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 제 4장 4품
- 푸쿠사와의 만남
바로 그때 알라라 카라마의 제자이며 말라 족의 아들인 푸쿠사가 쿠시나가라에서 파바로 향해 가고 있었다.
말라족의 아들 푸쿠사는 세존께서 길 옆 나무 아래에서 쉬고 계시는 것을 보고 그 곳으로 갔다. 그리고 세존께 인사 드리고 한쪽에 앉은 말라 족의 아들 푸쿠사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출가하신 분들이 머무는 청정한 경지란 실로 불가사의하고 실로 희유한 일이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세존이시여! 사실 저는 알라라 카라마의 제자인데, 예전에 저의 스승께서 여행 도중 길 옆의 나무 아래에서 공양 후 명상을 하고 계셨사옵니다. 그때 세존이시여! 5백 대의 수레가 줄을 지어 스승인 알라라 카라마의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수레를 따라오던 한 남자가 스승 알라라 카라마가 계시는 곳에 이르러 스승과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혹시 출가하신 분이시여! 이제 막 이곳에 5백 대의 수레가 지나갔사온데, 보셨사옵니까?”
“아니네, 벗이여!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럼 무슨 소리라도 듣지 못하였사옵니까?”
“아니네, 벗이여!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였네.”
“그러면 당신은 주무셨던 것이옵니까?”
“아니네, 벗이여! 나는 자지 않았네.”
“그러면 당신은 의식일 있었던 것이옵니까?”
“분명히 그대로네, 벗이여! 나는 확실하게 의식이 있었다네.”
“그러면 당신은 자지도 않고 의식도 확실했는데, 5백 대의 수레가 조금 전에 지나갔는데도,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그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고 하시다니요. 그럼 출가하신 분이시여! 당신의 상의에 흙탕물이 묻지 않았사옵니까?”
“그렇게 말하고 보니, 벗이여! 확실히 나의 상의에 흙탕물이 튀겨 있구려.”
세존이시여! 그 남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실로 희유한 일이다. 출가한 사람이 청정한 경지에 들어 있으면 잠들어 있을 리가 없고 의식도 확실했을 텐데, 눈 앞에 5백 대의 수레가 줄을 지어 지나갔는데도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그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니.”
이리하여 그 남자는 알라라 카라마께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저 역시 이 같은 이야기를 듣고, 알라라 카라마에 대해 깊은 존경의 뜻을 품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런 일이 있었는가? 그런데 푸쿠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음과 같은 일이 있다고 한다면, 어느 쪽의 사람이 더 어렵게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했겠는가?
즉 한 사람은 자지도 않고 의식도 확실했다. 그런데 눈 앞에 5백 대의 수레가 지나가도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한 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다른 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자지도 않고 의식도 확실했는데 소나기가 심하게 내리고 번개가 치며 천둥이 울리면서 바로 근처에 벼락이 떨어지는데도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한 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비교하면, 도대체 어느 쪽의 사람이 더 어렵게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할 것인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사옵니다. 5백 대의 수레가 아니라 설령 6백, 7백, 8백, 9백, 1천의 수레, 혹은 10배가 넘을 지라도, 훨씬 더 어렵게 의식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옵니다.”
“푸쿠사여!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런데 푸쿠사여! 내가 예전에 아투마의 ‘왕겨의 집’에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때 갑작스럽게 심한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바로 근처에 벼락이 떨어졌다. 그로 말미암아 푸쿠사여! ‘왕겨의 집’에 있던 두 농부와 네 마리의 소가 벼락에 맞아 죽었느니라. 그러자 푸쿠사여! 아투마 마을의 사람들은 이 두 명의 농부와 소의 사체(死體)가 있는 곳으로 왔느니라.
푸쿠사여! 그때 나는 ‘왕겨의 집’에서 명상에 들어 있었는데, 잠시 경행(經行)을 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 마을 사람은 절을 하고 나의 옆에 섰다. 그래서 나는 마을 사람들과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았던 것이니라.
“벗이여! 사람이 많이 모인 듯한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실은 지금 내린 소나기와 벼락에 농부 형제 두 명과 소 네 마리가 죽었사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당신께서는 도대체 어디에 계셨던 것이옵니까?”
“벗이여! 나는 줄곧 이곳 ‘왕겨의 집’ 속에 있었다네.”
“그러면 조금 전의 번개는 보셨사옵니까?”
“아니네, 벗이여! 나는 보지 못하였네.”
“그럼 천둥소리는 듣지 못하였사옵니까?”
“아니네, 벗이여! 나는 천둥소리도 듣지 못했다네.”
“그럼 도대체 당신은 주무시고 계셨사옵니까?”
“아니네, 벗이여! 나는 자지도 않았다네.”
“그럼 당신의 의식이 확실하게 있었던 것이옵니까?”
“그대로네, 벗이여! 나는 분명히 의식이 있었네.”
“그럼 당신은 특별히 주무시지 않으셨고 의식도 확실하면서,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는데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하였사옵니까?”
“그대로네, 벗이여! 나는 번개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네, 소나기가 내렸다는 것도 몰랐다네.”
내가 이렇게 대답하니, 푸쿠사여! 그 마을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실로 희유한 일이 도다. 출가한 분께서 청정한 경지에 들어 있으면 자지 않고 의식도 분명했는데, 눈 앞에 소나기가 심하게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고 바로 근처에 벼락이 떨어졌는데도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한 채 의식하지 못했다니’라고.
이리하여 그 마을 사람은 나에게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하고 오른쪽으로 도는 예를 표하고는 일어나 떠났던 것이니라.”
세존으로부터 이러한 말씀을 들은 말라 족의 아들 푸쿠사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 세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알라라 카라마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태풍 속의 먼지, 급류 속의 나뭇잎처럼 날아가 버렸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치 넘어진 사람을 붙잡아 일으키고, 눈꺼풀을 쓴 사람에게 눈꺼풀을 떼어 주고 길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고, 암흑 속에 있는 사람에게 등불을 밝혀 ‘눈 있는 자는 보라’고 말씀하시듯, 이 우매한 저에게 훌륭한 말씀을 하시어 진리를 설시하셨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부터 저는 세존께 귀의하겠사옵니다. 또 가르침과 비구 모임(僧伽)에 귀의하겠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저를 재가 신자로서 허락해 주시옵소서. 오늘 이후 일생 동안 저는 귀의하겠사옵니다.”
이리하여 말라 족의 아들 푸쿠사는 세존의 재가 신자가 되었는데, 허락을 받은 푸쿠사는 하인들을 향해 말했다.
“여봐라! 나의 짐 속에 금색의 좋은 옷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한 벌 가지고 오너라.”
“잘 알았사옵니다, 주인 나리”라고 푸쿠사의 하인은 대답한 뒤 금색의 화려한 옷 한 벌을 가지고 나왔다. 말라 족의 아들 푸쿠사는 화려한 금색의 옷을 받아 세존께 올리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변변하지 못한 것이지만, 부디 저를 가엾이 여기시와 이것을 받아 주소서.”
“푸쿠사여! 그러면 나는 그 옷을 받으리라. 그리고 한 벌을 더 아난다에게 올려라.”
“잘 알았사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대답한 말라 족의 아들 푸쿠사는 세존의 말씀대로 한 벌은 세존께, 그리고 또 한 벌은 아난다 존자에게 올렸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가르침으로 말라 족의 아들 푸쿠사에게 설시하시어 믿어 받들게 하시고, 그를 격려하시고 기뻐하게 하셨다. 이렇게 세존께서 가르침을 설하시니 믿어 받들고, 격려 받고 기뻐한 말라 족의 아들 푸쿠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으로 도는 예를 표하고 떠났다.
말라 족의 아들 푸쿠사가 일어나서 떠나자 곧 아난다 존자는 푸쿠사가 올린 금색 옷 한 벌을 세존께 입혀 드렸다. 그런데 금색 옷이 세존의 몸 앞에서는 사그라진 잿불처럼 빛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옵니까? 실로 희유한 일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피부색은 청정하여 하얗게 빛나고 있사옵니다. 화려한 금색 옷을 세존께 올렸는데, 세존의 모습 앞에서는 이 옷 색이 그 빛을 잃었습니다.”
“확실히 그럴 것이니라, 아난다여! 여래는 두 가지 경우에만 특별히 여래의 피부색을 하얗고 청정하게 빛나게 하느니라. 아난다여! 그것은 어떤 때인가? 하나는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때이고, 또 하나는 여래가 남김없이 완전한 열반의 세계에 드는 때이니라.
아난다여! 이 두 가지 경우에는 여래의 피부색이 유달리 청정하여 하얗게 빛나게 되느니라.
아난다여! 오늘 밤 최후의 야분(夜分)에 쿠시나가라 근교 ‘역사(力士:세존)가 태어났던 곳’인 사라 나무 숲속의 한 쌍의 사라 나무(娑羅雙樹) 사이에서 여래는 완전한 열반의 세계에 들 것이니라.
자, 아난다여! 우리들은 이제부터 카쿠타 강으로 가자.”
“잘 알았사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대답하였다.
황금색 옷 한 벌 푸쿠사 올렸네그것을 걸치신 큰 스승님께서는 금색처럼 찬란히 빛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