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경

의도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붓다께서는 사바티 시의 제타바나 숲에 있는 아나타핀다카 장자의 승원에서 지내셨다. 그때 붓다께서는 “비구들아”라고 하시며 여러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예. 붓다시여”라고 하며 그 비구들은 답하였다. 붓다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비구들아. 만일 의도적으로 일(업)을 하고 또 그 일(업)을 쌓아 두었다면 그 일(업)의 결과를 받지도 않은 채 그 일(업)이 근본적으로 끝난다라고는 나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 일(업)의 결과는 반드시 현재에 나타나든지 아니면 미래의 세상에서 나타나고야 만다. 그런데 비구들아. 의도적으로 행하였고 또 쌓아 두었던 그 일의 결과를 받지도 않는 채. 괴로움을 끝낸다라고도 나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아. 몸으로 행하는 세 가지 업이 있는데. 이들은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그리고 말로 행하는 네 가지 업이 있는데. 이들도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그리고 끝으로 뜻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는데. 이들도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비구들아. 어떤 것이 몸으로 행하는 세가지 일(업)로써. 더럽고 비뚤어쪘고 불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인가.

비구들아. 그 자는 살생하는 자이다. 그는 포악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있으며 살육하는 일에 집착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과 존재들에 대해 친절함이란 없는 자이다.

또 그 자는 훔치는 자이다. 집에 있는 것이든 한적한 곳에 있는 것이든 남의 소유물과 재산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도 아닌데 훔치려는 의도를 가지는 자이다.

또 그 자는 애욕에서 잘못된 짓을 하는 자이다. 여기에 여인으로서 어머니에게 보호받거나. 아버지에게 보호받거나. 형제에게 보호받거나. 자매에게 보호받거나. 친척에게 보호받거나. 종족에게 보호받거나. 법으로 보호받거나. 주인이 있거나. 형벌을 받고 있거나. 내지 화환으로 장식하고 있는 자가 있다. 그와 같은 여인에게서 음행을 저지르는 자이다.

비구들아. 이러한 것들이 몸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로써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다시 비구들아. 어떤 것이 말로 행하는 네 가지 일(업)로써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인가. 여기에 비구들아. 그 자는 거짓말하는 자이다. 그는 모임에 가거나 집회에 가거나 친척들 사이에 가거나 군중 속에 가거나 왕가의 가운데에 가거나 또는 초청되어서. 면전에서 질문을 받는다. “여보게. 이리 오시오. 당신이 아는 것을 말해 보시오”라고. 그때 그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라고 말한다.

또 아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자신으로 말미암아 또는 남으로 말미암아 또는 어떤 이익으로 말미암아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자이다.

또 그는 험담하는 자이다. 그는 이쪽에서 듣고 이쪽 사람과 헤어지도록 저쪽에다 말하며. 저쪽에서 듣고 저쪽 사람과 헤어지도록 이쪽에다 말한다.

이처럼 모인 것을 부수거나 부서진 것을 더욱 심하게 하니. 붕괴를 즐기고 붕괴를 즐거워하고 붕괴를 기뻐하며 붕괴시키는 말을 한다.

또 그 자는 거친 말을 하는 자이다. 그의 말은 악담이고 폭언이다. 남을 자극하고 남을 질책하는 말을 한다. 분노하는 기운이 있고 집중 상태로 이끌지 못하는 그러한 말을 한다.

또 그 자는 실없는 말을 하는 자이다. 때를 어기며 말하고 없었던 것을 말하고 의미 없는 말을 하고 교법에 어긋난 것을 말하고 율법에 어긋난것을 말한다. 그리고 아량을 볼 수 없고 불합리하고 한계가 불분며하고 의미를 지니지 못한 말을 때를 가리지 않고 말한다.

비구들아. 이러한 것들이 말로 행하는 네 가지 일(업)로써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다시 비구들아. 어떤 것이 뜻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로써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인가.

여기에 비구들아. 그 자는 욕심 있는 자이다. 남의 재산이나 소유물에 대해 “아. 저것이 나의 것이었으면”하고 욕심내고 있다.

또 그 자는 악의가 있으니 악랄한 의지와 의도를 지닌 자이다. 그리하여 “저 중생들이 죽었으면. 또는 속박되었으면. 또는 단멸하였으면. 또는 소멸하였으면. 또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라고 바란다. 또 그 자는 잘못된 견해를 지니었으니 뒤바뀐 채로 보는 자이다.

그리하여 “보시를 행함도 없고 희생을 바침도 없고 제사를 지냄도 없다. 잘 지었거나 잘 못 지은 일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변화 출생(化生)하는 중생도 없다. 바로 가고. 바로 이르러.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가르치는 그러한 수행자나 사제가 세상에는 없다”라고 본다.

비구들아. 이러한 것들이 뜻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로써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해진 세 가지 몸의 일(업)을 원인으로 하여. 비구들아. 중생들은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즐거움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곳 또는 나쁜 곳 또는 아래로 떨어져 잇는 곳 도는 지옥에 태어난다.

또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해진 네 가지 말의 일(업)을 원인으로 하여. 비구들아. 역시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즐거움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곳 또는 나쁜 곳 또는 아래로 떨어져 있는 곳 또는 지옥에 태어난다.

또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해진 세 가지 뜻의 일(업)을 원인으로 하여. 비구들아. 역시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즐거움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곳 또는 나쁜 곳 또는 아래로 떨어져 있는 곳 또는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아. 정상적인 사각 주사위라면 던져진 후 떨어질 때 네면 가운데서 어느 한 면이 반듯이 나온다.

비구들아. 마치 그와 같이.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해진 세 가지 몸의 일(업)을 원인으로 하여. 중생들은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반듯이 즐거움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곳 또는 나쁜 곳 또는 아래로 떨어져 있는 곳 또는 지옥에 태어난다.

또 더럽고 비뚤어졌고 불선한 의도로 행해진 네 가지 뜻의 일(업)을 원인으로 하여. 중생들은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반듯이 즐거움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곳 또는 나쁜 곳 또는 아래로 떨어져 있는 곳 또는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아. 만일 의도적으로 일(업)을 하고 그 일을 쌓아 두었다면’ 그 일(업)의 결과를 받지도 않은 채 그 업이 근본적으로 끝난다라고는 나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 업의 결과는 반듯이 현재에 나타나든지 아니면 미래의 세상에서 나타나고야 만다. 그런데 비구들아. 의도적으로 행하였고 또 쌓아 두었던 그 업의 결과를 받지도 않은 채 괴로움을 끝낸다라고 나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아. 몸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는데. 이들은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그리고 말로 행하는 네 가지 일이 있는데. 이들도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그리고 끝으로 뜻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업)이 있는데. 이들도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비구들아. 어떤 것이 몸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로써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인가. 여기에 비구들아. 어떤 사람은 살생하는 것을 버리어 살생을 멀리하고 있으니. 매를 놓았고 칼을 놓았고 조심성이 있고 친절한 자이다. 그리고 모든 생명과 존재의 이익을 꾀하고 그들을 동정하며 살아간다. 또 어떤 자는 훔치는 것을 버리어 훔치는 짓을 멀리하고 있다.

집에 있는 것이든. 한적한 곳에 있는 것이든. 남의 소유물과 재산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한 훔치려는 의도로 가지지는 않는다. 또 어떤 자는 애욕에서의 잘못된 짓을 버리어 애욕에서의 잘못된 짓을 멀리하고 있다. 여기에 어머니에게 보호받거나. 아버지에게 보호받거나. 부모에게 보호받거나. 형제에게 보호받거나. 자매에게 보호받거나. 친척에게 보호받거나. 종족에게 보호받거나. 법으로 보호받거나. 주인이 있거나. 행벌을 받고 있거나. 내지 화환으로 장식하고 있는 여인이 있다. 그 자는 이와 같은 여인에게서 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비구들아. 이러한 것들이 몸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로써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다시 비구들아. 어떤 것이 말로 행하는 네 가지 일(업)로써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인가. 여기에 비구들아. 어떤 자는 거짓말을 버리어 거짓말을 멀리하고 있다.

그는 모임에 가거나. 집회에 가거나. 친척들 사이에 가거나. 군중 속에 가거나. 왕가의 가운데 가거나. 또는 초청되어서. 면전에서 질문을 받는다. “여보게 이리 오시오. 당신이 아는 것을 말해 보시오”라고. 그때 그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또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자신으로 말미암아 또는 남으로 말미암아 또는 어떤 이익으로 말미암아 알면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또 어떤 자는 험담을 버리어 험담을 멀리하고 있다. 그는 이쪽에서 듣고 이쪽 사람과 헤어지도록 저쪽에다 말하지 않으며. 저쪽에서 듣고 저쪽 사람과 헤어지도록 저쪽에다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오히려 해어진 자들을 모이게 하고 모인 자들을 복돋우고 있으니. 화합을 즐기고 화합을 즐거워하고 화합을 기뻐하며 화합시킬 수 있는 말을 한다.

또 어떤 자는 거친 말을 버리어 거친 말을 멀리하고 있으니 티가 없고. 귀에 듣기 좋고. 정답고. 가슴에 와 닿고. 점잖고.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많은 사람의 뜻에 맞는 그러한 말을 한다. 또 어떤 자는 실없는 말을 버리어 실없는 말을 멀리하고 있으니. 때에 맞추어 말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하고. 교법을 말하고. 율법을 말한다. 그리고 아량있고 합리적이고 한계가 분명하고 의미를 갖춘 말을 때에 맞추어 말한다.

비구들아. 이러한 것들이 말로 행하는 네 가지 일로써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다시 비구들아. 어떤 것이 뜻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로써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인가. 여기에 비구들아. 어떤 자는 욕심이 없다. 남의 재산이나 소유물에 대해 “아. 저것이 나의 것이었으면”하고 욕심내지 않는다. 또 어떤 자는 악의가 없으니 악랄한 의지와 의도를 지니지 않는다. 그리하여. “저 중생들은 원한과 악의와 혼란이 없이 즐겁게 스스로를 보살폈으면 좋겠다”라고 바란다.

또 어떤 자는 바른 견해를 지녔으니 뒤바뀐 채로 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보시를 행함도 있고 희생을 바침도 있고 제사를 지냄도 있다. 잘 지었거나 잘 못 지은 일의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변화 출생하는 중생도 있다. 바로 가고 바로 이르러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가르치는 그러한 수행자나 사제가 세상에는 있다”라고 본다.

비구들아. 이러한 것들이 뜻으로 행하는 세 가지 일(업)로써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하여져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의 과보를 지니는 것들이다.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해진 세 가지 몸의 일(업)을 원인으로 하여 비구들아. 중생들은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좋은 곳 또는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또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해진 네 가지 말의 일(업)을 원인으로 하여 비구들아. 중생들은 역시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좋은 곳 또는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또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해진 세 가지 뜻의 일(업)을 원인으로 하여 비구들아. 중생들은 역시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좋은 곳 또는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아. 정상적인 사각 주사위라면 던져진 후 떨어질 때 네면 가운데 어느 한 면이 반듯이 나온다. 비구들아. 마치 그와 같이. 정당하고 선한 의도로 행해진 세 가지 몸의 일(업)을 원인으로 하여. 중생들은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반듯이 좋은 곳 또는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만일 의도적으로 일(업)을 하고(짖고) 또 그 일을 쌓아 두었다면. 그 일의 결과를 받지도 않은 채 그 업이 근본적으로 끝난다라고 나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 일의 결과는 반듯이 현재에 나타나든지 아니면 미래의 세상에서 나타나고야 만다. 그리고 비구들아 . 의도적으로 행하였고 또 쌓아 두었던 그 업의 결과를 받지도 않은 채. 괴로움을 끝낸다라고 나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붓다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마음이 흡족해진 그 비구들은 붓다의 말씀에 매우 기뻐하였다.) (사경:정종진)

부처님의 전도선언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전도를 떠나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 하섰다. “비구들아!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하늘의 중생과 사람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여 떠나라.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이치에 맞고 ] 객관적인 표현으로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꼐율(범행)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자도 있을 것이며. 법을 듣지 못한 자도 있을 것이니 만약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아!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하여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로 가리라”

업業에 대해서

흔히 업業이라고 불리고 있는 말은 그 원어가 karma 또는 karmanta이다.

이 말은 의지적인 “행위”나 “행동’을 뜻하기도 하고 나아가 ‘작업”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말로는 “일”이 알맞다. “일”은 직업이라는 뜻도 지니지만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행위나 활동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업”이라는 말을 이해할 때 사실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숙명론적인 어떤 원리”로 이해하고 있다. 마치 유신론적인 종교의 神신과 같이 거부할 수 없는 원리 또는 실체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는 잘못된 것으로서 오해이다.

선한 일을 하면 언젠가는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언젠가는 괴로움을 받는다”라고 할 때의 그 “일”이 바로 karma인 것이다. “업”은 한자 기원의 단어이며 또한 숙명론적인 오해의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업의 대응어인 보報는 vipaka로써 필연적 “반응”을 지칭한 말이다 또한 작용을 “인因=hetu.” 반응을 “과果=phala”로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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