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보장경(雜寶藏經) 제10권
116. 우타선왕의 인연
옛날 우타선왕(優陀羨王)이 로류성(盧留城)에 있었는데 총명하고 통달하여 큰 지혜가 있었다. 그의 한 부인의 이름은 유상(有相)이었다. 얼굴만 뛰어났을 뿐 아니라, 또 덕행이 있어서 왕은 매우 사랑하고 정이 두터웠다.
그 때 그 나라 법에는 왕이 된 사람은 스스로 거문고를 타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자기에 대한 왕의 사랑을 믿고 왕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나를 위해 거문고를 타 주십시오. 나는 대왕을 위해 춤을 추겠습니다.”
왕이 그 뜻을 받아들여 거문고를 당겨 타자, 부인은 손을 들고 춤을 추었다.
왕은 본래부터 상을 잘 보았다. 그 부인의 춤추는 것을 보고 죽을 상임을 알고, 곧 거문고를 밀치고 슬퍼하면서 길이 탄식하였다.
부인은 왕에게 아뢰었다.
“나는 지금 대왕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 감히 그윽한 방에서 왕에게 거문고를 타게 하고 일어나 춤을 추면서 함께 즐겼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마땅치 않아 거문고를 놓고 탄식하십니까? 원컨대 왕은 숨기지 말고 말씀하여 주십시오.”
왕은 대답하였다.
“내가 길이 탄식한 것은 그대가 들을 일이 아니다.”
부인은 아뢰었다.
“나는 지금 정성껏 왕을 받들어 변함이 없습니다. 만일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분부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간청하여 마지 않으므로 왕은 그제야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내가 너에게 대해 어찌 다른 마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 네가 일어나 춤을 출 때 죽을 상이 밖으로 나타났다. 너의 남은 목숨은 이레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 때문에 거문고를 놓고 탄식한 것이다.”
부인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걱정되고 두려워 왕에게 아뢰었다.
“왕의 말씀과 같다면 목숨은 멀지 않습니다. 나는 저 돌집[石室] 비구니의 말을 들었습니다. ‘만일 믿는 마음으로 단 하루 동안이라도 출가하면 반드시 하늘에 나게 된다’고. 그러므로 나는 지금 출가하려 합니다. 원컨대 왕은 허락하여 주소서. 그렇게 하면 도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과중한 정과 사랑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그 부인에게 말하였다.
“엿새 뒤에는 네가 출가하여 도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리라.”
그리하여 엿새가 되자 어쩔 수 없이 그 부인에게 말하였다.
“너에게 착한 마음이 있어 굳이 출가하여, 만일 하늘에 나게 되거든 꼭 와서 나를 보라. 그렇게 하면 나는 네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리라.”
이렇게 맹세하고 부인에게 허가하였다.
그리하여 부인은 집을 나와 여덟 가지 계율을 받고, 바로 그 날 석밀장(石蜜漿)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뱃속이 맺히어 이레째 날 새벽이 되자 목숨을 마쳤다.
부인은 그 좋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천상에 나게 되어 곧 세 가지를 생각하였다.
첫째는 나는 본래 어떤 몸이었던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본래 어떤 복덕을 닦았는가 하는 것이고, 셋째는 현재 이 몸은 틀림없이 하늘몸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본래의 인연과 왕의 맹세를 자세히 알고, 그 맹세를 위하여 왕에게로 내려갔다.
그 때 광명이 왕궁에 두루 찼다. 왕은 물었다.
“지금 이 상서로운 광명은 누구인가? 바로 알려라.”
그러자 하늘은 대답하였다.
“나는 왕의 부인 유상(有相)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여기 와 앉아라.”
부인은 대답하였다.
“지금 나는 왕의 그 더러움을 보고 가까이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전에 맹세가 있었기 때문에 와서 뵙는 것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곧 열리어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저 하늘은 본래 내 아내다. 착한 마음이 있어 도에 들어가기를 구하여 하루 동안 집을 떠났다가 이내 목숨을 마치고는 그 공덕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나게 되었다. 그 신령스런 뜻은 높고 멀어 나를 더럽고 천하다 한다. 나는 지금 왜 출가하지 못하는가?
나는 일찍이 하늘 손톱 하나가 염부제에 값한다고 들었다. 하물며 내 한 나라를 탐하고 아낄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말하고 아들 왕군(王軍)을 세워 왕위를 물려주고는, 집을 떠나 도를 배워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 왕군왕은 나라를 맡아 다스린 뒤부터 참소하고 간사한 사람을 믿고 나라 일은 돌보지 않았다. 우타선왕은 아들과 백성들을 가엾이 여겨, 가서 교화하고 권하여 선행을 닦게 하려 하였다.
그 때 왕군왕은 아버지가 온다는 말을 듣고 한량없이 기뻐하여 길에 나가 맞이하려 하였다.
그 때 여러 간사한 신하들은 쫓겨날까 두려워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은 지금 머리에 하늘관을 쓰시고 사자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사자자리에는 두 번 앉는 법이 없습니다. 만일 부왕을 맞아 왕위에 도로 앉게 하시면 반드시 왕을 죽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왕은 부왕을 해치셔야 합니다.”
그러자 왕군왕은 마음으로 놀라고 걱정하여 더욱 의혹이 생겼다. 그러나 신하들이 쉬지 않고 간하므로, 왕은 드디어 악한 마음을 내어 전타라(?陀羅)를 품꾼으로 사서 그 아버지를 죽이러 보내었다.
전타라는 분부를 받고 부왕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아뢰었다.
“저는 옛날부터 부왕의 은혜로운 대우를 받아 조금도 반역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심부름으로 왔는데, 만일 해치지 않으면 반드시 제가 벌을 받을 것입니다.”
부왕은 대답하였다.
“내가 지금 여기 온 것은 너의 왕을 교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어찌 내몸을 아껴 너를 벌 받게 하겠는가?”
부왕은 곧 목을 여나믄 발[十餘丈]이나 빼고는 전타라에게 말하였다.
“네 마음대로 베어라.”
그러나 전타라가 아무리 힘을 다해 베어도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부왕은 그를 가엾이 여겨 신력(神力)을 빌려 주고 말하였다.
“너는 지금 나를 위해 네 왕에게 가서 말하라. 너는 지금 아버지를 죽이고 또 아라한을 죽였으니, 두 가지 역죄(逆罪)를 지었다. 만일 잘 참회하면 죄가 가볍게 될 것이다.”
그 때 전타라는 이미 분부를 받은지라, 다시 칼을 들어 부왕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그 나라로 돌아갔다.
왕군왕은 아버지의 머리를 보자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아버지는 도를 얻어 왕위를 탐하지 않았음을 알고는, 후회하는 마음이 생겨 괴로워하고 슬피 울면서 까무러쳤다가 한참 만에야 깨어났다. 그리하여 전타라에게서 부왕이 한 말을 들었다.
전타라는 부왕의 명령을 그 왕에게 아뢰었다.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다시 아라한을 해쳤으니 두 가지 역죄를 잘 참회하라.”
왕은 이 말을 듣자 더욱 애가 끓어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우리 부왕은 아라한의 도를 얻었는데 어찌 나라를 탐하겠는가? 그런데 나로 하여금 아버지를 죽이게 하였구나.”
간사한 신하들은 왕의 해침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이 세상에 무슨 아라한이 있겠습니까? 왕은 공연한 말을 믿고 스스로 괴로워하시는 것입니다.”
왕은 대답하였다.
“지금 우리 아버지 머리가 죽은 지 오래지마는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도를 얻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는가?
또 우리 아버지 때의 대신이던 바질사(婆?師)·우파질사(優波?師)들도 모두 집을 떠나 아라한의 도를 얻어 갖가지 신변을 나타내던 일은 우리가 다 본 바이다. 그리고 여기서 열반하여 그 뼈를 거두어 탑을 만든 것은 지금 현재와 같은데 어떻게 없다고 하겠는가?”
간사한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세상의 환주술(幻呪術)이나 또 약의 힘으로도 신변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두 신하들은 아라한의 유가 아닙니다. 며칠 뒤에는 그 증험을 왕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들은 탑에다 두 구멍을 뚫고는, 거기에 고양이 한 마리씩을 넣어 길렀다. 그리고 “질사여, 나오라”고 부르면 고양이가 나와서 고기를 먹고, “도로 들어가라”고 말하면, 고양이는 도로 구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가르치자 고양이는 곧 훈련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은 지금 그 질사들을 보시고 싶습니까? 원컨대 같이 가서 보소서.”
왕은 곧 수레를 명하여 타고 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때 그 신하들은 말하였다.
“질사여, 나오라.”
고양이는 곧 구멍에서 나왔다. 다시 말하였다.
“도로 들어가라.”
그러자 고양이는 곧 구멍으로 들어갔다.
왕은 그것을 보고, 마침내 의혹하는 마음이 성하여져서 모든 것을 뜻대로 맡기고 죄와 복을 믿지 않았다.
어느 때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느 고요한 곳에서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 가전연을 보았다. 왕은 문득 나쁜 마음이 생겨 손으로 흙을 쥐어 가전연에게 뿌리면서 좌우에게 말하였다.
“너희들도 나를 위해 각기 흙을 쥐고 저 가전연에게 뿌려라.”
그리하여 흙무더기가 존자를 덮었다.
삼보를 믿는 어떤 대신이 뒤에서 오다가 이 사실을 보고는 매우 괴로워하여 존자를 위해 그 흙을 헤쳐 주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든 이 흙을 헤쳐라.”
그 때 존자는 유리보배 굴 안에 앉아 있었는데, 신령스런 위의는 윤택하고 고와서 흙으로 더러워진 빛이 없었다. 대신은 매우 기뻐하여 땅에 엎드려 그 발에 예배하고 존자에게 아뢰었다.
“지금 왕은 무도하여 이런 죄악을 짓지마는, 선악에는 반드시 갚음이 있는데 어떻게 재앙이 없겠습니까?”
존자는 대답하였다.
“지금부터 이레 뒤에는 하늘이 흙을 내려 성 안을 채우고 흙산을 쌓아 왕과 백성들을 모두 덮어 죽일 것이다.”
대신은 그 말을 듣고 걱정하고 괴로워하면서 왕에게 아뢰고 또 스스로 꾀를 내어 땅속 길을 만들어 성 밖으로 나갔다.
이레가 되자 하늘에서는 향과 꽃과 보물과 옷을 내려 그 성 안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그러자 간사한 신하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지금 이 상서는 모두 왕의 덕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이 도리어 비방하여 흙을 내린다고 말하였는데 이런 보물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속여 흐린 적이 지금까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쁜 인연을 지은 뒤에 좋은 상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모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 때 성의 네 문은 나쁜 인연의 힘으로 쇠빗장이 모두 내려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망하거나 숨을 길이 없었다.
그 때 하늘이 곧 흙을 내려 성을 채우고 산을 쌓았다. 그러나 그 대신과 함께 마음을 같이한 이들은 땅속 길로 나가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생각하면, 하늘에서 흙을 내려 산을 만들어 하루 동안에 이 성을 뒤덮었습니다. 그리하여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지금 이런 고통을 같이 받습니까?”
그 때 존자는 대신에게 말하였다.
“자세히 들어라. 너를 위해 말하리라. 먼 옛날 여러 겁 전에 그 나라의 어떤 장자의 딸이 이른 아침에 다락 위를 소제하다가 똥을 쓸어 비구 머리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는 참회할 줄도 몰랐는데, 마침 훌륭한 남편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여자들은 그 여자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인연으로 그런 좋은 배필을 얻었는가?’
그 여자는 대답하였다.
‘다른 일이 없고, 내가 다락을 쓸어 비구 머리에 뿌렸는데, 그 때문에 좋은 남편을 만났다.’
여러 여자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말하였다.
‘만일 그 말과 같다면, 우리도 흙을 모아 비구 머리에 뿌려서 그 업의 인연으로 모두 저런 갚음을 받자.’
이렇게 말하고 공덕천(功德天)과 함께 화씨성(花氏城)으로 향하였다.”
옛날부터 로류성(盧留城)과 저 성은 서로 번갈아 성하고 쇠하였으니, 이 성이 망하면 저 성이 번성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존자들은 화씨성을 향하여 갔다. 호음성(好音聲) 장자는 그 성의 우두머리로서 존자를 공양하였다.
장자는 원래 부자였지마는 존자가 그 집에 이르자 넘치는 재보가 전보다 더 많았다.
존자 가전연은 그 집으로 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호음성 장자는 무슨 인연으로 음성이 아름다우며 또 큰 부자로서 한량없는 재보가 넘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 어떤 장자가 날마다 사람을 보내어 5백 명의 벽지불을 청해 자기 집에서 공양하였다.
그 심부름꾼은 늘 개를 데리고 갔었는데, 한 번은 마침 그가 다른 일이 있어 청하러 가지 못하였다. 개는 때를 맞추어 혼자 승방으로 가서 스님들을 향해 짖었다. 그 때 벽지불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속세의 일이 많아 주인이 청하기를 잊어버리자, 저 개가 와서 짖어 우리를 부르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 이끌고 장자의 집으로 가니, 장자는 매우 기뻐하여 법답게 공양하였다.
그 때의 장자는 바로 내 몸이요, 심부름꾼은 바로 아나율(阿那律)이며, 개는 바로 호음 장자니라.
그 때문에 호음 장자는 나는 세상마다 음성이 아름답고, 또 재보가 많으니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복밭에 정성껏 공양하여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