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 마아간디야

4.09. 마아간디야

(835)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 도를 닦을 때에 애착과 혐오와 탐욕이라는 세 마녀(魔女)를 보고도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욕망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오줌 똥으로 가득찬 그 여자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녀들에 게 발을 대기조차 싫었다.”

(836) 마아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여러 왕들이 구했던 여자, 그와 같은 보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어떠한 견해를 어떠한 계율,도덕,생활법을, 그리고 어떠한 생존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837)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마아간디야여, 나는 이런 것을 말한다고 정해진 것이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한 집착이라 분명히 알고, 모든 견해에서 과오를 보고 고집하는 일이 없어, 살피면서 마음의 평안을 알았노라.”

(838) 마아간디야가 말했다. “성인이시여, 당신께서는 생각해서 구성한 정설(定說)를 고집함이 없이 <마음의 평안>이란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을 다른 현인(賢人)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839)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아간디야여, 견해에 의해서나 학문에 의해서나, 지식이나 계율, 혹은 도덕에 의해서 청정해질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견해와 학문과 지식이 없이도, 계율과 도덕을 지키지 않고도 청정해질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버리고 고집하지 않고 걸려 있지 않으며, 평안하고 덧없는 생존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마음의 평안이다.”

(840) 마아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견해와 학문과 지식과 계율이나 도덕에 의해서도 청정해질 수 없다 하고, 또한 무견해, 무학, 무식에 의해서도, 계율과 도덕을 지키지 않는 것에 의해서도, 청정해질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혼미케 하는 가르침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견해에 의해 청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841)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아간디야여, 그대는 자기 소견에 의해서 물어 보기 때문에 집착된 일에 빠진 것이다. 그대는 이 마음의 평안에 대해서도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는 나를 보고 사람을 미혹케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842) ‘같다’든가’뛰어났다’든가 혹은’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는 그런 생각 때문에 다툴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에게는’같다’든가’뛰어났다”뒤떨어졌다’는 생각이 없다.

(843) 그 바라문은 어째서’내 말은 진실하다’고 하는가. 또 그는’네 말은 허위다’라고 해서 누구와 논쟁하겠는가. 같다든가 같지 않다든가 하는 분별이 없어진 사람이 누구와 논쟁을 벌이겠는가.

(844) 집을 버리고 거처도 없이 방황하며, 마을에서 친교(親交)를 갖지 않는 성인은 온갖 욕망을 떠나 미래에 희망을 두지도 않으며, 또한 군중에게 이론(異論)을 내세워 논란을 벌여서도 안 된다.

(845) 용(수행의 완성자)은 모든 편견을 떠나 세상을 편력하기 때문에, 고집을 부려 논쟁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수련(睡蓮)이나 가시 돋힌 연꽃이 물이나 진흙에 더럽히지 않듯이, 성인은 평안을 말하는 사람이므로 탐내지도 않고 욕망에도 세속에도 더럽히지 않는다.

(846) 베에다에 통달한 사람은 견해나 사색에 있어서 교만하지 않다. 그의 본성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업에 의해서도 학문에 의해서도 이끌리지 않는다. 그는 집착하는 곳에도 끌려 들지 않는다.

(847) 생각을 떠난 사람에게는 결박이 없다.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사람에게는 미혹(迷惑)이 없다. 생각과 견해를 고집한 사람들은 남과 충돌하면서 세상을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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