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2 장
01. 무아설(無我說)은 윤회(輪廻)의 관념과 모순되지 않는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재생한 자와 사멸(死滅)한 자는 동일합니까, 또는 다릅니까.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일찍이 갓난애였고, 유약한 애였고, 꼬마였고, 등에 업혀 있었습니다. 어릴 적 그대가 어른이 된 지금 그대와 같습니까.
아닙니다. 어릴 적 나와, 지금 나와는 다릅니다.
만일, 그대가 그 어린애가 아니라면, 그대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또 선생도 없었다는 것이 됩니다. 학문이나 계율(戒律)이나 지혜도 배울 수 없었다는 것이 됩니다. 대왕이여, 잉태 후 첫 7일 동안의 어머니와, 셋째 7일 동안의 어머니와, 넷째 7일 동안의 어머니가 각각 다릅니까. 어릴적 어머니와 어른이 되었을 적 어머니가 다릅니까. 지금 배우고 있는 자와 이미 배움을 마친 자가 다릅니까. 죄를 범한 자와 죄를 범하여 손발이 잘린 처벌을 받은 자가 다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존자여, 무엇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내 자신은, 등에 업힌 연약한 갓난아이적 나와 어른이 된 지금의 나와 같습니다. 모든 상태는 이 한 몸에 의하여 하나로 포괄(包括)되어 있는 때문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여기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켠다고 합시다. 그 등불은 밤새도록 탈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이여, 초저녁에 타는 불꽃과 밤중에 타는 불꽃이 같겠습니까.
아닙니다.
또, 밤중에 타는 불꽃과 새벽에 타는 불꽃이 같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초저녁의 불꽃과 밤중의 불꽃과 새벽의 불꽃은 각각 다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불꽃은 똑 같은 등불에서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대왕이여, 인간이나 사물의 연속은 꼭 그와 같이 지속됩니다.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은 별개의 것이지만,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고 동시에 지속(순환)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존재는 동일하지도 않고 상이(相異)하지도 않으면서 최종 단계의 의식에로 포섭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우유가 변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짜낸 우유는 얼마 후엔 응유(凝乳)가 되고, 다음엔 버터가 되고, 그 다음엔 버터기름으로 변해 갑니다. 만일 우유가 응유나 버터나 버터기름과 똑 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왕은 그 말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유로부터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왕이여, 인간이나 사물의 연속은 꼭 그와 같이 지속됩니다. 생겨나는 것(生)과 없어지는 것(滅)은 별개의 것이지만, 서로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고 동시에 지속됩니다. 이리하여 존재는 동일하지도 않고, 상이하지도 않으면서 최종 단계의 의식에로 포섭되는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2. 윤회(輪廻)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압니까.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원인 즉 인(因)과 연(緣)이 정지하므로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압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한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려 곡식을 가꾸어 창고에 채워 둔 후 얼마 동안은 땅을 갈아 씨를 뿌리거나 하지 않고 저장되어 있는 곡식을 먹거나 다른 물품과 바꾸고 또 필요할 때 쓰기도 하며 살아간다고 합시다. 대왕이여, 그 농부는 이때 창고에 곡식이 가득차 있지 않음을 알고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응당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그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창고를 채우는 인과 연이 정지함에 의하여 알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대 말씀과 꼭 같습니다.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인과 연이 정지함에 의하여 사람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압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3. 해탈하면 지식은 없어지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지식을 갖는 자는 지혜도 갖습니까.
그러합니다. 대왕이여.
지식과 지혜는 둘 다 같은 것입니까.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지식과 함께 지혜를 갖는 사람은 당혹(當惑)되는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어떤 일에 대해서는 당혹되고 어떤 일에 대해서는 미혹되지 않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당혹되고 어떤 일에 대해서 당혹되지 않습니까.
아직 배우지 않은 기술의 영역이나, 아직 가본 적이 없는 지방이나, 아직 들어보지 못한 명칭과 술어 등에 대해서는 당혹될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하여 당혹되지 않습니까.
통찰(智慧)에 의하여 달관(達觀)한 것 즉, (무상이다)(고다)(무아다) 하는 데 대해서는 당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친 사람의 미망(痴)은 어디로 갑니까.
지혜가 생기자마자 곧 미망은 사라져 버립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사람이 어둔 방 안으로 등불을 가져 왔을 때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이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렇다면 지혜는 어디로 갑니까.
지혜는 자신의 해야할 일을 성취하자마자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지혜에 의하여 성취된, (무상이다) (고다) (무아다)라고 하는 깨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존자여, 방금 말씀에 대하여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어떤 사람이 밤중에 서기에서 등불을 밝혀 편지를 쓴 다음, 등불을 끄는 경우와 같습니다. 이 경우 등불은 꺼져도 편지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혜는 사라지지만 지혜에 의하여 성취된 (무상) (고),(무아)의 깨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동쪽 어떤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5개의 물병을 준비해 두었다가 화재가 일어나면 끄는 풍속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집에 불이 나면 그 5개의 물병을 집에 내 던져 불을 끈다고 합니다. 불이 꺼진 다음에도 그 사람들은 물병을 계속 사용하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물병들은 이젠 소용없습니다. 불을 끈 다음에 물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5개의 물병은 5개의 뛰어난 수행력, 즉 신앙,정진,전념,정신 통일,지혜와 같고 시골 사람들은 수행자와 같으며, 불은 번뇌와 같습니다. 5개의 물병으로 불을 끄는 것과 같이 5개의 뛰어난 수행력에 의하여 모든 번뇌불을 끕니다. 이리하여 이미 없어진 번뇌는 두 번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이를테면 의사가 약초로 만든 다섯 가지 약을 환자에게 먹여 병을 낫게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이 경우 병이 나은 다음에도 의사는 다시 그에게 약의 효과를 보이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약은 이제 할 일을 다했습니다. 병이 나은 사람에게 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꼭 그와 같습니다. 다섯 가지 약은 5개의 뛰어난 수행력과, 의사는 수행자와 병은 번뇌와 환자는 범부(凡夫)와 같습니다. 다섯 가지 약에 의하여 병이 낫는 것처럼 5개의 뛰어난 수행력에 의하여 모든 번뇌는 없어지며, 지혜는 사라지지만 성취된 깨달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전쟁에 용감한 병사가 싸움터에 나가 5개의 화살을 쏘아 적을 격파했다고 합시다. 용사는 그 이상 계속 화살을 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화살에 의한 일은 이미 다했습니다. 무엇때문에 더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꼭 그와 같습니다. 5개의 화살에 의하여 적군이 격파되는 것처럼, 5개의 뛰어난 수행력에 의하여 모든 번뇌가 타파되고, 타파된 번뇌는 두 번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이같이, 지혜는 할 일을 마치자마자 곧 없어지지만 그 지혜에 의하여 성취된, (무상이다), (고다), (무아다)라고 하는 깨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4. 해탈한 사람도 육체의 고통을 느끼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사람도 고통(苦受)을 느낍(感受)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어떤 괴로움은 느끼고, 어떤 괴로움은 느끼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나 정신적인 고통은 느끼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대왕이여, 육체적인 고통의 인(因)과 연(緣)은 계속하기 때문에 느끼지만, 정신적인 고통의 인과 연은 끝나기 때문에 느끼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한 가지 괴로움 즉, 육체적인 괴로움만을 느끼며, 정신적인 괴로움은 느끼지 않는다.’
존자여, 그렇다면 그 사람(육체적인 괴로움만을 느끼는 해탈한 사람)은 왜 완전한 반열반(般涅槃)에 들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아라한은 어떤 것을 애호(愛好)하는 일도, 혐오(嫌惡)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는 익지 않은 과일(즉 몸)을 흔들어 떨어뜨리지 않고 익기를 기다립니다. 대왕이여, 이것을 법장(法將) 샤아리풋타 장로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나는 죽음을 환영하지도 않으며, 삶을 환영하지도 않는다.
고용인이 품삯(賃金)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다가 올) 때를 기다린다.
나는 죽음을 바라지도 않으며 삶을 바라지도 않는다.
바로 알고(正知) 바로 생각하며(正念), 나는 때가 오는 것을 기다린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5. 감각(感覺)이 성립하는 근거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쾌감은 선입니까.
악입니까. 아니면 무기입니까.
그것은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으며, 또 무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존자여, 만일 선이 괴로움도 아니오 또 괴로움이 선도 아니라면, 선인 동시에 괴로움이란 것은 일어날 수 없겠습니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한 사람이 한 손에 뜨거운 쇠붙이를 잡고, 또 한 손에 차가운 눈덩이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양손 다 아프겠습니까.
그러합니다. 양 손 다 아플 것입니다.
양 손 다 뜨겁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잘못 알고 있습니다. 만일 뜨거움이 아프게 한다면, 양손 다 뜨거운 것이 아니므로 고통은 뜨거움에서 생길 수 없으며, 또 만일 차가움이 아프게 한다면, 양 손 다 차가운 것이 아니므로 고통은 차가움에서 생길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그렇다면 어찌하여 양손 다 아플 수 있겠습니까. 양손 다 뜨거운 것도 아니오, 양 손 다 차가운 것도 아니므로 고통은 뜨거움에서도 차가움에서도 생길 리가 없습니다.
존자여, 나는 그대와 같은 논사(論師)와는 토론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 존자여, 그 문제가 어째서 그러한가를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장로는 아비담마론으로부터 유도된 문제를 설함으로써 밀린다 왕을 설복시켰다.
대왕이여, 세속(世俗) 생활에 관계된 여섯 가지 기쁨이 있고, 세속을 버림(出離)에 관계된 여섯 가지 기쁨이 있으며, 세속 생활에 관계된 여섯 가지 슬픔이 있고, 세속을 버림에 관계된 여섯 가지 슬픔이 있으며, 세속 생활에 관계된 여섯 가지 평정(平靜)이 있고, 세속을 버림에 관계된 여섯 가지 평정이 있습니다. 이같이 6계열에 각각 여섯 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즉 현재의 36가지 감각이 있고 과거의 36가지 감각이 있으며, 미래의 36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모두 합치면 총계 백 여덟 가지 감각이 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6. 윤회의 주체(主體)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무엇이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명칭(名, 즉 인간의 정신 활동)과 형태(色, 즉 물질과 육체)가 바꿔 태어납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이나 악의 행위(業 카르마)가 행해지고, 그 행위에 의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서 바꿔 태어납니다.
존자여, 만일 현재의 명칭과 형태 그대로 저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만일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이여,실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한, 악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망고나무(암바) 과일을 훔쳤다고 합시다. 망고나무 주인이 그를 붙잡아 왕 앞에서 처벌해 달라고 했을 때, 그 도적이 말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이 사람의 망고를 따 오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심은 망고와 제가 따온 망고와는 다릅니다. 저는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고 한다면 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나이를 처벌하겠습니까.
존자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무슨 이유로 그럽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처음 망고는 현재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 망고에 대해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악의 행위가 행해지고, 그 행위에 의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로 저 세상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난 인간은 그의 업(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쌀이나 고구마를 훔쳤다고 하는 경우도 망고 과일의 경우와 똑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추울 때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나서 불을 끄지 않고 가 버렸는데, 불이 번져서 남의 밭을 태웠다고 합시다. 밭 주인이 그 사람을 왕 앞에 데리고 와 처벌을 내려 달라고 했을 때, 밭을 태운 사람이 말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이 사람의 밭을 태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끄지 않은 불과 이 사람의 밭 태운 불은 다른 불입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고 한다면 왕은 그 사나이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존자여, 그러할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처음의 불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 다음의 불에 대하여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명칭과 형태로 인하여 선행 악행을 하게 되고, 그 행위로 인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로 저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 태어난 인간은 그의 업(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등불을 가지고 자기 집 꼭대기 방으로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등불이 지붕을 태우고 이어서 마을을 태웠다고 합시다. 마을 사람들이 그 사나이를 붙잡아 ‘당신은 어찌하여 마을을 태웠소’하고 물었습니다. 사나이는 ‘왜요, 나는 마을을 불태우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식사를 하기 위하여 밝힌 불과 마을을 태운 불은 다릅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입씨름을 하다가 왕에게 가서 그렇게 말한다면 왕은 어느 쪽 말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의 말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마을을 태운 불은 그 사람이 식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불로부터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사람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현재의 명칭 형태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명칭 형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두 번째 것은 첫 번째로부터 나온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나이가 한 소녀에게 구혼하여 값을 치르고 갔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소녀가 장성하여 묘령의 처녀가 되었을 때, 딴 사나이가 값을 치르고 결혼했다고 합시다. 먼저 사나이가 와서 ‘당신은 왜 나의 아내를 데리고 갔소’라고 따졌습니다. 나중 사나이가 ‘나는 당신의 아내감을 데려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구혼하여 값을 치른 어린 소녀와 내가 구혼하여 값을 치른 신부는 딴 여성입니다.’고 대답했다고 합시다. 그들이 입씨름을 하다가 왕 앞에서 재판을 요구한다면 왕은 어느 쪽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먼저 사나이가 옳다고 할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나중 사나이가 무슨 말을 하든 장성한 그 아가씨는 어린 소녀로부터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현재의 명칭 형태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명칭 형태는 딴 것이긴 하지만, 저 세상 것은 이 세상 것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소치는 사람으로부터 우유 한병을 사서 그에게 맡기고 가면서, ‘내일 가지러 오겠소’라고 했다고 합시다. 다음 날이면 그 우유는 응유(凝乳)로 변할 것입니다. 그 사나이가 와서 우유를 달라고 하므로 소치는 사람은 응유로 변한 그대로 내주었습니다. 사나이는 ‘내가 산 것은 응유가 아닙니다.
내 우유병을 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소치는 사람은 ‘나에겐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당신의 우유가 응유로 변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입씨름을 하다가 왕 앞에서 재판을 바란다면, 왕은 어느 편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소치는 사람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유를 산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응유는 그가 산 우유가 변해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현재의 명칭 형태는 저 세상에 태어나는 명칭 형태와 다르지만, 응유가 우유로부터 나온 결과이듯이 사람은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7. 윤회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까.
대왕이여, 그만 둡시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나는 이미 ‘죽을 때 만일 생존에 대한 집착을 갖는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요, 집착을 버린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왕의 정무(政務)를 처리한다고 합시다. 왕은 그에게 만족하여 정무를 맡길 것입니다. 그는 왕의 정무를 수행하는 동안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부여받아 그것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가 ‘우리 임금은 어떤 정무도 처리하시지 않는다’고 여러 사람에게 공언했다고 합시다. 왕은 그 사람이 옳게 말했다고 하겠습니까.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그런 질문을 다시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벌써 ‘만일 죽을 때 생존에 대한 집착(執着)이 있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오, 집착이 없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는 진작 말씀하셨습니다.
08. 명칭(名)과 형태(色) – 정신과 육체
왕은 물었다.
그대는 아까 명칭 형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에서 명칭이란 무엇이며 형태란 무엇입니까.
모든 사상(事象)에서 조잡한 것(감각적인 것)은 형태이고, 미묘한 것 즉, 정신적인 것은 명칭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어찌하여 명칭만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거나, 형태만이 다시 태어나거나 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이들 사상(事象,諸法 즉 명칭과 형태)은 서로 의존하여 하나가 되어 함께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암탉은 노른자나 달걀 껍질이 없다면 달걀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노른자와 달걀껍질은 둘이 다 서로 의존하여 함께 한 물건으로 생겨납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명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형태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명칭과 형태는 양자가 서로 의존해 있고 하나의 존재로 함께 생겨남을 의미합니다. 사실은 오랫동안 그렇게 있어 왔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잘 알겠습니다.
09. 생사윤회를 벗어남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사람은 이치에 맞는 주의작용(如理作意)에 의하여 벗어나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바른 주의작용과 지혜와 그 밖의 모든 선법(善法)에 의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납니다.
바른 주의작용과 지혜는 똑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른 주의작용과 지혜는 다른 것입니다. 양과 산양과 소와 물소와 낙타와 노새에게도 바른 주의작용은 있지만 지혜는 없습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0. 지혜에 관하여…지혜는 번뇌(煩惱)를 없앤다
왕은 물었다.
주의작용의 특징은 무엇이며, 지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주의작용은 파지(把持, 움켜잡음)를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끊어버림(斷切)을 특징으로 합니다.
주의작용은 어떻게 하여 파지를 특징으로 하며, 지혜는 어떻게 하여 끊어버림을 특징으로 합니까. 비유(譬喩)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그대는 보리를 베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보리를 벱니까.
왼 손으로 보릿대를 움켜잡고 오른 손으로 낫을 들어 보리를 벱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그와 같습니다. 출가자(修行者)는 사고력에 의하여 자기 마음을 움켜 잡고(把持) 지혜에 의하여 자기의 번뇌를 끊어버립(斷切)니다. 이같이 하여, 주의작용은 파지(把持)를 특징으로 하고, 지혜는 끊어버림(斷切)을 특징으로 합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1. 계행의 특징에 관하여….계행은 일체 선법의 근거이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또 그밖의 선법이라고 하셨는데 그 선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왕이여, 계행,신앙,정진(精進),전념(專念),정신통일(禪定),지혜(智慧)등이 선법입니다.
계행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계행은 일체 선법의 근거가 됩니다. 즉 5개의 도덕적 능력(五根과 五力), 7개의 깨침에 필요한 것(七覺支), 8개의 신성한 길(八聖道), 4개의 전념의 확립(四念處), 4개의 바른 노력(四正勸), 4개의 자재력의 구족(四神足), 4단계의 선(四禪), 8가지의 해탈(八解脫), 네 가지의 정신 통일(四定), 8가지의 마음 통일(八等至)등 하나 하나가 모두 계행을 근거로 확립됩니다. 대왕이여, 계행이 확립된 사람에게서 일체의 선법은 결손되는 일이 없습니다.
실례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성장하고 장성하고 번성하는 모든 동, 식물은 어느 것이든 땅에 의존하고 땅을 근거로 하여 성장하고 장성하고 번성합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계행에 의존하고 계행을 근거로 하여 5개의 도덕적 능력 등을 증진시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땅에서 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든 땅에 의존하고 땅을 근거로 하여 행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계행에 의존하고 계행을 근거로 하여 구경(究竟)에 이릅니다.
더 좋은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도시의 설계자가 도시를 건설하려고 할 때 맨 먼저 도시의 터를 깨끗이 닦고 나무 밑둥이나 가시덤불을 치우고 바닥을 반반하게 한 다음, 거리와 광장과 십자로와 상가 등을 배열하여 도시를 건설합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계행에 의존하고 계행의 기반을 확립시킴으로써 5개의 도덕적 능력을 자기 스스로 증진시킵니다.
하나 더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곡예사가 자기 기술을 보이려고 할 때, 땅을 파고 돌과 깨진 기와를 제거하여 땅을 반지럽게 한다음, 그 부드러운 땅 위에서 자기 요술을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계행에 의지하고 계행에 기반을 확립시키므로 5개의 도덕적 노력을 발전시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계행을 근거로 하여 마음을 단련시키고 지혜를 키울 수 있다.
열의있고 깨우친 비구는 인생의 모든 얽매인 끈(繫縛)을 풀 것이다.
마치 대지가 생물의 근거가 되듯이 계행을 엮은 최상의 파아티목카는 선(善)을 증대시키는 근본이요.
또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이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2. 신앙에 대하여….신앙의 특징은 청정과 대망이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신앙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청정(淸淨)과 대망(大望)입니다.
청정은 어떻게 하여 신앙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마음에 신앙심이 솟아날 때 신앙심은 다섯 가지 장애(五蓋)(즉 탐욕,성냄,나태,자만,의심)를 쳐부수며, 또 장애를 벗어난 마음은 가라앉고(明澄) 깨끗해지고 흐림이 없어질 것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가령 전륜성왕(轉輪聖王)께서 4군을 거느리고 행군하는 도중 조그만한 강을 건넌다고 합시다. 강물은 상군과 기마군과 전차군과 보병군들에 의하여 흐려지고 흙탕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강을 다 건너고 나서 왕은 부하들에게 ‘누가 마실 물을 가져 오너라. 물을 마시고 싶다.’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왕에게는 물을 맑게 하는 작용을 가진마니(摩尼珠 또는 淸水珠)가 있었습니다. 부하들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그 마니를 강물에 던졌습니다. 마니가 던져지자, 곧 상카와 바아라 같은 물풀(水草)은 없어지고 흙탕물은 가라앉아 강물은 깨끗해졌습니다.
그때 비로소 부하들은 마실 물을 왕에게 가져다 바쳤습니다. 여기 마음은 강물과 같고, 출가자는 부하들과 같습니다. 또 번뇌는 풀이나 흙탕물과 같고, 신앙은 물을 맑게하는 마니와 같습니다. 물을 맑게 하는 작용을 하는 마니를 물 속에 던지자마자 물 속의 풀이 없어지고 흙탕물이 가라앉아 물이 맑아지듯이 신앙심이 솟아날 때, 다섯 가지 장애는 없어지고 마음이 청정하게 됩니다.
그럼 대망은 어찌하여 신앙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출가자는 남들의 마음이 어떻게 해탈했는가를 성자류(聖者流)에 든 경지(預流果)와 한번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경지(一來果)와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경지(不還과)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경지 등에 뛰어 들어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고, 아직 느끼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이같이 신앙의 특징은 대망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마치 이와 같습니다. 큰 비가 산마루에 내린다고 합시다. 그 빗물은 낮은 곳을 따라 흘러 산골짜기와 벌어진 바위틈을 메우고 강을 채우고 강의 양 뚝에 범람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차례 차례로 거기 와서 강의 깊이나 넓이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 망설이며, 강기슭에 서 있다고 합시다. 이 때 어떤 사람이 자기의 체력과 역량을 알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강물에 뛰어들어 저쪽 뚝으로 건너 갔다면, 나머지 사람들도 그 사람이 건너 간 것을 보고 그 강을 건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나머지 사람들이 강물에 뛰어드는 것처럼, 앞에 말한 4 단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신앙에 의하여 격류(激流)를 건너고, 근면에 의하여 생사의 바다를 건넌다.
정진(精進)에 의하여 모든 괴로음을 뛰어넘고, 지혜(智慧)에 의하여 청정하게 된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3. 정진(精進)에 대하여 -정진은 일체 선법을 지탱하는 것이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정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일체 선법을 지탱하는 것이 정진의 특징입니다. 정진에 의하여 지탱된 일체의 선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집이 쓰러지려고 할 때 딴 목재로 그 집을 떠받친다고 합시다. 이렇게 떠받쳐진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진의 특징은 선을 떠받치는 것입니다. 정진에 의하여 떠받쳐진 일체의 선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대군이 적은 소군을 공격한다고 합시다.
그때 소군을 가진 왕은 장병(將兵)을 규합하고 원군(援軍)과 협력하여 소군을 증강하므로서 대군을 물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진의 특징은 지원(支援)하는 것입니다. 정진에 의하여 지원 받는 일체의 선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아, 정진하는 제자는 악을 버리고 선을 계발하며 잘못된 것을 버리고 바른 것을 발전시켜 자신을 청정하게 한다.’
14. 전념에 관하여…전념의 특징은 열거(列擧)와 집지(執持)이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전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열거(列擧)와 집지(執持)입니다.
열거가 어떻게 전념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출가자에게 전념이 일어날 때, 그는 선악과 정사(正邪)와 존비(尊卑)와 흑백(黑白)등 대조적인 성질을 반복해서 열거합니다. 즉 이것들은 4개의 전념(四念處)의 확립이요, 4개의 바른 노력(四正勸)이요, 4개의 자재력의 근거(四神足)이요, 5개의 정신력의 작용(五根)이요, 5개의 비상한 힘(五力)이요, 7개의 깨침에 필요한 것(七覺支)이요, 바른 관찰(觀)이요, 밝은 지혜(明智)요, 해탈 등입니다. 이리하여 출가자는 배워야 할 것을 배우(修習)고, 배워서는 안될 것을 배우지 않으며, 가까이 할 것을 가까이 하고 가까이 해서는 안될 것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전념은 열거를 특징으로 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전륜성왕의 이재관(理財官)이 왕에게 조석으로 왕의 재력(財力)을 상기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재관이 ‘대왕이여, 그대의 상군은 얼마이며, 기마군은 얼마이며, 전차군은 얼마이며, 보병군은 얼마이며, 황금은 얼마이며, 금화(金貨)는 얼마이며, 재보(財寶)는 얼마입니다. 그것을 기억해 주소서’라고 왕의 재산을 열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존자여, 집지(執持)가 어떻게 하여 전념의 특징이 됩니까.
대왕이여, 전념이 생길 때 출가자는 이익되는 것(善法)과 이익되지 않은 것(不善法)의 범주를 추구합니다. 즉 이러 이러한 것은 선이고, 이러 이러한 것은 악이며, 이러 이러한 것은 유용하고, 이러 이러한 것은 유용하지 않다(顚倒)고 가려내어 추구합니다. 이리하여 출가자는 자신에게 악한 것을 소멸하고 선한 것을 보존(執持)합니다. 이와 같이 전념은 집지를 특징으로 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전륜성왕에게 믿음직한 신하(將軍寶)가 있어 왕에게 이롭고 이롭지 않은 것을 알아, 이것들은 이익되고 이것들은 이롭지 않으며, 이것들은 유용하고 이것들은 유용치 않다(顚倒)고 충언을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리하여 왕은 자신에게 악한 것을 소멸시키고 선한 것을 보존합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아, 나는 전념이야말로 어느 때 어느 경우에나 유익한 것이라고 말한다.’
15. 정신통일(禪定)에 관하여-정신 통일은 일체 선법을 통솔한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정신 통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수령(首領)됨을 특징으로 합니다. 일체의 선법은 정신 통일을 수령으로 하여 그곳으로 기울고 통솔되고 또 쏠려 갑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대들보는 꼭대기에 있어 모든 서까래가 그 곳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만나며 또 대들보는 집 전체의 꼭대기로 인정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신 통일은 일체의 전법에 대하여 그와 같은 관계에 있습니다.
비유를 다시 한번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이를테면 왕이 4군을 거느리고 싸움터에 나간다고 합시다. 모든 군사 즉 상군과 기마군과 전차군과 보병군은 모두 왕을 수령으로 하여 그에게로 향하도록 인솔됩니다. 그리고 각자가 왕의 부하로서 왕을 수령으로 전열이 모두 정돈됩니다. 일체 선법이 정신 통일에 대한 관계도 이와 꼭 같습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아 정신 통일을 수련하라. 정신통일을 성취한 사람은 모든 것을 진실상(眞實相) 그대로 보는 것이다.’
16. 지혜에 관하여…지혜는 광명을 발한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지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나는 이미 지혜는 끊어버림(斷切)을 특징으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또 광명(光照)을 특징으로 합니다.
지혜의 특징은 어떻게 하여 광명입니까.
대왕이여, 지혜가 생길 때 지혜는 무지(無明)의 어두움을 타파하고, 명지(明知)의 광채를 발하며 지식의 등불을 밝히고 고상한 진리(聖諦)를 드러냅니다. 이리하여, 출가자는 무상(無常)이다. 고(苦)다, 무아(無我)다, 라고 하는 가장 밝은 지혜(正慧)로써 모든 존재를 비춰 보는 데 정력을 쏟습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어두운 집안으로 등불을 가지고 들어온다고 합시다. 어둠을 깨고 광채를 발하며 밝은 빛을 비추어 거기에 있는 대상물을 밝게 볼 수 있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가장 밝은 지혜로써 모든 존재를 바로 비추어 봅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7. 일체 선법은 번뇌를 끊는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이들 선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동일한 목적을 성취합니까.
그러합니다. 이들 선법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동일 목적을 성취합니다. 즉 이들 선법은 번뇌를 끊는 것을 동일 목적으로 합니다.
어떻게 하여 그러합니까.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그것들(諸法)은 여러 부분의 군대 즉 상군,기마군,전차군,보병군들이 싸움터에서 적군을 쳐부순다는 동일 목적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