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설산(雪山)에 사는 사람

1.09. 설산(雪山)에 사는 사람

(153) 칠악야차(7岳夜叉)가 말했다. “오늘은 보름, 포살(布薩) 날이다. 눈부신 밤이 가까와졌다. 자, 우리들은 세상에서도 뛰어난 스승 고오타마를 뵈러 가자.”

(154)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 안립(安立)되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의 생각은 자제할 수 있는 것일까?”

(155)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런 분의 마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잘 정돈되어 있다. 그리고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의 생각은 잘 자제될 수 있다.”

(156)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은 갖지 않을까? 그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않으려고 자제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게으름에서 떠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는 정신통일을 그만 두지 않을 것인가?”

(157)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은 갖지 않는다. 그는 산것을 죽이지 않으려고 자제하고 있다. 그는 게으름에서 떠나 있다. 눈을 뜬 사람(부처님)은 정신통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158)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거치른 욕설을 하지 않을까? 이간질을 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까?”

(159)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거치른 욕설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간질을 하지 않는다. 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160)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는 욕망의 향락에 빠지지 않을까? 그의 마음은 혼탁하지 않을까? 헤매임을 초월했을까? 그리고 모든 사물을 똑똑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을까?”

(161)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는 욕망의 향악에 빠지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혼탁하지 않다. 모든 헤매임을 초월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을 똑똑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162)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는 밝은 지혜를 갖추고 있을까? 그의 행동은 청정할까? 그는 온갖 번뇌의 때를 소멸해 버렸을까? 그는 이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까?”

(163)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는 밝은 지혜를 갖추었다. 그의 행동은 청정하다. 그는 온갖 번뇌의 때를 소멸해 버렸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없다.”

설산야차가 말했다. “성인의 마음은 행동과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그를 네가 찬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63b) “성인의 마음은 행동과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그를 네가 따라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64) 칠악야차가 말했다. “성인의 마음은 행동과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자, 우리는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고오타마를 뵈러 가자.”

(165)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 성인은 영양(羚羊)과 같은 정강이를 가졌고, 여위고 가늘어 총명하고 소식(小食)해서 탐내지 않으며, 숲속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있다. 오너라, 우리는 고오타마를 뵈러 가자.

(166) 온갖 욕망을 돌아보지 않고, 마치 사자처럼, 코끼리처럼 홀로 가는 그에게 가서 우리는 물어 보자. 죽음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길을.”

(167) 두 야차가 같이 말했다. “열어 보이는 분, 풀어서 밝히는 분, 모든 사물의 궁극에 통달하고 원망과 공포를 넘어서 눈뜬 분, 고오타마에게 우리는 물어 보자.”

(168) 설산야차가 말했다. “무엇이 있을 때 세계는 생깁니까? 무엇에 대해 사랑하게 됩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집착해 있으며, 또 무엇 때문에 해를 입고 있습니까?”

(169) 스승은 대답했다. “설산에 사는 자여, 여섯 가지 것이 있을 때 세계는 생기고, 여섯 가지 것에 대해서 사랑하게 되고, 세계는 여섯 가지 것에 집착하고 있으며, 또 세계는 그 여섯 가지 것에 해를 입고 있느니라.”

(170) “그것으로써 세계가 해를 입는다는 집착이란 무엇입니까?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

(171) “세상에는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이 있고, 의지(意)의 대상이 여섯번째라고 한다. 그런 것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난다면 곧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172) 이와 같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을 너희에게 사실대로 밝히겠다. 이 일을 난 너희들에게 말하겠다. 이렇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173) “이 세상에서 누가 거센 흐름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누가 큰 바다를 건널 수 있겠습니까? 의지할 것도, 붙잡을 것도 없는 깊은 바다에 들어가면 누가 가라앉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74) “항상 계(戒)를 몸에 지니고, 지혜가 있고 마음을 가다듬어 안으로 살피고 염원(念願)이 있는 사람만이 건너기 어려운 거센 흐름을 능히 건널 수 있다.

(175) 애욕에 대한 생각에서 떠나 모든 매듭을 초월하고, 환락의 마음을 멸해 버린 사람, 그는 깊은 바다에 가라앉지 않는다.”

(176) 설산야차가 말했다. “깊은 지혜가 있고 미묘한 뜻을 보며, 아무것도 않고 욕망의 생존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일에서 해탈하여 천상의 길을 가는 저 위대한 선인(仙人)을 보라

(177) 세상에서 이름 높고 미묘한 뜻을 보며, 지혜를 가르쳐 주고 욕망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알고 총명하며, 거룩한 길을 가고 있는 저 위대한 선인을 보라.

(178) 오늘 우리는 좋은 태양을 보고, 아름다운 새벽을 만나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거센 흐름을 건너 번뇌의 때가 묻지 않은, 깨달은 사람을 우리는 만났기 때문에.

(179) 천이나 되는 저의 야차 무리들은 신통력이 있고 명예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당신께 귀의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위 없는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180) 저희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산에서 산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 깨달은 이와 진리의 뛰어난 까닭을 예배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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