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

당(唐)삼장사문 의정(義淨)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박가범(薄伽梵:世尊)께서 대성전승림(大城戰勝林:舍衛大城의 祇樹)의 급고독(給孤獨) 동산에서 큰 비구들 1,250명과 큰 보살 대중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이른 새벽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안에 들어가서 걸식하실 적에 차례로 빌어서 마치고 본래의 처소로 돌아오셨다. 식사를 마치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고 나서 먼저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틀고 단정히 앉아 정념(正念)하고 계셨다.

이 때 모든 필추들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두 발에 정례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 구수(具壽:장로) 묘생(妙生)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부처님의 신통력을 이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 공경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신 세존이시여, 희유하신 선서(善誓:부처님)시여, 여래께서 마땅히 정등각(正等覺:正覺)을 이루셨사오니, 능히 가장 훌륭한 이익으로 모든 보살을 이익되게 하시고, 능히 가장 훌륭한 부촉(付囑)을 가지시고 모든 보살에게 부촉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승(菩薩乘)으로 향하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응하여 머물며,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포섭하여항복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묘생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와 같으니라, 그와 같으니라. 내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여래는 가장 이익됨을 가지고 모든 보살을 이익되게 하고, 가장 훌륭한 부촉을 가지고 모든 보살에게 부촉하느니라. 묘생아,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너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만약 보살승에 향하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며, 이와 같이 수행하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포섭하여 항복시킬 것이니라.”

묘생이 말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즐거이 듣고자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묘생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승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낼 것이니라.

존재하는 일체 중생의 종류로서 혹은 알에서 태어나거나, 태에서 태어나거나, 습기에서 태어나거나, 화(化)하여 태어나거나 혹은 형상[有色]이 있는 것, 형상이 없는 것[無色],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한 것이니, 모든 세계에 있는 중생을 다하여 이와 같이 일체를 내가 다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그들을 멸도(滅度)하리라. 비록 이와 같이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원적(圓寂:열반)을 증득하게 하나, 한 중생도 원적에 들어간 자가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묘생아, 만약 보살이 중생의 생각이 있으면 곧 보살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느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나라는 생각[我想], 중생이라는 생각[衆生想], 수명이라는 생각[壽者想]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취(趣:중생이 사는 곳)라는 생각을 구하기 때문이니라.

또 묘생아, 보살은 대상[事]에 머물지 아니하고 보시해야 하며, 장소[處]에 따라 머물지 아니하고 보시를 해야 하며, 빛깔이나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에 머물지 아니하고, 보시를 행해야 할 것이니라.

묘생아, 보살은 이와 같이 보시하고 나아가 상응할 것이며, 또한 마땅히머물지도 아니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머물지 아니하고 보시하는 복[福聚]은 헤아리기 어려운 까닭이니라. 묘생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동쪽의 허공을 헤아려 알 수 있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남방ㆍ서방ㆍ북방과 그 사이와 상하의 시방 허공을 헤아려 알 수 있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묘생아, 보살이 머물지 아니하고 보시를 행하여 얻는바 복[福聚]을 헤아려 알 수 없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묘생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뛰어난 모양[勝相]을 구족한 것을 여래라고 보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뛰어난 모양을 여래라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뛰어난 모양은 곧 뛰어난 모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생아, 여러 뛰어난 모양은 다 허망한 것이다. 만약 뛰어난 모양이 없다면 곧 허망하지도 않으리니, 그러므로 마땅히 뛰어난 모양은 모양이 없음으로써 여래를 볼 것이니라.”

묘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오는 세상의 뒤의 5백 세(5억 5천 세 중 마지막 5백 세)에 정법이 멸할 때 이 경을 설하는 것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중생이 오는 세상의 뒤의 5백 세에 정법이 멸할 때 이 경을 설하는 것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내겠습니까라는 이런 말을 하지 말라.

묘생아, 마땅히 오는 세상에 모든 보살이 있어 계를 구족하고 덕을 구족하고 지혜를 구족하리니, 그 보살은 한 부처님만을 섬기고 공양하여 모든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다. 이미 과거에 무량한 백천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모든 선근을 심었으니, 이 사람이 이 경전에서 한결같은 신심을 낼 것이니라. 묘생아, 여래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느니라.

그 모든 보살은 미래에 태어나되, 마땅히 한량없는 복을 가질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저 보살은 나라는 생각ㆍ중생이라는 생각ㆍ수명이라는 생각ㆍ다시 뜻대로 태어난다는 생각이 없음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 모든 보살은 법이라는 생각도 없고 법이 아니라는 생각도 없고, 생각도 없고 생각이 없음도 없다. 무슨 까닭인가? 만약 저 보살이 법이 있다는 생각이 있으면 곧 나라는 집착ㆍ유정이라는 집착ㆍ수명이라는 집착ㆍ다시 마음대로 태어난다는 집착이 있음이니라. 만약 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으면 그도 또한 나라는 집착ㆍ유정이라는 집착ㆍ수명이라는 집착ㆍ다시 마음대로 태어난다는 집착이 있음이니라.

묘생아,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법을 취하지 아니하며, 마땅히 법이 아님을 취하지도 않느니라. 이러한 뜻으로 인해 여래의 비밀스러운 뜻을 뗏목의 비유로 베풀어 설함이니, 모든 지혜 있는 자는 법도 오히려 버리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겠는가.

묘생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가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한 것이 있겠느냐? 또 어떤 조그만 법이라도 설한 것이 있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이해한 바로는, 여래께서는 무상보리에서 실로 증득하신 것도 없고 또한 설하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취할 수도 없고, 설할 수도 없으며, 그것은 법도 아니고, 법이 아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성자는 다 무위(無爲)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생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게 7보를 가지고 보시하면 얻는 복이 많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이 복이 모인다[福聚]는 것은, 이것이 모임이 아니옵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복의 모임, 복의 모임이라고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생아,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있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게 7보로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능히 경이나 하나의 네 구 게송을 스스로 받아 가지고 남을 위하여 연설하면 이 인연으로 생긴 복은 앞보다 지극히 더 많아 한량없고 수도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묘생아, 모든 여래의 위없는 깨달음[無上等覺]은 이 경에서 나왔으며, 모든 불ㆍ세존은 이 경에서 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묘생아, 불법(佛法)이란 여래가 불법이 아니라고 설한 것을 이름하여 불법이라 한다.

묘생아, 너의 뜻에 어떠하냐? 모든 예류인(預流人)이 ‘나는 예류과(預流果)를 얻었다’라는 생각을 하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모든 예류인이란 흘러들어가는 법이 없으므로 이름이 예류이며,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이 예류가 아니며, 이름이 예류일 뿐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예류자가 ‘나는 예류과를 얻은 자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곧 나라는 집착ㆍ유정이라는 집착ㆍ수명이라는 집착ㆍ다시 뜻대로 난다는 집착이 있음입니다.” “묘생아, 네 생각엔 어떠하냐? 모든 일래인(一來人:斯陀含)이 ‘나는 일래과(一來果:한 번 오는 과위)를 얻었다’라고 생각하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조그만 법도 일래(一來) 성품을 증득할 것이 없기 때문에 이름을 일래라고 합니다.” “묘생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모든 불환인(不還人:阿那含)이 ‘나는 불환 과(不還果:돌아오지 않는 과위)를 얻었다’라고 생각하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거기에는 적은 법이라도 불환의 성품을 증득할 것이 없는 까닭으로 이름을 불환(不還)이라고 합니다.” “묘생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모든 아라한(阿羅漢:應供)이 ‘나는 아라한과를 얻었다’라고 생각하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거기에는 적은 법이라도 아라한의 성품을 증득할 것이 없기 때문에 이름을 아라한이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곧 나라는 집착ㆍ유정이라는 집착ㆍ수명이라는 집착ㆍ다시 뜻대로 난다는 집착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제가 무쟁(無諍:無諍三昧)을 얻어 머무는 가운데 가장 제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아라한으로 욕망과 번뇌[欲染:오욕에 물듦]를 여의었으나 실로 일찍이 제가 이 아라한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가 ‘아라한이 되었다’ 생각한다면, 여래께서는 이 묘생에게 무쟁을 얻어 머무는 가운데 가장 제일이라고 설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전혀 머무는 바가 없기 때문에 저에게 무쟁을 얻어 머문다, 무쟁을 얻어 머문다고 설하셨을 것입니다.” “묘생아, 네 생각엔 어떠하냐? 여래가 옛적에 연등불(然燈佛)의 처소에 있을 때 적은 법이라도 얻었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불의 처소에서 실로 취한 것이 없습니다.” “묘생아,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내가 마땅히 장엄한 불토를 성취하였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진실된 말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장엄한 불토(佛土)란 여래가 장엄하지 아니함을 설한 것이므로, 이러한 설법으로 말미암아 국토장엄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묘생아, 보살은 대상[事]에 머물지 아니하고, 장소에 따라서 머물지 아니하고,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에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내되, 마땅히 대상에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을 내며, 마땅히 장소에 따라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을 내며, 마땅히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에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을 내느니라.

묘생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몸이 묘고산(妙高山:수미산)과 같다면, 너의 뜻에 어떠하냐? 이 몸이 광대하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매우 광대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그의 몸은 여래께서 설하시는 몸이 아니요, 그것은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설하여 몸이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묘생아, 네 생각엔 어떠하냐? 강가하(弶伽河) 가에 있는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강가하가 또 있다면, 이 모든 강의 모래가 많다고 하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강도 수없이 많은데 하물며 모래는 어떻겠습니까?” “묘생아, 이제 나는 너에게 진실로 말하노라.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강의 모래와 같은 수의 세계에 가득 찬 보배를 가지고 여래께 받들어 보시한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묘생아,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 한 게송을 받아 가지고 아울러 남을 위하여 설한다면 이 복의 모임[福聚]은 앞의 복이 모인 것보다 뛰어나서 헤아릴 수 없고 끝도 없느니라.

묘생아, 만약 국토 안에 이런 법문이 있어 남을 위하여 설명하고 나아가 4향(向:소승 4과를 향함)의 구절을 설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땅은 곧 이 제저(制底:佛塔)로써 모든 천인(天人)ㆍ아수라[阿蘇羅] 등이 다 응하여 오른쪽으로 돌고 경례할 것인데, 하물며 다 능히 받아 가지고 읽고 외움은 어떠하겠느냐.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곧 가장 으뜸이요, 제일 희유할 것이니라. 또한 이곳은 부처님과 존중하는 제자가 있는 곳이니라. 묘생아, 네 생각엔 어떠하냐? 적은 법이라도 여래가 설하였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적은 법이라도 여래께서 설하신 것은 없습니다.” “묘생아, 삼천대천세계의 땅에 있는 티끌은 많으냐?”

묘생이 아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모든 땅의 티끌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티끌이 아니며, 이름이 땅의 티끌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세계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세계가 아니니, 그러므로 이름을 세계라고 합니다.” “묘생아, 네 생각엔 어떠하냐? 32대장부(大丈夫)의 상호로써 여래를 보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32상으로 여래를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32상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장부상이라고 설하셨습니다.” “묘생아,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있어서 강가하의 모래와 같은 신명(身命:생명)을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만약 다시 어떤 이가 있어 이 경 가운데 한 게송을 받아 가지고 남을 위하여 설법한다면 그 복은 저보다 더 뛰어나니, 한량이 없고 셀 수도 없느니라.”

그 때 묘생이 이 경을 설함을 듣고 깊이 뜻을 이해하여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혜가 생긴 이래로 일찍이 이와 같이 심오한 경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마땅히 무엇이라 이름하오며, 저희들은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묘생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은 반야바라밀다라 이름하고, 이와 같이 지닐지니라. 왜냐하면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라고 설한 것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묘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설함을 듣고 진실한 생각[實想]이 생긴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가장 으뜸이요 희유한 사람이라고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진실한 생각이란 곧 진실한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이름을 진실한 생각이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경을 듣고 마음에 믿고 아는 것이 생겼으나 아직 희유하지 않습니다. 만약 마땅히 오는 세상에 이 경을 듣고 능히 받아 지니는 자는 곧 가장 희유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나라는 생각ㆍ중생이라는 생각ㆍ수명이라는 생각ㆍ다시 뜻대로 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나라는 생각ㆍ중생이라는 생각ㆍ수명이라는 생각ㆍ다시 뜻대로 난다는 생각, 곧 이것은 생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불ㆍ세존께서는 모든 생각을 여의시기 때문입니다.” “묘생아, 그러하다, 그러하다. 또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 경을 듣고 놀라지도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겁내지도 아니하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하리라. 무슨 까닭인가?
묘생아, 가장 뛰어난 반야바라밀다는 여래가 설한 모든 반야바라밀다이니라. 여래가 설하였다는 것은 곧 끝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베풀어 설함이라. 그러므로 이름하여 가장 뛰어난 반야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묘생아, 여래가 설한 인욕(忍辱)바라밀다는 곧 인욕바라밀다가 아니니라. 무슨 까닭인가? 내가 옛날 갈릉가왕(羯陵伽王:歌利王)에게 몸이 베일 때 나라는 생각ㆍ중생이라는 생각ㆍ수명이라는 생각ㆍ다시 뜻대로 난다는 생각이 없었으며, 나는 이 생각이 없었고, 또 생각이 없지도 아니하였느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내가 이 생각이란 것이 있었으면 마땅히 성내거나 원한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묘생아, 또 생각하건대 지난 과거 5백 세 전에 인욕선인(忍辱仙人)이었을 때 나는 그 때 이와 같은 등의 생각이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생각을 여의고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마땅히 빛깔이나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에 머물지 아니하고 전혀 머묾이 없이 그 마음을 내며, 마땅히 법에 머물지 아니하며, 마땅히 법 아닌 데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내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머묾이 있으면 곧 머물지 아니함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보살을 마땅히 머물 바가 없이 보시를 행한다고 하느니라.

묘생아, 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나니, 이 중생이라는 생각[衆生想]이란 곧 생각이 아니며, 그 모든 중생은 곧 중생이 아니니라. 무슨 까닭인가? 모든 부처님과 여래는 모든 생각을 여읜 때문이니라.

묘생아, 여래는 이에 진실을 말하는 자이며, 여여한[如] 말을 하는 자이며,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는 자이며, 다른 말을 아니하는 자이니라.

묘생아, 여래가 증득한 법과 설한 법은 곧 진실도 아니요, 허망함도 아니다.

묘생아, 만약 보살의 마음이 대상에 머물러서 보시를 행하면, 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 곧 볼 수가 없느니라.

만약 대상에 머물지 아니하고 보시를 행하면, 마치 사람에게 눈이 있는 것과 같아 햇빛이 비치면 가지가지 색깔을 보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대상에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보시를 행하느니라.

묘생아,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있어서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설법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부처님께서 지혜의 눈으로 다 아시고 다 보시나니, 한량없는 복이 생기고 마땅히 가질[攝] 것이니라.

묘생아,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있어서 아침에 강가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도 다시 강가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며, 저녁에도 또 강가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며, 이와 같이 한량없는백천만억 겁 동안 몸으로 보시하더라도, 만약 다시 어떤 이가 이 경전을 듣고 헐뜯거나 비방하지 아니하면, 그 복은 저보다 더 뛰어나니, 하물며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해설하는 것이겠는가.

묘생아, 이 경은 불가사의하고 헤아려 말할 수 없는 무량한 공덕이 있어서 여래가 대승을 향해 나아가는 자를 위하여 설하고 최상승(最上乘:지극한 敎法)을 향해 나아가는 자를 위하여 설함이니, 만약 어떤 이가 있어 능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널리 남을 위하여 설하면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 사람은 다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불가사의한 복된 업의 모임을 성취하여 얻을 것이다.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곧 어깨에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짊어짐이니라.

왜냐하면 묘생아, 만약 적은 법을 즐기는 자는 곧 나라는 견해ㆍ중생이라는 견해ㆍ수명이라는 견해ㆍ다시 뜻대로 난다는 견해에 집착하는 것이니, 이 사람이 만약 능히 이 경을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닌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니라.

묘생아, 있는 곳[在處]에 만약 이 경이 있다면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탑[制底]이라, 일체 세간ㆍ천인(天人)ㆍ아수라가 공경하여 예를 드리고 돌면서 모든 향과 꽃으로 그곳에 공양할 것이니라.

묘생아,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연설할 때에 혹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느니라. 왜냐하면 묘생아,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지난 생에 악업을 지어서 악도에 떨어졌으며, 그로 말미암아 현재에 업신여김을 당함이니, 이는 선한 일을 함으로써 능히 악업이 없어지고 속히 보리에 이를 뿐이니라.

묘생아, 내가 기억하건대 과거 수없는 겁을 지나 연등불이 계실 때 멀리 84억 나유타의 부처님을 만나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겨서 거스르거나 등짐이 없었느니라.

만약 또 어떤 이가 후의 5백 세에 정법이 멸할 때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그 뜻을 해석하여 널리 남을 위하여 설법하면, 얻는 공덕은 앞의 공덕과 이 공덕을 비유하건대, 백분의 천만억으로 나누고, 산수로 나누고, 세력으로 나누고, 숫자로 비교하여 나누고, 원인으로 나누고[因分] 나아가 비유로도 또한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묘생아, 내가 만약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공덕을 자세히 설하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곧 미친 듯이 산란하고 의혹하여 믿지 아니하리라.

묘생아, 마땅히 알라. 이 경은 불가사의하여 그 받아 지니는 자는 마땅히 바람[希望]에 응하여 생기는 복[福聚]이 불가사의할 것이니라.”

또 묘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승에 향하여 나아가는 자는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잡아서 항복시키오리까?”

부처님께서 묘생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승에 뜻을 내는 자는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마음을 낼 것이니라.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모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할 것이다.’

비록 이와 같이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원적(圓寂:열반)을 증득하게 하더라도 한 중생도 원적을 증득한 자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묘생아, 만약 보살이 중생이란 생각이 있으면, 곧 보살이라 이름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묘생아, 진실로 법에는 보살승에 향하여 나아간다는 이름이 없느니라.

묘생아, 네 생각엔 어떠하냐? 여래가 연등불의 처소에서 적은 법이라도 법을 증득함이 있었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연등불의 처소에서 보리를 얻어 증득한 법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묘생아, 진실로 여래는 연등불의 처소에서 큰 보리(菩提)를 얻어 증득하여 깨달은 법이 없느니라. 만약 법을 증득하였다면 연등불께서 곧 나에게 ‘마납바(摩納婆:바라문)여, 그대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서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수기(授記)를 주시지 않았을 것이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으로 연등불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시어 마땅히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 이름하리라고 하였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묘생아, 여래라고 말하는 것은 곧 실성(實性)이니, 진여(眞如)의 다른 이름이니라.”

묘생아, 만약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正等覺)을 증득하였다면 이것은 거짓말이니라. 왜냐하면 진실로 여래는 위없는 정각(正覺)을 증득할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묘생아, 여래가 얻은 정각의 법은 진실도 아니요, 헛됨도 아니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일체 법이라고 설하신 것은 곧 이것이 불법이니라.

묘생아, 일체 법, 일체 법이라 함은 여래가 법이 아니라 설하였나니, 그러므로 여래가 일체 법이라고 설한 것은 곧 이 불법이니라. 묘생아, 비유하면 장부가 그 몸이 장대한 것과 같으니라.”

묘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큰 몸이라고 설하신 것은 곧 몸이 아니요, 이름이 큰 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묘생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만약 보살이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여 적멸(寂滅)하게 하였도다’라고 말하면, 곧 보살이라고 하지 못하리라. 묘생아, 적은 법이라도 있으면 보살이라 이름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묘생아, 그러므로 여래가 설한 일체 법이란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고, 다시 뜻대로 남도 없느니라.

묘생아, 만약 보살이 ‘나는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하고 뛰어나게 성취하였도다’라고 말한다면, 불국토가 장엄하고 뛰어나다는 것은 여래가 이 장엄하고 뛰어남이 아니라고 설하였으며, 그러므로 여래는 장엄하고 뛰어나다고 설하였느니라.

묘생아, 일체 법은 성품이 없다고 믿어 알고 일체 법에 성품이 없는 자는 여래가 진실로 이 보살 가운데 보살이라 이름하리라.

묘생아, 너의 뜻에 어떠한가? 여래에게는 육안(肉眼:육체의 눈)이 있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는 육안이 있습니다.” “여래에게는 천안(天眼)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는 천안이 있습니다.” “여래에게는 혜안(慧眼)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는 혜안이 있습니다.” “여래에게는 법안(法眼)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는 법안이 있습니다.” “여래에게는 불안(佛眼)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는 불안이 있습니다.” “묘생아, 너의 뜻에 어떠한가? 강가하 가에 있는 모래의 수와 같은 강가하가 있고, 그 모든 강가하의 모래 숫자만한 세계가 그곳에 있다면 이것은 많다고 하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묘생아, 이 세계 가운데 있는 중생의 가지가지 성품과 소행이 그 마음 따라 유전(流轉)함을 나는 훤히 아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묘생아, 마음의 다라니(陀羅尼)란 가짐이 없다고 여래가 설하였느니라. 가짐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좇아 유전하느니라. 왜냐하면 묘생아, 과거의 마음도 찾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찾을 수 없느니라.

묘생아, 너의 뜻에 어떠하냐?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로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이 많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묘생아, 만약 이 복[福聚]이 복이라는 것을 여래는 곧 복이 복이라고 설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니라. 묘생아, 너의 뜻에 어떠하냐? 원만한 색신(色身)으로 여래를 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원만한 색신(色身:육신)으로 여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만한 색신이라고 하는 그 원만한 색신이란 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만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이 원만한 색신입니다.” “묘생아, 구족한 상(相)으로 여래를 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구족한 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구족한 상이란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구족한 상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이름이 구족한 상이라고 하셨습니다.” “묘생아, 너의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나는 법을 설하였다’고 생각하겠느냐? 너는 이런 생각[見]을 가지지 말지니라. 만약 여래가 법을 설하신 것이 있다고 말하면 곧 나를 비방함이니라. 왜냐하면 설법이라고 말한 설법이란 설할 법이 없음이요, 이름이 설법이기 때문이니라.”

묘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오는 세상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설함을 듣고 신심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묘생에게 말씀하셨다.

“묘생아, 신심을 내는 자가 있을 것이니, 그는 중생이 아니요, 중생이 아님도 아니니라. 무슨 까닭인가? 온갖 중생이란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아니라 하였으므로 이 이름이 중생이기 때문이니라.

묘생아, 네 생각엔 어떠하냐? 부처님께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얻으실 때에 어떤 조그만 법을 증득하신 것이 있었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진실로 부처님께서 증득하신바 법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묘생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이 가운데 조그만 법도 얻은 것이 없으므로 이름이 무상정등보리이니라. 묘생아,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이름이 무상정등보리요,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고, 다시 뜻대로 나는성품도 없으며, 그 성품이 평등하므로 이름이 무상정등보리이니라. 일체의 선법(善法)을 모두 바로 깨달은 까닭으로 이름이 무상정등정각이니라.

묘생아, 선법이란 여래께서 법이 아님을 설하셨으므로 이름이 선법이니라.

묘생아, 만약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가장 높은 묘고산(妙高山:수미산)이 있는데, 그와 같은 7보를 모아서 어떤 이가 가지고 보시하며, 다시 어떤 이가 이 경 가운데 하나의 4구(句)의 게송을 만약 스스로 받아 지니고 남을 위하여 설한다고 했을 때 앞의 복[福聚]을 가지고 이 복에 비교한다면, 가령 이를 나누매 백으로 나눈다 하여도 능히 그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며, 혹 천으로 나누고, 억으로 나누고, 산수[算]로 나누고, 세력으로 나누고, 숫자로 나누고, 과거의 인연[因分]으로 나누고, 나아가 비유로도 능히 하나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묘생아, 너의 뜻에 어떠하냐? 여래는 중생을 제도하였느냐? 너는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하셨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일찍이 한 중생도 여래가 제도한 것이 없느니라. 만약 여래가 중생을 제도한 것이 있다면 여래는 곧 나란 견해[見]ㆍ중생이란 견해ㆍ수명이란 견해ㆍ다시 뜻대로 난다는 견해가 있음이니라.

묘생아, 나 따위의 집착은, 여래가 설하기를 ‘집착이 아니다’라 했거늘, 어리석은 이들이 망령되이 이를 집착함이니라. 묘생아, 어리석은 중생이란 여래가 말하기를 ‘중생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그러므로 이름을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하느니라. 묘생아, 네 생각엔 어떠하냐? 구족한 상으로 여래를 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구족한 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묘생아, 만약 구족한 상으로써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도 마땅히 여래일 것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구족한 상으로 여래를 보지 아니할 것이요, 마땅히 모든 상(相)이 아님으로써 여래를 볼 것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설하셨다.

"만약 형상[色]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견해를 일으킴이니
능히 마땅히 나를 보지 못하리라.



마땅히 불법(佛法)의 성품을 보매
곧 도사(導師)가 법신이라
법의 성품은 인식되는 것이 아니요
그러므로 그는 능히 깨닫지 못하리.

묘생아, 모든 보살승에 향하여 나아가는 자는 그 법을 끊고 멸하겠느냐? 너는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보살승에 나아가는 자는 그 법을 잃지 않기 때문이니라.

묘생아,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강가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세계에 가득한 7보로 보시하고, 다시 어떤 이가 나란 것이 없다는 이치와 생멸도 없는 법[不生法] 가운데 참음[忍]을 얻어 깨달으면 생기는 복이 그보다 지극히 더 많아 헤아릴 수도 없느니라. 묘생아, 보살은 마땅히 그 복[福聚]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묘생이 아뢰었다.

“보살은 어찌하여 복을 취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묘생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바르게 취하고 부정하게 취하지[不應越取]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취한다고 설하느니라. 그러므로 묘생아, 설한 것과 같이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하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뜻을 알지 못함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묘생아, 전혀 가고 옴이 없으므로 이름을 여래라고 하느니라.

묘생아,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의 토지를 부수어 검은 티끌로 만든다면, 묘생아, 너의 뜻에 어떠하냐? 이 지극히 미세한 것을 모은다면 많겠느냐?”

묘생이 아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약 모으는 성품이 진실이라면 여래께서는 지극히 미세한 것의 모임, 지극히 미세한 것의 모임이라고 설하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미세한 것의 모임이라는 것은 세존께서 설하신 지극히 미세한 것의 모임이 아니요, 이름이 지극히 미세한 것의 모임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세계는 세계가 아님을 설하셨기 때문이요, 이름이 삼천대천세계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진실로 있다면 여래께서는 곧 모임에 집착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모임에 집착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모임에 집착함이 아님을 설하심이니, 그러므로 모으는 집착을 설하셨습니다.” “묘생아, 이 모임에 집착한다는 것, 이것은 세상의 언론이 그러함이요, 그 체의 성품[體性]은 실로 설할 수 없음이고, 다만 어리석은 중생[異性]이 망령되이 집착하는 것이니라.

묘생아, 설해진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나라는 견해ㆍ중생이라는 견해ㆍ수명이라는 견해ㆍ다시 뜻대로 태어난다는 견해란 이것이 바른 설법이냐, 바르지 아니한 것이냐?”

묘생이 아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만약 여래께서 나라는 견해[我見]를 설하셨다면 곧 이것은 견해가 아니며, 이름이 아견(我見)입니다.” “묘생아, 모든 보살승에 뜻을 내는 이는 일체 법을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해석할 것이니라. 이와 같이 해석한다는 것은 나아가 법상(法相:법이란 모양)에 이르기까지 또한 머무른 바가 없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묘생아, 법이란 생각[法想]을 법이란 생각이라고 함을 여래는 생각이 아니라고 설했느니라. 그러므로 이름이 법상법상(法想法想)이니라.

묘생아, 만약 어떤 사람이 헤아릴 수 없고 수도 없는 세계에 가득 찬 7보를 가지고 보시하고, 만약 다시 어떤 이가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거나 나아가 4구의 게송[伽他]을 이익되게 유통하여 널리 남을 위하여 그 뜻을 바로 설하면, 이 인연으로 생기는 복[福聚]은 그보다 한없이 많아 한량없고 수도 없느니라. 무엇이 바른 설법인가? 설할 법이 없는 것, 이것을 바른 설법이라고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게송을 설하셨다.

일체 유위법(有爲法)은
별 그림자ㆍ등불ㆍ허깨비,
이슬ㆍ물거품ㆍ꿈ㆍ번개ㆍ구름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 것이니라.

그 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니, 구수 묘생과 모든 보살마하살ㆍ필추ㆍ필추니ㆍ우바새ㆍ우바이ㆍ일체 세간ㆍ천인(天人)ㆍ아수라[阿蘇羅]들이 다 크게 환희하며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박가범(薄伽梵:부처님)께서 실라벌(室羅筏:舍衛) 서다림(誓多林:祇樹) 급고독원(給孤獨園)에서 큰 필추(苾蒭: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새벽에 평소와 같이 의복을 정리하고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실라벌 큰 성에 들어가서 걸식하셨다.

이 때 박가범께서 성안에서 걸식을 하여 마치고 본래 계시던 처소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시고 옷과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시고 나서 식후에 평소와 같이 자리를 펴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단정히 하고 서원을 바르게 하고 거울 속의 얼굴을 대한 듯이 생각에 잠기셨다.

이 때 모든 필추가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구수(具壽:장로) 선현(善現)도 또한 대중과 같이 앉아 있었다.

그 때 대중 가운데 구수 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공경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옵니다. 세존ㆍ여래ㆍ응(應:여래)ㆍ정등각(正等覺)이시여, 능히 가장 훌륭하게 섭수하시므로 모든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나아가 여래ㆍ응ㆍ정등각을 섭수하시고, 능히 가장 훌륭하신 부촉(咐囑)을 가지고 모든보살마하살을 부촉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승(菩薩乘)에 뜻을 내는 자는 마땅히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그 마음을 섭수하여 복종시키오리까?”

그 때 세존께서 구수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현아, 그러하도다, 그러하도다. 네가 설한 바와 같이 나아가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능히 가장 훌륭한 섭수로써 모든 보살마하살과 나아가 여래ㆍ응ㆍ정등각을 섭수하고, 능히 가장 훌륭한 부촉을 가지고 모든 보살마하살을 부촉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선현아,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듣고 지극히 선하게 뜻을 지어야 할 것이다.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모든 보살승에 뜻을 내는 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고 이와 같이 수행하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잡아서 복종시켜야 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즐겁게 듣고자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모든 보살승에 뜻을 내는 자는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야 할 것이니라. 모든 유정(有情:중생)에 포함되고[攝] 포함되어지는[攝所攝] 것, 혹은 알에서 생긴 것, 혹은 태에서 생긴 것, 혹은 습기에서 생긴 것, 혹은 화(化)해서 생긴 것이나, 혹은 형상[色]이 있거나 형상이 없거나, 혹은 생각이 있는 것이나 생각이 없는 것이나, 혹은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아니하거나, 나아가 유정계(有情界:중생계)에 시설하고 시설된 것 등 이와 같은 일체를 내가 마땅히 다 의지함이 없는 미묘한 열반의 세계[無餘依妙涅槃界]에서 반열반(般涅槃)하게 하리라. 비록 이와 같은 무량한 유정을 멸도(滅度)하더라도 유정이 멸도를 얻은 자가 없어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에 유정이란 생각이 퍼져[轉] 나가면 보살마하살이라고 하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유정이란 생각이 퍼져 나감을 말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수명이란 생각[命者想], 장부란 생각[士夫想], 보특가라(補特伽羅:人衆生)라는 생각, 뜻대로 태어난다는 생각[意生想], 어린아이[摩納婆:儒童人]라는 생각, 짓는다는 생각[作者想], 받는다는 생각[受者想]이 퍼져 나감도 마땅히 알지니, 또한 그러하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조그마한 법도 보살승에 뜻을 낸다고 이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선현아, 보살마하살은 대상에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보시를 행하되 일체 머무는 바가 없이 보시를 행할 것이요, 빛깔[色]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보시를 행하고,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보시를 행할 것이니라.

선현아,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모습[相]과 생각[想]에 머물지 아니함과 같이 마땅히 보시를 행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만약 보살마하살이 전혀 머무는 바가 없이 보시를 행한다면, 그 복덕의 모임[福德聚]은 취하여 헤아릴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동방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선현이 답하였다.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선현아, 이와 같이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四維]과 상하 시방일체세계에 두루한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만약 보살마하살이 전혀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면 그 복덕의 모임[福德聚]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선현아, 보살도 이와 같이 모습이나 생각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같이 마땅히 보시를 행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뜻에 어떠하냐? 모든 상호가 구족함을 가지고 여래를 보느냐?”

선현이 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모든 상호가 구족함을 가지고 여래를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모든 상호가 구족함은 곧 모든 상호를 구족함이 아니라고 설하셨기 때문이옵니다.”

이 말이 끝나고 나서 부처님께서 다시 구수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선현아, 나아가 모든 상호가 구족함도 다 허망한 것이요, 또한 상호를 구족하지 아니함도 다 허망함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상호와 상호 아님을 가지고 여래를 볼 것이니라.”

이 말을 설하시고 나자,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있어서 오는 세상 뒤의 어느 때[後時後分], 후 5백 세에 정법이 장차 멸하고, 시간이 바뀔 때 이와 같은 형상의 경전구[色經典句]를 설함을 듣고 진실한 생각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말을 하지 말라.

‘어떤 유정이 마땅히 오는 세상 뒤 어느 때 후 5백 세에 정법이 장차 멸하려 할 때 이와 같은 형상의 경전 구절을 설함을 듣고 진실한 생각을 낼까?’

그리고 또 선현아, 보살마하살이 있어 마땅히 오는 세상 뒤 어느 때 후 5백 세에 정법이 장차 멸하려고 할 때 계행을 구족하고 덕을 갖추고 지혜를 갖출 것이니라.

또 선현아, 그 보살마하살은 한 부처님만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한 것이 아니요, 또한 한 부처님께만 모든 선근을 심은 것도 아니니라.

또 선현아, 그 보살마하살은 한 분뿐이 아니라 백천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였으며, 또한 한 분뿐이 아닌 백천 부처님께 모든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에 능히 이와 같은 형상의 경전 구를 설함을 듣고 마땅히 한결같이 깨끗한 신심을 얻었느니라.

선현아, 여래는 그 부처님의 지혜로써 다 이미 그것을 알고, 또한 그 부처님의 눈으로 다 이미 그것을 보았느니라.

선현아, 여래는 다 이미 그것을 깨달았나니, 일체 유정은 마땅히 한량없고 수없는 복[福聚]이 생길 것이요, 마땅히 한량없고 수도 없는 복을 가질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그 보살마하살은 나라는 생각이 일어남[轉]이 없고, 유정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수명이라는 생각도 없고, 장부[士夫]라는 생각도 없고, 보특가라라는 생각도 없고, 뜻대로 태어난다는 생각도 없고, 어린아이라는 생각도 없고, 짓는다는 생각도 없고, 받는다는 생각이 일어남도 없느니라.

선현아, 그 보살마하살은, 법이란 생각이 일어남[轉]도 없고, 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일어남도 없고, 생각이 일어남도 없으며, 또한 생각 아님이 일어남[轉]도 없느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선현아, 만약 보살마하살이 법이란 생각이 일어나면, 그는 곧 마땅히 나라는 집착[執]이 있고, 유정이라는 집착이 있고, 수명이라는 집착이 있고, 보특가라라는 등의 집착이 있음이니라.

만약 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일어남이 있어도 그는 또한 마땅히 나라는 집착ㆍ유정이라는 집착ㆍ수명이라는 집착ㆍ보특가라라는 등의 집착이 있음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마땅히 법을 취하지 말 것이며, 마땅히 법 아님도 취하지 말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비밀한 뜻으로 뗏목에 비유한 법문을 설하였느니라. 모든 지혜 있는 자는 법도 오히려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인데, 어찌 하물며 법 아닌 것이겠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구수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선현아, 너의 뜻에 어떠하냐? 어떤 조그만 법이 있어서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증득하였겠느냐? 어떤 조그만 법이 있어서 여래ㆍ응ㆍ정득각께서 이것을 설하셨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은,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는 조그만 법이라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것이 없고, 또한 조그만 법도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설하신 것이 없음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세존이시여,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증득하시고 말씀하시고 생각하시는 법은 모두가 취할 수 없고, 베풀어 말할 수 없어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현성(賢聖)과 보특가라는 다 이 무위(無爲)가 나타난 것인 까닭입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를 가지고 보시하면, 이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福聚]은 얼마나 많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사옵니다, 선서(善逝)시여. 이 선남자나 혹 선여인이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은 그 양이 매우 많사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각각의 복덕[福德聚]이란 여래께서 복덕이 아니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설하신 것은 이름이 각각 복덕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선현아, 만약 선남자나 혹은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를 가지고 보시하고, 또한 만약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법문, 나아가 네 구절의 가타(伽陀)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결국에는 완전히 통달하고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고 열어 보이고 이치와 같이 뜻을 지으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은 앞의 복보다 심히 많아 헤아릴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여래ㆍ응ㆍ정등각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모두 이 경에서 나왔고,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도 다 이 경에서 나오셨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선현아, 모든 부처님 법은 여래가 모든 부처님 법이 아니라고 설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설하기를 이름이 모든 불법이니, 모든 불법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엔 어떠하냐? 모든 예류자(預流者:須陀洹)가 생각하기를, ‘나는 능히 예류과(預流果)를 증득하였다’고 하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예류자는, ‘나는 능히 예류과를 증득하였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모든 예류자는 조금도 예류할 것이 없으므로 이름이 예류이며, 빛깔[色]이나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ㆍ법에 참예[預]하지 아니하므로 이름이 예류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예류자가 ‘나는 능히 예류과(預流果)를 얻었다’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곧 나ㆍ유정(有情)ㆍ수명ㆍ장부[士夫:선비]ㆍ보특가라[人ㆍ衆生] 등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모든 일래자(一來者)가 ‘나는 능히 일래과(一來果)를 얻었다’라고 생각하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일래자는 ‘나는 능히 일래의 과를 얻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조금도 일래(一來)의 성품을 증득할 법이 없기 때문이며, 이름이 일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엔 어떠한가? 모든 불환자(不還者:阿那含)가 ‘나는 능히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하였다’라고 생각하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불환자는 ‘나는 능히 불환과를 증득하였다’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조금도 불환의 성품을 증득할 법이 없기 때문이며, 이름이 불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엔 어떠한가? 모든 아라한(阿羅漢:應供ㆍ不生)이 ‘나는 능히 아라한을 얻었다’라고 이렇게 생각하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아라한은 ‘나는 능히 아라한의 성품을 증득하였다’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조금도 아라한이라고 이름할 법이 없으므로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름이 아라한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능히 아라한의 성품을 얻었다’라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곧 나ㆍ유정ㆍ수명ㆍ장부[士夫]ㆍ보특가라[人ㆍ有情] 등에집착함입니다. 왜냐하면 무쟁(無諍:무쟁삼매를 말함)을 얻어 가장 제일에 머문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아라한으로서 영원히 탐욕을 여의었다 할지라도 저는 일찍이 ‘나는 아라한을 얻어 영원히 탐욕을 여의었다’라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을 얻어 영원히 탐욕을 여의었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여래께서는 마땅히 수기하여[記說] 저에게 ‘선현아, 선남자는 무쟁을 얻어 머물면 가장 제일이니라’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전혀 머물 바가 없음이라, 그러므로 여래께서 이름이 무쟁주(無諍住:무쟁삼매에 머묾)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가 옛날 연등(然燈) 여래ㆍ응(應)ㆍ정등각에게서 조그만 법이라도 취한 것이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없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옛날 연등 여래ㆍ응ㆍ정등각에게서 전혀 적은 법도 취한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있어서 ‘나는 마땅히 불국토를 공덕으로 장엄하게 하리라’라고 이와 같이 말한다면, 이와 같은 보살의 말은 진실한 말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불국토를 공덕으로 장엄하며, 불국토를 공덕으로 장엄한다는 것은 여래가 장엄이 아니라고 설하였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름이 불국토공덕장엄이니, 불국토공덕장엄이라고 설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선현아, 보살은 이와 같이 전혀 머무는 바 없이 마땅히 그 마음을 내고, 빛깔[色]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또한 마땅히 그 마음을 내며, 빛깔 아닌 것[非色]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내며, 또한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내고, 또한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이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내며, 전혀 머물 바가 없이 마땅히 그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장부[士夫]가 있어서 몸이 크고 그 형상 자체가 가령 비유하여 큰 산[妙高山王]과 같다면, 선현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의 몸이 넓고 크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의 몸[身體]은 넓고 큽니다, 세존이시여. 넓고 큽니다, 선서(善逝:부처님)시여.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그의 몸은 여래께서 설하신 그 몸이 아니고 이름이 몸이며, 그 몸을 가지고 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이 몸입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나아가 긍가하(殑伽河)에 있는 모래알만큼 많은 수에다가 가령 이와 같은 모래알 수와 같은 긍가하가 있다면 이 모든 긍가하의모래가 얼마나 많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사옵니다, 선서시여. 모든 긍가하도 오히려 많아 무수한데 하물며 그 모래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에게 알려 너를 깨우쳐 깨닫게 하리라. 가령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아름다운 7보가 그 긍가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에 가득 찬 것을 여래ㆍ응ㆍ정등각께 받들어 보시한다면, 선현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福聚]이 얼마나 많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습니다, 선서시여, 이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바의 복은 그 양이 심히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그것의 모래알만큼 많은 수와 같은 세습에 가득 찬 7보로써 여래ㆍ응ㆍ정등각께 받들어 보시하고, 또한 만약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이 법문, 나아가 4구의 게송[伽他]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결국에는 날카롭게 통달하고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법하며 열어 보이고 이치와 같이 뜻을 지으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이 앞보다 심히 많아 한량없고 수가 없느니라.

또 선현아, 만약 지방의 어느 곳[地方所]에 이 법문, 나아가 4구의 게송을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법하며 열어 보이면, 이 지방은 오히려 세간의 모든 하늘 및 사람ㆍ아수라[阿素洛] 등이 부처님의 영묘(靈廟:절)와 같이 공양할 것이니라. 어찌 하물며 능히 이 법문이 있어서 구경(究竟)에 구족히 쓰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구경에 날카롭게 통달하고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법하며 열어 보며 이치와 같이 뜻을 지음이겠느냐. 이와 같이 유정(有情)이 가장 뛰어나고 희유한 공덕을 성취하면 이와 같은 지방은 대사(大師)가 머무를 것이요, 혹은 하나하나가 따라서 그곳을 존중할 것이며, 또는 모든 지혜와 범행(梵行:淸淨行)을 같이 갖춘 자가 말할지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이 법문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우리들은 마땅히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이 말을 하고 나자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구수여, 지금 이 법문은 이름을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라 하며, 이와 같은 이름을 네가 마땅히 받들어 지닐 것이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여래가 설하되 반야바라밀다가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름이 반야바라밀다라고 설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조그만 법이라도 여래가 설한 것이 있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조그만 법도 여래께서 설하신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나아가 삼천대천세계 대지의 티끌이 얼마나 많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이 땅에 티끌이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습니다, 선서시여.”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대지의 티끌은 티끌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여래가 대지의 티끌이라고 설하였으며, 모든 세계를 여래가 세계가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여래는 이름이 세계라고 설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엔 어떠하냐? 마땅히 32대사부(大士夫:대장부ㆍ큰 남자)의 상호로 여래ㆍ응ㆍ정등각을 보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32대사부의 상호로 여래ㆍ응ㆍ정등각을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32대사부의 상호는 여래께서 상호가 아니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이름이 32대사부상이라고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만약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있어서 날마다 긍가하(殑伽河)의 모래알 수(數)와 같은 몸을 버리어 보시하고, 이와 같이 긍가하 모래알 수와 같은 겁수(劫數)를 지나면서 몸을 베풀어 보시하고, 다시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있어 이 법문, 나아가 4구 게송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결국에는 날카롭게 통달하고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여 열어 보여서 이치와 같이 뜻을 지으면, 이와 같은 인연으로 생기는 복은 앞의 복보다 심히 많아 한량없고 수도 없느니라.”

그 때 구수 선현이 법의 위력을 듣고 슬피 울며 눈물 흘리고 우러러 눈물을 씻으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기이하고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가장 지극히 희유합니다, 선서(善逝)ㆍ여래시여, 지금 설하신 법문은 널리 최상승(最上乘)에 뜻을 내는 자를 위하여 모든 예리한 뜻을 지으셨고, 널리 가장 뛰어난 승(乘)에 뜻을 내는 자를 위하여 모든 예리한 뜻을 지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지혜가 생긴 이래로 일찍이 이와 같은 법문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유정들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경전을 설함을 듣고 진실한 생각을 내면, ‘마땅히 알 것입니다. 가장 뛰어나고 희유함을 성취하였다’고 하는 것을.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모든 진실한 생각[眞實想]과, 진실한 생각이란 여래께서 생각이 아니라[非想]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이름이 진실상(眞實想), 진실상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이와 같은 법문을 듣고 깨달아 믿고 알진대 아직 희유하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유정들이 오는 세상 뒤 어느 때 후 5백 세에 정법이 장차 멸하여 때가 바뀔 때, 마땅히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법문을 깨달아 믿고 이해하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구경에는 예리하게 통달하며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여 열어 보여 이치와 같이 뜻을 지으면, 마땅히 가장 뛰어나고 희유함을 성취하였음을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그 모든 유정들은 나란 생각이 일어남이 없고, 유정이란 생각이 없고, 수명이란 생각이 없고, 장부[士夫]란 생각이 없고, 보특가라라는 생각이 없고, 뜻대로 태어난다는 생각이 없고, 어린아이[摩納婆]라는 생각이 없고, 짓는다는 생각이 없고, 받는다는 생각이 일어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곧 세존이시여, 모든 나라는 생각 은 곧 이 생각이 아니며, 모든 유정이라는 생각ㆍ수명이라는 생각ㆍ장부라는 생각ㆍ보특가라라는 생각ㆍ뜻대로 태어난다는 생각ㆍ어린아이라는 생각ㆍ짓는다는 생각ㆍ받는다는 생각, 곧 이것은 생각이 아니옵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일체 생각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구수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다. 선현아, 만약 모든 유정들이 이와 같이 심히 깊은 경전을 설하심을 듣고 놀라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겁내지도 아니하면, 마땅히 알라. 가장 뛰어나고 희유함을 성취하였느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여래가 설한 가장 훌륭한 바라밀다는 이른바 반야바라밀다이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여래가 설한 바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는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 세존들이 같이 베풀어 설한 까닭으로 이름이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이며, 여래가 설한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란 곧 바라밀다가 아니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름이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라고 설하였느니라.

또 선현아, 여래가 설한 인욕바라밀다란 곧 바라밀다가 아니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름이 인욕바라밀다라고 설하였느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내가옛날 과거세에 일찍이 갈리왕(羯利王)에게 몸이 베이고 살이 끊어질 때 나는 전혀 나란 생각이 없었고, 혹 유정이란 생각, 혹 수명이란 생각, 혹 장부[士夫]란 생각, 혹 보특가라란 생각, 혹은 뜻대로 태어난다는 생각, 혹 어린아이[摩納婆]라는 생각, 짓는다는 생각, 혹 받는다는 생각이 없었느니라.

내가 그 때 만약 나란 생각이 있었다면 곧 그 때 마땅히 성내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요, 내가 그 때 만약 유정이란 생각, 수명이란 생각, 장부[士夫]란 생각, 보특가라란 생각, 뜻대로 태어난다는 생각, 어린아이란 생각, 짓는다[作者]는 생각, 받는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곧 그 때 마땅히 성내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나는 과거 5백 년 가운데 일찍이 내 이름이 인욕선인(忍辱仙人)이었음을 기억하며, 나는 그 때 전혀 나란 생각이 없었고, 유정이란 생각이 없었고, 수명[命者]이란 생각이 없었고, 장부란 생각이 없었고, 보특가라란 생각이 없었고, 뜻대로 태어난다는 생각이 없었고, 어린아이란 생각이 없었고, 짓는다는 생각이 없었고, 받는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니라. 나는 그 때 전혀 생각이 있을 수 없었고, 또한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라.

그러므로 선현아,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생각을 멀리 여의어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여 빛깔[色]에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내며, 빛깔이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내며,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내며,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이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마땅히 그 마음을 내며, 전혀 머무는 바가 없이 마땅히 그 마음을 내느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모든 것에 머무는 바가 있으면 곧 머무름이 아니니,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보살은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고, 마땅히 빛깔ㆍ소리ㆍ맛ㆍ냄새ㆍ감촉ㆍ법에 머물지 아니하고 보시를 행한다고 설하느니라.

또 선현아, 보살마하살은 모든 유정이 뜻을 이롭게 짓기 위한 까닭으로 마땅히 이와 같이 버리어 보시[棄捨布施]하느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모든 유정의 생각은 곧 이 생각이 아니며, 일체 유정은 여래가 곧 유정이 아니라고 설하느니라. 선현아, 여래는 이 진실을 말하는 자[實語者]이며, 진리를 말하 는 자[諦語者]이며, 여여(如如)함을 말하는 자[如語者]이며, 다른 말을 아니하는 자이니라.

또 선현아, 여래가 현재 목전에 증득한 바와 같은 법, 혹은 설한 바 법 혹은 생각하는 법은 그 안에 진리도 없고 거짓도 없느니라.

선현아, 비유하면 장부[士夫]가 암실에 들어가면 전혀 볼 수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마땅히 알라. 보살이 만약 대상[事]에 빠지면 대상에 빠졌다고 말하되, 그러나 보시를 행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선현아, 비유하면 눈 밝은 장부가 밤이 지나 새벽이 되면 햇빛이 나타나 가지가지 색을 보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보살이 대상에 빠지지 아니하면 대상에 빠지지 아니한다고 말하되, 그러나 보시를 행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또 선현아, 만약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이 법문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결국에는 이롭게 통달하고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여 열어 보여서 이치와 같이 뜻을 지으면, 곧 여래가 그 부처님 지혜로써 다 이 사람을 알게 될 것이며, 곧 여래가 그 부처님의 눈으로 다 그 사람을 볼 것이며, 곧 여래가 다 그 사람을 깨닫게 할 것이니라. 이와 같이 유정은 온갖 한량없는 복[福聚]이 마땅히 생길 것이니라.

또 선현아, 가령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새벽에 긍가하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한낮에 다시 긍가하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 또한 긍가하의 모래만큼 수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이 다른 문[異門]의 경으로 연유하여 한량없는 겁을 경유하며 몸을 가지고 보시하며, 만약 이와 같은 법문을 설함을 듣고 비방하지 아니하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은 오히려 앞의 것보다 많아 한량없고 수가 없음이라. 어찌 하물며 능히 이와 같은 법문을 필경에 구족하여 쓰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구경에는 이롭게 통달하며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며 열어 보며 이치와 같이 뜻을 지음에랴.

또 선현아, 이와 같은 법문은 불가사의하고 일컬어 헤아릴 수 없음이라. 마땅히 불가사의한 과보[果熟果]를 받기를 바라느니라.

선현아, 여래가 이와 같은 법문을 베풀어 설함은 모든 유정을 최상승(最上乘)에 나아가 요익하게 하고자 함이요, 모든 유정을 가장 뛰어난 승(乘)에 나아가 요익하게 하고자 함이니라.

선현아, 만약 이 법문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결국에는 이롭게 통달하여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여 열어 보이고 이치와 같이 뜻을 지으면, 곧 여래가 그 부처님의 지혜로 다 이 사람을 알 것이요, 곧 여래가 부처님의 눈으로 그 사람을 다 볼 것이요, 곧 여래가 그 사람을 깨닫게 할 것이며, 이와 같이 유정은 일체에 한량없는 복을 성취하여 모두 마땅히 불가사의하고 헤아려 일컬을 수 없고 끝이 없는 복[福聚]을 성취할 것이니라.

선현아, 이와 같이 일체 유정은 그 어깨에 여래의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짊어지고 있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이와 같은 법문을 모든 믿음이 낮은[下劣] 유정은 능히 들을 바가 아니니라. 모든 나라는 견해[我見]는 아니 되며, 모든 유정의 견해도 아니 되며, 모든 수명[命者]의 견해도 아니 되며, 모든 장부[士夫]의 견해도 아니 되며, 모든 보특가라의 견해도 아니 되며, 모든 뜻대로 태어나는 견해도 아니 되며, 모든 어린아이의 견해도 아니 되며, 모든 짓는다[作者]는 견해도 아니 되며, 모든 받는다는 견해도 아니 되느니라. 능히 받아 듣고 이들이 만약 능히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구경에 날카롭게 통달하여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법하여 열어 보이고 이치와 같이 뜻을 짓는다면 그렇지 않느니라.

또 선현아, 만약 지방(地方)의 어느 곳에서 이 경전을 열면[開] 이 지방의 그곳은 마땅히 세간의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소락(阿素洛:아수라) 등이 공양하고 예로써 공경하고 오른쪽으로 돌며 부처님 탑[靈廟]과 같이 할 것이니라.

또 선현아, 만약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구경에 날카롭게 통달하여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연설하고 열어 보여 이치와 같이 뜻을 지어도, 혹은 가벼이 헐뜯음을 만나거나 지극히 경멸하는 헐뜯음을 만날 것이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선현아, 이 모든 유정은 전생에 지은 모든 부정한 업으로 마땅히 나쁜 길[惡趣]을 받아서 현재의 법 가운데에서 경멸하고 헐뜯음을 만나는 까닭이요, 지난 생에 지은 모든 부정한 업이 다 소진하면 마땅히 무상정등보리를 얻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내가 기억하기에 과거 무수한 겁, 다시 무수한 겁 전에 연등 여래ㆍ응ㆍ정등각을, 다시 그 전에 일찍이 8천4 구지(俱胝) 나유다(那庾多) 백천의 모든 부처님을 내가 다 이어서 섬겼고, 이미 이어서 섬기매 하나도 어기거나 범함이 없었느니라. 선현아, 나는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들을 모두 받들어 섬기어 하나도 어기거나 범함이 없었느니라.

만약 모든 유정이 후 5백 세의 어느 때 정법이 장차 멸하여 때가 나뉠 때 이 경전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구경에 날카롭게 통달하여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연설하고 열어 보이며 이치와 같이 뜻을 지으면, 선현아, 나의 앞의 복이 이 복보다 백분으로 나누어도 능히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와 같이 천으로 나누고 혹은 백천으로 나누고 혹은 구지(俱胝) 백천으로 나누며, 혹은 구지 나유다 백천으로 나누고 혹은 숫자로 나누고 혹은 헤아려 나누고 혹은 산수로 나누고 혹은 비유로 나누고 혹은 오파니살담(鄔波尼殺曇)으로 나누어도 또한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선현아, 내가 만약 마땅히 그 때 이 선남자 혹은 선여인에게 생긴 복, 나아가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가진 복[福聚]을 자세히 설하면, 모든 유정들이 곧 헤매고 번민하며 마음이 미혹하고 미칠 듯이 산란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선현아, 여래는 이와 같은 법문을 베풀어 연설함이 불가사의하여 헤아려 말할 수 없으며, 마땅히 불가사의한 과보를 받기[所感異熟]를 바랄 것이니라.”

그 때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승에 뜻을 내는 자는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잡아서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승에 뜻을 내는 자는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내야 할 것이며, 나는 마땅히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의 세계에서 반열반(般涅槃)하게 할 것이니라. 비록 이와 같이 일체 유정을 제도하여 멸도하고 나서도 유정이 멸도를 얻은 자가 없어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이 유정이란 생각이 일어나면 마땅히 보살마하살이라 이름하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만약 보살마하살이라면 마땅히 유정이란 생각이 일어난다고 말하지 아니하나니, 이와 같이 수명[命者]이란 생각ㆍ장부[士夫]란 생각ㆍ보특가라란 생각ㆍ뜻대로 태어난다는 생각ㆍ어린아이[摩納婆]란 생각ㆍ짓는다는 생각ㆍ받는다는 생각이 일어남도 마땅히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조그마한 법도 보살승에 뜻을 낸 자라고 이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가 옛날 연등 여래ㆍ응ㆍ정등각의 처소에서 어떤 조그만 법이라도 그대로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매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이 제가 아는 바와 같다면, 여래께서는 옛날 연등 여래ㆍ응ㆍ정등각의 처소에서 조그만 법도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법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부처님께서 구수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다. 선현아, 여래는 옛날 연등 여래ㆍ응ㆍ정등각의 처소에서 조그마한 법도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것이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여래가 옛날 연등 여래ㆍ응ㆍ정등각의 처소에서 만약 조그만 법이라도 능히 아뇩다라삼보리를 증득한 것이 있었다면, 연등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나에게 ‘그대 어린아이[摩納婆]여, 마땅히 오는 세상에 이름을 석가모니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 하리라’라고 수기[記]를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니라.

선현아, 여래는 조그만 법도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연등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는 나에게 ‘그대 마납바는 마땅히 오는 세상에 이름이 석가모니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 하리라’라고 수기를 주셨느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선현아, 여래라고 말함은, 곧 이 진실ㆍ진여(眞如)라는 말과 같은 말이며, 여래라고 말함은 곧 이 무생(無生)ㆍ법성(法性)과같은 말이며, 여래라고 말함은 곧 이 영원히 길을 끊음[永斷道路]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며, 여래라고 말함은 곧 이 필경에 태어나지 않음[畢竟不生]이란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만약 진실로 무생(無生)이라면 곧 가장 뛰어난 뜻이기 때문이다.

선현아, 만약 이와 같이 여래ㆍ응ㆍ정등각이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함을 설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말은 진실치 않느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선현아, 그는 나를 비방하고 진실하지 아니한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조그만 법도 없느니라.

선현아, 여래가 현재 목전에서 증득한 법과 혹은 설한 법, 혹은 생각한 법은 그 가운데 진실[諦]도 거짓도 없느니,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 법을 다 불법이라고 설하였느니라.

선현아, 일체 법, 일체 법을 여래는 일체 법이 아니라고 설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름이 일체 법, 일체 법이라고 설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였다.

“비유하면 대장부가 큰 몸을 구족함[具身大身]과 같으니라.”

구수 선현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바 대장부[士夫]가 갖춘 큰 몸은 여래께서 몸이 아니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갖춘 큰 몸이라고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다. 만약 모든 보살이 ‘나는 마땅히 한량없는 유정을 멸도하였도다’라고 이와 같이 말한다면, 곧 마땅히 보살이라고 이름하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선현아, 어떤 조그만 법이라도 보살이라 이름할 것이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조그만 법도 없음을 보살이라 이름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유정이고 유정이라 함은 여래가 유정이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이름이 유정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설하기를, ‘일체 법에는 유정이란 있을 수 없고, 수명이란 것도 없고, 대장부[士夫]란 것도 없으며, 보특가라라고 하는 등도 없다’고 했느니라.

선현아, 만약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나는 마땅히 불국토를 공덕으로 장엄케 하리라’ 한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선현아, 불국토를 공덕으로 장엄한다, 불국토를 공덕으로 장엄한다는 것은 여래가 장엄이 아니라고 설하였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름이 불국토공덕장엄, 불국토공덕장엄이라고 설하였느니라.

선현아, 만약 모든 보살이 무아법(無我法), 무아법을 깊이 믿어 알면, 여래ㆍ응ㆍ정등각은 그를 보살이고, 보살이라 설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뜻에 어떠하냐? 여래 등(等:여래ㆍ응ㆍ정등각을 말함)이 현재 육안(肉眼)이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등은 현재 육안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등이 현재 천안(天眼)이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등은 현재 천안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등이 현재 혜안(慧眼)이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등은 현재 혜안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등이 현재 법안(法眼)이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등은 현재 법안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등이 불안(佛眼)이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등은 현재 불안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나아가 긍가하 가운데 있는 모든 모래가 여래가 설한 그 모래이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옵니다, 선서(善逝)시여. 여래께서는 이 모래를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나아가 긍가하 중에 있는 모래알의 수와 같은 긍가하가 있고, 또 그 긍가하 중에 있는 모래알의 수와 같은 세계가 있다면, 이 모든 세계가 얼마나 대단히 많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습니다, 선서시여. 이 모든 세계는 그 수가 심히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나아가 그러한 모든 세계에 있는 유정, 그 모든 유정들의 종류가 각각 가지가지인데, 그 마음의 흐름을 나는 다 능히 아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마음의 흐름이다, 마음의 흐름이다라고 하는 것을 여래는 흐름이 아니라고 설하였느니라.

여래는 이름이 마음의 흐름, 마음의 흐름이라고 설하였느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선현아,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로써 여래ㆍ응ㆍ정등각을 받들어 보시하면, 이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福聚]은 얼마나 많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습니다, 선서시여.”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그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은 그 양이 매우 많으리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만약 복이 있다면 여래가 복[福聚]ㆍ복[福聚]이라고 설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색신(色身)이 원만하고 진실하여 여래를 보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색신이 원만하고 진실하여 여래를 볼 수 있사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색신이 원만하고 진실하다, 색신이 원만하고 진실하다는 것은 여래께서 원만하고 진실함이 아니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이름이 색신이 원만하고 진실하다, 색신이 원만하고 진실하다고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모든 상이 구족함을 가지고 여래를 보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상이 구족함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모든 상이 구족하다, 모든 상이 구족하다는 것은 여래께서 상이 구족함이 아니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이름이 상이 구족하다, 상이 구족하다라고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가 ‘나는 마땅히 설한 바의 법이 있다’라고 생각하겠느냐? 선현아, 너는 마땅히 이와 같이 보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선현아, 만약 여래가 설한 법이 있다고 말하면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요, 잘 받아들인 것이 아니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설법이다, 설법이다라는 것은, 어떤 법도 설할 수없으므로 이름을 설법이라고 한다.”

그 때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오는 세상 후 어느 때 후 5백 세에 정법이 멸하고 때가 바뀔 때, 어떤 유정이 이와 같은 색류법(色類法:형상의 법)을 듣고 능히 믿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유정도 아니요, 유정이 아님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일체 유정이란 여래가 유정이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이름이 유정이니라.”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선현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조그만 법이라도 여래ㆍ응ㆍ정등각이 현재에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증득하였겠느냐?”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제가 아는 바로는 조금도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현재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할 것이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그 가운데 조그만 법도 있을 수 없고 얻을 수도 없으므로 이름이 무상정등보리이니라.

또 선현아, 이 법은 평등하여 그 중에 평등하지 아니함이 없으므로 이름이 무상정등보리이니라.

나란 성품이 없고, 유정이란 성품이 없고, 수명이란 성품이 없고, 장부[士夫]란 성품이 없고, 보특가라 등의 성품이 없이 평등하므로 이름이 무상정등보리이니라. 일체의 선법은 현재 증득하지 아니할 수 없고, 일체 선법은 묘각(妙覺:깨침)이 아님이 없느니라.

선현아, 선법(善法)이다, 선법이다라는 것을 여래는 일체가 법이 아니라고 설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름이 선법이고 선법이라고 설하였느니라.

또 선현아,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7보를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제일 높은 산[妙高山王]과 같은 높이로 쌓아 놓고 보시하고, 또한 다른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다경 가운데 4구(句) 게송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결국에는 날카롭게 통달하고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법하여 열어 보이고 이치와 같이 뜻을 짓는다면, 선현아, 앞에 설한 복이 이 복보다 백으로 나누어 그것으로 헤아려도 능히 미치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천으로 나누고 혹은 백천으로 나누고 혹은 구지(俱胝) 백천으로 나누고 혹은 구지 나유다 백천으로 나누고, 혹은 수로 나누고 혹은 헤아려 나누고 혹은 산수로 나누고 혹은 비유로 나누고 혹은 오파니살담(鄔波尼殺曇)으로 나누어도 또한 능히 미치지 못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엔 어떠하냐? 여래가 ‘나는 마땅히 모든 유정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였다’는 이런 생각을 하겠느냐?
선현아, 너는 마땅히 이렇게 보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적은 중생이라도 여래가 제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선현아, 만약 유정이 있어서 여래가 제도하였다면 여래는 마땅히 나란 집착이 있고, 유정이란 집착이 있고, 수명이란 집착이 있고, 보특가라 등의 집착이 있음이니라.

선현아, 나라는 등의 집착이란 여래가 집착이 아니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이름이 나란 등의 집착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중생들은 이 집착이 강성하니라. 선현아, 어리석은 중생이란 여래가 중생이 아니라고 설하므로 이름을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또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엔 어떠하냐? 모든 상이 구족할 것으로 여래를 보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제가 아는 바로는 마땅히 모든 상이 구족함을 가지고 여래를 보는 것이 아니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마땅히 모든 상이 구족함을 가지고 여래를 보는 것이 아니니라.

선현아, 만약 모든 상이 구족함을 가지고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도 마땅히 여래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상이 구족함을 가지고 여래를 보지 아니할 것이요, 이와 같이 마땅히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가지고 여래를 볼 것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설하셨다.

모두가 형상[色]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면
그 중생은 삿된 단견[斷]을 밟나니
능히 당연코 나를 보지 못하리.



마땅히 부처님 법의 성품을 보면
곧 도사(導師)요 법신이도다.


법의 성품은 알 바 아니요
그러므로 그는 능히 깨닫지 못하리.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엔 어떠하냐? 여래ㆍ응ㆍ정등각이 모든 상을 구족하였으므로 현재에 무상정등각을 증득하였겠느냐?
선현아, 너는 지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여래ㆍ응ㆍ정등각이 모든 상을 구족하였으AM로 현재에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함이 아니니라.

또 선현아, 이와 같이 보살승에 뜻을 내는 자는 어떤 적은 법이라도 시설하여서 허물어뜨리거나 끊어뜨리는 일이 있겠느냐?
선현아, 너는 지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지 말라. 모든 보살승에 뜻을 내는 자는 조그만 법도 시설하여 결국 허물어뜨리거나 끊어뜨리는 일이 없느니라.

또 선현아, 만약 선남자 혹은 선여인이 긍가하의 모래와 같은 세계에 가득 찬 7보로써 여래ㆍ응ㆍ정등각에게 받들어 보시하고, 또한 어떤 보살이 있어서 모든 나란 것이 없고 중생 법도 없는 가운데 감인(堪忍:고통을 참음)을 획득한다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은 그보다 훨씬 많으니라. 또 선현아, 보살은 복을 받아들이는 것을 응하지 말지니라.”

구수 선현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보살은 복을 받아들이는 것을 응하지 못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받아들여야 할 복덕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그러므로 이름을 받아들인다고 설하느니라.

또 선현아, 만약 말하기를, 여래를 혹은 가고, 혹은 오고, 혹은 머물고, 혹은 앉고, 혹은 눕는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설한 뜻을 받지 못함이니라. 왜냐하면 선현아, 여래라고 말함은 곧 이 진실ㆍ진여라는 말과 같은 말이니, 전혀 가는 곳도 없고 쫓아오는 것도 없으므로 이름이 여래ㆍ응ㆍ정등각이니라.

또 선현아,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의 대지를 지극히 미세한 티끌과 같은 수량으로 한 세계와 이와 같은 무수한 세계를 다시 지극히 미세한 것[極微聚]으로 모은다면, 선현아, 네 생각엔 어떠하냐? 이 지극히 미세한 것을 모은 것이 얼마나 많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이 극히 미세한 것의 모인 것이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심히 많습니다, 선서이시여.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만약 지극히 미세한 것의 모임이 사실로 있다면 부처님께서는 마땅히 극히 미세한 것의 모임이라고 설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여래께서 지극히 미세한 것의 모임이라고 설하신 것은 곧 모임이 아닌 까닭이요, 이름이 극히 미세한 것의 모임인 까닭입니다.

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대계는 곧 세계가 아니고, 이름이 삼천대천세계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만약 세계가 진실로 있다면 곧 하나로 뭉친다는 집착[一合]이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 설한 하나로 뭉친다는 집착이란 곧 집착[執]이 아니고, 이름이 하나로 뭉친다는 집착입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이 하나로 뭉친다는 집착[一合執]이란 말로써 할 수 없고 희론으로도 되지 않으나 저 온갖 어리석은 중생과 야생(異生)은 강하게 이 법에 집착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현아, 만약 ‘미래는 나란 견해ㆍ유정이란 견해ㆍ수명이란 견해ㆍ장부[士夫]란 견해ㆍ보특가라란 견해ㆍ뜻대로 태어난다는 견해[意生]ㆍ어린아이란 견해ㆍ짓는다는 견해ㆍ받는다는 견해를 베풀어 설하였다’라고 말한다면, 네 생각엔 어떠하냐? 이와 같이 설한 것이 바른 말[正語]이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니옵니다, 선서시여. 이와 같이 설함은 바른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한 나란 견해ㆍ유정이란 견해ㆍ수명이란 견해ㆍ장부[士夫]란 견해ㆍ보특가라란 견해ㆍ뜻대로 태어난다는[意生] 견해ㆍ어린아이란 견해ㆍ짓는다[作者]는 견해ㆍ받는다[受者]는 견해가 곧 견해가 아니므로 이름이 나란 견해에서부터 나아가 받는다[受者]는 견해에 이르기까지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승에 뜻을 내는 자는 일체를 마땅히 이와 같이 알 것이며, 마땅히 이와 같이 볼 것이며, 마땅히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할 것이며, 이와 같이 법이란 생각에 머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이냐? 선현아, 법의 생각[法想]이니, 법의 생각이니 하는 것을 여래가 생각이 아니라고 설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름이 법의 생각이니, 법의 생각이라고 설하였느니라.

또 선현아, 만약 보살마하살이 한량없고 수없는 세계에 가득 찬 7보를 가지고 여래ㆍ응ㆍ정등각에게 받들어 보시하고,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다경 가운데에서 나아가 네 구 게송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구경에 날카롭게 통달하여 이치와 같이 뜻을 지으며, 널리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여 열어 보이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복은 그 앞보다 더 많아 한량없고 수가 없느니라. 어째서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법하며 열어 보이는가? 남을 위하여 베풀어 연설하며 열어 보임이 아니므로 이름이 남을 위하여 베풀어 설법하여 열어 보임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설하셨다.

모든 화합하여 되는 것은
별 그림자[星翳]ㆍ등불ㆍ요술[幻],
이슬ㆍ물거품ㆍ꿈ㆍ번개ㆍ구름 같으니
마땅히 이렇게 볼 것이니라."

그 때 박가범(薄伽梵: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존자(尊者) 선현 및 모든 필추ㆍ필추니ㆍ우바새ㆍ우바이와 아울러 모든 세간ㆍ하늘ㆍ사람ㆍ아수라ㆍ건달바 등이 이 박가범께서 설하신바 경을 듣고 다 크게 환희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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