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보살본행경(佛說菩薩本行經) 하권
그 때 여래께서 바르고 참된 미묘한 말씀을 하시자, 모든 전염병 귀신들이 모두 마갈국을 향하여 달아나고, 비사리국에는 병이 다 없어져서 나았다.
그 때 부처님께서 다시 마갈국으로 돌아가시니, 전염병 귀신들은 또 비사리국으로 갔다.
이 때 세존께서 일곱 번 왕래(往來)하고서 말씀하셨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겁으로부터 지은 공덕으로 큰 서원을 세웠기에 이제 바르고 참된 행으로써 일체 중생들의 몸의 병을 제거하고, 아울러서 마음의 병도 없애어 주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시비왕(尸毘王)이 되었을 때에는 한 마리의 비둘기를 위해 몸뚱이의 살을 베어 주면서 일체 중생의 위험을 제거하리라고 서원을 세웠고, 마하살타(摩訶薩) 태자였을 때에는 굶주린 범을 위해 신명을 버렸으며, 사시왕(舍尸王)이었을 때에는 내 몸의 살로써 병든 사람에게 12년 동안 공양하였고, 아미타가량왕(阿彌陀加良王)이었을 때에는 병들어서 스스로 약을 배합해서 복용하려고 했더니, 그 때 한 벽지불이 왕과 같은 병을 앓으면서 와서 약을 구걸하기에 왕인 나는 먹지 않고 곧 그 약을 벽지불에게 주면서 스스로 일체의 병을 모두 다 제거하여 낫게 하리라고 서원하였다.
수타소미왕(修陀素彌王)이었을 때에는 죽음에 다다른 백 명의 왕의 목숨을 건져 주었고, 가마사발왕(迦摩沙王)으로 하여금 정견(正見)에 들어가게 하여 12년 동안의 악한 맹세를 녹여 없애게 하였다. 수대나(須大拏) 태자 였을 때에는 두 아이와 아내를 보시하였고, 마휴사타(摩休沙陀) 태자였을 때에는 약으로써 중생의 병을 없앴고, 또 큰 바다에 들어가서 마니주(摩尼珠)를 얻어서 다시 중생들의 빈곤을 제거하였다.
마하바리왕(摩訶婆利王)이었을 때에는 24일 동안 내 몸의 살로써 병든 사람에게 공양하였고, 찬제바라(提婆羅) 선인이었을 때에는 손과 발을 베고 끊고 하여도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가시왕(迦尸王)이었을 때에는 인민들이 돌림병을 앓는 것을 왕이 8관재(八關齋)를 받고 큰 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에 대해 ‘병든 백성은 다 낫게 해주십시오’라고 생각했다. 비바부(毘婆浮)라는 해주사(解呪師)가 되었을 때는 백성이 돌림병을 앓는 것을 자신의 피와 살을 귀신에게 주어 먹게 하여서 해제(解除)하는 데 썼기 때문에 백성들의 온갖 병이 다 제거되어 나았다.
범천의 왕이었을 적에는 한 구절의 게송을 위하여서 스스로 몸의 가죽을 벗겨서 경전을 베껴 쓰는 데 썼고, 비릉갈리왕(毘楞竭梨王)이었을 때에는 한 구절의 게송을 위하여 몸뚱이에 천 개의 못을 박았다.
우다리(優多梨) 선인이었을 때에는 한 구절의 게송을 위하여서 몸의 가죽을 벗겨서 종이를 삼고 뼈를 꺾어서 붓으로 하고 피는 먹으로 썼다.
발미왕(跋彌王)이었을 때에는 나라의 인민들에게 모두 창병(瘡病)이 있었다. 왕이 스스로 다니면서 독 나무[毒樹]를 찾아냈는데 이 독 나무의 잎이 물에 떨어지면 사람이 이 물을 마시고 병이 났으므로 곧 그 독 나무를 뽑아서 뿌리와 둥치를 모두 불에 태웠더니 백성들의 창병이 반은 나았으나 그 중에는 낫지 않는 자가 있었다.
왕이 의사에게 물었다.
‘중생들의 창병이 어찌하여 낫지 않는가?’
의사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이 창병은 중한 병이어서 반드시 물고기의 살을 얻어서 먹어야 낫겠습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곧 물가로 가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가 될 것을 서원하였다.
‘지금 내가 몸으로써 중생들의 병을 없애려 하니 이 공덕으로써 불도(佛道)를 구하여서 널리 일체 중생의 한량없는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제거하게 해주십시오. 과연 서원한 것처럼 여기 있는 중생으로 내 살을 먹는 자는 병이 다 낫게 하여지이다.’
곧 나무 위에서 물 속으로 몸을 던지니 문득 변화하여 고기가 되었는데, 소리를 내어서 말하였다.
‘병이 있는 자는 와서 내 살을 먹으라. 반드시 병이 나으리라.’
인민들이 소리를 듣고 모두 와서 그 고기의 살을 취하여서 먹으니 병이 다 나았다.”
이에 세존께서 스스로 지난 세상의 숙행(宿行)으로 지은 바를 말씀하시고 서원한 것을 지금 다 얻었으며, 이제 이 바르고 참된 가르침으로써 일체 중생의 재앙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문득 스스로 몸을 변화하여 두 개의 머리를 지으셔서 한 머리로는 비사리국을 보시고 한 머리로는 마갈국을 보시니, 염병 귀신들이 모두 도망하여 큰 바다로 돌아갔다.
인민들의 여러 가지 병이 모두 빠짐없이 낫고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서 인민들이 안락하였으며, 법으로써 널리 교화하여 마음속의 모든 욕망의 병도 아울러서 다 청정하게 하고 도(道)에 서게 하니, 일체 인민들이 다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모든 비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하여 매우 기이하고 매우 특이하여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단지 지금 중생의 병과 기갈(飢渴)의 환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세상 때에도 역시 이와 같았다.
과거 헤아릴 수 없는 세상에 이 염부제에 큰 나라의 왕이 있었는데 범천(梵天)이라 이름하였다. 염부제의 8만 4천 모든 작은 나라의 왕들을 거느렸고 2만 명의 부인과 1만 명의 채녀(女)가 있었으나 태자가 없어서 밤낮으로 근심하다가 신기(神祇)와 범천(梵天)ㆍ천제(天帝)ㆍ마하패리천(摩訶覇梨天)의 모든 큰 신과 해와 달과 하늘과 땅에 빌어서 드디어 아들을 얻었다. 때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단정하고 고왔으며 대인(大人)의 모습이 있었다.
이름은 대자재천(大自在天)이었는데 사람됨이 인자하고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세상의 여러 가지 서적과 성수(星宿)가 변천하고 운행하는 이치와 일식과 월식에 대한 이치와 일체 기술을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또 의술을 배워서 모든 약을 화합하고 나라에 ‘모든 병이 있는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마땅히 의약과 음식을 주고 점도 쳐 주리라’라고 영을 내렸다. 인민들이 영을 듣고 병이 있는 자들이 모두 태자에게로 가니,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하고 그 덕을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인민들이 다시는 의사에게는 가지 않고 다른 의사들을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기니, 모든 의사들이 모두 화를 내면서 태자를 투기(妬忌)하였다.
이 때 온 염부제의 인민들에게 염병이 유행하였고 더구나 곡식이 귀하였는데, 온갖 의약품을 써도 능히 낫게 할 수 없어 날마다 죽는 백성이 무척 많았다. 왕이 크게 근심하여 모든 의사들을 불러서 그 처방을 물었다.
그 때 한 의사가 왕의 태자를 투기하였는데, 마음속으로 스스로 ‘지금 이 태자는 나의 원수인데 이제야 기회를 얻었구나’라고 생각하고, 곧 왕에게 아뢰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시험삼아서 모두 찾아보겠습니다.’
왕이 좋다고 하니 곧 갔다가 다음날 다시 돌아와서 왕에게 아뢰었다.
‘한 가지 방법을 얻었는데, 만약 대왕께서 얻으셔서 복용하게만 하신다면 모든 병이 반드시 제거될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어떠한 약을 써야 할 것인지 말하여 보라.’
의사가 대답하였다.
‘반드시 태어난 이래로 어질고 자애로워서 중생을 가엾게 여기고 일찍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은 자의 피를 구하여서 약과 조화하여 복용하게 하고, 그의 두 눈을 얻어서 귀신들을 풀어 보내는 데 쓰면 모든 병이 나을 것입니다.’
왕이 대답하였다.
‘태어난 이래로 성내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이 일이 매우 어려운지라 가히 얻을 수 없겠도다.’
태자가 듣고 부왕에게 아뢰었다.
‘그러한 일이라면 쉬워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저는 대왕의 아들이오나 제가 태어난 이래로 일찍이 성내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으며 항상 일체를 사랑하고 가엾게 여겼을 뿐, 처음부터 사나운 모습이 없었습니다.
제 몸뚱이는 항상하는 것이 아니어서 견고함이 없으며, 오래지 않아서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오직 대왕께서는 제가 약이 될 것을 허락하시어 중생들의 병을 제거하게 해주십시오.’
왕이 대답하였다.
‘너는 내가 자식이 없어서 모든 하늘과 일월성신과 4산(山)과 5악(嶽)에 기도하고서 얻은 아들이니, 지금 차라리 이 몸이 없어지고 나라를 잃더라도 마침내 너를 허락할 수는 없다.’
태자가 부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불도를 구하는데, 제가 이제 피를 중생에게 주면 이 공덕으로 마땅히 부처님의 모든 경법(經法)을 다 알게 될 것이며, 제가 이제 이 육안을 중생에게 주면 이 공덕으로 마땅히 여래의 지혜의 눈을 얻어서 마땅히 일체를 위하여서 바른 인도가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비록 태자는 없어도 왕이 될 수 있으시지만 만약 국토에 백성이 없다면 누구를 위해 왕이 되시겠습니까? 모든 인민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병이 모두 없어지게 한다면 부왕께서도 근심이 없으실 것입니다.’
왕이 다시 슬피 울면서 태자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내가 차라리 국왕의 지위를 버릴지언정 가엾은 아들은 실로 버릴 수 없다.’
이에 태자가 꿇어앉아서 합장한 채 부왕에게 아뢰었다.
‘이제 저는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는데 만약 냄새나고 더러운 몸뚱이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어떻게 여래의 지혜와 깊고 묘한 법을 알며, 어떻게 일체 혜안(慧眼)을 얻겠습니까? 부디 부왕께서는 제 위없는 도의 마음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부왕이 묵묵히 다시 말이 없으니 의사가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시험삼아서 피를 뽑아서 약과 조화해서 병자들에게 주어 보겠습니다.
만약 낫게 된다면 그 눈을 뺄 것이오나 만약 낫지 않는다면 눈을 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에 태자가 팔을 찔러서 피를 뽑으면서 서원하였다.
‘내가 이 피로써 중생들의 병을 제거하고 이 공덕으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려고 하오니 과연 부처를 이룰 것이라면 이 약을 먹는 일체 중생들의 병이 마땅히 낫게 되어지이다.’
곧 그 피로써 약과 조화해서 모든 병자들에게 먹이니 병이 다 나았다.
의사가 왕에게 아뢰었다.
‘병자들이 이 약을 먹고 모두 병이 나은 것이 눈앞에 나타난 사실인데 믿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때 염부제의 8만 4천 모든 소왕들과 신하와 백성들이 대왕의 태자가 스스로 그 눈을 빼어서 일체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슬피 울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모두 모여 와서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태자에게 여쭈었다.
‘태자님이시여, 부디 저희들이 차라리 스스로 신명을 버릴지언정 태자님으로 하여금 그 눈을 훼손시키도록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그 일체 중생을 사랑하시고 가엾게 여기시는 마음은 오래지 않아서 부처를 이룰 것이오니 제발 그 눈은 버리지 마십시오.’
이에 태자가 모든 왕과 신하와 백성들에게 사례하면서 말하였다.
‘지금 내가 이 몸뚱이의 피와 눈으로써 중생의 병을 제거하고, 이 공덕으로 불도를 구해서 내가 성불할 때에는 마땅히 그대들의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없애 줄 것이니 나의 위없는 도의 마음을 물리치지 말라.’
그 때 모든 왕과 일체 신하와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는 묵묵히 있었다.
이에 태자가 좌우에 신칙하여 해구(解具)를 시설하여서 그 눈을 빼내려고 좌우의 사람에게 말하였다.
‘누가 능히 내 눈을 빼낼 수 있는가?’
좌우의 인민들이 다 할 수 없다고 사양하였는데, 그 때 태자를 투기하던 의사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태자가 기뻐서 대단히 좋다고 말하였고 칼을 주면서 의사에게 부탁하였다.
‘눈을 빼서 내 손바닥에 놓아 달라.’
문득 한쪽 눈을 빼서 태자의 손바닥에 놓으니 태자가 일어나서 서원을 세웠다.
‘이제 내가 이 육안(肉眼)으로써 중생에게 베풀어 주는 것은 전륜성왕이나 마왕이나 범왕(梵王)을 구함이 아니며, 색(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細滑:觸]의 즐거움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덕으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여서 내가 일체 지혜의 눈[智眼]을 얻고, 널리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들을 위해 큰 의왕(醫王)이 되어 일체 중생들의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제거하고 중생들에게 지혜의 눈을 베풀어 주도록 하여지이다.’
이렇게 말하고서 곧 그 눈알을 책상 위에 놓으면서 ‘과연 내가 마음으로 원한 것처럼 일체 중생의 병이 모두 제거되어 나아지이다’라고 하니, 부모들이 이를 보고 곧 기절했다가 한참 만에야 깨어났으며, 모든 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소리내어 울며 통곡하니 천지가 움직였고, 몸부림치다가 혹 기절하는 자도 있었다. 마침 칼을 들어서 다시 한쪽 눈을 빼니, 그 때 삼천대천세계가 크게 진동하였고, 삼계의 모든 하늘들이 다 내려와서 보살이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 눈을 빼서 피가 흘러 나오는 것을 보고 헤아릴 수 없는 모든 하늘들이 모두 다 슬피 울어서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그 때 천제(天帝)가 태자의 앞에 이르러서 태자에게 물었다.
‘그대가 지금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기 때문에 신명을 아끼지 않고 그 육안을 빼었으니 이와 같은 근고(勤苦)란 실로 매우 어려운 일인데 지은 바 공덕으로 어떠한 것을 구하고자 하는가, 구하는 것이 전륜왕인가, 천제인가, 마왕인가, 범천인가? 왕자는 어떠한 서원을 구하는가?’
태자가 대답하였다.
‘성왕이나 천제나 마왕이나 범천왕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삼계에서 색(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細滑]의 즐거움을 구하는 것도 아니니, 이 공덕을 가지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여서 시방의 일체 중생을 위해 큰 의왕(醫王)이 되어 널리 일체 중생의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제거하고, 중생에게 지혜의 눈을 베풀어 주며, 널리 나고 죽는 모든 환난을 여의도록 할 것을 구하노라.’
그 때 천제석과 일체 모든 하늘들이 찬탄하였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미칠 수 없는 아주 좋은 일이다. 그대의 소원대로 오래지 않아 성불할 것이다.’
그 때 제석이 곧 그 눈알을 집어서 다시 태자의 눈 속에 넣어 주니 태자의 눈이 곧 평시대로 회복되었고, 밝기가 전보다도 배나 나았다.
한량없는 모든 하늘들이 하늘 꽃을 그 위에 뿌리면서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부왕과 어머니와 부인과 채녀와 모든 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크게 기뻐하며 뛰기를 한량없이 하였다.
그 때 천제석이 비파금마(比婆芩摩) 대장군에게 신칙하여서 모든 염병 귀신들을 쫓아서 다 큰 바다로 몰아넣으니 모든 병자들이 다 나았다.
천제는 갖가지 음식을 비처럼 내리고, 다음에는 미곡(米穀)을 비처럼 내리고, 다음에는 의복을 비처럼 내리고, 다음에는 7보를 비처럼 내리니 일체 중생의 병이 다 나았고, 모두 배부르고 만족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없었으며, 백성들이 기뻐하였고 나라가 드디어 높이 일어났다.
그 뒤로 수년 후에 부왕의 목숨이 다하여 태자가 곧 왕위에 올라 정전(正殿)에 앉으니 7보가 저절로 이르렀고 전륜성왕이 되어서 사천하를 주관하니 모두 경사를 입지 않음이 없었다.
이렇게 지은 공덕으로 현세를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태자 대자재천(大自在天)이었던 자가 곧 나이고, 부왕 범천은 지금의 부왕 백정(白淨)이며, 어머니는 지금의 어머니 마야(摩耶)이고, 내 눈을 뺀 의사는 지금의 조달(調達)이며, 그 때 염부제의 인민이었던 자들은 지금 비사리국과 마갈국의 인민이니라.
내가 그 때도 역시 그 병과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을 제거하였는데, 지금도 다시 중생들의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제거하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널리 지혜의 눈을 얻어서 도증(道證)에 서게 하는 것이니라. 보살이 단바라밀(檀波羅蜜)을 행하매 그 근고가 이와 같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다 크게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절하였다.
9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는데, 부처님께서 1천2백50명의 사문들과 함께 계셨다.
성에 들어가서 걸식[分衛]하고자 하여 부처님께서 성에 들어가시려고 할 때 5백 명의 하늘 사람이 먼저 향기로운 바람을 놓아서 길을 쓸고, 나아가 모든 동네까지도 다 청정하게 하니 부정하고 더러운 것이 없어지고 냄새나는 곳은 저절로 땅으로 들어가서 도로가 모두 정결하게 되었다.
5백 명의 하늘 사람이 향기로운 즙을 비처럼 내리어 도로와 거리와 마을을 모두 윤택하게 하고, 또 하늘 꽃을 뿌리니, 국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그 상서로운 감응을 보고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임을 알고, 모두 좋아하는 것과 모든 일거리를 놓고 달려나와서 세존을 맞이하였다.
백성들이 부처님을 뵙는데, 그 가운데 땅을 쓰는 이, 꽃을 뿌리는 이, 향을 피우는 이, 옷을 땅에 펴는 이, 머리를 풀어서 땅에 깔고 부처님으로 하여금 그 위를 밟고 지나가시게 하려는 이, 몸뚱이를 땅에 던져 사지를 펴서 부처님께서 그 위를 밟고 가시게 하려는 이, 깃발과 일산을 바쳐든 이, 기악을 울리는 이, 일심으로 합장한 채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보는 이가 있어서 일체 중생들이 각각 갖가지로 세존을 공경하였다.
그 때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몹시 가난해서 꽃도 향도 공양할 거리도 없어 부끄러웠으나 다른 도리가 없어서 오직 일심으로 뜻을 청정히 하여 부처님을 뵈리라 하고, 곧 공손하고 엄숙한 뜻과 기쁜 마음으로 합장한 채 여래를 보고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빛나신 자금색 얼굴
32상이 분명하신데,
일체 중생의 무리들이
뵙고서 기뻐하지 않음이 없네.
부처님만 뵈면 마음이 기뻐서
걱정과 근심이 모두 사라지네.
영원히 생사의 바다 건네 주시는
크게 편안하신 어른[大安]께 머리 숙여 절하나이다.
그 때 세존께서 흔연히 웃으시니 5색의 광명이 입에서 나오는데 천백 가지의 신기함이 있었다. 낱낱 빛 머리에서 헤아릴 수 없는 밝음이 나왔고, 낱낱 빛 끝에는 일곱 가지 보배의 연꽃이 있었으며, 낱낱 꽃 위에는 모두 화신불[化佛]이 있어서 두루 시방을 비추었으니, 아래로는 모든 큰 지옥에 이르렀고 위로는 33천에 이르렀으며, 두루 5도(道)의 깊고 어두운 곳을 비추었으니, 온통 부처님의 경계가 크게 밝지 않음이 없었다.
삼천세계의 모든 하늘과 인민들이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기뻐 뛰지 않음이 없었으며, 각기 궁전을 떠나고 즐기던 바를 버리고 모두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서 경법(經法)을 설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 광명을 보고 득도하는 자, 혹 화신불이 설하는 바 경법을 듣고 득도하는 자, 혹 광명을 찾아와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서 득도하는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지옥에서 고문하여 다스리는 곳도 모두 휴식을 얻었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모두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일체의 축생과 금수의 세계에는 선한 마음이 스스로 생겨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서로 향하여 서로 상해하지 않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역시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아귀들은 모두 저절로 여러 가지 맛난 음식을 얻어서 배고프고 목마른 생각이 없어져서 기뻐 뛰면서 다시 인색한 마음이 없었으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모두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량없는 중생들이 장님은 보게 되었고, 귀먹은 자는 듣게 되었으며, 벙어리는 말을 하였고, 꼽추는 펴졌으며, 앉은뱅이는 걸었고, 파리하고 쇠잔한 모든 병이 다 나았으며, 감옥에 매여 갇혔던 자들이 다 풀려났다.
이 때에 대천세계의 모든 하늘과 인민과 일체 대중들이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고, 마음이 다 청정하여 다시 세 가지 번뇌[垢]가 없었으며, 그 중에는 혹 천상에 태어난 자가 있었고, 도적(道迹)을 얻은 자, 왕래(往來)를 얻은 자, 불환(不還)을 얻은 자, 아라한을 얻은 자, 벽지불의 도를 얻은 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킨 자, 혹은 퇴전하지 않는 경지에 굳게 머무른 자가 각각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세존의 광명이 시방을 비춘 후 돌아와 몸을 세 바퀴 돌고 미간으로 들어갔다. 이에 아난이 다시 의복을 바로잡고 꿇어앉아서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웃으신 데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실 것이오니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바라문을 보았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예,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바라문이 청정한 마음으로 한 구절의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하였는데, 이 뒤로 13겁 동안 천상과 인간 가운데 봉하고 받음이 자연스러워서 항상 단정함을 얻고, 언변과 지혜가 뛰어나서 사람들에게 찬탄받을 것이며, 3도(塗)와 8난처(難處)에 떨어지지 않고, 그 뒤엔 모두 반드시 벽지불이 되어서 이름은 환열(歡悅)이라고 하리라.”
일체 회중(會衆)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모두 다 기뻐서 노래로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였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의 공덕은 불가사의합니다. 이 바라문이 한 구절의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여 얻은 바 공덕이 한량이 없어서 그 장함이 이와 같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바라문이 비단 오늘만 나를 찬탄하여서 선한 이익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지난 세상에 바라나(波羅奈) 국왕의 이름이 파마달다(婆摩達多)였다. 사냥을 나갔는데, 상병(象兵)과 마병(馬兵)과 거병(車兵)이 앞뒤로 따르면서 인도하여 나갔다가 산에서 흰 코끼리 한 마리를 얻었는데, 몸이 희기가 눈빛과 같아서 그 빛나고 윤택함이 사랑스러웠고, 여섯 개의 어금니가 있었다.
왕이 이 코끼리를 얻고 대단히 기뻐하면서 곧 코끼리를 길들이는 사람에게 맡기어 길들이게 하였다.
이 때 코끼리 조련사가 곧 굴레와 배띠와 밀치로 얽어매고 큰 몽둥이로 가두니, 그 코끼리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서 먹지 않고 7일 동안을 지냈다.
코끼리 조련사가 겁을 내기를, ‘이것은 왕가의 코끼리인데 만약 먹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서 곧 죽을 것 아닌가?’라고 여기고, 즉시 왕에게 여쭈었다.
“그 흰 코끼리가 잘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 슬피 웁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곧 가서 보고 코끼리에게 물었다.
“왜 먹지 않느냐?”
코끼리가 문득 사람의 말로 왕에게 대답하였다.
“제 마음에 근심이 있으니 대왕께서 제 근심을 없애 주십시오.”
왕이 다시 물었다.
“무슨 근심이 있느냐?”
코끼리가 대답하였다.
“제게 부모가 있는데 늙어서 걸어다닐 수 없고 또 공양할 자가 없으므로 오직 제가 음식을 구하여 공양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여기에 얽매여 있으면 공양할 자가 없어서 반드시 부모가 함께 죽을 것이므로 슬퍼하고 근심하는 것이니, 대왕께서 만약 큰 자비심으로 저를 놓아 주시어 가게 하신다면 부모를 공양하다가 부모가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스스로 돌아와서 대왕님을 섬기겠으며, 이 맹세를 어기지 않겠습니다.”
왕이 그 말을 듣고는 슬프고 언짢아서 곧 찬탄하였다.
“너는 비록 축생이어도 사람의 행실을 닦는데, 나는 사람이 되어서도 축생의 짓을 하였구나.”
왕이 꿇어앉아서 코끼리를 풀어 주어서 가게 하였다.
그 때 코끼리가 돌아가서 부모를 공양한 지 12년 만에 부모가 다 죽으니, 곧 돌아와서 왕궁으로 나아갔다.
왕은 코끼리가 돌아온 것을 보고 더욱 기뻐하면서 7보 장엄과 영락으로 그 몸을 꾸미었으며, 왕이 나아가고자 할 때면 코끼리가 앞에서 인도하니, 왕이 이 코끼리를 태자보다 더 사랑하였고, 뭇 코끼리 가운데 최고라 하여 이름을 상번(象幡)이라 하였다.
그 때 가난한 바라문이 왕에게 나아가서 구걸할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떠한 방편을 지어야 재물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왕에게는 흰 코끼리가 있는데 매우 좋아합니다. 그대가 만약 이 코끼리를 찬탄한다면 크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문이 왕이 외출할 때를 틈타서 길가에 있다가 곧 흰 코끼리를 찬탄하는 게송을 설하였다.
네 몸이 심히 아름다워서
마치 천제(天帝)의 코끼리와 같구나.
뭇 코끼리 중에 형상을 구족하였고
복과 덕이 매우 높고 높구나.
둘도 없는 형체를 어디 견주랴.
마치 희기가 눈빛 같구나.
그 무엇도 미치기 어려운 신체
기특하기 이를 데 없구나.
그 때 국왕이 흰 코끼리를 찬탄하는 것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면서 그 바라문에게 금전 5백을 주어 치부하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상번이었던 자는 나이고, 그 때 바라문이었던 자는 지금 이 바라문이니라. 그 때도 나를 찬탄하고서 이익을 얻어 궁핍에서 구제되었던 것인데, 지금 내가 성불하였는데 또 나를 찬탄하였으니, 그 복의 과보를 얻음이 한량이 없어서 생사의 어려움에서 제도될 수 있었다.”
아난이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 글귀의 한 게송으로써 여래를 찬탄한다면 마땅히 얼마만한 공덕의 과보를 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억백천 나술(那術)의 헤아릴 수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사람의 몸을 얻게 해서 벽지불의 도를 성취할 수 있게 하는데, 가령 어떤 사람이 이 모든 벽지불에게 의복ㆍ음식ㆍ의약ㆍ침구 따위를 백 세 동안 공양하였다면 그 사람의 공덕은 정녕 많겠느냐?”
아난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 글귀의 한 게송만으로도 기쁜 마음으로 여래를 찬탄한다면 그 얻는 바 공덕은 저 모든 벽지불에게 공양하고서 얻은 복덕보다 백천만 갑절, 백억 무수 갑절이나 더하여서 비유도 할 수 없느니라.”
현자 아난과 모든 대중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다 크게 기뻐하면서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머리를 조아려서 절하였다.
10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나국(波羅奈國)의 정사(精舍)에 머물러 계셨다.
모든 부처님의 법은 낮으로 세 때와 밤으로 세 때를 정각(正覺)의 눈으로써 중생을 관찰하시고 누가 마땅히 제도될 자인가를 보아서 곧 가셔서 제도하시는 것이다.
그 때 바라나 국왕을 보좌하는 정승인 바라문이 있었다. 그가 새로 아내를 얻어서 무척 사랑하고 존중하였는데 그 아내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저에게 한 가지 원이 있습니다.”
정승이 대답하였다.
“어떠한 것을 구하려 하는지 그대의 뜻대로 해주리라.”
아내가 말하였다.
“제가 부처님과 스님들께 보시하되 스스로 짐작하여 하게 해주시고, 경법 을 설하시는 것을 듣게 해주십시오.”
남편이 곧 이를 허락하였다.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그 때 세존께서 그가 제도하기에 적당함을 아시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가사를 걸치고 발우를 가지고 그의 집에 가시니, 정승 부부가 부처님께서 밖에 계신 것을 듣고 기뻐 뛰면서 곧 나와서 맞이하는데,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을 청하여 자리에 오르시게 하고, 맛난 음식을 올리었다.
세존께서 잡숫고 나니, 정승 부부가 손수 물을 세존의 손에 부어 드렸다.
이에 여래께서 손을 씻으시고 양치를 하신 후에 경법을 설하시는데, 보시의 덕과 지계(持戒)의 복을 찬탄하셨다.
“천상 인간 가운데 봉하고 받음이 자연스러워서 존귀하고 영화롭고 호화롭고 귀함이 더할 수 없다.”
또 비록 존귀하고 귀한 처지여도 모든 욕심을 제멋대로 하면 3도(塗)의 고통을 면할 수가 없어서 지옥에서 불로 태우고, 끓는 물로 삶고, 칼 산ㆍ칼 나무에 오르고, 불 수레ㆍ불 구덩이에 들어가며, 칼로 베고 톱으로 썰고 하는 극심한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또 아귀의 고통으로 말하면 마른 몸뚱이에 배는 크고 목구멍은 마치 바늘 구멍처럼 가늘고, 뼈마디가 서로 부딪치고 서로 갈리어 온몸에서 불이 일어나고 백천만 년 동안 물과 곡식의 이름도 듣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심한 고통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또 축생의 고통으로 말하면 호랑이ㆍ사자ㆍ독사 따위가 서로 잔해(殘害)하고 서로 잡아먹곤 한다.
이렇게 3도 중에는 악한 마음만이 치성하고 착한 뜻은 털끝만큼도 없어서 고통과 혹독함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여 나올 기약이 없는데, 오직 모든 욕심을 버리고 바른 진리를 생각하면 온갖 고통과 혹독함을 여읠 수 있다.
삼계에서 몸을 받음은 모두 다 괴로움만 있는 것인데 모든 고통은 다 익힘[習]으로부터 생기나니, 모든 욕심과 3독의 번뇌[垢]를 익힘으로 말미암아 모든 행의 과보[報]로 온갖 고통을 받는 것이다. 3독을 끊어 버리고 모든 욕심을 없애 버리면 모든 행이 없어지고, 모든 행이 이미 다하면 몸을 받지 않으며, 이미 몸이 없으면 온갖 고통이 없어지나니, 모든 행과 모든 얽매임을 없애려고 한다면 오직 반드시 8정도(正道)를 생각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정승 부부를 위하여서 이 법을 설하시고 나니, 그 때 그 부부가 기뻐 뛰었고 4정제(正諦)에 들어가서 곧 부처님 앞에서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이에 부부가 집을 감옥처럼 여기고 욕심을 불처럼 여기고, 은애(恩愛)를 즐겨 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사문이 되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곧 이를 허락하셨다. 그러자 수염과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의(法衣)가 몸에 입혀져서 남편은 문득 사문이 되고, 아내는 곧 비구니가 되어서 함께 부처님의 뒤를 따라서 정사에 이르렀다.
그 때 세존께서 그들을 위하여 거듭 37품과 모든 선삼매(禪三昧)를 설법하시니 사유(思惟)하여서 마음으로 해탈하였고, 모든 욕심이 영원히 다해서 함께 아라한이 되었고, 6통(通)이 청정하게 사무쳤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이 여래의 신력(神力)과 지혜를 찬탄하였고, 아울러서 다시 두 명의 아라한을 찬탄하였다.
“매우 기특하오. 존귀하고 호화로운 처지에 있으면서 능히 존귀와 영록(榮祿)을 놓아 버렸고, 아내는 젊고 씩씩한데 욕락(欲樂)을 버렸으니, 아주 미치기 어려운 일이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아라한은 지난 세상에서도 역시 좋은 마음이 있었고 지금도 뜻이 좋으니라.
과거 한량없는 세상 바라나국에 바라마달왕(婆羅摩達王)이 있었다. 왕을 보좌하는 정승이 있었는데 이름은 비두리(比豆梨)였고, 사람됨이 자애롭고 어질고 총명하고 널리 통달(通達)하여서 통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오직 10선(善)으로써 교화하니, 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그 가르침을 받지 않음이 없었고, 왕이 무척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그 때 바다에 용왕이 있었는데 이름은 파류니(婆留尼)였고, 왕에게 부인이 있었는데 이름은 마나사(魔那斯)였고, 왕이 매우 사랑하고 존중하였다.
이 때에 용왕이 천상에 올라가서 제석의 처소에 모이려고 아내를 5백 명의 채녀에게 부탁하기를, ‘너희들은 시끄럽게 하여 괴롭히거나 그 뜻을 잘못 받들어 다치지 않게 하라’라고 하였다.
용왕이 떠난 뒤에 부인이 앉아서 스스로 숙세[宿命]의 일을 생각하였다.
‘생각해 보니 지난 세상에 사람이 되었을 때에 금계를 범해서 이제 용으로 떨어진 것이로구나.’
곧 즐거워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 슬피 우니 모든 시녀들이 즐거워하지 않음을 보고 함께 물었다.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으십니까?’
부인이 대답하였다.
‘지난 세상 일을 생각하니 본래 사람이었을 때에 금계를 범해서 지금 용의 몸뚱이를 받아서 이 독하고 사납고 추하고 더러운 꼴이 되었으니 즐거워하지 않은 것이다. 묻노니 모든 시녀들아, 어떤 방편을 지어야 용의 몸을 벗고 천상에 날 수 있겠느냐?’
시녀들이 말하였다.
‘용의 형상은 독을 품음이 치성해서 용의 몸을 벗고 천상에 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의 몸을 구하는 것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천상에 나는 일이겠습니까?’
그 가운데 한 여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일찍이 들으니 염부제의 바라나국의 바라달왕에게 한 명의 보좌하는 정승이 있는데, 지극히 자애롭고 어질고 지혜가 비할 데 없어서 일체 경전을 통달하지 않음이 없고 천상과 인간과 5도(道)로 나아가는 바를 다 알며, 5계와 10선으로 교화한다고 하니, 가셔서 물으면 천상에 태어나는 데 행할 바 법과 용의 몸을 벗는 행(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용왕이 돌아와서 부인을 보니 안색이 좋지 않은지라 곧 물었다.
‘어디가 좋지 않은가?’
부인이 대답하였다.
‘염부제의 바라나국의 바라달왕에게 한 명의 보좌하는 정승이 있는데 이름은 비두리라 하고, 지극히 자애롭고 어질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며, 지혜가 비할 데 없어서 일체 경전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는데 그의 마음을 얻어서 먹고 싶고 그의 피를 얻어서 마시고 싶습니다. 만약 이것을 얻는다면 저의 근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용왕이 대답하였다.
‘근심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구해주리라.’
용왕에게 친구인 야차(夜叉)가 있었는데, 이름은 불나기(不那奇)였다. 용왕이 그 야차에게 말하였다.
‘내 아내가, 염부제의 바라나 국왕에게 비두라라는 정승이 있는데 사람됨이 자애롭고 어질고 지혜가 제일이어서 일체 경전을 통달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의 마음과 피를 얻어서 먹고 싶다고 하니, 나를 위하여서 구하여 오면 두 개의 밝은 구슬[明珠:마니주]을 주리라.’
이에 야차가 곧 응낙하고 밝은 구슬을 가지고 갔다. 염부제에 이르러 장사꾼으로 변해서 바라나성에 들어가서는 마니주(摩尼珠)를 들고 다니니, 행인이 보고 물었다.
‘너는 그 구슬을 팔 것이냐?’
야차가 대답하였다.
‘팔 것이 아니라 도박을 하는 데 쓰겠다.’
그 행인이 곧 가서 왕에게 말하였다.
‘밖에 장사꾼이 있는데 두 개의 밝은 구슬을 가지고 도박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 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으니, 왕은 자신의 교묘한 도박 솜씨를 믿고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여겼다.
왕이 말했다.
‘궁으로 데리고 들어오너라.’
왕이 물었다.
‘무엇을 원하는가?’
야차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기게 되면 비두리를 제게 주시고 대왕께서 이기시면 이 구슬을 대왕님의 것으로 하겠습니다.’
왕이 좋다고 하니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말렸으나 왕은 그 구슬이 탐났고 자신의 교묘한 도박 솜씨를 믿었으므로 ‘내가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하면서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곧 함께 도박을 하였는데 야차가 이겨서 비두리(比豆梨)를 얻었다.
그 때 야차가 비두리를 잡아서 허공으로 날아갔다.
왕이 비두리를 잃고 크게 근심하니 신하들이 모두 말하였다.
‘왕이 다섯 가지 일을 하면 나라가 망하고 왕위를 잃나니, 첫째는 도박이요, 둘째는 술을 좋아함이요, 셋째는 여색을 탐하고 음악에 현혹됨이요, 넷째는 사냥 나가는 것을 좋아함이요, 다섯째는 충성스러운 간언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일을 행하면 왕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에 야차가 비두리를 메고 가다가 산간에 이르러서 문득 죽이려고 하였다. 이 때 비두리가 야차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야차가 대답하였다.
‘용왕의 부인이 네가 총명하고 지혜가 제일이며, 사람됨이 자애롭고 어질다는 말을 듣고 네 피와 마음을 얻으려 하여 너를 죽이려는 것이다.’
비두리가 말하였다.
‘네가 어리석어서 뜻을 알지 못하는구나. 나의 지혜로움을 듣고 나의 피를 얻고자 한다는 것은 나의 법을 얻으려 하는 것이고, 나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는 것은 나의 마음속의 지혜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아무튼 함께 가 보자. 무엇을 요구하든지 내가 다 주리라.’
그 때 비두리가 곧 야차를 위하여서 설하였다.
‘사람이 악을 지음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일을 조급히 하여 자세히 살피지 않음이요, 둘째는 뒤에 항상 뉘우침이 많음이요, 셋째는 성을 많이 내고 자애로운 마음이 없음이며, 넷째는 악하다는 이름이 멀리까지 들려서 사람들이 미워하여 보려 하지 않는 바가 됨이요, 다섯째는 죽어서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지는 것이다.
선을 닦는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좋은 일이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하는 것이 자상하여 법으로써 스스로 다루어서 거칠게 서두르지 않으므로 뒤에 뉘우치는 일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자애로워 연민하는 마음이 많아서 해를 끼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좋은 이름이 유포되어 사방에 떨치는 것이요, 넷째는 남들이 다 존경하고 사랑하기를 마치 스승과 아버지처럼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죽어서 천상이나 인간에서 한량없는 쾌락을 받는 것이다.’
이에 야차가 그 설하는 바를 듣고 마음이 열리어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하고 곧 비두리에게 가르침을 구하였다.
그 때 비두리가 10선으로 천상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니 야차가 법을 듣고 기뻐 뛰면서 모시고 갔다. 곧 비두리를 데리고 용왕의 처소에 이르니, 부인이 비두리를 보고 한량없이 기뻐하면서 머리 조아려 절하고 귀명(歸命)하고서 보좌(寶座)를 갖다 놓고 온갖 맛난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에 비두리가 용왕과 곧 부인을 위하여서 5도(道)에 있어서 행하는 바의 죄와 복에 대하여 말하였다.
‘몸의 3악(惡)을 거두어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상해하는 바가 없고, 인색과 탐욕을 버리고 의리로 양보하여 빼앗지 않으며, 애욕을 더럽게 보고 여색을 떠나서 정결(貞潔)하여 음란하지 않고, 말은 항상 지극히 성실하여 헛되거나 속임이 없으며, 말이 항상 부드러워서 거칠고 사나운 말이 없고, 그 싸우고 다투는 것을 화해시켜서 여기저기 송사하지 않으며, 말이 법에 맞아 아름답게 꾸미지 아니하며, 마음이 항상 인자하여 성내지 않으며, 남이 즐겁고 착한 것을 보면 대신 기뻐하여 질투하는 마음이 없으며, 일심으로 부처님과 법과 현성들과 나아가 참된 계율[眞式]에 이르기까지 받들어 믿으며, 죄와 복을 분명히 알아 마음에 의심이 없이 할 것이니, 이 10선(善)을 행하되, 구족하고 결함이 없이 하면 곧 천상의 7보 궁전에 태어나서 하고자 하는 바가 저절로 된다.
죽이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란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에 취하지 않게 하여 이 다섯 가지 일을 구족하게 하면 인간 중에 국왕과 대성(大姓)과 장자의 집에 태어나서 존귀하고 영화롭고 호화롭고 귀함이 한량없이 된다.
자애로운 마음이 없어서 중생을 잔인하게 해치고, 남의 재물을 강제로 겁탈하거나 무도하게 도둑질하며, 음란하게 남의 아내를 범하여 애욕의 정태(情態)를 싫어함이 없으며,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사나운 말, 꾸짖는 말을 하며, 성내고 질투하며, 부모에 불효하며, 3존(尊)을 믿지 않고, 올바른 것을 등지고 삿된 데로 향하는 이러한 모든 악을 행하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서 태우고 지지고 매질하고 하는 만 가지 고통이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빚진 것을 갚지 않고, 빌려온 걸 돌려주지 않으며, 부딪쳐 충돌하고 신의가 없으며, 교만하여 스스로 대단하게 여기고 3보(寶)를 비방하면 죽어서 축생에 떨어져서 노새ㆍ말ㆍ낙타ㆍ돼지ㆍ염소ㆍ개ㆍ사자ㆍ범ㆍ승냥이ㆍ구렁이ㆍ독사ㆍ도마뱀, 나아가 다른 금수가 되어 다시 서로 잔인하게 해쳐서 독한 마음이 치성하므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고통을 받는데, 벗어날 기약이 없다.
인색하고 탐욕하고 질투하여 보시를 즐겨 하지 않고, 입고 먹을 줄도 모르며, 3존을 믿지 않으면 탐욕의 불에 타는 바 되어 죽어서 아귀에 떨어져서 형체가 수척하고 뼈마디가 서로 부딪쳐서 온몸에 불이 타는데 백천만 년이 되어도 풀릴 때가 없으며, 밤낮으로 굶주리고 목마르나 처음부터 일찍이 물과 곡식의 이름도 듣지 못한다.
오직 10선을 행하고 몸ㆍ입ㆍ마음을 거두 잡아야만 길이 천상에 태어남을 얻어 쾌락을 끝없이 누리느니라.’
이에 용왕과 그 부인과 모든 용들이 두렵고 놀라워서 터럭이 곤두섰으며, 다 10선을 받들어 몸ㆍ입ㆍ마음을 거두 잡고 8관재를 지니면서 기뻐하였다.
이 때에 금시조(金翅鳥)의 왕이 와서 용을 잡아먹으려 하나 그 신통력을 다하여 능히 접근하지 못하니, 이에 모든 용이 매우 기뻐하면서 일찍이 없던 일이어서 이상히 여기었다.
용왕과 그 부인과 대해의 모든 용들과 모든 야차들까지 다 10선을 받들면서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머리를 조아려서 모두 절하였다.
용왕이 비두리에게 물었다.
‘대사께서 염부제에 돌아가시고자 합니까?’
비두리가 대답하였다.
‘돌아가고자 한다.’
이에 용왕이 곧 전단과 마니주와 여러 가지 묘한 보배를 보살에게 바쳤고, 부인과 채녀와 모든 용과 모든 야차가 각각 묘하고 진귀한 것을 올리고는 비두리를 바라나로 송환하는데, 모두 머리를 조아려 절하면서 기쁘게 작별하였다.
그런 뒤로 대해의 모든 용들과 모든 야차들에게 악독한 마음이 없어졌고, 죽어서는 다 천상에 태어났다.
바라달왕과 모든 신하들과 일체 인민이 스승 비두리가 돌아온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그 동안의 기거에 대하여 물었다.
비두리가 왕을 위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갖추어 설명하니, 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기뻐하면서 일찍이 없던 일에 감탄하였다.
이에 비두리가 마니주를 깃대 머리에 붙이고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구하자 곧 7보와 옷과 음식이 쏟아져서 염부제에 두루 가득하였고 한량없는 신하와 백성들이 다 모두 풍족하고 즐거웠다.
그 때 천제석과 사람의 왕과 대해의 용왕과 가류(迦留) 금시조 왕이 각기 모든 욕심을 버리고 산택에 와 있으면서 재계를 지키고 좌선하여 스스로 몸과 마음을 지키면서 각각 스스로 ‘내가 복을 얻음이 많다’고 말하였다.
천왕이 말하였다.
‘내가 천상의 모든 욕락을 버리고 이제 여기에 와서 몸ㆍ입ㆍ마음을 거두어 잡으니, 내가 복을 얻음이 많도다.’
사람의 왕이 또 말하였다.
‘내가 궁중의 모든 욕락을 버리고 여기에 있으면서 몸ㆍ입ㆍ마음을 지키니, 내가 복을 얻음이 많도다.’
용왕이 또 말하였다.
‘내가 대해의 7보 궁전과 모든 욕락을 버리고 이제 여기에 와서 몸ㆍ입ㆍ마음을 지키니, 내가 복을 얻음이 많도다.’
금시조 왕이 또 말하였다.
‘이제 이 용왕의 몸은 나의 밥이지만 내가 이제 재계를 가지고 몸ㆍ입ㆍ마음을 거두어 잡아 상해심을 없애서 잡아먹지 않으니, 내가 복을 얻음이 많도다.’
이에 네 왕이 제각기 자기의 복이 많다고 말하다가 마음에 분명치 않아 ‘지금 우리가 함께 스승님 비두리에게 가서 물어 보자’라고 의논하고, 곧 비두리의 처소에 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었다.
‘누가 얻은 복이 제일 많습니까?’
보살이 대답하였다.
‘그대들은 각기 네 개의 깃발을 올리되, 청색ㆍ백색ㆍ황색ㆍ적색으로 하여라.’
곧 지시를 받은 대로 네 개의 기를 세우니 보살이 물었다.
‘그 그림자가 다른가, 한 가지 빛깔인가?’
네 왕이 대답하였다.
‘기의 빛깔은 각각 다르나 그 그림자는 한 가지 빛이어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그대들 4왕이 각기 욕심을 버리고 와서 여기 있으면서 계를 지니고 스스로 지키면서 얻은 공덕은 모두 동등한 것이어서 차이가 없으니, 마치 네 가지 빛깔의 깃대지만 그 그림자는 한 가지여서 다른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이 때에 네 왕이 그 말을 듣고 각각 알아차리고 기뻐 뛰었다.
그 때 천제석이 곧 천상의 겁파육의(劫波育衣)를 보살에게 바치니, 사람의 왕은 곧 잡묘(雜妙)의 보배를 보살에게 올렸고, 대해의 용왕은 곧 상투 속의 마니보주를 보살에게 올렸고, 금시조왕은 천금불식(天金拂飾)을 보살에게 올렸다. 그리고는 네 왕이 다 크게 기뻐하면서 절하고 갔다.
그 때 염부제에 모든 백성들과 용과 야차들이 다 10선을 행하였는데, 이 때에 목숨을 마치는 자는 다 천상에 태어났고, 3도(塗)에 떨어지는 자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국사(國師) 비두리였던 자는 지금의 나이고, 그 때 용왕 파류니였던 자는 지금의 정승[輔相]이며, 용왕의 부인 마나사였던 자는 지금 이 정승의 부인이니라. 예전에 용이 되었을 때 내게서 법을 듣고 기쁜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용의 몸을 벗고 천상에 태어났었고, 이제 내가 부처가 되자 나를 따라서 법을 듣고 기뻐하고 뜻이 풀리어 곧 출가하였으며, 지혜를 사유해서 모든욕심을 영원히 다해서 함께 아라한이 되었나니, 과거 세상에도 그 마음이 또 좋았고, 지금 세상에 이르러서도 그 마음이 또한 좋은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