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보장경(雜寶藏經) 제08권
095.구시미국(拘尸彌國)의 재상 부부가 부처님께 악심을 품었는데 부처님께서 즉시 교화하여 수다원을 얻게 한 인연
부처님께서는 구시미국(拘尸彌國)에 계셨다.
그 때 어떤 재상 바라문은 사람됨이 사나워 도리로써 행동하지 않았고, 그 아내도 사특하고 아첨하기 남편과 다름이 없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말하였다.
“사문 구담이 이 나라에 있다. 만일 그가 오거든 문을 닫고 열어 주지 말라.”
어느 날 갑자기 부처님께서 그 집안에 가셨다. 바라문의 아내는 부처님을 보고도 잠자코 말을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바라문은 어리석고 삿된 소견으로 3보를 믿지 않는구나.”
아내는 이 말을 듣고 매우 화를 내어 제 손으로 영락을 끊고는 때 묻은 옷을 입고 땅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밖에서 돌아와 물었다.
“왜 그러느냐?”
아내는 대답하였다.
“사문 구담이 나를 욕하면서 말하기를 ‘너희들 바라문은 삿된 소견으로 불법을 믿지 않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말하였다.
“우선 내일까지 기다리자.”
그들은 그 이튿날 문을 열어 놓고 부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부처님께서 그 집에 나타나시자, 바라문은 칼을 들고 부처님을 치려 하였다. 그러나 맞지 않았다.
그는 부처님께서 허공에 계시는 것을 보고 스스로 부끄러워하여 온몸으로 땅에 엎드려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내려오셔서 저의 참회를 받아 주소서.”
부처님께서 곧 내려오셔서 그의 참회를 받고, 그들을 위해 설법하시니, 그들은 모두 수다원을 얻었다.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그런 나쁜 사람을 교화하여 항복 받으셨다는 말을 듣고 각기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심은 참으로 놀랍고 장하신 일이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오늘만이 아니다. 옛날에도 그를 다루어 항복받았느니라.”
비구들은 아뢰었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도 그를 다루어 항복 받으셨다는 그 일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가시국에 악수(惡受)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법답지 못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무도하게 사람을 죽이며, 사방에서 오는 장사꾼들의 진기한 물건들을 모두 세(稅)로 빼앗으면서 그 값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국내에 보물은 아주 귀하게 되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서로 전해 그의 나쁜 이름이 흘러 퍼졌다.
그 때 앵무새의 왕이 숲 속에서 있다가 왕의 죄악을 말하는 길 가는 사람들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비록 새이지마는 그 이름을 알 수 있다. 나는 왕에게 가서 선한 도를 말하리라. 그가 만일 내 말을 들으면 반드시 이렇게 말하리라.
〈저 새의 왕도 착한 말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왕이겠는가.〉
그리하여 그가 내 꾸짖음을 듣고 혹 고칠는지도 모른다.’
그는 곧 높이 날아 왕의 동산에 내려와 어떤 나무 위에 앉았다.
마침 왕의 부인이 동산으로 놀러 들어갔다. 그 때 앵무새는 날개를 치고 울면서 말하였다.
‘지금 왕은 매우 사납고 무도하여 백성들을 해치며 그 독은 새와 짐승에게까지 미쳐 갑니다. 그리하여 사람과 짐승들은 기가 차서 꾸짖으며 원한을 맺고 슬퍼하는 소리가 온 천하에 두루 들립니다. 또 부인도 가혹하기 왕과 다름이 없다 하는데, 백성의 부모로서 그럴 수 있습니까?’
부인은 이 말을 듣고 불꽃처럼 화를 내며, ‘저 어떤 조그만 새가 주둥이를 놀려 나를 꾸짖는가?’ 하고, 사람을 보내어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앵무새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 사람 손에 잡혔다. 그리하여 부인은 그 새를 왕에게 넘겼다.
왕은 앵무새를 보고 말하였다.
‘너는 왜 우리를 꾸짖는가?’
앵무새는 대답하였다.
‘왕의 법답지 않음을 말하여 이익이 되게 하려 하였고, 꾸짖은 것은 아닙니다.’
왕은 또 물었다.
‘어떤 법답지 않은 일이 있는가?’
‘일곱 가지 비법이 있어서 왕의 몸을 위태롭게 합니다.’
‘무엇무엇이 일곱인가?’
앵무새는 대답하였다.
‘첫째는 여색에 빠지고 거칠어 곧고 바르기를 힘쓰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술을 즐겨 어지러이 취하여 나라일을 돌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장기와 바둑에 빠져 예의 교화를 닦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사냥을 다녀 살생하면서 조금도 인자한 마음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나쁜 말 쓰기를 좋아하여 좋은 말이 조금도 없는 것이요, 여섯째는 부역을 시키고 벌을 주되 더욱 법칙을 어기는 것이며, 일곱째는 도리에 어긋나게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 일은 왕의 몸을 위태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 세 가지 일이 있어서 왕의 나라를 기울게 합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세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앵무새는 대답하였다.
‘첫째는 사특하고 아첨하는 나쁜 사람들을 친하는 것이요, 둘째는 어진 이를 붙이지 않아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며, 셋째는 남의 나라 치기를 좋아하여 백성들을 기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일을 버리지 않으면 나라가 무너지기는 아침이 아니면 저녁일 것입니다.
대개 왕이 되면 온 나라가 우러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다리와 같이 만민을 제도하여야 하고, 저울과 같이 친소(親疎)에 평등하여야 하며, 길과 같이 성현의 자취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왕은 해와 같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춰 주어야 하고, 달과 같이 모든 것에 맑고 시원한 것을 주어야 하며, 부모와 같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야 하고, 또 하늘과 같이 일체를 덮어 주어야 하며, 땅과 같이 만물을 싣고 길러야 하고, 또 불과 같이 만민을 위해 나쁘고 근심되는 것을 태워야 하며, 물과 같이 사방을 윤택하게 해야 하고, 또 과거의 전륜성왕처럼 열 가지 선한 도로 중생을 교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앵무새의 말은 매우 정성스럽고 간곡하다. 나는 사람의 왕으로서 소행이 무도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 가르침을 따라 스승으로 받들어 섬기면서 바른 행을 닦으리라.’
그리하여 온 나라에 교화가 퍼지자 왕의 나쁜 이름이 없어지고 부인과 신하들은 모두 충성하고 공경하며 모든 백성들은 다 기뻐하였다.
마치 소들이 물을 건널 때 길잡이가 바르면 따르는 것도 다 바른 것과 같았다.
그 때의 앵무새는 바로 지금의 내 몸이요, 가시국왕 악수는 바로 지금의 재상이며, 그 때의 부인은 바로 지금의 재상 부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