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사라나(娑羅那) 비구가 악생왕(惡生王)에게 고뇌를 당한 인연

024. 사라나(娑羅那) 비구가 악생왕(惡生王)에게 고뇌를 당한 인연

옛날 우전왕(優塡王)의 아들은 이름을 사라나(娑羅那)라 하였다.

그는 불법을 즐기어 집을 나와 도를 배우고 두타(頭陀)의 고행을 닦으면서 숲속 나무 밑에 앉아 생각을 거두어 좌선하고 있었다.

그 때 악생왕(惡生王)은 여러 미녀들을 데리고 두루 다니면서 놀다가, 그 숲에 이르러 이내 잠이 들었다.

여러 미녀들은 왕이 자기 때문에 저희끼리 놀다가 어느 나무 밑에서 어떤 비구가 생각을 모으고 좌선하는 것을 보고, 그리로 가서 예배하고 문안하였다.

그 때 그 비구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주었다.

왕은 잠에서 깨어나 미녀들을 찾다가 여러 미녀들이 멀리 나무 밑에 얼굴이 단정하고 나이 한창 젊은 어떤 비구 앞에서 법을 듣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비구에게 가서 물었다.

“너는 아라한이 되었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되지 못했습니다.”

“아나함이 되었는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다함이 되었는가?”

“되지 못했습니다.”

“수다원이 되었는가?”

“되지 못했습니다.”

“부정관(不淨觀)을 얻었는가?”

“얻지 못했습니다.”

왕은 잔뜩 화를 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구나. 그런데 어떻게 나고 죽는 하나의 범부로서 여러 미녀들과 한 자리에 앉아 있는가?”

왕이 곧 그를 붙잡고 때리자, 그는 온몸이 터지고 헐었다. 여러 미녀들이 말하였다.

“이 비구는 허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왕은 더욱 화를 내어 그를 쳤다. 미녀들이 모두 울면서 괴로워하니, 왕은 더욱 심하게 화를 내었다.

그 때 비구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과거의 여러 부처님들은 능히 욕됨을 참았기 때문에 위없는 도를 얻었다. 또 과거의 욕을 참는 선인들은 귀·코·손·발을 끊기면서도 그 욕을 참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몸이 아직 단단하고 성한데 어찌 이것을 참지 못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잠자코 참으면서 매를 맞았다. 다 맞고 나자 온몸은 더욱 아파 그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속가에 있었으면 한 나라의 왕자로서 왕위를 이어 받아, 군사의 세력은 저 왕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집을 나와 홀몸이기 때문에 저의 때림을 받는다.’

그는 매우 괴로워한 끝에 도(道)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그 스승 가전연(迦?延)에게 가서 하직 인사를 드렸다.

그 스승은 말하였다.

“너는 지금 매를 맞아 몸이 매우 아플 것이니, 여기서 쉬었다가 내일 떠나도록 하라.”

그 때 사라나는 그 스승의 분부를 받고 거기서 잤다.

밤중이 되자 존자 가전연은 그를 꿈꾸게 하였다.

즉 사라나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는 도를 버리고 집에 돌아갔다. 그 부왕은 이미 죽고 그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그리하여 네 종류 군사를 모두 모으고 악생왕을 치려고 그 나라에 가서 진을 치고 싸우다가, 그에게 패하여 군사들은 흩어져 달아나고 그 몸은 사로잡혔다.

그 때 악생왕은 그를 잡아서는 사람을 시켜 칼을 가지고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사라나는 매우 두려워하여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우리 스승님을 한 번 뵈었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그 때 스승은 그 마음 속의 생각을 알고,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러 그 앞에 나타나서 그에게 말하였다.

“아들아, 나는 항상 너를 위해 여러 가지로 설법하였었다. 싸워서 승리를 구하지만 마침내는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고. 그런데 너는 내 교훈을 듣지 않았다. 지금 너는 장차 어찌될 것을 아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만일 스승님께서 지금 이 제자의 목숨을 구제해 주시면, 다시는 감히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그 때 가전연이 그 왕의 신하에게 말하였다.

“원컨대 잠깐만 기다리시오. 내가 왕에게 아뢰어 저 생명을 구제하리다.”

이렇게 말하고 스승은 곧 왕에게로 갔다. 그러나 그 왕의 신하는 기다리지 않고, 사라나를 죽여 버리려고 막 칼을 들어 내리치려 하였다. 사라나는 몹시 놀라고 두려워 소리를 쳤는데, 그 바람에 깨어났다.

그는 깨어나자 곧 스승에게 가서 꿈에서 본 일을 낱낱이 아뢰었다. 스승은 대답하였다.

“살고 죽는 싸움에는 어느 편에도 승리가 없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대개 싸움이란 남을 죽이는 것으로 승리를 삼는 잔인한 길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에는 현재에 이겨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장래 세상에는 삼악도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만일 남에게 져서 그의 해침을 받으면, 자기 몸을 잃을 뿐 아니라 그 재앙이 남들에게 미쳐 남에게 무거운 죄를 짓게 하여 그를 지옥에 떨어뜨리고, 거기서 또 서로 죽이게 되면 원한은 끝내 쉬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섯 가지 길을 바꿔돌면서 마침내 끝날 때가 없을 것이니, 이것을 자세히 생각하면 지금 매를 맞아 몸이 아픈 그 고통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만일 네가 지금 나고 죽는 두려움과 매맞는 그 고통을 떠나려 하거든, 부디 그 몸을 잘 관찰하고 원한을 쉬어야 한다. 왜냐 하면 이 몸이란 온갖 고통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즉, 주림과 목마름과 추위와 더위와 생로병사와 모기·등에·독한 짐승의 침해 등 이런 모든 원수가 한량없이 많지만, 너는 그것을 갚지 못한다. 그러면서 어찌 구태여 악생왕의 원수만 갚으려고 하는가?

원수를 없애려 하면 먼저 번뇌를 없애야 한다. 번뇌의 원수는 한량없는 몸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원수는 아무리 중하더라도 바로 한 몸을 해칠 뿐이지만, 번뇌란 원수는 좋은 법의 몸을 해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원수는 아무리 가혹하다 하더라도 이 변하는 더러운 몸만을 해칠 뿐이다.

이로써 본다면 원수가 생기는 근본은 바로 번뇌에 있는 것이다. 너는 지금 번뇌란 도적은 치지 않고 왜 악생왕만을 치려 하는가?”

이와 같이 그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였다.

그 때 사라나는 이 말을 듣자,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수다원을 얻었다. 그리고 큰 법을 깊이 즐기어 곱절이나 노력을 더하여, 도를 행한 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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