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道德經)
제 1 장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며 이름이 있는 것은 모든 것의 어머니. 항상 욕망이 없다면 그 신비스러움을 볼 수 있으며, 항상 욕망이 있다면 그 분명함을 볼 수 있다. 이 둘은 한 근원에서 나왔으나 이름만 다를 뿐, 그 같음을 어둠이라 한다. 어둠속의 어둠인 것이 모든 신비로움의 문이다.
제 2 장
세상 모든 이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알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추함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이들이 착함을 착하다고 알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고 없고는 상대적으로 나타나게 되고, 어렵고 쉬움 또한 상대적 으로 이루어진다. 길고 짧음 역시 상대적으로 형성되며 높고 낮음 또한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것이다. 노래와 소리 역시 상대 적으로 어울리고, 앞과 뒤도 상대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성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없이 가르친다. 만물은 끊임없이 생멸 하는데, 낳고도 가지지 않으며, 하고서도 자랑하지 않으며, 해내고도 잊어 버리니, 이로써 영원히 지속될 뿐인 것이다.
제 3 장
어짐을 숭상하지 않으면 다툼이 없게 되고, 재물을 귀히 여기지 않아야 도둑질이 없게 된다. 값진 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백성을 다스릴 때 그 마음을 비우게 하고 배를 채우게 하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강하게 한다. 백성들이 지식과 욕망을 줄인다면 지식있는 자들이 간섭하려 들지 않을 것 이다. 무위로써 다스리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
제 4 장
도는 하나의 텅 빈 그릇, 아무리 써도 채울 수가 없네. 알 수 없는 만물의 근원이여… 날카로움을 무디게하고 엉킨 것들을 풀어 주며, 더러운 것과 함께 하는구나. 깊이 숨어 있으나 영원한 존재여… 나는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것은 천제의 조상이므로..
제 5 장
하늘과 땅은 무정하다. 만물을 지푸라기 인형같이 여기네. 성인은 무정하다. 사람을 지푸라기 인형같이 여기네. 그러나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도 같으니 텅 비어 있으면서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움직일수록 더욱 더 생겨난다. 말이 많으면 셀 수가 없으니, 서둘러 그 가운데를 지켜라.
제 6 장
골짜기의 신은 불사이다. 그것은 암컷, 태초의 어머니이다. 그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 베일에 가려 좀처럼 보이지 않는 듯 하지만, 그 움직임은 끝이 없네.
제 7 장
하늘과 땅은 길고도 오래 간다. 왜냐하면 태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네. 그래서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네. 성인은 뒤에 머물면서도 앞에 있으며, 자신을 멀리하면서도 스스로를 영위한다네… 왜냐면 이기심이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모든 것을 이루어 낸다네.
제 8 장
가장 좋은 것은 물과도 같다. 만물에게 생명을 주지만 자기를 위해 다투지는 않지. 늘 남들이 싫어하는 곳으로 흐르니, 마치 도와 같은 존재로구나. 땅 가까이에 있으며 생각하는 마음이 깊고 남과 사귈 때도 따뜻하며 친절하구나… 진실하게 말하고 공정하게 다스리며 모든 일에 뛰어나고 때에 맞추어 행동하는구나… 다투지 않으니 허물이 없구나..
제 9 장
지니고서도 더 채우는 것은 그만 두느니만도 못하고 갈아서 더 날카로워지면 곧 무디어지고 만다.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하면 지킬 수 없고,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을 이루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바로 하늘의 도이다.
제 10 장
혼과 백을 하나로 안아 떨어지지 않게 하고 본능에 내맡겨 부드러워져 갓난 아이처럼 순수할 수 있을까? 현묘함을 본 것마저도 씻어내어 흠이 없게 할 수 있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하늘의 문을 여닫으면서 암컷처럼 될 수 있는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모를 수 있다. 낳고 키우지만 낳고도 가지지 아니하고, 하고서도 자랑하지도 않으며 키우고도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현덕이라고 한다.
제 11 장
서른개의 바퀴살이 모여 한 개의 바퀴를 만들지만, 수레를 움직이는 것은 가운데의 빈 구멍.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그 그릇을 쓸모있게 하는 것은 그 속의 빈 곳. 문이나 창을 내어 방을 만들지만,
방을 쓸모있게 하는 것은 방안의 텅 빈 공간. 그러므로 있음이 이로운 것은 없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제 12 장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오미는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하고 말을 달려 사냥을 하는 것은 마음을 혼란시키며, 값진 재물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를 채우지 눈요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눈을 버리고 배를 취한다.
제 13 장
총애도 모욕도 받으면 몸이 놀라고, 큰 근심이 몸에 닥칠까 두려워 놀란다. 왜 총애도 모욕도 받으면 몸이 놀라는가? 총애는 높은 것이고, 모욕은 낮은 것이다. 얻어도 놀라고 잃어도 놀란다. 이 때문에 총애도 모욕도 받으면 놀란다. 왜 큰 금심이 몸에 닥칠까 두려워 놀라는가? 내가 큰 근심을 지니는 까닭은 나에게 신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 신체가 없다면, 내게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제 몸으로 천하 위하기를 귀중히 하면 천하를 맡길 수 있고 제 몸으로 천하 위하기를 좋아하면 천하를 부탁할 수 있다.
제 14 장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은 희(希) 하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을 미(微)한다. 이렇게 셋은 끝까지 분별하여 밝힐 수 없으므로 혼융하여 하나가 된다. 올라가도 밝지 않고 내려와도 어둡지 아니하다. 끝없이 이어져 이름 지을 수 없으니 형상이 없는 물체로 되돌아간다. 이것을 꼴 없는 꼴이며 짓 없는 짓이라고 하며, 황홀이라고도 한다. 앞에 있으면서 시작이 없고 뒤를 따라가도 끝이 없으며, 옛 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오늘의 일에 살아 있네… 그러므로 만물의 시원을 알 수 있으니, 이를 도의 근본이라고 한다.
제 15 장
옛날에 도를 잘 터득한 사람은 그 심오함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다만 그 겉모습만 그려볼 뿐 신중함은 마치 겨울에 언 강을 건너는 것과 같고, 삼감은 마치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 하는 것과 같고 엄숙함은 마치 손님과도 같고 탁 풀린 것은 마치 얼음이 녹는 것과 같고 질박함은 마치 다듬지 않는 나무와 같고 겸허함은 마치 계곡처럼 깊고, 혼돈된 모습은 마치 혼탁한 물과 같다. 누가 혼탁함을 정화시켜 서서히 맑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도를 온전히 간직한 사람은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채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옛 것을 버리고 새롭게 바꿀 수 있다.
제 16 장
모든 것을 비우고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만물의 생활에서 우리는 순환의 원리를 볼 수 있다. 만물이 다양하지만, 각기 근원으로 돌아간다.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찬견하고 이것을 본성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병견한다. 병아는 것을 끐견한다. 병모르면 망동하여 재앙을 자초하게 된다. 병알면 포용하게 되고 포용하게 되면 공평해진다. 공평해지면 두루 미치게 되고, 두루 미치게 되면 자연이다. 자연은 도이며, 도는 영원하다. 이러하면 죽도록 위태롭지 아니하다.
제 17 장
최고의 것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그다음 것은 알며 사랑하고 그 다음 것은 두려워 하고 그 다음 것은 경멸한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믿음을 주지 못한다. 쓸데없이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할 때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스스로 그러할 뿐 이라고….
제 18 장
위대한 도가 잊혀질 때 인자함과 도덕이 생기고,
지혜와 지식이 생겨나면서 크나큰 허위가 생기기 시작하네. 가족이 화평하지 못할 때 효도와 헌신이 생기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 충신이 생기게 된다네.
제 19 장
총명함을 끊고 지혜를 버려라. 모든 이에게 백배는 이로우리라. 인자함을 끊고 도덕을 버려라. 효도와 사랑을 되찾으리라. 기교를 끊고 이익을 버려라 도적이 사라지리라. 이 세가지는 한갓 꾸밈, 이것으로는 부족하니, 더욱더 중요한 것은 소박함을 보고 진실한 본성을 알며, 자신을 버리고 욕망을 줄이는 일.
제 20 장
배우기를 포기하면 근심도 사라지리라. 옳고 그름에 차이가 있겠는가? 좋고 나쁨에 차이가 있는가?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내가 두려워 해야 하는가? 황당하구나… 사람들은 잔칫상을 즐기며 노는 듯 누각에 올라 봄 기운을 만끽하는 듯 나만 홀로 담담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 웃을 줄 모르는 갓난 아이처럼 나는 갈 곳이 없이 홀로 서 있네… 모두들 넉넉한데 나 혼자 가진게 없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인가? 혼란스럽구나. 모두들 영특하고 똑똑한데. 나 혼자 멍청하고 어리석구나. 아, 나는 바다처럼 깊고 고요하며 바람을 타고 끝없이 날아가네… 모두들 바쁘지만, 나만이 비천하고 쓸모가 없구나. 다른 것이 있다면 다만 위대한 어머니가 나를 기른다는 것 뿐!
제 21 장
가장 위대한 덕은 도를 따르며 도 그 자체이다. 도는 알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나 그 안에 형상이 있고,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지. 희미하고 어둡지만, 그 안에는 생명의 본질이 있고, 아주 진실한 이 본질에는 믿음이 깔려 있다네.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의 이름은 결코 잊혀진 적이 없어. 그러므로 창조를 깨달을 수 있지. 어떻게 내가 창조의 근원을 알겠는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네…
제 22 장
휘어지면 온전해지고 구부리면 펴지네. 비우면 꽉 차게 되고 낡으면 새로워지네 적게 가지면 얻게 되고 많이 가지면 혼란스러워지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하나를 껴안고 모든 것에 모범이 되어 서 있는 것. 보이기 위해 입지 않으므로 밝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빛나며 자랑하지 않으므로 인정받고 뽐내지 않음으로 주저하지 않으며 다투지 않으므로 아무도 그와 다투지 않는다네. 휘어지면 온전하다는 옛말이 어찌 빈말이겠나? 진실로 온전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네게로 돌아가리라.
제 23 장
자연은 말이 없다. 회오리 바람도 하루 아침을 마치지 못하고 소나기도 하루를 끝내지 못한다. 이렇게 하는 이는 누군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도 이처럼 오래 견디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은 도와 함께 있고 덕을 따르는 사람은 덕과 함께 있고 길을 잃은 자는 잃어버림과 함께 있다 도와 함께 있을 때, 도 또한 그를 기쁘게 맞이하고 덕과 함께 있을 때 덕이 항상 거기 있으며 잃어버림과 함께 있을 때 잃어버림을 기쁘게 맞이하리.. 그러나 믿음이 부족하면 남이 나를 믿지 않으리…
제 24 장
발꿈치로 서 있는 사람은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발을 벌리고 서 걷는 사람은 오래 걷지 못한다. 스스로 보이려는 사람은 드러나지 않으며 스스로 옳다 하는 사람은 빛나지 않는다.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고 자만하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도에서 보면 이 따위는 음식 찌꺼기요 쓸모 없는 짓, 세상도 이를 싫어하리라.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은 이렇게 처하지 않으리라…
제 25 장
신비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있었는데, 하늘고 땅보다도 먼저 생겨나 적막하고 텅 빈 곳에 홀로 서서 변함이 없네. 가 지 않는 곳이 없어도 위태롭지 않아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될 만하지만, 나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해. 글자로 나타내어 도라고 하고 억지로 이름지어 듁箚炙?할까? 크므로 가게 마련이고 가기 때문에 멀어지며, 멀어지므로 되돌아 오는 것. 그러므로 도가 크고 하늘도 크며 땅도 크고 왕도 크다. 우주 안에 큰 것이 네 개가 있으니 왕도 그 중 하나라네.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는데, 도는 저절로 그러함을 따를 뿐이라네.
제 26 장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 안정된 것은 조급한 것의 주인. 그러므로 성인은 종일 다녀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아도 편안한 마음으로 한가로이 처한다. 일만 수레의 주인이 되어 세상사에서 어찌 가벼이 움직이겠나? 가볍게 움직이면 그 뿌리를 잃고 조급히 굴면 그 주인됨을 잃어 버리니…
제 27 장
잘걷는 사람은 자취를 남기지않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허물을 남기지 않네. 셈을 잘하는 사람은 주판을 쓰지 아니하고 좋은 문은 빗장을 걸지 않아도 열 수 없으며 잘 묶은 것은 끈을 쓰지 않았어도 풀지를 못하네. 그러므로 성인은 모든 사람을 돌보며 아무도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돌보며 아무 것도 버리지 않네 이를 빛을 따른다.. 고 말하지. 잘난 사람은 못난 사람의 스승이고, 못난 사람은 잘난 사람의 책임. 스승을 존경하지 않고 제자를 돌보지 아니한다면,
비록 지혜롭더라고 크게 미혹하리라. 이것이 신비의 수수께끼지…
제 28 장
수컷의 힘을 알면서도 암컷됨을 지키면 세상의 골짜기가 된다. 세상의 골짜기가 되면 항상 진실되고 굳건하여 다시 갓난 아기로 되돌아 간다. 흰 것을 알면서도 검은 것을 지키면 세상의 모범이 되고, 세상의 모범이 되면 언제나 진실되고 어긋나기 않아 무한한 곳으로 되돌아간다. 그 영예로움을 알면서도 그 욕됨을 지키면 세상의 골짜기가 되고 세상의 골짜기가 되면 항상참되고 풍부해져서 질박함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질박함이 깨어지면 쓸모가 있게 되고 성인은 이를 써서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므로 ‘위대한 재단사는 자르지 않는다’..
제 29 장
세상을 손아귀에 넣어 뒤바꿀 수 있을까?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지. 세상은 신성하고 바꿀 수 없는 것. 세상을 바꾸려 한다면 망할 것이고, 세상을 잡으려 한다면 잃을 것이니 그러므로 앞서 가는 것이 있고 뒤따르는 것이 있으며, 들이마시는 것이 있고 내뿜는 것이 있으며, 강한 것이 있고, 약한 것이 있으며, 위에 있는 것이 있고 아래에 있는 것이 있네. 그러므로 성인은 극심한 것과 사치스런 것과 과분한 것을 버리네.
제 30 장
도로써 통치자를 돕는 사람은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하게 두지 않는다. 무력은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 군대가 지나는 곳마다 가시넝쿨이 생기고, 큰 전쟁을 치른 후에는 흉년이 따르지. 해야 할 일만 바로 할 뿐, 무력을 쓰지는 말아야지.
해냈어도 결코 자만하지 마라. 해냈어도 결코 뽐내지도 마라. 해냈어도 결코 자랑하지도 말라. 해낸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 뿐… 해냈다고 강한 척하지 마라… 모든 것은 강장할수록 늙어가는 법. 이는 도의 방법이 아니다. 도가 아니면 금방 시들고 마는 것.
제 31 장 좋은 무기란 두려운 물건일 뿐 모두들 그것을 싫어하네.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은 결코 무기를 쓰지 않네. 군자는 평상시 왼쪽을 귀히 여기나 전쟁시엔 오른쪽을 귀히 여기지. 무기란 두려운 물건이지 군자의 기물은 아니지. 어쩔 수 없을 때 쓰더라도 다만 담담한 마음으로…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니 이기더라도 좋을 게 없네. 이기기를 좋아한다면 죽이기를 기뻐하는 것. 죽이기를 기뻐하는 자가 어찌 세상의 뜻을 알겠는가?? 좋은 일에는 왼쪽을 높이고 슬픈 일에는 오른쪽을 높이는 법. 전쟁에서는 부관을 왼쪽에 세우고 대장군을 오른쪽에 세우니 전쟁을 상례처럼 하라는 뜻이지. 많은 사람이 죽어 갔으니 애통한 마음으로 슬피 울어라… 어떻게 이겼든지 상례로써 처해야 하리라.
제 32 장
도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모양없이 작지만 아무도 붙들 수 없어. 왕이나 제후가 이를 지킬 수 있으면 모든 것이 저절로 순종하리라.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단비를 내리듯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자기 도리를 다하리라. 온전한 것이 나뉘어 조각조각 이름이 생기고, 이름이 생겨난 후로는 그칠 때를 알아야 한다네. 그칠 때를 알아야 위태롭지 아니한 것. 이 세상에 있는 도는 온갖 계곡의 물이 모여 강으로 바다로 흘러드는 것 같아.
제 33 장 남을 아는 것은 지혜로우나 자기를 아는 것은 더욱 지혜로우며 남을 이기려면 힘이 필요하지만, 자기를 이기려면 더욱 더 강해야 한다. 만족을 아는 자는 부유한 사람이고 힘써 해내는 자는 뜻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자는 오래가며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제 34 장
위대한 도는 어디든지 흘러 넘친다. 왼쪽 오른쪽 어느 쪽으로도. 만물은 이 도에 의지하여 생겨나지만 도는 거부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도 내세우지도 않는다. 만물을 키우고도 그 주인이 되지 아니하고 그런 욕망도 없으니 얼마나 작은가 만물이 그에게 돌아가도 그 주인이 되지 않으니 얼마나 큰가 그러나 끝내 스스로 크다고 여기지 않으니 참으로 크구나.
제 35 장
모두들 돌아오리, 큰 모습을 쥔 그에게. 안락함과 평화와 행복이 그에게 있으니. 아름다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은 지나는 과객도 멈추게 하지만, 도에 대한 말은 담담하여 아무 맛도 없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나,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네.
제 36 장
접으려면 먼저 펴주고, 약하게 만들려면 먼저 강하게 만들어라. 없애려면 먼저 일으켜 세우고, 뺏으려면 먼저 주어라. 이것이 사물의 본성에 밝은 것,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는 깊은물을 떠날 수 없으며, 나라의 무기를 남에게 보여서는 안된다.
제 37 장
도는 항상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왕과 제후가 이를 지킨다면 만물은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무언가 이루려 한다면 이름없는 질박함으로 돌아가고 말리라. 이름없는 질박함은 아무 욕망도 없고 다만 고요함이 있을 뿐. 이 안에서 모두들 평화롭게 살리라…
제 38 장
진실로 덕 있는 사람은 자기의 덕을 알지 못하므로 덕이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은 덕스러우려 애쓰므로 덕이 없다네. 진실로 덕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아무 할 일도 없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늘 하면서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네. 진실로 어진 사람이 무언가 할 때는 아무 할 일이 없으며, 진실로 옳은 사람이 무언가 할 때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며, 예를 따르는 사람이 무언가 할 때는 아무도 따르지 않으면 팔을 꺾어서라도 억지로 시킨다네. 그러므로 도를 잃은 후에 덕이 있으며 덕을 잃은 후에 어짐이 있으며 옳음을 잃은 후에 예절이 있다네. 예절이란 충실과 믿음의 껍데기요 혼란의 머리. 앞날을 안다는 건 도의 허황된 치장이요, 어리석음의 시작이라네. 그러므로 진정 큰 사람은 진실한 곳에 머물지 허황된 곳에 살지 않으리. 열매에 머물지 꽃에 깃들지 않는다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네.
제 39 장
옛날 하나를 얻은 것들이 있었네.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편안하고 정신은 하나를 얻어서 강하고,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 충만하고 만물은 하나를얻어 생겨나고 왕과제후는 하나를얻어 세상을 바르게 하였네. 이는 모두 하나로써 될 뿐 하늘이 맑지 못하면 갈라지고, 땅이 편안하지 못하면 폭발하리라. 정신이 강하지못하면 쓸모없이되고, 골짜기가 가득차지않으면 마르게되리라.
만물이 자라지 않으면 죽어 없어지고, 왕과 제후가 높고 귀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리 그러므로 천함은 귀함의 뿌리, 낮음은 높음의 터전. 왕과 제후가 스스로 ‘덕이 없다”고독하다”부족하다’말하는 것은 천함을 뿌리로 삼은게 아닌가?
제 40 장
돌아가는 것은 도의 움직임. 약한 것은 도의 쓰임이어라… 천하 만물은 있음에서 나오고, 있음은 없음에서 나오네.
제 41 장
훌륭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실천하고 보통 사람은 도를 들으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네. 웃지 않는다면 도가 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옛날 이런 말이 있었다네. 밝은 길은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물러서는 듯 보이고, 쉬운 것은 어렵게 보이고, 높은 덕은 빈 듯이 보이고, 위대한 순결은 욕되이 보이고, 넓은 덕은 부족한 듯 보이고 굳센 덕은 허약한 듯 보이고, 꾸밈없고 참된 덕은 거짓처럼 보인다. 완전한 사각형은 모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차고,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큰 모양은 나타나지 않는다. 도는 숨어 있어 이름도 없으면서 홀로 모든 것을 키우며 이루게 한다.
제 42 장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그리고 셋은 만물을 낳지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껴안은 채 힘을 모아 조화를 이루네. 사람들은 ‘덕이 없고’ ‘고독하고’ ‘부족한 것’을 싫어하지만, 왕과 제후는 이로써 자기를 일컫네. 사물의 이치란 잃어 버림으로써 얻게 되고 얻음으로 잃게 되는 것. 남들이 가르치듯이 나도 이렇게 가르치네. 강한 사람은 제 명대로 살지 못하리라. 이것이 가르침의 근본이라네.
제 43 장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을 이긴다. 형체가 없으므로 틈이 없는 곳까지들어간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의 참된 가치를 안다. 말없는 가르침과 하지 않음의 유익함. 세상에 이를 아는 자가 얼마나 될까???
제 44 장
명성과 자신, 어느 것이 더 가까운가? 자신과 재화,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얻음과 잃음, 어느 것이 더 고통스럽나?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은 크게 괴로우리라. 많이 싾아 둔 사람은 많이 잃을리라. 그러나 만족을 아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지 않고 그칠 때를 아는 사람은 곤경에 빠지지 않으리라. 그는 영원토록 행복하리니…
제 45 장
커다란 이름은 완전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쓰임에는 끝이 없네 커다란 충만은 마치 빈 듯하지만,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네. 커다란 곧음은 비뚤어져 보이고, 커다란 앎은 어리석어 보이고 커다란 말은 더듬는 듯 보이네, 움직임으로 추위를 이기고 가만히 있음으로 더위를 이기며, 가만히 있으며 쉼으로써 세상을 바르게 하는 거라네..
제 46 장
세상에 도가 있으면 말이 똥수레를 끌지만, 세상에 도가 없으면 말이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지. 욕망보다 더 큰 죄가 없고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화가 없으며 자기를 위해 얻으려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지.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항상 만족스러운 것.
제 47 장
문밖에 나서지 않아도 모든 세상을 알고, 창 밖을 보지 않아도 하늘의 길을 안다네. 멀리 갈수록 아는 것은 적어져. 그러므로 성인은 다니지 않고도 알고,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며, 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네.
제 48 장
배움을 추구하면 나날히 얻게 되고 도를 추구하면 나날이 줄어든다. 줄고 또 줄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데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안 되는 것은 없네. 되는대로 냅둬라. 이세상 언제까지나 간섭해서 다스릴 수 없으니.
제 49 장
성인에게 고유한 마음이란 없네, 다른 이의 마음을 알아줄 뿐. 좋은 사람을 잘 대해 주며 좋지 않은 사람도 잘 대해준다. 덕은 좋은 것이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을 믿고 믿음이 없는 사람도 믿는다. 덕은 믿음이니까. 성인은 겸손히 물러나 세상을 위해 자기 마음을 후하게 할 뿐.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를 바라보고 들으며 성인은 그들을 모두 어린 아이처림 대한다.
제 50 장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삶을 따르는 자도 열에 셋 죽음을 따르는 자도 열에 셋 태어나 죽음에 이르는 것 또한 열에 셋이네. 무엇 때문인가? 살려는 마음이 두렵기 때문이지. 사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은 멀리 다녀도 들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앟고 전쟁에 나가도 다치지 않으니, 들소가 뿔을 받을 곳이 없고, 호랑이가 발톱으로 할퀼곳이 없으며, 칼날을 휘두를 곳이 없네.. 왜 그런가? 죽을 땅이 없기 때문이지.
제 51 장
모든 것은 도에서 생겨나 덕으로 자라며 물질로 이루어지고 환경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만물은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긴다.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그러한 것. 그러므로 모든 것은 도에서 생겨나 덕으로 자란다. 덕으로 키우고 돌보며 감싸주고 편안히 하며, 길러주고 지켜준다. 낳고도 가지지 않고, 하고서도 자랑하지 않고, 키우고도 간섭하지 앟는 것. 이것이 본래의 덕이다.
제 52 장
세상의 시작은 모든 것의 어머니 어머니를 알므로 그 아들도 알게 되네. 아들을 알고 또 어머니를 지킨다면 죽음의 두려움도 떨쳐 내리라. 입을 다물고 욕망의 문을 닫아라. 그러하면 삶은 풍부해 지리라. 입을 열고 늘 바삐 일한다면 삶은 절망뿐. 작은 것을 보는 것은 밝음, 약한 것을 지키는 것은 강함이어라. 그 빛을 드러내어 다시 밝음으로 돌아온다면 재앙도 어쩌지 못하네. 이렇게 우린 항상됨을 배우네.
제 53 장
나에게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다면 큰 길을 가겠네. 다만 옆길로 셀까 두려울 뿐. 큰 길을 지키는 것이 쉬운데도 사람들은 샛길을 좋아하네. 조정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데, 들판은 잡초가무성하고 창고는 텅비어있네 호사한 비단옷을입고 번득이는 칼을차고 싫도록 먹고마시고 쓰고노 남으니 이들이 바로 도적이다. 도의 길이 아니다.
제 54 장
단단히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단단히 잡은 것은 빼앗기지 않는다. 자자손손 영광을 받으리라. 몸에 덕을 쌓으면 그 덕이 참될 것이고, 집에 덕을 쌓으면 그 덕이 넘칠 것이고,
마을에 덕을 쌓으면 그 덕이 자랄 것이요, 나라에 덕을 쌓으면 그 덕이 풍요로울 것이며 세상에 덕을 쌓으면 그 덕이 어디라도 미칠 것이다. 그러니 몸으로 몸을 보고 집으로 집을 보고 마을로 마을을 보고 나라로 나라를 보고 세상으로 세상을 보아라. 내 어찌 세상이 그런 줄 알겠는가? 봐서 아는 것일 뿐…
제 55 장
덕을 지닌 자는 갓난 아이와 같구나. 벌이나 뱀도 그를 쏘지 않고 맹수도 그에게 달려들지 않고 날짐승도 그를 채 가지 않는구나. 뼈가 부드럽고 근육은 약해도 쥐는 힘은 단단하네. 암수의 교합은 모르지만, 완벽하구나, 정기의 지극함이여… 종일토록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구나. 얼마나 완전한 조화인가??? 조화를 아는 것은 영원함, 영원함을 아는 것은 총명함이라네. 억지로 삶을 더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고 숨을 조절하는 것은 긴장한 탓이네. 힘을 너무 많이 쓰면 고갈되고 말아. 이는 도의길이 아니지. 도가 아닌 것은 오래 갈 수 없다네.
제 56 장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입을 다물고 욕망의 문을 닫아라. 날카로움을 꺽고 엉킨 것을 풀어라. 빛을 가리고 먼지와 같이 되어라. 이것을 본래의 하나됨이라 하네. 이렇게 된 사람은 벗도 적도 없고, 이롭지도 해롭지도 아니하며, 귀하지도 천하지도 않지. 그러므로 이것이 하늘아래 가장 귀한 것이지.
제 57 장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고, 놀라운 꾀로 전쟁을 하고 다투지 않음으로 이 세상 주인이 되라. 내 어찌 그런 줄을 아는가? 그 까닭은 이렇다네.
꺼리고 피할 게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무기가 날카로워질수록 나라는 더욱 혼란해지고 사람들이 영리해질수록 기괴한 일은 더욱더 생겨나고 법령이 많아질수록 도적은 늘어나지. 그러므로 성인은 말하였네. 내가 하는 일이 없으면 백성은 질서를 되찾고 내가 평화를 좋아하면 백성은 정직해지며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백성은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이 없으면 백성은 소박한 생활로 돌아간다고.
제 58 장
가볍게 다스리면 백성들은 순박해지고 억세게 다스리면 백성들은 교활해지네 행복은 불화에 뿌리 박고 불화는 행복에 숨어 있지. 누가 그 근원을 알까? 정직이란 없네. 정직은 부정직이 되고 선도 다시 악이 되어 인간의 미혹함이 끝이 없구나. 그러므로 성인은 날카롭지만 교활하지 않고 곧지만 부딪치지 않고 빛나지만 튀지 않는다네.
제 59 장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데 아끼는 것처럼 좋은 것은 없다. 아끼는 것은 자신을 굽히고 덕을 계속 싾는 것. 덕을 계속 쌓으면 안되는게 없고 안 되는게 없으면 다함을 모르지. 다함을 모르는 사람만이 다스릴 수 있네. 다스림의 어머니는 오래 가는 것. 뿌리 깊고 단단한 근본, 오래 살고 영원히 보는 도라 한다네.
제 60 장
나라를 다스리기란 조그만 생선을 굽는거랑 같아. 도로써 세상에 나아가면 귀신도 힘을 못쓴다네. 아니 귀신이 힘을 못 쓰는게 아니라 그 힘이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네. 귀 신만이 사람을 해치지 못할 뿐 아니라, 성인도 사람을 해치지 않아. 귀신과 사람이 서로 해치지 않으므로 덕이 서로 쌓여 간다네..
제 61 장
큰 나라는 낮은 물과 같다. 세상이 만나는 곳이자 세상의 암컷. 암컷은 늘 고요함으로 수컷을 이기며 고요히 아래에 머문다 그러므로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겸손하면 작은 나라를 정복할 수 있으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복종하면 큰 나라를 정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복하려면 겸손해야 하고 복종해야 한다. 큰 나라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작은 나라는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 바라는 것을 얻는데 큰 나라가 겸손해야 한다.
제 62 장
도는 만물의 원천 좋은 사람의 보배, 좋지 않은 사람의 은신처. 아름다운 말로 명예를 살 수 있고, 고매한 행동으로 존경받을 수는 있지. 사람이 그처럼 나쁘더라도 도는 그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자를 옹립하고 삼공을 세우면서 구슬을 받쳐 들고 사두마차 행렬을 벌이는 것보다 묵묵히 앉아 도를 닦는 것이 낫지. 옛부터 사람들이 도를 귀하게 여긴 까닭은 무얼까? 구하면 얻고 죄를 짓고도 용서받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도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라네.
제 63 장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실천하고 아무 일도 도모하지 않음을 일로 삼고 아무 맛도 없음을 맛으로 느끼네. 작은 것을 크게 하고 적은 것을 많게 하고 원한을 덕으로 갚네. 어려울 땐 쉽게 생각하고 작은 일에서 크게 이루네. 세상에 어려운 일은 쉽게 해결되고 세상에 큰 일은 작은 행동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러므로 성인은 꾀하지 않아도 큰 일을 이루지. 쉽게 하는 약속은 믿음이 적고 가벼이 하는 일은 어려움이 많아. 그러므로 성인은 어둠에 부딪쳐도 결코 어려운 적이 없다네.
제 64 장
안정된 것은 쉽게 유지되고 근심은 드러나기 전이라야 이기기 쉽네. 약한 것은 쉽게 깨지고 작은 것은 쉽게 흩어지네. 모습이 나타나기 전에 하고 어려워지기 전에 다스려라. 아름드리 나무도 어린 가지에서 생겨났고, 아홉 층 높은 누각도 한 줌 흙에서 시작되었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것. 하려는 사람은 실패하고 잡으려는 사람은 놓치네. 성인은 하려 하지 않으므로 실패하지 않고 잡으려 하지 않으므로 놓치지 않네. 사람들은 언제나 거의 이루어 놓고도 실패하지. 마지막도 처음처럼 신중해야 실패하지 않는 법 그러므로 성인은 욕망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값진 재물도 귀하게 여기지 않네.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은 법을 배우고 사람들이 잃어 버린걸 찾게 해 주지 이렇듯 만물을 도와서 본성을 찾게 해주지만, 감히 무엇을 하지는 않지.
제 65 장
옛부터 도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깨우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몽매하게 만들었지. 다스리기란 어려운 일 그들의 지혜가 많기 때문이지. 지혜로 다스리는 자는 나라를 망치지만, 지혜로 다스리지 않는 자는 나라의 복이 되지. 이것은 두 가지 원칙, 이것을 아는 것이 본래의 덕이라네. 본 래의 덕은 깊고도 멀리 간다. 이는 모든 것을 되돌려 커다란 하나에 따르게 하는거야.
제 66 장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까닭은? 모든 골짜기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왕이 되는 것이지. 그러므로 백성 위에 서려면 겸손해야 하며,
백성 앞에 서려면 뒤에서 따라야 한다네. 성인이 이렇게 다스릴 때 백성들은 무겁다고 하지 않고 앞에 서 있어도 해롭다고 하지 않네. 그러므로 온 세상이 그를 밀어 주며 싫어하지 않는다네. 그는 다투지 않기 때문에 세상사람 누구도 그와 겨루지를 않는다네.
제 67 장
하늘아래 모든 사람이 나의 도가 너무 커서 비교할 수 없다고 하네. 나만 크기 때문에 다르게 보일 뿐 다르지 않다면 오래 전에 사라졌겠지. 내가 간직하는 보배가 세 가지 있지. 자애와 검약,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않는 것. 자애로워야 용감할 수 있고, 검약하여야 관대할 수 있으며 겸손하여야 세상을 이끌 수 있네 그러나 사람들은 자애를 버리고 용감하려 들고 검약을 버리고 관대하려 들며 겸손을 믿지 않고 최고가 되려고 하는구나. 여기에는 죽음만이 있을 뿐. 자애는 싸우면 이기고 지키면 단단하지. 하늘도 자애로써 자기를 지키고 막으리.
제 68 장
훌륭한 무사는 난폭하지 아니하고 훌륭한 투사는 화내지 않고, 훌륭한 승자는 대적하지 않고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기를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고 한다. 이것을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라고 한다. 옛부터 이것은 하늘의 영원한 짝이라고 불리어 왔다.
제 69 장
병가에 이런 속담이 있는데, ‘나는 주인이 아니란 손님이 되려는 것이요, 한 치도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한 발짝씩 물러난다.’ 이것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가는 것 팔을 보이지 않고 소매를 걷는 것 공격하지 않고 적을 잡는 것, 무기를 쓰지 않고 무장하는 것. 적을 가볍게 여기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네. 적을 가볍게 이기면 나의 보배를 잃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야. 그러므로 싸움이 붙었을 때, 슬퍼하는 자가 이길 것이다.
제 70 장
나의 말은 알기도 쉽고 실행하기도 쉽지만, 하늘아래 내 말을 알고 실행하는 사람이 없다. 나의 말엔 오랜 근거가 있고 나의 행동엔 사리가 있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해하지를 못하니, 나를 알 까닭이 있겠나? 나를 아는 자 드물고, 나를 본 받는 자 귀하구나, 그러므로 성인은 남루한 옷을 입고 다만 가슴속에 옥을 품는 것이니.
제 71 장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강함이요, 알 것을 모르는 것은 병이네. 그러나 병을 걱정한다면 이미 병은 아니지. 성인이 병이 없는 것은 병을 걱정하기 때문. 그러므로 병이 없는 것이네.
제 72 장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큰 두려움이 올 것이다. 그들의 집을 침입하지 말아라. 그들의 삶을 괴롭히지 말아라. 그들을 간섭하지 않으면 그대들 지겨워하지 않을 것이라. 그러므로 성인은 자기를 알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오만하지 않아. 그는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지.
제 73 장
용기 있고 정열적인 사람은 자기가 죽거나 남을 죽이고 용기 있으나 침착한 사람은 항상 목숨은 보존한다. 어느 것이 더 해로울까? 하늘이 미워하는 까닭을 그 누가 알리. 그러므로 성인도 어렵게 여긴다. 하늘의 도는 다투진 않아도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따르는 것이네.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다가오고 편안히 보이면서도 잘 꾀하는 구나. 하늘의 그물은 크고도 넓구나. 엉성하지만 아무 것도 놓치지 않는구나!!!
제 74 장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죽음으로 두렵게 할 수는 없다. 이미 백성을 죽음의 두려움 속에 살게 해 놓고 법을 어길 때마다 붙잡아 죽인다면 누가 감히 법을 어길까? 항상 죽이는 일을 도맡은 자가 있는데, 누가 그를 대신해서 죽인다면 이는 목수 대신 나무를 베는 일과 같지. 목수 대신 나무를 베는 사람치고 손을 다치지 않는 자가 있냐?
제 75 장
백성이 왜 굶주리는가? 군주가 세금을 많이 처 먹으니 그렇지. 그러므로 백성이 굶주리지. 백성을 다스리기가 왜 어렵나? 군주가 너무 간섭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다스리기 어렵지. 백성들이 왜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가? 군주가 삶을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백성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야. 삶에 매달리지 않는 자가 삶에 가치를 두는 자보다 얼마나 더 현명한가!
제 76 장
사람은 부드럽고 약하게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단단하고 강하지. 모든 풀과 나무도 살아서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마르고 딱딱하지.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사도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사도 그러므로 유연하지 못한 군대는 이길 수 없으며, 구부러지지 않는 나무는 쉽게 꺾이게 되지. 단단하고 강한 것은 떨어지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마침내 이기리라.
제 77 장
하늘의 도는 마치 활을 펴는 것과 같구나. 높은 것을 누르고 낮은 것을 올리지. 남으면 자르고 모자라면 보태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고 모자라는 것엔 보태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다. 모자라는 것은 오히려 덜고 남는 것엔 보태네. 누가 남는 것을 세상에 줄까? 다만 도를 지닌 사람밖에. 그러므로 성인은 하고서도 자랑하지 않고 해내고도 머물지 않으며, 그의 슬기로움을 드러내지도 않지.
제 78 장
하늘아래 물보다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에는 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네. 무엇이 물을 대신할 수 있나?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은 딱딱한 것을 이기네. 하늘아래 이를 모르는 이 없지만, 아무도 실행하지는 못하지. 그러므로 성인은 이렇게 말하지. ‘세상의 욕됨을 스스로 감수하는 자만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고, 나라의 재앙을 스스로 감수하는 자만이 세상의 왕이 될 수 있다.’ 진리란 이렇게 역설처럼 들리지.
제 79 장
크게 다툰 다음에 원한만이 남는 것. 어떻게 해야 잘 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러므로 성인은 어음 반쪽을 가지고도 빛을 독촉치 않지. 덕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하지만, 덕이 없는 사람은 갚기를 요구하지. 하늘의 도는 편애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좋은 사람과 함께하지.
제 80 장
작은 나라는 사람이 적으며 사람보다 수십 수백배 빠른 기계가 있어도 결코 쓰지 않는다네.
사람들은 죽음을 소중히 여기고 멀리 다니지도 않는다네. 배와 수레가 있어도 아무도 탈 일이 없으며,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어디에도 쓸 일이 없다네. 백성들은 다시 끈을 맺어서 쓰고 음식은 조촐하면서도 맛이 좋지 옷은 산뜻하고도 단순하고 집은 안락하니 그들이 나름대로 행복해 하네. 가까운 이웃에 보이도록 살면서 닭 울음소리, 개소리가 서로 들려도 늙어 죽을 때까지 왕래할 일이 없지.
제 81 장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않네. 좋은 사람은 따지지를 않고 따지는 사람은 좋지 않네. 아는 사람은 떠벌리지 않고 떠벌리는 사람은 아는게 없지. 성인은 결코 쌓아두지 않지. 남을 위해 쓸수록 더욱더 있게 되고 남에게 줄수록 더욱더 많아지네. 하늘의 도는 날카로워도 해치지 않고 성인의 도는 하고서도 다투지 않지.
도덕경은 기원전 6세기경에 노자에 의해서 직접 쓰여진 책입니다. 항상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소중한 교훈을 줍니다. “자기 앞에 놓인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배우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자연은 어떤 보상이나 감사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베풀며, 또한 차별없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키웁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평등하게 대합니다. 우리가 인위적인 노력을 버리고, 쓸데없이 힘들이지 않으며,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 우리의 행위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됨을 겪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위자연인데, 이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집착에서 벗어난, 가장 편안하게 무엇이든지 하는 그러한 상태를 말함입니다.
도덕경은 81장의 5000여자로 쓰여진 아주짧은 책입니다. 1장에서 37장까지, (道)로 시작하는 도경과 그 뒤의 (德)으로 시작하는 덕경을 합쳐서 도덕경이라고 합니다.
노자는 초나라 고현(苦顯) 려향 곡인리 사람입니다. 이름은 이(耳)이고, 자는 담(聃)이며, 성은 이(李)씨입니다. 주나라때 수장실(守藏室)의 관리를 지냈다고 합니다.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禮)에 대해서 물었다 합니다. 노자가 그에 답하여 말하길, “그대가 말하는 그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죽어 뼈는 모두 썩어 버렸고, 단지 그의 말이 남아 있을 뿐이다. 군자가 때를 얻으면 관직에 나아가지만, 때를 얻지 못하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훌륭한 장사꾼은 재물을 깊이 감추어 두고 없는 것처럼 하고, 군자는 성대하지만 용모는 어리석은 것 같다. 그대의 교만한 기운과 욕심이 많은 것과 꾸민 자태와 음란한 뜻을 버려라. 이것은 모두 그대에게 무익한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이 뿐이다.”
이에 공자가 떠나가면서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합니다. “새라면 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물고기라면 헤엄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짐승이라면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달리는 것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로 잡을 수 있으며, 나는 것은 주살로 잡을 수 있다. 용에 대해서는 나는 알 수 없다.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노자를 보니 용과도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