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修心訣) – 10.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
得到大休大歇之地 如云頓悟雖同佛
득도대휴대헐지지 여운돈오수동불
多生習氣深 風停波尙湧 理現念猶侵
다생습기심 풍정파상용 이현념유침
이것은 ‘단박 깨치면 부처와 같지만 여러 생의 습기가 깊구나. 바람은 그쳤으나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망념은 엄습한다’하는 말과 같다.
又▲禪師云 往往利根之輩 不費多力
우고선사운 왕왕이근지배 불비다력
投發此事 便生容易之心 更不修治
투발차사 변생용이지심 갱불수치
日久月深 依前流浪 未免輪廻
일구월심 의전유랑 미면윤회
則豈可以一期所悟 便撥置後修耶
즉기가이일기소오 변발치후수야
故悟後 長須照察 妄念忽起 都不隨之
고오후 장수조찰 망념홀기 도불수지
損之又損 以至無爲 方始究境
손지우손 이지무위 방시구경
天下善知識 悟後牧牛行是也
천하선지식 오후목우행시야
雖有後修 己先頓悟妄念本空
수유후수 기선돈오망념본공
心性本淨 於惡斷 斷而無斷 於善修
심성본정 어악단 단이무단 어선수
修而無修 此乃眞修眞斷矣
수이무수 차내진수진단의
또 대혜 종고(宗▲)선사도 ‘가끔 영리한 무리들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런 이치를 알고는 아주 쉽다는 생각을 내어 다시는 닦지 않는다. 그대로 세월이 가면 그전처럼 유랑하게 되어 윤회를 면치 못하게 된다’하였다. 그러니 어찌 한번 깨쳤다 하여 뒤에 닦는 일을 버릴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깨친 뒤에도 늘 비추고 살펴서 망념이 홀연히 일어나거든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서 무위에 이르러야 비로소 구경(究境)이니, 천하의 선지식이 깨달은 뒤에 소먹이는 행이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뒤에 닦는다고는 하지만 이미 망념이 본래 공하고 심성은 본래 청정한 것임을 먼저 깨쳤기 때문에 악을 끊되, 끊어도 끊음이 없고, 선을 닦되, 닦아도 닦음이 없어야 이것이 참다운 닦음이고 참다운 끊음이 되는 것이다.
故云雖備修萬行 唯以無念爲宗
고운수비수만행 유이무념위종
圭峰總判先悟後修之義云 頓悟此性
규봉총판선오후수지의운 돈오차성
元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원무번뇌 무루지성 본자구족
與佛無殊 依此而修者 是名最上乘禪
여불무수 의차이수자 시명최상승선
亦名如來淸淨禪也 若能念念修習
역명여래청정선야 약능염염수습
自然漸得百千三昧 達磨門下
자연점득백천삼매 달마문하
展轉相傳者 是此禪也
전전상전자 시차선야
則頓悟漸修之義 如車二輪 闕一不可
즉돈오점수지의 여거이륜 궐일불가
그러므로 ‘온갖 행을 다 닦으나 오직 무념으로 근본을 삼는다.’하였다. 규봉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총괄하여 말하기를 ‘이 성품은 원래 번뇌가 없고 완전한 지혜와 성품이 본래 갖추어져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담박 깨닫고, 이 깨침에 의해 수행하면 이것을 일러 최상승선(最上乘禪), 또는 여래청정선이라 한다. 만약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면 저절로 차츰 차츰 백천삼매를 얻을 것이니, 달마 문하에서 서로 전하여 내려온 것이 바로 이런 선(禪)이다.’하였다. 그러므로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이치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라도 없으면 안된다.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혹자 부지선악성공 견좌부동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날복신심 여걱압초 이위수심
是大惑矣 故云聲聞 心心斷惑 能斷
시대혹의 고운성문 심심단혹 능단
之心是賊
지심시적
혹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조복받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하였다.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
得到大休大歇之地 如云頓悟雖同佛
득도대휴대헐지지 여운돈오수동불
多生習氣深 風停波尙湧 理現念猶侵
다생습기심 풍정파상용 이현념유침
이것은 ‘단박 깨치면 부처와 같지만 여러 생의 습기가 깊구나. 바람은 그쳤으나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망념은 엄습한다’하는 말과 같다.
又▲禪師云 往往利根之輩 不費多力
우고선사운 왕왕이근지배 불비다력
投發此事 便生容易之心 更不修治
투발차사 변생용이지심 갱불수치
日久月深 依前流浪 未免輪廻
일구월심 의전유랑 미면윤회
則豈可以一期所悟 便撥置後修耶
즉기가이일기소오 변발치후수야
故悟後 長須照察 妄念忽起 都不隨之
고오후 장수조찰 망념홀기 도불수지
損之又損 以至無爲 方始究境
손지우손 이지무위 방시구경
天下善知識 悟後牧牛行是也
천하선지식 오후목우행시야
雖有後修 己先頓悟妄念本空
수유후수 기선돈오망념본공
心性本淨 於惡斷 斷而無斷 於善修
심성본정 어악단 단이무단 어선수
修而無修 此乃眞修眞斷矣
수이무수 차내진수진단의
또 대혜 종고(宗▲)선사도 ‘가끔 영리한 무리들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런 이치를 알고는 아주 쉽다는 생각을 내어 다시는 닦지 않는다. 그대로 세월이 가면 그전처럼 유랑하게 되어 윤회를 면치 못하게 된다’하였다. 그러니 어찌 한번 깨쳤다 하여 뒤에 닦는 일을 버릴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깨친 뒤에도 늘 비추고 살펴서 망념이 홀연히 일어나거든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서 무위에 이르러야 비로소 구경(究境)이니, 천하의 선지식이 깨달은 뒤에 소먹이는 행이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뒤에 닦는다고는 하지만 이미 망념이 본래 공하고 심성은 본래 청정한 것임을 먼저 깨쳤기 때문에 악을 끊되, 끊어도 끊음이 없고, 선을 닦되, 닦아도 닦음이 없어야 이것이 참다운 닦음이고 참다운 끊음이 되는 것이다.
故云雖備修萬行 唯以無念爲宗
고운수비수만행 유이무념위종
圭峰總判先悟後修之義云 頓悟此性
규봉총판선오후수지의운 돈오차성
元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원무번뇌 무루지성 본자구족
與佛無殊 依此而修者 是名最上乘禪
여불무수 의차이수자 시명최상승선
亦名如來淸淨禪也 若能念念修習
역명여래청정선야 약능염염수습
自然漸得百千三昧 達磨門下
자연점득백천삼매 달마문하
展轉相傳者 是此禪也
전전상전자 시차선야
則頓悟漸修之義 如車二輪 闕一不可
즉돈오점수지의 여거이륜 궐일불가
그러므로 ‘온갖 행을 다 닦으나 오직 무념으로 근본을 삼는다.’하였다. 규봉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총괄하여 말하기를 ‘이 성품은 원래 번뇌가 없고 완전한 지혜와 성품이 본래 갖추어져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담박 깨닫고, 이 깨침에 의해 수행하면 이것을 일러 최상승선(最上乘禪), 또는 여래청정선이라 한다. 만약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면 저절로 차츰 차츰 백천삼매를 얻을 것이니, 달마 문하에서 서로 전하여 내려온 것이 바로 이런 선(禪)이다.’하였다. 그러므로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이치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라도 없으면 안된다.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혹자 부지선악성공 견좌부동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날복신심 여걱압초 이위수심
是大惑矣 故云聲聞 心心斷惑 能斷
시대혹의 고운성문 심심단혹 능단
之心是賊
지심시적
혹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조복받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