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녹녀부인(鹿女夫人)의 인연

009. 녹녀부인(鹿女夫人)의 인연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기사굴산(耆??山)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법이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과 천상에 빨리 나서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게 한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세 가지 나쁜 곳에 빨리 떨어져 큰 고뇌를 받게 하느니라.

어떤 두 가지 법이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과 천상에 빨리 가서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게 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첫째는 부모를 공양하는 것이요, 둘째는 성현을 공양하는 것이다.

어떤 두 가지 법이 사람으로 하여금 세 가지 나쁜 곳에 빨리 떨어져

큰 고뇌를 받게 하는가?”

첫째는 부모에게 온갖 선하지 않은 행을 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성현에게 선하지 않은 행을 행하는 것이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악을 빨리 이루는 그 일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량없이 먼 과거 세상에 바라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에 선산(仙山)이라는 산이 있었다.

어떤 범지(梵志)는 그 산에 살면서 언제나 돌 위에 대소변을 보았다.

뒤에 그의 정기(精氣)가 소변 본 곳에 떨어져 암사슴이 와서 그것을 핥아 먹고

곧 아이를 배었다.

달이 차자 그 사슴은 선인이 사는 곳에 와서 한 계집애를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묘하였으나 다리만이 사슴 다리를 닮았다.

범지는 그것을 가져다 길렀다.

범지 법에는 항상 불을 받들어 섬겨 그 불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데,

어느날 그 딸 아이는 불을 묻었다가 부주의하여 불이 꺼지게 하였다.

그녀는 범지의 성냄을 두려워하였다.

거기서 1구루사(拘屢奢)[진(秦)나라에서는 5리(里)를 뜻한다]쯤 떨어진 곳에

다른 범지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 딸 아이는 범지에게 빨리 가서 불을 빌고자 하였는데,

범지가 그 발자국을 보니 발자국마다 연꽃이 있었다.

범지는 그녀에게 말하였다.

‘우리 집을 일곱 번 돌면 너에게 불을 주리라. 또 나갈 때에도 일곱 번 돌아라.

그리고 본래 발자국을 밟지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

딸 아이는 그 말대로 하고는 불을 얻어 가지고 돌아갔다.

그 때 범예국왕(梵豫國王)은 사냥을 나왔다가,

그 범지의 집 주위에 일곱 겹으로 두른 연꽃을 보았다.

그리고 두 길에 두 줄 연꽃이 있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이상히 여겨 범지에게 물었다.

‘못물이 전연 없는데 어떻게 이런 묘하고 좋은 연꽃이 피는가?’

범지가 대답하였다.

‘저 선인이 사는 곳에서 어떤 딸 아이가 불을 빌러 내게 왔었는데 그 애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만일 불을 얻고자 하거든 우리 집을

일곱 번 돌고 갈 때에도 또 일곱 번 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연꽃이 둘러 있습니다.’

왕은 곧 꽃 발자국을 따라 범지의 처소에 이르러 그 여자를 청하였는데,

그녀의 단정한 모습에 반하여 범지에게 그 딸을 달라고 청하였다.

범지가 곧 왕에게 딸을 주니, 왕은 그녀를 세워 둘째 부인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어릴 때부터 선인이 길렀기 때문에 그 받은 성질이 단정하고 곧아

부녀들의 애교에 대한 일은 알지 못하였다.

그 뒤에 그녀가 아이를 배자 관상장이는 점을 치고는

‘장차 아들 천 명을 낳으리라’고 하였다.

큰 부인은 그 말을 듣고 시기하고 질투하여 차츰 계교를 부렸다.

그리하여 은혜를 두터이 하여, 그 녹녀(鹿女) 부인의 좌우 시종을 불러 달래고

재물과 보배를 넉넉히 주었다.

그 때 녹녀는 달이 차서 천 송이 연꽃을 낳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려 할 때에 큰 부인은 어떤 물건으로 그의 눈을 흐리게 하여

보지 못하게 하고, 다 썩은 말 허파를 임부 밑에 바쳐 두고,

천 송이 연꽃은 함 안에 담아 강물에 띄워 버렸다. 그리고는 눈을 풀어 주면서 말하였다.

‘네가 낳은 아기를 보아라. 한 덩이 썩은 말 허파뿐이구나.’

왕은 사람을 보내어 물었다.

‘무엇을 낳았는가?’

‘다 썩은 말 허파를 낳았습니다.’

그 때 큰 부인은 왕에게 말하였다.

‘왕은 미혹하시기를 좋아하십니까?

축생이 낳고 선인이 기른 그 여자는 이 상서롭지 못한 썩은 물건을 낳았습니다.’

왕의 큰 부인은 둘째 부인의 지위를 물리치고 다시는 눈 앞에 보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오기연왕(烏耆延王)은 여러 시종과 부인과 미녀들을 거느리고 강 하류에서 놀다가,

누런 구름 일산이 강 상류에서 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것을 보고

‘저 구름 일산 밑에는 반드시 신비한 물건이 있으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어 누런 구름 밑으로 가서 살피다가 함이 하나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건져 와서 열어 보았다.

거기는 천 송이 연꽃이 있는데, 꽃 한 송이마다 아이 하나씩이 있었다.

그것을 데려다 길렀는데, 그들은 차츰 자라나 모두 큰 역사의 힘이 있었다.

오기연왕은 해마다 늘 범예왕에게 공물을 바쳐 왔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공물을 모아 싣고 사자를 보내어 떠나려 할 때, 여러 아들들이 물었다.

‘무엇하려 하십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저 범예왕에게 공물을 바치려고 하는 것이다.’

아들들이 모두 말하였다.

‘우리 한 아들로도 천하를 항복 받아, 모두 와서 공물을 바치게 할 수 있거늘,

하물며 우리 천 명 아들이 있으면서 어찌 남에게 공물을 바치겠습니까?’

그들은 군사를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차례로 항복 받으면서 범예왕의 나라로 갔다.

왕은 그 군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온 나라에 영을 내렸다.

‘누가 저 도적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물리칠 사람이 없었다.

둘째 부인이 그 부름을 받고 와서 말하였다.

‘제가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왕은 물었다.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가?’

부인은 대답하였다.

‘다만 나를 위해 백 발[丈] 되는 대(臺)를 만들어 주소서.

내가 그 위에 앉으면 틀림없이 물리칠 수 있습니다.’

대를 다 만들자 둘째 부인은 그 위에 앉았다.

그 때 천 명 아들은 활을 들어 쏘려 하였으나 손이 저절로 들리지 않았다.

부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삼가 부모를 향해 손을 들지 말라. 나는 너희들의 어머니다.’

그들은 물었다.

‘무슨 징험으로 우리 어머니인 줄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였다.

‘내가 만일 젖통을 눌러 한 젖통에서 5백 줄기씩 젖이 나와 너희들 입에 각각 들어가면

그것이 어머니인 표요, 만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어머니가 아니다.’

그는 곧 두 손으로 젖통을 눌렀다. 한 젖통에서 5백 줄기 젖이 나와

천 명 아들 입에 들어가고, 다른 군사들은 아무도 얻어 먹지 못하였다.

천 명 아들은 항복하고 부모를 향하여 참회하였다.

이에 여러 아들들은 서로 화합하고 두 나라는 원한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권하고 이끌어, 5백 아들은 친 부모에게 주고

5백 아들은 양부모에게 주었다.

그 때 두 나라 왕은 염부제를 나누어 가지고, 각기 5백 아들을 길렀느니라.”

부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알고 싶은가? 그 때의 천 명 아들은 바로 저 현겁(賢劫)의 1천 부처요,

질투하는 부인으로 눈을 흐리게 한 이는 바로 저 교린(交鱗)의 눈 먼 용이며,

그 아버지는 바로 백정왕(白淨王)이요, 어머니는 바로 저 마야부인이었느니라.”

비구들이 아뢰었다.

“그 여자는 어떤 인연으로 사슴 뱃속에서 나와 발 밑에 연꽃이 났으며

또 어떤 인연으로 왕의 부인이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여자는 지난 세상에 빈천한 집에 태어났는데,

모녀 둘이서 밭에서 김을 매다가 어떤 벽지불이 발우를 들고 걸식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그 딸에게 말하였다.

‘나는 집에 있는 내 밥을 가져다 저 쾌사(快士)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그 딸도 말하였다.

‘저도 제 몫을 가져다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곧 집으로 돌아가 두 사람 몫을 가지고 와서

그 벽지불에게 주기로 하고 떠났다.

그 동안에 딸은 그를 위해 풀을 베어 풀자리를 펴고 꽃을 따서 위에 흩어 깔고는

벽지불이 앉기를 청하였다.

딸은 그 어머니가 더디 오는 것을 이상히 여겨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서 오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말하였다.

‘사슴이 달리듯 왜 빨리 오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이르자 그 더딘 것을 미워해 원망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어머니 곁에서 난 것은 사슴 곁에서 난 것보다 못합니다.’

그 어머니는 두 몫으로 나눈 음식을 벽지불에게 주고 나머지는 모녀가 같이 먹었다.

벽지불은 다 먹고 나서 바리를 허공에 던지고 그것을 따라 허공에 올라

열여덟 가지 신변을 나타내었다.

그 때 그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면서 서원을 세웠다.

‘나로 하여금 장래에 거룩한 아들을 낳되 지금 저 성인과 같게 하소서.’

이런 인연으로 그 뒤에 5백 아들을 낳아 모두 벽지불이 되었는데,

한 쪽은 양모가 되고 한 쪽은 생모가 된 것이다.

또 그 어머니를 사슴 달림에 비유하여 말한 인연으로

사슴 뱃속에서 나서 다리는 사슴 다리 같았으며, 꽃을 따서 벽지불에게 흩었기 때문에,

그 발자국에서 천 송이 꽃이 났고, 또 풀을 깔았기 때문에 항상 왕의 부인이 된 것이다.

그 어머니의 후신은 범예왕이 되었고, 딸의 후신은 연화 부인이 되었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 뒤 현겁의 1천 성인을 낳았고,

그 서원의 힘으로 항상 성현을 낳았느니라.”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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