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발병(發病)
1. 코티 마을에서 설법 – 사성제(四聖諦)
이렇게 갠지즈 강을 건너신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우리들은 이제부터 코티 마을로 가자.”잘 알았사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는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수의 비구들과 함께 코티 마을에 드시어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사람은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 깊은 뜻에 도달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한없이 미망된 생존을 반복하여 머물 곳이 없느니라. 그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을 이제부터 차례로 설하리라.
비구들이여! 이 세상은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苦諦)’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깊은 뜻에 도달하지 못하면,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한없이 미망된 생존을 반복하여 머물 곳이 없느니라.
다음에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集諦)’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의 깊은 뜻에 도달하지 못하면,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한없이 미망된 생존을 반복하여 머물 곳이 없느니라.
마찬가지로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원인의 멸진이라는 성스러운 진리(滅諦)’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괴로움의 원인의 멸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진리(道諦)’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것의 깊은 뜻에 도달하지 못하면,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한없이 미망된 생존을 반복하여 머물 곳이 없느니라.
반대로 비구들이여!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잘 이해하고 그것의 깊은 의미에 도달한 사람, 혹은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원인의 멸진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원인의 멸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진리’를 각각 잘 이해하고, 그것의 깊은 뜻에 도달하는 사람은, 생존에 대한 갈애, 생존의 원인이 되는 것을 단절하고, 다시 미망된 태어남(生)을 받지 않느니라.’
이런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설하신 세존, 원만한 분(善逝), 큰 스승(大師)께서는 그것의 요지를 거듭 다음과 같이 시(詩)로 요약하셨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실을여실히 알지 못하는 까닭에긴 밤의 윤회를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받네
생존의 근본이 되는갖가지의 견해를 버리고괴로움의 근원을 단절하는 그 사람에게재생의 몸은 거듭되지 않으리.
이처럼 코티 마을에 머무실 동안에도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셨던 것이다.
즉, ‘이것이 계율이니라. 이것이 정신통일이다. 이것이 지혜이니라. 또 계율을 두루 닦은 정신통일에는 큰 공덕과 이익이 있고, 정신통일을 두루 닦은 지혜에도 큰 공덕과 이익이 있나니, 이렇게 지혜를 두루 닦은 마음은 애욕, 생존, 견해, 근본무지 등의 번뇌로부터 바르게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니라.’라고.
2. 나디카 마을에서 –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코티 마을에서 충분히 머무신 다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우리들은 이제 나디카 마을로 가자.”잘 알았사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대답하였다.
이렇게 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나디카 마을로 향하셨다. 그리고 나디카 마을에 도착하시어, 그곳 ‘연와(煉瓦)의 집’에 머무셨다.
세존께서 ‘연와의 집’에 머무시던 어느 날, 아난다 존자가 세존의 처소로 왔다. 그리고 인사를 드린 다음 한쪽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 사루하라는 비구가 죽었사온데 이 비구는 그후 어떤 세계에서 태어나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 있사옵니까?또한 세존이시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 난다라는 비구니가 죽었사온데, 이 비구니는 그후 어떤 새계에 태어나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 있사옵니까?또한 세존이시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는 스다타라는 재가 신자(우바새)가 죽었사온데, 이 신자는 그후 어떤 세계에 태어나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 있사옵니까?거듭 세존이시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는 스자타라는 여성 재가신자(우바이)가 죽었사온데, 이 신자는 그 후에 어떤 세계에 태어나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 있사옵니까?그리고 세존이시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는 이 외에도 카쿠다, 카링가, 니카타, 카티사바, 투타, 산투타, 밧다, 스밧다 등의 재가신자도 죽었사온데, 이들 신자들은 그 뒤 도대체 어떤 세계에 태어나며, 운명은 어떻게 되어 있사옵니까? 반드시 들려주소서.’
이것에 대해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들이 간 곳은 다음과 같느니라. 먼저 사루하 비구는 살아 있는 동안에 번뇌를 멸진하고, 더럽지 않은 정적(情的), 지적(知的)인 해탈을 스스로 깨닫고 체득하였다. 따라서 이 비구는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는 어리석은 생존을 받지 않느니라.
다음에 아난다여! 난다 비구니는 다섯 가지 번뇌를 멸진하여 좋은 세계에 화생(化生)하였다.
이 비구니는 천계(天界)에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는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느니라(不還).
또 아난다여! 스다타 신자는 세 가지 커다란 번뇌를 멸진하고, 또한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마음의 독이 엷게 되었으므로 ‘한 번만 되돌아오는 이(一來)’가 되었다. 이 신자는 다시 한 번만 이 세상에서 생(生)을 받아 괴로움을 남김없이 멸진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들 것이니라.
그리고 아난다여! 스자타라라는 여성 신자는 세 가지 큰 번뇌를 멸진하고 ‘성자의 흐름에 든 이(預流果)’가 되었다. 이 여성 신자는 이제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일이 없으며,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아난다여! 이 밖에 카쿠다 신자는 다섯 가지 거친 번뇌를 멸진하여 좋은 세계에 화생하였다. 이 신자는 그 천계에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찬가지로 아난다여! 카링가, 니카타, 카티사바, 투타, 산투타, 밧다, 스밧다 등의 재가신자도 다섯 가지 거친 번뇌를 멸진하여 좋은 세계에 화생하였다. 이들 신자들도 그 천계에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 이 세상에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난다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는 50명이 넘는 재가 신자들이 죽었는데, 이들 신자들은 다섯 가지 거친 번뇌를 멸진하여 좋은 세계에 화생하였다. 이들 신자들도 그 천계에서 직접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다시는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난다여! 또 이 나디카 마을에는 90명이 넘는 재가신자들이 죽었는데, 이들 신자들도 세 가지 번뇌를 멸진하고, 또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마음의 독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번만 돌아오는 이(一來)’가 되었다. 이들 신자들도, 다시 한 번만 이 세상에서 생을 받고 괴로움을 남김없이 멸진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들것이니라.
또한 아난다여! 이 나디카 마을에서는 5백 명이 훨씬 넘는 재가신자들이 죽었는데, 이들 신자들도 세 가지 큰 번뇌를 멸진하여 ‘성자의 흐름에 든 이(預流果)’가 되었다. 이들 신자들도 나쁜 셰계에 떨어지는 일은 없으며,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 확정되어 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죽은 뒤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은, 여래에게 있어서는 별로 불가사의한 일은 아니니라. 그러나 사람이 죽은 후 일일이 여래의 처소에 와 묻는 것은 번쇄하고 번거롭다.그래서 아난다여! 이제부터 나는 ‘진리의 거울(法鏡)’이라는 가르침을 설하리라. 이 가르침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성스러운 제자들은 ‘나에게는 지옥의 경계는 다했다. 축생의 경계, 아귀의 경계, 나쁜 경계에 떨어진 조건은 모두 다했다. 나는 성자의 흐름에 든 이가 되어 깨달음의 세계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틀림없이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이가 되었다’라고, 각자 원하는 그대로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니라.
그럼 아난다여!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성스러운 제자들이 ‘나에게는 지옥의 경계가 다 했다. 축생의 경계, 아귀의 경계, 나쁜 경계에 떨어지는 조건은 모두 다했다. 나는 성자의 흐름에 든 이가 되어 깨달음의 세계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틀림없이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이가 되었다’라고, 각자 원하는 그대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진리의 거울’이라는 가르침은 어떤 것이겠는가?그것은 아난다여! 제일 먼저 성스러운 제자가 세존에 대해서 절대적인 신앙을 품어, ‘저 세존께서는 이렇게 존경받을 만한 분(阿羅漢), 바른 깨달음을 얻은 분(正等覺者), 지성과 행동을갖춘 분(明行足), 원만한 분(善逝), 세간을 아는 분(世間解), 위없는 분(無上士), 사람을 잘 다스리는 스승(調御丈夫), 신들과 인간의 스승(天人師), 깨달은 분(佛), 지복한 분(世尊)이다’라고 믿는다.
또한 가르침에 대해 절대적인 신앙을 품어, ‘세존에 의해 설해진 이 가르침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 때를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 이 장소에서 알 수 있는 것,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 지자(智者)로서 각자 알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또 승가에 대해 절대적인 신앙을 품어, ‘세존과 제자들의 모임은 바른 목적을 행하고, 바른 길을 목적으로 하며, 올바르게 목적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곧 네 쌍, 여덟 종류의 사람들(四雙八輩)이니라.
또한 ‘세존과 제자들의 모임은 공양을 받을 만하고, 대접 받을 만하며, 합장 예배 받을 만하며, 세상에서 최상의 복덕을 낳게 하는 밭(福田)이다’라고 믿으며, 성자들을 기뻐하고, 불괴(不壞), 부단(不斷), 불가(不瑕), 부잡(不雜), 자유(自由)롭게 하고, 식자(識者)들을 칭찬하며, 집착하지 아니하고 정신통일(三昧)로 나아가며, 몸에 계를 구족하는 것이니라.
아난다여! 이러한 ‘진리의 거울’이라는 가르침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들은 바라는 대로 각자’ 나에게는 지옥의 경계는 다했다. 축생의 경계, 아귀의 경계, 나쁜 경계에 떨어지는 조건은 모두 다했다. 나는 ‘성스러운 흐름에 든 이’가 되었고, 깨달음의 세계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틀림없이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이가 되었다’라고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니라.’
이렇게 나디카 마을의 ‘연와의 집’에 머무실 때도,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설하셨다. 즉 ‘이것이 계율이니라. 이것이 정신통일이니라. 이것이 지혜이다. 또한 계율을 두루 닦은 정신통일에는 큰 공덕과 이익이 있고, 정신통일을 두루 닦은 지혜에도 큰 공덕과 이익이 있나니, 이렇게 두루 닦은 마음은 애욕, 생존, 견해, 근본무지 등의 번뇌로부터 바르게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니라’라고.
3. 상업도시 베살리에서
나디카 마을에서 이렇게 마음껏 머무신 다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우리들은 이제부터 베살리로 가자.”잘 알았사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대답하였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많은 수의 비구들과 함께 베살리로 향하셨다. 베살리에 도착하신 세존께서는 마을 한편의 암바팔리 동산에 머무셨다.
다시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다운 이는 바르게 사념(思念)하고,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여 지내야만 하느니라. 이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해주는 계율의 말이니라.
비구들이여! 비구가 바르게 사념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이겠는가? 비구들이여! 그것읕 이러한 것이다. 여기에 어떤 비구가 있다 하자. 그가 몸에 대해 이것을 잘 관탈하고 진정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며, 바르게 사념하고, 세간에 있더라도 탐욕이나 근심을 벗어나 사는 것,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르게 사념하는 것이니라.
다음에 비구들이여! 바르게 의식을 보전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이겠는가?비구들이여! 그것은 이러한 것이니라. 여기에 어떤 비구가 있어, 그가 앞으로 나아갈 때도 뒤로 물러날 때도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여 행하며, 앞을 볼 때도 뒤를 볼 때도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여 행하며, 몸을 굽힐 때도 펼 때도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여 행하며, 상가티 옷(衣)과 발우, 옷을 수지(受持)할 때도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여 행하며, 먹거나 마시거나 맛을 볼 때도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여 행하며, 대소변을 볼 때도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여 행하며, 걷거나 멈추거나 앉거나 잠자거나 혹은 깨거나 말하거나 침묵할 때도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여 행하는 것, 이것이 비구들이여! 바르게 의식을 보전한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비구다운 이는 이렇게 바르게 사념하고, 바르게 의식을 보존하여 지내야만 한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해주는 계율의 말이니라.’
4. 유녀(遊女) 암바팔리와 리차비 족 사람들
그리고 당시 베살리 마을에는 암바팔리라는 유명한 유녀가 살고 있었다. 유녀(遊女) 암바팔리는 ‘세존께서 이 베살리에 도착하시어 자신의 망고 동산에 머물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하여 서둘러 그녀는 화려하게 장식한 소가 끄는 수레를 몇 대를 거느리고, 자신도 그 가운데 한 대를 타고 베살리를 출발하여, 자신의 망고 동산으로 갔다. 그리고 수레가 더 나아갈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는 수레에서 내려 세존의 처소까지 걸어갔다.
세존의 옆에 다다른 유녀 암바팔리는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가르침을 그녀에게 설하시어 믿어지니게 하시고, 그녀를 격려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그렇게 세존께서 설하시니 기쁨에 넘친 유녀 암바팔리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내일은 여러 비구들과 함께 부디 저의 공양을 받아 주소서.’
그의 청을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수락하셨다. 세존이 수락하셨음을 안 유녀 암바팔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도는 예를 표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한편 같은 무렵 베살리의 명문 리차비 족 사람들도 ‘세존께서 베살리에 도착하시어 암바팔리망고 동산에 머물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리차비 족 사람들은 서둘러 화려하게 장식한 소가 이끄는 수레 몇 대를 거느리고, 사람마다 그 가운데 한 대씩을 나누어 타고 베살리를 출발하였다. 어떤 이들은 푸른 복장, 푸른 옷과 푸른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어떤 이는 노란 복장, 노란 옷과 노란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빨간 복장, 빨간 옷과 빨간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이는 하얀 복장, 하얀 옷과 하얀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하여 마을을 출발한 리차비 족 사람들의 수레는, 마을로 돌아오는 유녀 암바팔리의 마차와 뜻하지 않게 도중에서 부딪치게 되었다. 그때 유녀 암바팔리의 수레는 수레축과 바퀴, 멍에로 각각 리차비 족 사람들의 수레를 뒤엎어 버리게 되었다. 그러자 화가 난 리차비 족 사람들은 유녀 암바팔리를 질책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암바팔리여! 그대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의 수레를, 수레축과 수레바퀴, 멍에로 모두 엎어 버렸는가?”아니 어르신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실은 내일, 세존을 비구들과 함께 공양에 초대하게 되었기에 너무 서두른 탓이옵니다.”뭐라고? 세존을 초대했기 때문이라고? 그럼 암바팔리! 그 권리를 십만금(十万金)으로 우리들에게 양도하지 않겠소?”아니옵니다, 어르신! 설령 이 풍요로운 베살리 마을 전부를 준다고 해도 그것만은 양도할 수 없사옵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유녀 암바팔리에게 거절당한 리차비 족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면서 말하였다.
‘여러분! 참으로 유감 스럽도다. 우리들은 이 여자에게 지고 말았다. 우리들은 이 여자에게 선수를 빼앗겨 버린 것이오.’
이렇게 유녀에게 선수를 빼앗긴 리차비 족 사람들은 이윽고 세존이 계시는 암바팔리의 망고 동산에 도착하였다.
리차비 족 사람들이 오는 것을 멀리에서 보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들 가운데 아직 도리천의 신들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저기 오고 있는 리차비 족 일행을 잘 보고 관찰함이 좋으리라. 그리하여 그들의 모습에서 도리천의 신들을 상상함이 좋으리라.’
리차비 족 사람들은 수레가 더 나아갈 수 없는 곳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려 세존의 처소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세존께 인사드린 다음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들이 자리에 앉았을때,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가르침으로써 그들에게 설하여 믿어 지니게 하고, 그들을 격려하시며 기뻐하게 했다.
이렇게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니, 믿고 지니고 격려받고 기뻐한 리차비 족 사람들은 세존께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내일은 비구들과 함께 부디 저희의 공양을 받아 주소서.”리차비 족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고맙지만, 내일은 암바팔리의 공양을 받기로 되어 있으니 여러분의 청을 받아 들일 수 없군요.’
세존의 이러한 대답에 리차비 족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면서 말하였다.
‘여러분! 참으로 유감스럽소. 역시 우리들은 그 여자에게 지고 만 것이오. 우리들은 역시 그 여자에게 선수를 빼앗겨 버린 것이요.’
청을 거절당한 리차비 족 사람들은 그러나 세존의 가르침에 대단히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예를 표하고서 세존의 거처를 떠났다.
다시 이리하여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유녀 암바팔리는 자신의 정원에 딱딱하고 부드러운 갖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사람을 보내어 세존께 알리게 했다.
‘때가 되었사옵니다, 세존이시여! 공양 준비도 완료되었사옵니다’라고.
그러자 세존께서는 점심때가 되기 전에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손에 드시고, 비구들과 함께 유녀 암바팔리의 집으로 향하셨다. 그리고 도착하시어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유녀 암바팔리는 부처님을 상수로 한 비구들에게 딱딱하고 부드러운 갖가지 음식을 손수 올려, 모두를 만족하게 했다.
이렇게 하여 공양을 끝내고 세존께서 발우에서 손을 떼시니, 유녀 암바팔리는 아래쪽에 자리를 마련하고 한쪽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유녀 암바팔리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정원을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들에게 기진(기증)하겠사옵니다. 부디 수락하여 주소서.’
세존께서는 이 청을 수락하셨다.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가르침으로 유녀 암바팔리에게 설하시어 믿어 지니게 하시고, 그녀를 격려하시고 기뻐하게 하셨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암바팔리의 거처를 떠나셨다.
이렇게 베살리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셨던 것이다.
즉 ‘이것이 계율이니라. 이것이 정신통일이다. 이것이 지혜이니라. 또한 계율을 두루 닦은 정신통일에는 큰 공덕과 이익됨이 있고, 정신통일을 두루 닦은 지혜에도 큰 공덕과 이익됨이 있나니, 이렇게 지혜를 두루 닦은 마음은 애욕, 생존, 견해, 근본무지 등의 번뇌로부터 바르게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니라’라고.
5. 벨루바 마을에서 – 발병(發病)
이렇게 암바팔리의 망고 동산에서 마음껏 머무신 다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우리들은 이제부터 벨루바 마을로 가자.”잘 알았사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벨루바 마을로 향하셨다. 마을에 도착하신 세존께서는 마을에서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바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벗, 지인(知人), 지기(知己)를 의지하여 베살리로 가는 것이 좋으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우기(雨期)를 지내도록 하여라. 나는 이 벨루바 마을에 남아 우기를 보내리라.”잘 알았사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그리고 각각 벗, 지인, 지기를 의지하여 베살리의 각 지방에 흩어져 그곳에서 우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세존만은 혼자 이곳 벨루바 마을에 머무시면서 우기를 맞이하셨다.
한편 우기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존께서는 중병(重病)에 걸리셨다. 심한 고통이 엄습하여 죽어 버릴 것만 같았지만, 세존께서는 바르게 사념하시고,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시고 마음이 번잡하지 않게 하여 고통을 참으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셨다.
‘내 가까이에서 시봉하는 이들에게는 여태껏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또 비구들에게는 한 번도 깨달음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열반에 들어 버린다는 것은 붓다의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정진(精進)으로 이 병을 극복하고, 유수행(留壽行:생명을 연장하는 행위)을 확립하여 머물도록 하자’라고.
이리하여 세존께서는 정진으로 그 병을 극복하시고 유수행을 확립하시어 지내셨다. 그렇게 하는 동안 세존께서는 병에서 회복되셨다.
그토록 심하던 병도 차츰 치유되어 병석에서 일어나신 세존께서는, 정자의 뒤뜰에 자리를 마련하시어 앉으셨다. 아난다 존자가 그곳으로 찾아와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오늘은 편안하게 보이옵니다. 세존께서는 이제 병도 치유되시어 모든 것을 견딜수 있을 듯이 보이옵니다. 세존의 옥체는 아직 완쾌한 것 같지는 않지만 특별히 나쁜 곳도 있는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편찮으신 동안 저에게는 티끌 만한 불안도 없었사옵니다. 저는 ‘한 숨 돌리는 정도의 시간이다’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사옵니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별도의 어떤 가르침을 내리시지 않는 동안에는 결코 열반에 드시는 일은 없다’라고.”아난다여! 비구들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아난다여! 나는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가르침을 설하였느니라.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는 중요한 것은 비밀로 한다는 따위는 없느니라.
또 아난다여! 만약 어떤 사람이 ‘비구의 모임을 내가 지도하고 있다’든가, 혹은 ‘비구의 모임은 나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비구의 모임에 대해 어떤 지시를 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난다여! 여래는 ‘비구의 모임을 내가 지도하고 있다’든가, 혹은 ‘비구의 모임은 나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 일은 결코 없느니라. 따라서 아난다여! 여래가 비구의 모임에 대해 어떤 지시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아난다여! 이제 나도 늙었다. 나이를 먹어 고령이 되었느니라.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르렀다. 나도 이제 나이 여든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수레를 가죽끈으로 묶어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끈으로 묶어 겨우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느니라.
아난다여! 여래가 모든 모습(想)을 마음으로 생각하여 그리지 않고, 어떤 감수(感受)가 있다면 그것을 멸하여, 모습(相,刑) 없는 마음의 평정(無相心定)을 구족하여 지낼 때, 아난다여! 여래의 몸은 평안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너희들 비구도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할 것이며 타인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또 진리를 의지처로 하고 진리에 귀의할 것이며,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아난다여! 비구가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하여 지내는 것, 그리고 진리를 의지처로 하고 진리에 귀의하며 다른 것에 귀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어떤 것이겠는가?여기서 아난다여! 비구가 몸에 대해 그것을 잘 관찰하고 진정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며, 바르게 사념하고 세간에 대해서도 탐욕, 근심을 초월하여 사는 것, 내지는 몸만이 아니라 감수와 마음, 모든 존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잘 관찰하고 진정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며, 바르게 사념하고 세간에 대해 탐욕과 근심을 초월하여 사는 것, 아난다여! 이것이 비구가 자신을 의지처로 하여 자신에게 귀의하고 타인에게 귀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며, 또한 진리를 의지처로 하여 진리에 귀의하고 다른 것에 귀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니라.
아난다여! 어떤 비구가 만일 내가 죽은 다음일지라도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하며, 타인에게 귀의하지 않고 살며, 또 진리를 귀의처로 하여 다른 것에 귀의하지 않고 산다면 아난다여! 그런 사람은 내가 부정하는 어두운 세계를 초월하여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