를 탐하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나쁜 세계의 행법을 떠나는 것이요, 여섯째는 좋은 세계의 행법을 익히는 것이며, 일곱째는 선근을 성취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선근을 모아 물러나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항상 모든 하늘의 찬미를 받는 것이요, 열째는 항상 비인(非人)의 옹호를 받는 것이다. 사리자야, 출가를 즐기는 자는 이런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정각을 구하려 하고 유정들을 해탈시키려면 항상 출가를 즐거워해야 하나니, 이와 같이 사리자야, 이것을 한 법이 물러나지 않는 큰 소원을 성취하여 뜻에 맞는 청정한 불찰을 얻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은 두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뜻함을 따라 불찰토를 청정하게 하나니, 그 두 가지란, 이른바 보살이 성문을 즐겨 구하지 않고 성문승을 즐겨 구하지 않는 것이며, 성문의 설법을 듣지 않고 성문승을 받드는 자를 즐겨 친근하지 않음이며, 성문의 계율을 배우지 않고 성문승과 상응한 법을 즐겨 말하지 않음이며, 남을 권해 성문승을 행하게 하지도 않고 연각승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며, 오직 유정들을 권해 최상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성취하게 하나니, 이것이 그 두 가지 법이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보살이 남을 권해 불승(佛乘)에 들어가게 하면 그는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하느니라. 그 열 가지란, 첫째는 성문과 연각이 없는 불찰을 성취하는 것이요, 둘째는 순일하고 청정한 큰 보살 대중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부처님의 호념을 받는 것이요, 넷째는 항상 모든 부처님이 그를 칭찬해 설법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일에 광대한 마음을 내는 것이요, 여섯째는 만일 천상에 나면 언제나 제석이나 범천이 되는 것이며, 일곱째는 만일 인간에 나면 전륜성왕이 되는 것이요, 여덟째는 언제나 모든 불세존을 뵈옵고 헤어지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모든 천인(天人)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열째는 무너지지 않는 권속과 한량없는 복덩이를 얻는 것이다.
왜냐 하면 사리자야, 혹 누가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유정들을 다 아라한과(阿羅漢果)나 혹은 연각 자리를 얻게 하였더라도, 만일 누가 한 유정이라도 부처님의 보리에 잘 들 수 있게 했다면 이 공덕은 저 공덕보다 매우 많으니라. 왜냐 하면 사리자야, 혹 성문이나 연각은 세상에 나타나더라도 그들은 부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못하지마는, 만일 불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으면 성문도 연각도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그러나 불세존이 세상에 나타남으로써 그 때문에 부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그 때는 성문과 연각의 시설이 있을 것이니, 사리자야, 그 때문에 남을 권해 보리심에 머무르게 하면 이런 열 가지 공덕을 얻어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뜻함을 따라 불찰을 청정하게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이 세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불찰의 공덕 장엄을 성취하느니라. 그 세 가지란, 첫째는 아란야에 머무른 이를 존중하는 것이요, 둘째는 아무 바람이 없이 법보시를 행하는 것이며,셋째는 깨끗한 계율에 편히 머무는 것이다.
사리자야, 보살이 깨끗한 계율에 편히 머무르면 곧 열 가지 무외(無畏)를 얻느니라. 그 열 가지란, 첫째는 촌락에 들어갈 때의 무의요, 둘째는 대중 앞에서 설법할 때의 무외이며, 셋째는 음식에 대한 무외요, 넷째는 촌락에서 나올 때의 무외이며, 다섯째는 절에 들어갈 때의 무외요, 여섯째는 스님들 속에 들어갈 때의 무외이며, 입곱째는 편안히 앉았을 때의 무외요, 여덟째는 화상 아사리(阿闍梨)에게 나아갈 때의 무외이며, 아홉째는 대중에게 훈계하되 인자한 마음에 머무르는 무외요, 열째는 의복·음식·침구·의약 등 생활 도구를 받을 때의 무외이니라.
사리자야, 이른바 깨끗한 계율에 안주하면 그와 같은 열 가지 무외를 얻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이 설법할 때 마음에 바람이 없으면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할 수 있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욕심이 많지 않은 것이요, 둘째는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이름을 구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시주 집에 마음이 메이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귀족의 문도(門徒)를 두려고 하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좋거나 나쁘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하늘이 찾아온다고 해서 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여덟째는 부처님을 뵈오리라는 마음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그의 말을 남이 믿어 주는 것이요, 열째는 염불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사리자야, 보살이 법을 보시해도 마음에 바람이 없으면 이런 열 가지 공덕을 얻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이 아란야에 머무는 것을 존경하면 또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한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무익한 이야기를 멀리 떠나는 것이고, 둘째는 고요함을 즐거워하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이 안정된 경계를 반연하는 것이고, 넷째는 온갖 일을 경영하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부처님을 애경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선정의 즐거움을 버리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깨끗한 행을 닦을 때 장애가 없는 것이고, 여덟째는 조금만 노력해도 삼마지(三摩地)를 증득하는 것이며, 받은 바 교법의 문장과 글귀를 잊지 않는 것이고, 열째는 들은 법의 뜻을 다 잘 아는 것이다. 사리자야, 보살이 아란야에 살기를 존중하면 이런 열 가지 공덕을 얻고, 만일 보살이 세 가지 법을 성취하면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좋아함을 따라 깨끗한 불찰토를 얻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좋아함을 따라 청정한 불찰토를 얻는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진실한 말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항상 겸허하여 아만(我慢)을 버리는 것이며, 셋째는 아낌과 질투를 멀리 떠나는 것이고, 넷째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는 기뻐하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 법의 성취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의 진실한 말에는 네 가지 공덕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입에서 항상 청련화(靑蓮華) 향기가 나는 것이고, 둘째는 어업(語業)이 청정하여 말에 걸림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인간과 천상의 표준이 되는 것이고, 넷째는 모든 부처님의 원만한 음성을 섭취하는 것이니, 사리자야, 보살의 진실한 말은 이런 네 가지 공덕을 얻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의 겸허함에 네 가지 공덕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악취(惡趣)를 멀리 떠나 나귀·소·말·개 등 모든 축생의 몸을 받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남이 가벼이 여기거나 헐뜯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나쁜 벗과 원수들이 침노하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인간과 천상의 공경 예배를 항상 받는 것이니, 사리자야, 이것이 보살이 겸허하면 이런 네 가지 공덕을 얻는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이 아낌과 질투를 멀리 떠나면 네 가지 공덕이 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버리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흉년이 들었을 때 큰 시주가 되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사립문을 닫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계율을 지키는 사람에게 주거나 받거나 질투를 내지 않는 것이다. 사리자야, 이것이 보살이 아낌과 질투를 멀리 떠나 이런 네 가지 공덕을 얻는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이 남의 번영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네 가지 공덕이 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항상 이 마음을 내어 저 유정들을 위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저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며, 저들이 이미 제 복과 제 힘으로 재보를 얻어 안락을 누리면 나로 하여금 갑절이나 기뻐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가 가진 재물을 왕난(王難)·물·불·도적·악우(惡友)들이 빼앗지 못하는 것이며, 셋째는 나는 곳마다 재보와 남녀 및 그 권속이 다 구족하고 제왕도 기뻐하는 것이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넷째는 재보가 광대하여 수용이 무궁한 것이다. 사리자야, 이것이 보살이 남의 번영을 보고 기뻐하면 얻는 네 가지 공덕이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이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좋아함을 따라 청정한 불찰토를 얻느니라. 그 다섯 가지란, 첫째는 불찰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장엄을 성취하고 법을 구해야 한다. 그에게서 법을 들으면 물어보아야 하나니, 즉 ‘보살은 어떻게 하면 이런 공덕 장엄을 성취할 수 있을까?’라고 해야 하고, 그것을 듣고는 그대로 수행하여 여실한 모습을 참으로 증득해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둘째는 보살이 청정한 불국토에 나기를 발원하려면 청정한 계율을 깨끗이 가져야 하며, 그 계율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그 소원을 따라 반드시 나게 되는 것이요, 청정한 불찰에 난 뒤에는 그 국토를 관찰하여 그 모습의 갖가지 장엄과 성문·보살 대중의 수용하는 도구의 모습을 취하고, 그 모습을 얻은 뒤에는 깊이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나아가 법을 물어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셋째는 보살이 저 광대한 불찰의 공덕 장엄을 성취하면 그 불세존께서는 그의 왕성한 의욕[意樂]을 알고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부처님의 설법으로 말미암아 곧 광대한 불찰의 공덕 장엄을 성취하며, 그는 법을 듣고 난 그대로 수행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넷째는 보살의 일이나 지혜를 다 청정하게 하며 비법을 멀리 떠나는 것이다. 어떤 일과 어떤 지혜인가. 반연하거나 반연되거나 성문과 연각의 지혜를 멀리 떠나기 때문에 그것을 지혜라 하고, 들은 법을 다 수행하는 것을 일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다섯째는 보살은 부처의 자성(自性)을 알고 찰토의 자성을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부처의 자성이며 어떤 것이 찰토의 자성인가. 부처와 찰토란 오직 그 이름이 있을 뿐임을 알고 그 이름의 청정함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알기 때문에 집착을 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이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고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아 그 뜻함을 따라 청정한 불찰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또 사리자야, 보살은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고, 일체 세간을 초월하여 깨끗한 불찰을 얻는다. 그 여섯 가지란, 첫째는 이 보살은 큰 시주가 되어 보시를 행한다. 즉 그가 즐겨 갖고 집착하는 보물 등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어 그것을 다 버리고는 뛸 듯이 기뻐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큰 보시를 행하여 대승을 원만히 하였으나 나는 위없는 보리에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이런 조그마한 것으로는 위없는 정각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가 가진 영화를 다 버리는데, 나아가 신명까지도 버리겠거늘 하물며 다른 재산이나 처자·남녀를 버리지 않겠는가. 왜냐 하면 사리자야, 살바야(薩婆若)란 어떤 뜻인가.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보살행을 행할 때 자기 소유를 모두 버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보리를 얻는 것을 일체지(一切智)라 하기 때문이다.
또 사리자야, 둘째는 재가 보살이나 출가 보살로서 만일 깨끗한 계율에 편히 머무른다면 비록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마침내 깨끗한 계율을 범하지 아니하며, 그가 가진 깨끗한 계율의 그 공덕을 반드시 일체 유정들에게 회향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기를 기약하고는 큰 기쁨을 얻고 ‘나는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하고, 그 깨끗한 계율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밤낮으로 오로지 범행(梵行)의 안락을 닦으면 불법이 앞에 나타나 이치와 상응하여 실상관(實相觀)을 얻으며, 실상관에 머무르기 때문에 매우 깊은 인(忍)을 얻고, 깊은 인을 얻기 때문에 바른 견해를 얻으며, 바른 견해로 말미암아 바르게 수행하며, 바른 수행에 머무르기 때문에 삼계(三界)를 싫어하고, 삼계를 싫어하기 때문에 곧 두려움을 내며, 두려워하기 때문에 곧 벗어나기를 구하고, 벗어날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생각하기를 ‘내게는 이런 고뇌가 있다. 일체 유정들도 아마 나와 같을 것이다. 나는 저 유정들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지자. 그리하여 저들로 하여금 구경(究竟)의 안락을 얻게 하자’라고 한다.
이렇게 관찰할 때 그는 대비(大悲)를 얻고 대비에 머무르고서 큰 정진을내되, 마치 머리나 옷에 붙은 불을 끄듯이 정진을 버리지 않아 곧 살바야지(薩婆若智)를 얻는다.
또 사리자야, 셋째는 보살은 인욕의 갑옷과 투구를 입고 쓰고는 큰 인력(忍力)을 얻어야 한다. 혹 누가 욕설하고 때리더라도 인욕을 성취하여 성을 내지 않고 이렇게 생각한다.
‘설령 어떤 사람이 소미로산(蘇迷盧山)만한 큰 몽둥이를 가지고 와서 나를 때리고 구지겁(俱胝劫)이 다할 때까지 나를 욕하더라도 나는 성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저 모든 유정들은 불법을 따르지 못하지만 나는 부처님과 보살의 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의 모든 구타와 욕설은 곧 내 대비심을 증진시킬 것이니, 나는 저 유정들을 위해 큰 서원의 갑옷과 투구를 입고 쓰고 유정들을 포섭하여 저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어 생사로부터 열반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성내지 않아야 한다.’
만일 이와 같이 인욕의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면 그는 곧 열 가지 성취를 얻을 것이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족성(族姓)의 성취요, 둘째는 재산의 성취이며, 셋째는 권속의 성취요, 넷째는 색상(色相)의 성취이며, 다섯째는 보시의 성취요, 여섯째는 좋은 벗의 성취이며, 일곱째는 바른 법을 듣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말대로 수행함을 성취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임종 때 여러 부처님들을 뵈옵고 받들어 섬김을 성취하는 것이며, 열째는 부처님을 뵈옵고는 깨끗한 신심을 내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니, 사리자야, 이것이 보살의 열 가지 성취이니라.
또 사리자야, 넷째는 보살이 큰 정진을 내되 견고하여 반드시 선법의 성취를 기약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정진의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하나의 유정들을 위하여 오는 세상이 다하도록 생사 속에서 차례로 모든 정진행을 수행하되 권태를 느끼지 않고 선(善)을 기약하고 일체 유정들을 위하여 그 겁에서 생사에 유전하면서도 이 정진을 내어 유정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사리자야, 어떤 보살이 시방의 긍가(殑伽)의 모래와 같은 세계에 7보를 가득 채우고는 찰나찰나마다 여래께 공양하되 오는 세상이 다할 때까지 계속하며, 또 어떤 보살이 마음속에 왕성한 의욕을 가지고 대비심에 머무리라 생각하고, 이런 마음으로 정진의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다면, 이 공덕은 저 공덕보다 많으니라.
사리자야, 보살은 이런 정진을 갖추어 열 가지 공덕을 얻는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범우(凡愚)의 행을 떠나는 것이고, 둘째는 부처의 행을 성취하는 것이며, 셋째는 생사함은 우환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고, 넷째는 그 때문에 대비심을 섭취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본원에 머물러 물러나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모든 질병이 적은 것이며, 일곱째는 3세의 부처님을 어기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그 때문에 음욕·분노·우치가 희박한 것이며, 아홉째는 그 들은 바 문구를 다 통달하는 것이고, 열째는 수행을 성취하는 것이니, 사리자야, 정진하는 이는 이런 열 가지 공덕을 얻느니라.
또 사리자야, 다섯째는 보살이 모든 불세존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오로지 쏟게 되면, 여래를 뵈옵고 항상 선정을 성취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마땅히 여래의 행을 행하리라. 만일 마음이 산란하여 생각을 잃으면 수승한 것, 즉 부처의 지혜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마음이 섭수하는 모든 물건을 버리고 또한 모든 이익과 공경과 촌락·도시와 음식·의복 등 생활품과 또 모든 친구를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유정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유정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아란야(阿蘭若)를 좋아하여 고요한 곳에 머물면서 저 물소의 외뿔처럼 혼자 있으리라.’
아란야의 고요한 곳에 머물고는 대자심을 일으켜 처음에는 1방·2방·3방·4방, 나아가 시방의 유정에 두루하고 자심(慈心)에 머무르나니, 자심에 머무르면 그를 선나(禪那)1)에 머무르는 사람이라 한다.
사리자야, 어떤 보살이 원하는 일체의 도구로 긍가(殑伽)의 모래 수 같은 겁 동안 긍가의 모래 수 같은 모든 부처님과 필추승과 또 모든 권속들에게 공양하고, 또 어떤 출가 보살이 고요함을 구하여 아란야에 머물면서 7보(步)를 걸으면 이 복덕은 저것보다 매우 많으니라. 왜냐 하면 그로써 큰 보리를 빨리 얻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고요한 것을 즐기어 선나에 머무르는 이는 열 가지 공덕을 얻는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생각[念]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지혜를 얻는 것이며, 셋째는 바른 수행을 얻는 것이고, 넷째는 굳센 뜻으로 용맹한 것이며, 다섯째는 빠른 변재를 얻는 것이고, 여섯째는 다라니를 얻는 것이며, 일곱째는 생사에서 선교(善巧)를 얻는 것이고, 여덟째는 계온(戒蘊) 등에서 동요하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모든 하늘이 그를 받들어 섬기는 것이고, 열째는 남의 번영을 탐내지 않는 것이니, 사리자야, 고요함을 즐기어 선나에 머무르면 이런 열 가지 공덕을 얻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섯째, 보살은 지혜가 흘러나오는 곳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한다.
‘지혜는 어디서 나오는가? 이른바 깨끗한 계율에서 나온다. 이 지혜는 모든 백법(白法)을 증장시킨다. 그러므로 보살은 일체 세간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즉 기예·주술(呪術)·의약 등 짓기 어렵고 이루기 어려운 것을 다 두루 배워야 한다.’
그것들을 다 배우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지혜는 욕심을 떠난 적멸(寂滅)을 증득하지는 못하며, 또 신통과 정각(正覺)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사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요, 바라문으로 향하는 것도 아니며, 열반으로 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다시 법약(法藥)의 기술을 두루 구하고, 그런 지혜로써 나로 하여금 저 구경(究竟)의 열반을 얻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 보살은 모든 법의 근본을 구하되, 법을 일으키는 조그만 법도 보지 않으며, 보지 않기 때문에 적멸에 머무르고, 적멸에 머무르기 때문에 뜨거운 번뇌가 없으며, 뜨거운 번뇌가 없기 때문에 생사를 안다. 그리고 유정을 위해 이익을 짓고 모든 유정들의 온갖 고통을 제거하게 하나니, 사리자야, 이것이 보살이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뜻함을 따라 깨끗한 불찰토를 얻는 것이다.
또 사리자야, 보살은 일곱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좋아함을 따라 깨끗한 불찰토를 얻는다. 그 일곱 가지란, 첫째는 자기 소유를 모두 버리는 것이니 버려지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계율을 깨지 않는 것이니 계율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인욕(忍辱)하고 부드러운 것이니 유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넷째는 정진을 일으키는 것이니 몸과 입과 뜻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고요한 생각을 성취하는 것이니 고요한 생각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지혜가 원만한 것이니 분별이 없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니 상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보살은 이와 같이 일곱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깨끗한 모든 불찰토의 갖가지 장엄을 얻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은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좋아함을 따라 깨끗한 불찰토를 얻느니라. 그 여덟 가지란, 첫째는 질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장엄 도구를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그 마음이 광대한 것이고, 넷째는 법사(法師)를 존경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삿된 생활을 행하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평등하게 보시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니,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이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뜻함을 따라 깨끗한 불찰토를 얻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은 아홉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좋아함을 따라 깨끗한 불찰토를 얻느니라. 그 아홉 가지란, 첫째는 몸의 계율을 갖추는 것이고, 둘째는 말의 계율을 갖추는 것이고, 셋째는 뜻의 계율을 갖추는 것이고, 넷째는 탐욕을 쇠잔하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분노를 쇠잔하게 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우치를 쇠잔하게 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사기를 행하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좋은 벗을 굳게 가지는 것이며, 아홉째는 좋은 벗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니, 사리자야, 보살은 이런 아홉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뜻함을 따라 깨끗한 불찰토를 얻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은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소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뜻함을 따라 깨끗한 불찰토를 얻느니라. 그 열 가지란, 첫째는 보살이 묘한 꽃을 가지고 여래께서 계신 곳이나 혹은 탑[窣堵波]에 가서 공양할 때는 이렇게 염원(念願)하는 것이다.
‘이런 묘한 꽃은 빛깔과 향기가 수승하여 보는 이가 모두 기뻐한다. 내가 성불할 때는 내 국토 안에 갖가지 묘한 꽃을 그 땅에 두루 덮이게 하고, 또 온갖 보배 나무를 둘러 장엄하며, 나아가 피우는 향·가루 향·바르는 향과 의복·음식과 보배 일산·번기·당기와 금·은·유리·진주·차거(車𤦲)·산호 등 보물을 공양할 때도 그와 같아지이다.’
이렇게 불찰의 공덕 장엄을 회향한다. 보살은 마땅히 깨끗한 계율에 머물러야 하나니, 만일 계율에 머무르면 그 소원을 다 성취할 것이다.
또 사리자야, 둘째는 보살이 스스로 즐거움을 받을 때를 관찰하되 이렇게 염원하는 것이다.
‘남도 나와 같이 이런 즐거움을 받아지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정각을 이룰 때는 그 불찰 안에 있는 유정들이 다 한결같이 안락을 구족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셋째는 보살은 남이 기뻐하지 않는 말은 하지 않고 언제나 선교(善巧)한 말을 하는데, 그 때는 이렇게 염원하는 것이다.
‘내가 보리를 얻을 때, 내 불찰에 사는 유정들로 하여금 좋지 않은 말은 듣지 않고 항상 마음에 맞는 소리를 듣게 하리라.’
또 사리자야, 넷째는 보살은 항상 유정들을 권해 열 가지 선도(善道)를 닦게 하고, 그 선근을 모든 유정들과 함께 살바야지(薩婆若智)로 회향하여 보리를 얻을 때는 ‘내 불찰의 유정들을 모두 10선업도(善業道)를 성취하게 하리라’고 하는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다섯째는 보살은 어디를 가나 그가 만나는 유정들로서 남자·여자·동남·동녀 등 모두에게 위없는 정등보리를 닦기를 권하는 것인데, 그것은 2승(乘)의 과(果)를 찬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보리를 얻을 때는 그 불찰에 사는 유정들은 모두 위없는 보리심을 내고 성문·연각의 뜻을 멀리 떠나 이런 청정한 국토를 얻어 그 안에는 청정한 모든 보살들이 가득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섯째는 보살은 남의 이익을 끝내 막지 않고 남이 이익을 얻는 것을 보면 항상 매우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보리를 얻을때는 그 불찰에 사는 유정들은 필요한 모든 생활필수품이 언제나 끊어지지 않고 이런 큰 법의 광명을 얻느니라.
또 사리자야, 일곱째는 보살이, 혹 필추·필추니가 허물을 범하는 것을 보더라도 끝내 드러내지 않고, 다만 스스로 정법 가운데 편히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보살이 보리를 얻을 때에는 그 불찰에는 허물이라는 소리가 없다. 왜냐 하면 그 대중들이 다 청정하여 허물 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사리자야, 여덟째는 보살은 법을 즐거워하여 법을 구하되 뜨거운 번뇌를 내지 않고 법을 들으면 바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보리를 얻을 때에는 그 불찰의 유정들은 다 법을 즐거워하되 뜨거운 번뇌가 없고 법을 들으면 그대로 수행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아홉째는 보살은 상가(商佉)·고각(鼓角)·관현(管絃) 등 갖가지 음악을 여래의 탑에 공양할 때는 그 선근을 회향하여 불찰의 장엄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보리를 얻을 때는 그 불찰에는 백천의 음악을 울리지 않아도 스스로 우느니라.
또 사리자야, 열째는 보살이 만일 실념(失念)한 유정들을 보면 이렇게 염원하는 것이다.
‘저들로 하여금 바른 생각을 얻게 하리라.’
그러므로 보살이 보리를 얻을 때는 그 불찰의 모든 유정들은 다 선열식(禪悅食)을 얻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불찰은 공덕을 구족하였으므로 설사 여래의 변재라 하더라도 1겁, 혹은 그 1겁을 지난다 해도 다 말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사리자야, 내가 지금 모든 보살의 의욕을 따라 이렇게 간단히 말하는 것은 왕성한 의욕을 가진 자들로 하여금 이 말을 듣고는 나아가 원만한 불찰의 공덕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은 세 가지 법을 성취하여 위없는 정등각을 빨리 얻고 구하는 불찰을 다 성취한다. 그 세 가지란, 첫째는 방일하지 않음에 머무르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들으면 바른 수행을 일으키는 것이며, 셋째는 수승한 큰 서원을 내는 것이니, 사리자야, 보살이 이 세 가지 법을 성취하면 위없는 정등보리를 빨리 증득하고 그 의욕을 따라 깨끗한 불찰토를 다 원만하게얻느니라.”
그 때 구수 사리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희유하십니다. 여래께서는 이 법을 잘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방일하지 않음에 머무르시기 때문에 일체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얻으시고, 바른 수행에 머무르시기 때문에 큰 보리를 얻으시고, 큰 소원이 수승하시기 때문에 불찰을 성취하셨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대 말과 같다. 방일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보리분법을 얻었고, 바른 수행으로 말미암아 큰 보리를 얻었으며, 수승한 큰 소원을 냄으로 말미암아 청정한 불찰을 얻어 원만히 장엄하였다. 사리자야, 나는 과거의 수승한 소원에 의해 이런 국토를 이루었다. 사리자야, 나는 과거의 방일하지 않음에 의해 그 본원을 이루었으며, 바른 수행으로 말미암아 큰 보리를 얻었다.
사리자야, 다만 말뿐 수행하지 않으면 성문의 자리에도 이르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위없는 보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리자야, 보살은 반드시 말대로 진실을 수행하기를 기약해야 하나니, 모든 배울 만한 것을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그 때 그 모임의 4만 보살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이구동성으로 세존께 아뢰었다.
“부처님 말씀과 같이 보살이 배워야 할 것을 우리도 마땅히 배우겠습니다. 방일하지 않아 수행을 성취하고 큰 소원을 이루어 불찰을 청정이 하는 이런 행을 우리도 마땅히 행하겠습니다. 만일 모든 보살들이 그 소원을 따른다면 우리도 마땅히 만족하겠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빙그레 웃으셨다. 그러자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미소를 지으시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모든 선남자들이 사자후(師子吼)하는 것을 보았는가?”
사리자는 대답하였다.
“예,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선남자들은 백천 겁을 지나 각기 다른 국토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그 이름을 다 같이 원장엄(願莊嚴)이라 할 것이며, 또한 미래의 사자불(師子佛) 등과 같이 그 국토가 청정하여 무량수(無量壽) 여래의 국토와 같아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것이니, 다만 그 수명만은 다를 것입니다.”
사리자는 말하였다.
“그 모든 여래의 수명은 얼마만큼이나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낱낱 부처님의 수명은 다 10겁이니라.”
그 때 사자용맹뢰음(師子勇猛雷音) 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문수사리 동진보살(童眞菩薩)은 모든 불여래께서 항상 칭찬하십니다. 이 문수사리는 얼마나 있으면 위없는 보리를 얻고 그 얻은 불찰은 어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사자용맹뢰음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는 마땅히 문수사리 동진보살에게 직접 물어보라.”
사자용맹뢰음 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당신은 언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당신은 왜 내게 어떻게 위없는 보리에 머무르느냐고 묻지 않고 보리를 이루겠느냐고 묻습니까? 왜냐 하면 나는 아직 보리에 머무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나로 하여금 보리를 증득하게 하겠습니까? 보리의 법은 머무르지도 않고 증득하지도 않는 것인데 내가 어떻게 증득하고 머무르겠습니까?”
사자용맹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어찌 일체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 보리를 증득하지 않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선남자여. 왜냐 하면 유정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유정들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마땅히 저 유정들을 위해 보리를 증득하고 보리에 머무를 것입니다. 유정과 수명과 보특가라(補特伽羅) 등은 다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보리에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퇴전하지도 않습니다.”
사자용맹은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어찌 불법(佛法)에 머무르지 않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선남자여. 일체 모든 법은 다 불법에 머무른 것입니다. 무릇 모든 법은 번뇌가 없고 끝이 없으며 모양이 없고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여여(如如)에 머무르시며 부처님께서 머무르시는 일체 모든 법도 또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사자용맹은 다시 말하였다.
“선남자여, 당신은 지금 나는 불법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그 뜻을 묻겠습니다. 마땅히 인허(認許)하고 나를 위해 말해 주십시오.”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색(色)에서 보리를 구할 수 있다 하십니까? 색의 본성, 색의 여여(如如), 색의 자성(自性), 색의 공성(空性), 색의 원리(遠離), 색의 법성(法性)에서 보리를 구할 수 있습니까? 선남자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색이 바로 보리라면 색이 어찌 보리를 증득하며, 색의 본성, 색의 여여, 색의 자성, 색의 공성, 색의 원리, 색의 법성이 보리를 증득하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시여. 색에서 보리를 구하지 못합니다. 보리는 색이 없고 본성은 색이 없으며, 여여는 색이 없고 자성은 색이 없으며, 공성은 색이 없고 원리는 색이 없으며, 법성은 색이 없이 보리를 증득하며……(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색의 법성도 보리를 증득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受)·상(想)·행(識)·식(識)에서 보리를 구할 수 있습니까? 선남자여, 수·상·행·식이 보리를 증득할 수 있으며, 나아가 식의 법성이 보리를 증득할 수 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시여. 수·상·행·식에서 보리를 구할 수 없고 보리를 증득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식(識)의 법성도 보리를 구할 수 없고 보리를 증득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당신 뜻에는 어떻습니까? 5온(蘊)을 떠나서 나[我]와 내 것[我所]을 시설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어떻게 두 가지 법이 보리를 증득합니까?”
사자용맹은 말하였다.
“문수사리시여,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은 이런 말을 들으면 문수사리에 대해 다 놀라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낼 것입니다. 문수사리의 이 말로 인하여 이 모든 보살들은 곧 정량(定量)하여 말하기를 ‘나는 보리를 구하지 않고 보리를 증득하지도 않는다’라고 할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일체 모든 법에는 놀라 두려워함이 없고 실제(實際) 가운데도 또한 놀라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놀라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위해 설법하십니다. 만일 놀라 두려워하는 자라면 곧 염증을 낼 것이요, 만일 염증을 낸다면 욕심을 떠날 것이며, 만일 욕심을 떠난다면 해탈할 것이고, 만일 해탈하면 보리가 없을 것이고, 만일 보리가 없으면 집착하지 않을 것이고, 만일 집착하지 않으면 감이 없을 것이며, 만일 감이 없으면 옴이 없을 것이고, 만일 옴이 없으면 원함도 없을 것이고, 만일 원함도 없으면 구함이 없을 것이고, 만일 구함이 없으면 퇴전하지 않을 것이고, 만일 퇴전하지 않으면 어디서 물러나며 어찌 아집(我執)에서 물러나겠는가? 유정과 수명과보특가라와 단(斷)이나 상(常)을 좇아 상(相)을 취하고 분별하여 퇴전함이 있겠는가? 만일 저 퇴전에서 퇴전함이 없다면 어떻게 퇴전하겠는가? 공성(空性)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실제(實際) 및 모든 불법을 좇아 퇴전하겠는가? 어떤 불법에서 퇴전하겠는가. 이른바 불법을 떠나지 않고 불법을 구경(究竟)하지 않으며, 관찰이 없고 출입이 없으며 행도 없고 표시도 없으며, 오직 그 이름만이 있을 뿐으로서 공이요 남이 없고 멸함이 없으며, 감이 없고 옴이 없으며, 청정과 더러움을 멀리 떠나고, 번뇌와 번뇌를 떠남도 없고, 평등한 것도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작의(作意)를 멀리 떠나고 다함이 없고 집착이 없으며, 평등도 없고 평등 아님도 없는 것, 이것을 불법이라 합니다.
선남자여, 모든 불법이란, 이 법이니, 곧 법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곳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불법이 나는 것이라면, 선남자여, 새로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은 이 말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하여 빨리 보리를 증득할 것이며, 만일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라면 보리를 증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자용맹이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어째서 이렇게 비밀한 뜻으로 말합니까?”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만일 놀라고 두려워하거나 혹은 분별하면 그들은 다 보리를 증득할 것이요, 이와 같이 발심하거나 발심하지 않거나 정각을 구하는 이는 다 보리를 증득할 것입니다. 또 발심하지 않는 이는 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며, 또한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보리심이란 실로 얻을 것도 없고 또한 분별할 것도 아닙니다. 만일 분별하지 않으면 정각을 증득하지 못할 것인즉, 무슨 인연으로 정각을 증득하지 않는가? 그는 보리를 얻지도 못하고 또한 보리를 증득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선남자여, 허공 세계가 어찌 보리를 증득할 수 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여래께서 왜 일체 법이 허공과 같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허공과 같이 보리도 그렇고, 그러하면 보리와 같이 허공도 그러하여 허공과 보리는 둘이 아니요 다르지도 않습니다. 만일 보살로서 이 평등을 알면 아는 바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 법을 연설할 때 1만 4천 필추는 모든 번뇌가 없어 마음이 해탈되었고, 12나유다(那庾多) 필추는 번뇌를 떠나 모든 법 가운데서 법안(法眼)이 깨끗해졌으며, 9만 6천 유정들은 과거에는 위없는 보리심을 내지 않았다가 이제 다 내었고, 5만 보살들은 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 때 사자용맹뢰음 보살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당신은 위없는 보리심을 내신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그만두시오, 선남자여. 무생법(無生法)에 대해 분별을 내지 마시오. 선남자여, 만일 누가 ‘나는 보리심을 내었다, 나는 보리행을 행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삿된 견해[邪見]입니다. 선남자여, 나는 그 마음이 보리를 위해 난 것을 보지 못했나니, 나는 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리를 위해 마음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사자용맹이 말하였다.
“문수사리시여, 그것은 어떤 글귀의 뜻입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보는 바가 없는 그것을 평등이라 함은 아까 말한 바와 같습니다.”
사자용맹이 말하였다.
“문수사리시여, 어떤 것을 평등이라 합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평등이란 여러 가지 상이 없는 것입니다. 이 평등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이 1미(味)라고 말하며, 1미란 1성(性)을 말하며, 1성이란 적적성(寂靜性)이니, 거기에는 곧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습니다. 이렇게 설법합니다. 법은 단(斷)도 아니요 상(常)도 아니며, 생(生)도 아니요 멸도 아니며, 아(我)도 없고 섭수(攝受)가 없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설법합니다. 말하고서 생각하는 것도 없고 또한 분별하는 것도 없습니다. 선남자여, 이 평등한 법 가운데서 닦아 익히는 지혜를 일으키는 것을 평등이라 합니다.
또 선남자여, 보살이 이런 법성에 들어가서 다른 것도 보지 않고 하나임도 보지 않는 것을 평등이라 합니다. 그 평등이란 평등 아닌 것을 떠난 것이니, 그 불평등 가운데서 평등하기 때문에 본래 청정한 것입니다.”
그 때 사자용맹뢰음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문수사리는 저에게 언제부터 위없는 보리에 발심했는가를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모두가 그것을 듣기를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문수사리는 매우 깊은 인(忍)을 가진 자이다. 그러나 나아가 그 매우 깊은 인도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보리도 얻을 수 없는 것이요, 마음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언제부터 발심했는가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선남자야, 그대는 잘 들어라. 내가 지금 마땅히 말하리라. 문수사리 동진보살은 과거 오래 전에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내었느니라. 선남자야, 과거 오래 전 70만 아승기야(阿僧企耶) 백천 긍가의 모래 수 같은 겁 전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그 이름은 뇌음(雷音) 여래·응공[應]·정등각(正等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이며, 그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을 때 동방으로 72나유다 불찰을 지나 무생(無生)이라는 세계가 있었다. 뇌음 여래께서 거기서 설법하실 때 84구지(俱胝) 나유다의 모든 성문들이 있었는데, 모든 보살들은 그보다 곱절이나 많았다. 선남자야, 그 때 허공칠보구족(虛空七寶具足)이라는 왕이 있어서 사천하를 정법으로 교화하면서 법륜왕(法輪王)이 되었다.
선남자야, 그 허공왕은 그 뇌음 여래 회중에 있으면서 8만 4천 년 동안 갖가지 오락 기구와 의복과 음식과 궁전과 누대[臺觀]와 동복(僮僕)과 시자 등 모두 훌륭하고 묘한 것으로 그 뇌음 여래와 모든 보살과 성문 대중들을 공경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었다. 그 왕의 친족과 궁중의 채녀(綵女)와 왕자와 대신들도 오직 공양만을 힘쓰고 다른 일은 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여러 해를 지나도 조금도 권태를 느끼지 않고 8만 4천 년을 지냈다.
그 때 그 왕은 혼자 있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미 한량없는 선근(善根)을 축적하였다. 나는 지금 이런 선근을 회항하여 무엇을 구할까? 제석(帝釋)이 될까, 범왕(梵王)이 될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까, 성문이나 연각이 될까?’
선남자야, 그 허공왕이 이렇게 생각하자 공중에서 여러 천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그만두시오. 그런 저열한 생각을 내지 마시오. 왜냐 하면 왕이 모은 복덩이는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위없는 보리심을 내야 합니다.’
선남자야, 그 때 허공왕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여기서 결코 퇴전하지 않으리라. 왜냐 하면 하늘이 내 마음을 알고 와서 내게 일러 주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그 때 허공왕은 곧 80구지 나유다 백천 유정들을 데리고 뇌음여래께 나아가 정수리로 그 두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선남자야, 그 허공왕은 뇌음 여래를 향해 합장하고 게송[伽他]을 외웠다.
가장 훌륭한 법을 나는 묻나니
원컨대 사람 중에 높으신 이는 말씀하소서.
어떻게 최상의 것 얻으리까.
사람 중에 높으신 장부(丈夫)시여.
나는 세존 앞에
갖가지 공양 올리면서도
마음이 의지할 데 없기 때문에
아직 회향하지 못하였나니
혼자 있으면서 생각하였네.
한 인연에 이 마음 매고
이미 광대한 복 지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회향할까.
제석이나 범왕을 구할까.
또 전륜왕이 될까.
혹은 성문을 구할까.
또는 연각이 될까.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때
모든 하늘이 내게 말했네.
'만일 하열한 마음을 내면
그 복이 무너지리라.
대왕은 훌륭한 서원을 내어
모든 유정들 이롭게 하라.
이 세간을 제도하기 위해
보리의 마음을 내어야 한다.'
저는 두루 깨달은 이께 묻나니
모든 법에 자재한 이여
어떻게 이 마음 내어야
등정각(等正覺)을 이룰 수 있으리까.
무엇으로 이곳을 얻었는가
저를 위하여 나타내 보이면
저는 보리의 마음을 내어
당신 모니(牟尼)와 꼭 같이 되오리.
저 허공에서 그 말을 듣고
그 때문에 여래께 아뢰네.
대왕이여, 당신은 아소서.
나는 이제 차례로 말하리라.
모든 법은 다 인연에 속하고
낙욕(樂欲)이 그 근본이 된다.
그가 원하는 그것과 같이
얻는 결과도 또한 그렇다.
나 또한 지난 세상에
일찍이 이런 마음을 내어
모든 유정들을 이롭게 하려고
이런 훌륭한 원을 내었다.
그 훌륭한 발원에 의해
훌륭하고 뛰어난 결과를 얻어
그 큰 보리를 증득하여
훌륭한 그 발원을 다 이루었다.
대왕이여, 부디 용맹스럽게
마땅히 이런 마음을 내고
이 묘한 행을 행하라.
당신은 반드시 정각(正覺) 이루리.
부처님의 이 말씀 듣고
대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사자처럼 크게 외치니
세간이 다 진동하였네.
'그러한 본초제(本初際)에 이르고
또 생사의 끝을 다하고
모든 유정들을 이롭게 하리니
나는 끝없는 행을 행하리라.
이 모든 대중 앞에서
나는 보리심 내고
맹세코 모든 중생들 건지어
모든 고통에서 모두 떠나게 하리.
지금부터 이 뒤로
분노와 질투하는 마음과
또 아만과 탐애(貪愛) 등
이 더러움 내게 있으면
이것은 시방과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속이는 것이네.
지금부터 이 뒤로는
보리를 증득할 때까지
맹세코 깨끗한 행을 행하라.
나는 탐욕의 죄를 버리고
깨끗한 계율과 유화(柔和)의 인(忍)을
부처님 따라 닦아 배우고
소홀히 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빨리 구하여 정각 이루리.
나는 미래의 세상이 다하도록
저 낱낱 유정들 모두 위하고
한량이 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국토를 깨끗이 하리.
그 명호를 높이 드날려
시방 국토에 두루 들리는
나는 지금 스스로 수기(授記)하나니
부처 이루기 의심이 없네.
나는 지금 스승 앞에서
뜻의 업을 깨끗이 하고
또 몸의 업도 깨끗이 하고
나아가 또 말의 업까지
모두 다 깨끗이 하여
좋지 않은 업 짓지 않으리.
나의 이 진실한 행에 의해
나는 부처 되어 세상 이롭게 하리.
이 진실한 말로 말미암아
대지는 마땅히 여섯 가지로 진동할 것이요
만일 내 말이 진실하지 않으면
4대(大)가 서로 뒤바뀌리.
이 말이 진실하기 때문에
마땅히 갖가지 음악이 있어
공중에서 저절로 울릴 것이네.
내가 진실하여 속임이 없으므로
또한 그 어떤 번뇌도 없고
나의 이 성실로 말미암아
원컨대 하늘에서 묘한 꽃 내려라.'
이 말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로 경각 시켰기 때문에
시방으로 한량이 없는
구지 세계가 진동하였네.
그리고 찰나 사이에 허공에서
구지 음악 울리고
만다라꽃이 내려
높이가 일곱 미로산(迷盧山)만했네.
20구지의 사람들은
그 왕을 따라 배워
모두 미묘한 소리내어 '우리도 장차 부처 되리라' 했네.
그러자 20구지의 사람들과 같이
모든 사람들도 다 그러하여
왕을 따라 정각을 구하였네.
선남자야, 그 때의 허공왕을 다른 사람이라 보지 말아라. 지금의 이 문수사리 동진 보살이 바로 그 사람이다. 동진 보살은 그 때에 허공왕이 되어 70만 아승기야 백천 긍가의 모래 수 같은 겁을 지나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었고, 또 60긍가의 모래 수 같은 겁을 지나 무생법인을 얻었으며, 그 뒤로 10지(地)를 성취하고 10력(力)을 구족하였으며, 또한 일체 여래의 자리를 채우고, 또한 일체 불법을 이루었으면서도 한 번도 ‘나는 위없는 정등각을 증득하였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느니라.
또 선남자야, 그 때 20구지 사람들은 다 그 왕과 함께 뇌음 여래 앞에서 보리심을 내어 다 위없는 보리심을 증득하고 불퇴전의 법륜을 굴려 아승기 유정들을 위해 불사를 지었으며, 그리고는 부처님의 열반으로 반열반하였다. 그들은 다 이 문수사리의 권함에 의해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다 차례로 받들어 섬겼고, 그들은 모든 부처님의 교법을 다 호지(護持)하였다.
또 다른 한 부처님께서는 이 하방(下方)에 계시고, 여기서 40긍가의 모래 수와 같은 많은 불토를 지나 지(地)라는 세계가 있고, 부처님의 이름은 지천(地天)이며 그 수명은 한량이 없는데, 지금도 그 세상에 계시면서 한량없는 성문들에게 둘러싸여 이 문수사리의 과거의 일을 말씀하시느니라.”
그 때 그 회중의 7천 유정들은 다 위없는 정등(正等)의 큰 보리심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