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순간이 내 생의 전부
-법상스님-
우리의 삶 속에 펼쳐진 그 어떤 일이라도 오직 ‘지금 여기’에서 그 순간순간이 그대로 목적이 돼야 한다.
그랬을때 마음은 분열을 멈추고 , 내적인 평화를 맞이 할 수 있다.
마음이 즉(卽)한 순간 깨어 있으면 그 순간 우리는 온 우주와 하나가 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가 산 세상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요, 오직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그 순간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놓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을 돌아보자.
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하고, 무엇인가 목적달성을 위해 애쓰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과 집착의 사슬에 빠져 한시도 만족하지 못하며, 한시도 도착의 평화로움을 맛보지 못하는 이 마음을 우리 삶이란 것이 그렇게 끈임없이 목적지를 향해 남들을 더 많이 제치면서 달려가는 데 혈안이 되어있지, 한시도 멈추고 비우며 자족하는 도착의 삶, 순간의 삶을 산 적이 없지 않은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이 모든 욕망과 집착에 얽매인 마음, 결과와 목적을 향해 치닫는 마음에 제동을 걸어보자.
그 목적지를 향한 삶의 속도를 멈추는 순간, 이미 행복의 정원에 도착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빨리 달릴수록 더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멈출수록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수행이며 명상, 기도란 것도 사실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깨어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렇기에 모든 수행과 명상의 궁극도 깨달음을 향해 달려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멈춰서는 깨어있음에 있다.
그러니 참선.염불.독경.진언.
절 등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려고 해선 안 된다.
참선하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참선 수행을 하기 위해 선방에 가는 순간도 그것이 절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 위한 준비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절로 가는 그 걸음걸음을 위한 과정이 아닌 바로 깨닫는 그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절에 가는 순간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면 그것이 그대로 경행 수행이 된다.
그랬을 때 절에 가는 과정도 참선이며, 절에 가서 앉아 있는 것도 참선이다.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경전을 꺼내어들고 방석을 펴는 순간, 매 순간순간을 놓치지 말고 깨어 있으면 수행과 생활이 따로 없고, 과정과 목적이 따로 나뉘지 않는다.
지난 내 삶을 돌이켜 보라.
내 삶의 속도를 느껴보라.
시간이란 것이 다 우리가 만들어낸 조잡한 관념에 불과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스쳐 지나가는 이 시간 속에 내가 온전히 살고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되는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순간을 살면 시간은 없다.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는데 시간이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을 살때, 매 순간 도착해 있으며, 매 순간 현존의 깨어 있음이 빛을 밝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잡는 것은 ‘그 순간’만을 잡는 게 아니라 ‘삶 전체’를 잡는 것이다.
이 새로운 순간, 이 소중한 시간 시간을 결코 소홀히 흘려보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