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해석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위대한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

<주석>

마하(摩訶)

산스크리트(Sanskrit)어 마하(maha)의 음(音)역으로 “크다, 많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반야(般若)

산스크리트(Sanskrit)어 프라즈냐(prajna)의 음(音)역으로 생명 내부의 움직임 속에서 절로 솟아나는 지혜. 법의 이치를 깨달은 최상의 지혜를 뜻하는 말입니다. 어쩌면 원초적인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라밀다(波羅蜜多)

산스크리트(Sanskrit)어 파라미타(parammita)의 음(音)역으로 “완성”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파람과 이타를 따로 떼어서 해석하면(param + ita)가 되고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르는 상태”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두가지중에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본문의 뜻에 크게 위배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심(心)

산스크리트(Sanskrit)어 흐리다야(hrdaya)의 의역(意譯)으로 “심장 또는 핵심”이라는 뜻이 됩니다.

경(經)

산스크리트(Sanskrit)어 수트라(sutra)의 의역(意譯)으로 “성전” 또는 ”경전”이라는 뜻이 됩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산스크리트(Sanskrit)어로 프라즈냐 파라미타 흐리다야 수트라(prajna paramita hrdaya sutra)라고 하는데 반야심경의 끝부분에 프라즈냐 파라미타 흐리다얌 사마프탐(prajna paramita hrdayam samaptam)이라고 되어있는 부분에서 사마프탐을 수트라로 바꾸어서 그것을 이 경의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문>

觀自在菩薩 行 深般若波羅密多 時

관자재보살 행 심반야바라밀다 시

관자재보살께서 깊은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는 실천을 행하실 때

<주석>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산스크리트(Sanskrit)어 아발로키데스바라(AvalokiteSvara)를 현장스님이 의역(意譯)한 것으로써 구마라집 스님이 번역할 때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번역 하였고, 현장스님은 “관자재보살”이라고 번역하였다. 일반적으로 관세음보살은 “볼 관, 세상 세, 소리 음”자로 번역하였으며 “세상의 소리를 관찰하는 보살“이라는 뜻으로 보살의 자비로움을 나타낼 때 그렇게 표현하고, 관자재보살은 ”볼 관, 스스로자, 있을 재” 자로 변역하였으며 “이 세상의 고통을 자유롭게 관찰하는 보살“이라는 뜻으로 ”보살의 지혜로움”을 나타낼 때 그렇게 표현한다.

관자재(觀自在)

산스크리트(Sanskrit)어 아발로키타(Avalokita)와 이스바라(isvara)의 두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아발로키타(Avalokita)는 “관찰하다”는 뜻으로서 볼 관(觀) 자로 번역되었고, 이스바라(isvara)는 자유롭게 존재한다는 뜻으로서 “스스로자(自) 자와 있을 재(在) 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관자재(觀自在)라는 뜻은 세상의 고통을 관찰하는 것이 “자유롭다“라는 뜻이 됩니다.

보살(菩薩)

산스크리트(Sanskrit)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음역(音譯)한 것으로써 bodhi(보디)와 sattva(사트바)의 두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보디는 “깨달음“을 뜻하고 사트바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보디 사트바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세상의 고통을 관찰하는 것이 자유로운 깨달은 사람

행(行)

한자 행할 행(行) 자로 행하다, 행동하다. 라는 뜻이 됩니다.

심(深)

한자 깊을 심(深) 자로 깊다. 라는 뜻이 됩니다.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

쉽게 말해서 6바라밀 중에서 마지막인 지혜의 바라밀을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 라고 말합니다.

시(時)

한자 때시(時) 자로 시간을 나타냅니다.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密多時)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본문>

照見 五蘊皆空 度 一切苦厄 舍利子

조견 오온개공 도 일체고액 사리자

모든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텅 비어있는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벗어났다. 사리자여.

<주석>

조견(照見)

한자 비출 조(照) 자와 볼견(見) 자의 합성으로 “비추어 보다“라는 뜻입니다.

오온(五蘊)

산스크리트(Sanskrit)어 판크스칸다스(Panck-Skandhas)를 의역(意譯)한 것으로써 그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구성요소를 말합니다. 그 다섯 가지의 구성요소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오온은 색온(色蘊) 루파스칸다(rupaskandha), 수온(受蘊) 베다나스칸다(vedanaskandha), 상온(想蘊) 삼나스칸다(sam-jnaskandha), 행온(行蘊) 삼스카라스칸다(samskaraskandha), 식온(識蘊) 비즈나나스칸다(vijnana-skandha) 이렇게 다섯 가지의 구성요소를 오온이라고 합니다.

개(皆)

한자 모두 개(皆) 자로 모두다, “모든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공(空)

한자 와 빌 공(空) 자로 “모두 텅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반야심경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공자에 대한 해석에 있습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을 공사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도(度)

한자 법도 도(度) 자로 “법도, 제도, 건너가다, 버리다”라는 뜻이 됩니다.

일체(一切)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사르밤(Sarvam)을 의역(意譯)한 것으로써 “모두, 모든 것”을 뜻합니다. 또한 일체(一切)는 한자 한일(一)자와 끊을 절(切) 자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절(一切)이라고 읽고 있습니다. 이 글자는 일절(一切)이라고 읽으면 잘못 읽는 것이고, 일체(一切)라고 읽는 것이 바로 읽는 것입니다. 일체라고 읽을 때는 끊을 절(切) 자로 읽지 않고 모두 체(切) 자로 읽습니다. 일체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쓰는 말로써 “일체의 모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술집 간판에 안주일절 이라고 한글로 써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글자 하나로 그 술집 주인이 얼마나 무식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안주일체라고 쓰는 것이 바로 쓰는 것입니다.

고액(苦厄)

한자 괴로울 고(苦) 자와 재앙 액(厄) 자로 “괴로움과 재앙”이라는 뜻의 말입니다.

사리자(舍利子)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사리푸트라(Sariputra)를 음역(音譯)한 것으로써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서 지혜 제일의 사리불을 다른 말로 사리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판단도 또한 그러하다. 사리자여.

<주석>

공(空)

공사상(空思想)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에 고정 불변 하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근본교리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사물들과 서로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존재이므로, 그 모양이나 형태, 또는 그 성질이 전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물들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혀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 스스로의 자아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무아(無我)라고 하며 자아(自我)가 없는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그것을 공(空)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책상을 보고 아이들에게 저것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아이들은 책상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책상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 하는가 하고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몇 개의 나무토막과, 못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페인트칠을 했으므로 페인트도 포함시켜야 되겠지요. 그러면 책상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그것은 책상이 아니고, 나무, 못, 페인트가 얽혀서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책상이라는 형태를 이룰 뿐이지 근본적인 책상이라는 자아(自我)는 없다는 것입니다. 책상을 이룬 나무 또한 그렇습니다. 그것은 햇빛과, 물과, 바람, 그리고 각종 미네랄과 섬유질이 적당한 비율로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얽혀 있을 뿐, 나무라는 자아(自我)는 존재하지 않는 것 입니다.

못도 그렇습니다. 원래 못이라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철(Fe), 산소, 탄소, 인, 망간, 등등의 혼합물질이 서로 의존하면서 얽혀 있는 관계일 뿐입니다. 못이라는 자아(自我) 또한 없다는 것입니다.
페인트 또한 석유의 끈적끈적한 찌Rm러기와, 각종 색소로 이루어져 있을 뿐입니다. 더욱 깊숙이 들어 갈수록 모든 것이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아(自我)가 없으면 그것이 무아(無我)이고 무아(無我)는 바로 공(空)인 것입니다.

잔디밭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잔디밭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잔디밭에는 흙, 곤충, 잡초, 잔디, 돌멩이, 지렁이, 애벌레 등등 많은 것이 서로 얽혀서 잔디밭을 이룰 뿐입니다. 잔디밭이라고 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色卽是空이라는 말은 인간을 이루는 물질적 육체적 요소인 인간의 몸이 공하다는 것입니다.
사람 또한 70퍼센트의 물과 단백질, 섬유질, 지방질, 각종 미네랄과 원소 등등 굉장히 복잡한 사물들이 서로 얽혀져서 사람이라는 형태를 이루고 있을 뿐 우리가 사람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진정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아(自我)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자아(自我)가 없으면 그것이 무아(無我)이고 무아(無我)는 곧 공(空)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육체는 곧 공인 것입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우주만물이 모두 공(空)인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 곧 반야심경이 해야 할일이며 반야심경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공(空)이라는 글자는 해석하기에 따라서, 허무하다, 허망하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아웅다웅 삶을 사는 것 자체가 너무나 허망하고 허무하다는 뜻이 됩니다. 세상이 모두 이렇게 허무하고, 인생이 모두 허무한데 무엇 하러 이토록 힘들게 사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면서 허무주의에 빠져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空)자를 허무하다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공(空)사상을 허무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악취공(惡取空)입니다. 악취공이라는 말은 공(空)사상 중에서 사악한 부분인 허무주의를 취해서 생긴 일종의 자기도취적인 병입니다. 불교에서 가장 금기시 하고 가장 꺼려하는 것이 바로 이 악취공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수행을 게을리 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어 득도를 한 것처럼 도사흉내를 내면서 돌아다니는 스님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악취공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불교 초창기 무렵의 인도에는 자연과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물질적 요소로서 “지(地, prthivi 땅), 수(水, ap 물), 화(火, tejas 불), 풍(風, vayu 바람)”의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시대로 오면서 자연과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는 색(色) 하나로 이루어졌다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자연과 인간을 구성하는 정신적인 요소로는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물질이나 육체보다는 정신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시대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인간은 육체와 정신 이렇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3~4천 년 전부터 육체를 (땅, 물, 불, 바람)의 4가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또한 정신을(느낌, 생각, 행동, 의식)의 4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색(色)

산스크리트(Sanskrit)어 루파(rupa)를 의역(意譯)한 것으로써 “인간의 물질적인 부분인 형체”를 말합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물질적인 부분인 “몸, 육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수(受)

산스크리트(Sanskrit)어 베다나(vedana)를 의역(意譯)한 것으로써 “정신적인 부분이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이 어떤 사물을 보고 딱딱할 것 같다 부드러울 것 같다 식으로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상(想)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즈나, 삼나(sam-jna)를 그 의역(意譯)한 것으로써 “정신적인 부분인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이 어떤 사물을 보고 “좋다 나쁘다”를 생각으로 구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행(行)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스카라(samskara)를 의역(意譯)한 것으로써 “정신적인 부분인 작용하는 것과, 정신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물을 보고 “저것을 내가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마음속으로 하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식(識)

산스크리트(Sanskrit)어 비즈나나(vijnana)를 의역(意譯)한 것으로써 “정신적인 부분인 식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옆에 누군가 있으면 그 사람을 의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 또한 식별이요 의식이라고 봅니다.

색불이공(色不異空)

색이 공과 다르지 않다. 위에서 설명한 공사상과 색, 수, 상, 행, 식을 참고하면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공불이색(空不異色)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

색즉시공(色卽是空)

색이 곧 공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

공이 곧 색이다.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수, 상, 행, 식, 또한 모두 그러하니라. 사리자야.

역부여시라는 말은 중국인들의 줄임말 방식으로, 수학적으로 말하면 인수분해를 해놓았다고 보면 된다. 그것을 줄이기 이전으로 모두 돌려놓으면 다음과 같이 돌려놓을 수 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수불이공 공불이수 수즉시공 공즉시수(受不異空 空不異受 受卽是空 空卽是受)
상불이공 공불이상 상즉시공 공즉시상(想不異空 空不異想 想卽是空 空卽是想)
행불이공 공불이행 행즉시공 공즉시행(行不異空 空不異行 行卽是空 空卽是行)
식불이공 공불이식 식즉시공 공즉시식(識不異空 空不異識 識卽是空 空卽是識)

사리자(舍利子)

위의 모든 내용을 간단하게 인수분해를 하면 다음과 같이 줄일 수 있습니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본문>

是 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시 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 모든 사물은 그 성질이 공하여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주석>

제법(諸法)

일체의 모든 법이라고 해석하며
일반적인 사물을 나타내는 말로서 식물, 동물, 무생물을 비롯하여 여기에 인간도 포함된다.

공상(空相)

공한 모양, 공한 형태

불생불멸(不生不滅)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불구부정(不垢不淨)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부증불감(不增不減)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다.

<본문>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판단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생각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생각의 대상도 없다.

<주석>

시고(是故)

옳을 시 자와 옛 고자의 합성으로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중무색(空中無色)

공(空) 가운데는 색(色)이 없다.
여기서 색(色)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

수, 상, 행, 식 또한 없다.
여기서 수, 상, 행, 식 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눈, 귀, 코, 혀, 몸, 생각이 없다.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빛,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본문>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시각의 영역도 없고 의식의 영역까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고 또한 어리석음이 다함
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다.

<주석>

乃至(내지)

a 내지(乃至) z 라고 하면 알파벳 abcdefghijklmnopqrstuvwxyz 를 모두 가리키는 말이다.
간단하게 A~Z 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이 단어를 원래대로 풀어놓으면 “눈의 경계도 없고, 귀의 경계도 없고, 코의 경계도 없고, 혀의 경계도 없고, 몸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도 없다“라고 풀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그러니까 눈의 경계도 없고 내지 의식의 경계도 없다. 라고 간단하게 인수분해 하여서 짧게 표현한 것입니다.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이 단어 또한 원래대로 풀어놓으면 “無明(무명)도 없고 無明(무명)의 다함도 없다, 行(행)도 없고, 行(행)의 다함도 없다. 識(식)도 없고, 識(식)의 다함도 없다. 名色(명색)도 없고 名色(명색)의 다함도 없다. 六處(육처)도 없고 六處(육처)의 다함도 없다. 觸(촉)도 없고 觸(촉)의 다함도 없다. 受(수)도 없고 受(수)의 다함도 없다. 愛(애)도 없고 愛(애)의 다함도 없다. 取(취)도 없고 取(취)의 다함도 없다. 有(유)도 없고, 有(유)의 다함도 없다. 生(생)도 없고 生(생)의 다함도 없다. 老死(노사)도 없고 老死(노사)의 다함도 없다“라고 풀어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그러니까 “무명도 없고 무명의 다함도 없다 내지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의 다함도 없다“라고 간단하게 인수분해 하여서 짧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12연기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12연기법이란 12가지의 인연을 말합니다. 연기법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있으므로 그것 때문에 인연이 되어 저것이 있다.’ 라는 식으로 인연이 되는 연결고리를 12연기법이라고 합니다.

12연기법에는 無明(무명), 行(행), 識(식), 名色(명색), 六處(육처), 觸(촉), 受(수), 愛(애), 取(취), 有(유), 生(생), 老死(노사) 의 12가지 순서가 있습니다.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

산스크리트(Sanskrit)어 드바-다상가-프라티티아-사무트파다(dva-dasa-anga- pratitya sa mutpada)의 의역입니다.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에 대한 설명
무명(無名, avidya) : [밝지 않음.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을 때 눈앞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듯이, 사람의 마음 또한 밝지 않아서 어떤 그릇된 생각을 하고도 그것이 옳은 생각이라고 판단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을 통 털어서 무명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불교에서는 본다. 불교속담에 무명의 소치, 무지의 소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 여기서의 무명을 두고 하는 말 입니다.]

행(行, samskara):[무명에 의해 그릇된 것을 옳은 것 이라고 판단하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이 발생하게 되고, 그렇게 발생한 대상을 실체화, 구체화 하려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행“이라고 합니다.]

식(識, vijnana) : [행에 의해 실체화, 구체화 된 대상이 생성되면 그 대상에 대해 무의식적으로나 또는 의식적으로 분별하고, 식별하게 됩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식”이라고 합니다.]

명색(名色, nam-rupa) : [식에 의해 어떤 대상을 분별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인식에 의해 그것이 물질적 존재인지 비물질적 존재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명색(名色)“이라고 합니다.]

육처(六處, sad-ayatana) : [명색에 의해 어떤 대상을 물질적 존재인지 비물질적 존재인지 판단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눈, 귀, 코, 혀, 몸, 뜻“에 의해 새롭게 그 대상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것을 불교 에서는 육처(六處)라고 합니다. 육처를 다른 말로 육근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물을 대할 때, “눈, 귀, 코, 혀, 몸, 뜻“에 의해서 그 사물을 판단하게 되는데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어떤 사물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인간이 내가 뭔가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 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전까지의 단계는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발생하는 것 들입니다.]

촉(燭, samsparsa) : [육처에 의해서 그 사물을 인식하게 되면 “색(色)·성(聲)·향(香)·미(味)·촉(燭)·법(法)”이 발생하는데 그것을 해석하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지각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촉(燭)“이라고 합니다. 모든 중생은 육처(눈, 귀, 코, 혀, 몸, 뜻)로 인식하게 되면 반드시 촉(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촉이란 접촉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도 접촉입니다.]

수(受, vedana) : [촉에 의해서 어떤 사물의 형상,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이 발생하게 되어 그것을 느끼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苦(괴로움), 樂(즐거움), 不苦不樂(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의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의 느낌이나 감정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수(受)“ 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인식 할 수 있는 모든 대상에는 언제나 괴로움, 즐거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3가지 감정 중에 한 가지 이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愛, trsna) : [수에 의해서 괴로움, 즐거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3가지 감정 중에 어느 한가지의 감정이 발생하게 되면, 모든 중생들은 그 세 가지 감정 중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만을 끝없는 갈증 같은 욕심으로 갈애(渴愛)하게 되고 그 대상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됩니다. 그 대상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맹목적인 사랑을 쏟아 부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애(愛)“라고 합니다. 여기서 애는 자비와 같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으로서의 사랑입니다.]
취(取, upadana) : [애에 의하여 그 어떤 대상에게 사랑을 쏟아 부었을 때 그 대상이 자신에게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추구된 즐거움의 대상을 자기가 소유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 그것을 취득하여 병합하는 작용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취(取)” 라고 합니다.]

유(有, bhava) : [취에 의해서 즐거움의 대상을 취하려고 노력한다면, 모든 중생은 그 소유하는 작업을 하게 된 대상을 결국 자신이 소유하게 됩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유(有)“ 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유(有)“ 라는 글자에 포함된 뜻은 있다(be), 된다(become)의 두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대상이 어떤 물질이면 소유하게 되면 있다, 없다 중에 있다가 되겠지만 그 대상이 어떤 물질이 아니고 생각이나 느낌라면 그것을 소유하게 되면 된다, 안 된다 중에 된다가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하는 존재(存在) 그 자체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형성 된 것입니다.

생(生, jati) : [유에 의해서 “그것이 있다, 또는 된다“로 소유하게 되면 그 사물이나 생각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생이란 단어는 모든 존재의 출생, 태어남을 뜻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생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생이란, 알에서 태어난 것, 모태에서 태어난 것, 물에서 태어난 것, 갑자기 태어난 것, 형태가 있는 것, 형태가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 지각이 없는 것,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 자체만으로도 죽지 않겠다는 생각을 태어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노사(老死, jara-marana) : [생에 의해서 그 대상이 태어나게 되면 그 대상이 그 무엇이드라도 결국 늙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노사(老死)“라고 합니다. 이 노사라는 것은 단순하게 사람의 육체가 늙고 죽는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자기 자신이 태어나고, 또 늙고 죽는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생각만으로도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발생한 괴로움을 불교에서는 괴로움이 태어났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괴로움조차도 그렇게 태어난 괴로움이기 때문에 반드시 늙고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생각이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것 그 자체도 불교에서는 태어났다가 늙고 죽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12연기법에 대한 설명의 끝입니다.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이라는 말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이 엄청난 12연기법이 이라는 것조차 반야심경에서는 “모두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틀렸다“고 부정하는 경전입니다.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반야심경, 알고 보면 반야심경은 정말로 무서운 경전 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부처님이 깨달으신 12연기법을 ‘없다.’ 라고 말하는 반야심경의 내용대로라면 어쩌면 그것을 깨닫고 설파하신 부처님 자체를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본문>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 故 菩提薩陀 依 般若波羅密多 故 心無罣碍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 고 보리살타 의 반야바라밀다 고 심무가애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없어짐,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또한 얻는 것도 없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다.

<주석>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무고집멸도라는 말은 고집멸도가 없다는 뜻으로 이 말은 “부처님이 설하신 불교의 사성제 또한 전부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파하신 사성제에 대한 전면 부정을 뜻합니다.

사성제(四聖諦)

산스크리트(Sanskrit)어 카투라-아르야-사티야(catur-arya-satya)를 그 의미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써 괴로움(苦), 괴로움의 모임인 집(集), 괴로움의 사라짐인 멸(滅), 괴로움의 사라짐을 위한 길인 도(道) 이렇게 네 가지 있으니 그것이 곧 사성제(四聖諦)이다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아는 것도 없고, 또 얻은 것도 없다. 바꿔 말해서 지혜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고故)

그러므로 써 “아무런 소득이 없다, 얻은 것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보리살타(菩提薩陀)

산스크리트(Sanskrit)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한문으로 번역할 때 소리나는 대로 번역하였는데 그것이 보리살타이다. 보리살타라는 단어는 bodhi(보디;깨달음)와 sattva(사트바 ; 사람)가 합쳐진 글자로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본래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하기 이전에 보리살타였다고 한다. 그것을 줄여서 菩薩(보살)이라고 부른다.

의(依)
의지하다. 의지하여.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

대 지혜의 바라밀, 참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육바라밀 중에서 지혜의 바라밀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글의 첫머리에 이미 설명했었다.

심무가애(心無罣碍)

마음 심(心), 없을 무(無), 거리낄 괘(罣)(거리낄 가), 거리낄 애(碍)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

<본문>

無罣碍故 無有空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 般若波羅密多 故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 반야바라밀다 고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른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주석>

  • 주의 주
    거리낄 괘(罣) 자를 작은 물고기 주(罜) 자와 혼동하기 쉽습니다. 분명히 다른 글자입니다.

무가애고(無罣碍故)

없을 무, 거리낄 괘, 거리낄 애, 옛 고, 거리낌이 없으므로 라고 해석한다.

무유공포(無有空怖)

없을 무, 있을 유와 공포의 합성어로
공포가 있을 수 없다. 라고 해석한다.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멀 원, 이별할 리, 뒤집어질 전, 뒤집어질 도, 꿈 몽, 생각 상,
원리전도몽상 이란 뒤집어진 꿈같은 생각을 멀리 이별하라는 뜻이다.

자동차가 옆으로 누운 것을 보고 전도되었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반야심경에서 나온 말입니다. 완전히 뒤집어진 것은 전복이라고 합니다.

구경열반(究竟涅槃)

끝낼 구, 다할 경, 자와 열반의 합성어로
마침내 열반에 이른다. 라고 해석한다. 끝낼 구(究)자는 마침내로 해석되었다.

삼세제불(三世諸佛)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들
삼세(三世)란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가지를 삼세라고 한다.
삼세제불이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이라는 뜻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의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의 지혜(최상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Sanskrit)어 아누타라(anuttar ; 무상(더할 나위 없이 높은)), 삼약(samyak ; 정등(가장 올바른, 완전무결한)), 삼보디(sambodhi; 정각(궁극적인 깨달음))를 소리 나는 대로 음역(音譯)한 것이다. 그것을 그 뜻에 맞게 의역(意譯)하여 번역하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으로 번역됩니다.

지혜의 완성은 심오하고 가장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본문>

故知 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

그러므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능히 온갖 괴로움을 없애주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주석>

고지(故知)

그러므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

지혜의 바라밀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글 첫머리에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시대신주(是大神呪)

크게 신비한 주문입니다.

시대명주(是大明呪)

크게 밝은 주문입니다.

시무상주(是無上呪)

위가 없는 주문입니다.(더할 나위 없이 높은 주문입니다.)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주문입니다. 등등(等等)이라는 말은 “등급을 매기다“라는 뜻이 됩니다.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주문이라는 뜻입니다.

능제일체고(能除 一切苦)

능할 능, 제거할 제와 일체, 그리고 “괴로울 고“자의 합성어 입니다.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진실불허(眞實不虛)

참진, 열매 실, 아니 불, 허망할 허,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본문>

故說 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해주니, 주문은 곧 이러하다.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주석>

고설(故說)

그러므로 말하노라

반야바라밀다주(般若波羅密多呪)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즉설주왈(卽說呪曰)

주문은 곧 이러하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薩婆訶)
가테 가테 바라가테 바라삼 가테 보디 스바하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건너가자, 건너가자 넘어서 건너가자 모든 것을 넘어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자 그 곳에서 깨달음을 얻으리라

반야심경은 부정을 통해서 진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승불교(근본불교)에서는 중생의 입장에서 부처님이 되기 위하여 부처님의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느라,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 등이 있다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대표경전인(반야심경)에서는 반대로 이미 완벽하게 깨달으신 관세음보살(관자재보살)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중생이라 할 것도,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과 그 방법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까지 합쳐서 총 270자에 불과한 반야심경에는 ‘아니 불(不)’자가 9자, ‘없을 무(無)’자가 21자, ‘비어있을 공(空)’자가 7자나 쓰였습니다.

반야심경의 본문은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긍정 표현은 거의 없고, “무엇은 무엇이 아니고, 무엇은 물론, 무엇 무엇 까지도 없다.” 란 부정 표현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한글 반야심경]

위대한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

관자재보살께서 깊은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는 실천을 행하실 때, 모든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텅 비어있는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벗어났다. 사리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판단도 또한 그러하다. 사리자여. 이 모든 사물은 그 성질이 공하여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판단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생각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생각의 대상도 없다. 시각의 영역도 없고 의식의 영역까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고 또한 어리석음이 다함 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다.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없어짐,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또한 얻는 것도 없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다.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른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능히 온갖 괴로움을 없애주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해주니, 주문은 곧 이러하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저 언덕으로 완전히 가면, 깨달음을 이루리라

108번뇌(百八煩惱)

(12처, 6근, 6경) 

1 눈[眼] 형상[色] 

2 귀[耳] 소리[聲] 

3 코[鼻] 향기[香] 

4 혀[舌]  맛 [味] 

5 몸[身] 감촉[觸] 

6 뜻[意]  법 [法] 


1 선하고 좋음(好) 

2 모질고 악함(惡) 

3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음(平等) 

4 괴로움 (苦) 

5 즐거움 (樂) 

6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음 捨(不苦不樂) 


1 과거 

2 현재 

3 미래 

(6X6)X3=108 그래서 108번뇌라고 합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

  1.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는 산스크리트(Sanskrit)어 다나-파라미타(dana-paramita)의 의역으로 자기 소유물을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2.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사라-파라미타(sala-paramita)의 의역으로 계율을 잘 지니는 것을 뜻한다. 국가에는 법률이 있고 사회에는 도덕이 있다.

  3.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크산티-파라미타(ksanti-paramita)의 의역으로 괴로움을 받아들여 참는 것이다. 인간은 조금만 욕된 일을 당하면 분을 참지 못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곧 좌절되기 쉽다.

  4.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비르야-파라미타(virya-paramita)의 의역으로 부지런히 노력하여 방일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5.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디야나-파라미타(dhyana-paramita)의 의역으로 신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와는 달리 인간 존재에 대한 실상을 밝혀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무지를 타파 하려는 종교적 특성으로 산란한 마음을 버리고 고요히 사색을 해야 한다.

  6.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산크리스트어 쁘라즈냐-파라미타(prajna-paramita)의 의역으로 최상의 지혜를 말합니다. 육바라밀에서의 반야바라밀은 보시에서 선정에 이르는 다섯 바라밀의 주도자이며 그들의 성립 기반이 되는 바라밀이라 할 수 있다.

팔정도(八正道)

  1. 정견(正見)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약-드르스티(samyak-drsti)를 의미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써 바르게 본다는 뜻입니다.

  2. 정사유(正思惟)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약-삼카르파(samyak-samkalpa)를 의미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써 바르게 사유한다. 또는 바르게 마음먹는다는 뜻입니다.

  3. 정어(正語)는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약-바크(samyak-vac)를 의미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써 바르게 말한다는 뜻입니다. 네 가지 선한 구업(口業)업을 뜻합니다.

  4. 정업(正業)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약-카르마-안타(samyak-karma-anta)를 의미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써 바르게 일한다는 뜻입니다. 세 가지 선한 신업(身業)을 뜻합니다.

  5. 정명(正命)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약-아지바(samyak-ajiva)를 의미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써 바르게 생활한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정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의식주를 구할 것이 권해지고 있다.

  6. 정정진(正精進)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약-브야야마(samyak-vyayama)를 의미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써 바르게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물러섬이 없이 마음을 닦는 것이 권해지고 있다.

  7. 정념(正念)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약스-무르티(samyak-smrti)를 의미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써 바르게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8. 정정(正定)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 삼약-사마디(samyak-samadhi)를 의미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써 바르게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라는 뜻으로써 삼매(三昧)라는 음역(音譯)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십이처(十二處)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을 말한다.

십이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눈으로 물체를 느끼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의식으로 지각하는 일을 말한다.

육근(六根)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서 6가지의 주관적인 인식작용 즉, 눈, 귀, 코, 혀, 몸과 생각을 말한다.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으로서 6가지의 객관적인 인식작용 즉, 물질, 소리, 향기, 맛, 촉감과 법을 말한다.

삼법인(三法印)설인 모든 행은 무상하고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법은 무아요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은 적정하다. 열반적정(涅槃寂靜)

석가모니부처님은 실존인물이라서 우리가 그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그 외의 다른 부처님들은 우리가 어떻게 그 존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이라는 분들의 속성을 잘 이해하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부처님이란 영원하고도 보편타당한 최고의 진리를 깨달은 분이며, 석가모니부처님도 그와 같은 진리를 깨달음으로 인해서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그 진리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시든 안 계시지든 간에 이미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진리 자체가 부처님 이므로 그러한 여러 부처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가 곧 부처님 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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