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한정을 내려놓고 무한 능력을 일깨우라
-법상스님-
본래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에 대해 ‘나의 능력은 이정도야’ 라고 스스로 자기 한정의 관념을 만들어 놓곤 합니다.
그리고는 그 능력 밖의 일에 대해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덮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내 능력은 이 정도야’ 라고 할 때 그 순간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제한하고 한정짓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의 능력이라는 것은 한정지어진 개념이 아닙니다.
한정한다는 것은 이미 무엇인가가 얼마만큼 있다는 말이지만 본래 우리의 본성은 텅 비어 있기에 얼마 만큼이라는 한정이 있지 않습니다.
텅 비어 무엇이라도 또 얼마만큼이라도 담을 수 있는 모양이 없고 크기도 없는 공(空)의 그릇입니다.
공이란 텅 비어 있다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권능이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현실이란 우리 본바탕의 실체 없는 법신 주인공이 잠시 실체 없는 연(緣)을 따라 실체 없는 중생심을 일으켜 만들어 낸 것일 뿐입니다.
겉 껍데기의 허상을 보지 말고 내면에 또 이 우주에 가득하여 충만한 법신 부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인가 해외토픽에 나온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시장에 갔다 돌아오는 어머님이 집앞에 뛰어놀고 있는 아들을 불렀는데 아이가 어머니를 향해 뛰어오다가 그만 차에 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차 밑으로 들어간 아들을 향해 달려가 차를 힘껏 치켜들고는 아이를 구해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힘이 어디서 나왔나 하여 다시 들어보도록 했더니 꼼짝도 안 하더라는군요.
아들이 차에 치인 순간 어머님의 머릿속에는 내가 저 차를 들 수 있을까! 얼마나 무거울까! 무거운데 들지도 못할꺼 119에 전화나 할까! 하는 등의 그 어떤 분별이 있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 순간 차를 향해, 아들을 향해 달려간 것입니다.
그 어머님의 마음에 자기한정의 관념은 도저히 붙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할 수 있겠다 없겠다 하는 그 어떤 분별도 가지지 않았겠지요.
오직 자식을 향한 일념만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끌었을 것입니다.
오직 목표를 향한 순수하고 텅빈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보듯이 본래 우리가 가진 능력은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기한정의 관념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스스로 빠지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처럼 굳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결국 내 능력도 내 스스로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자기 한정의 늪에서 벗어나세요.
그래야 자신의 능력을 무한히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자기한정이라는 것은 이미 자아라는 아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의미합니다.
본래 나가 없고 상대가 없다면 나는 안되고 상대는 된다는 분별도 사라집니다.
이 세상 그 누군가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나 또한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니 그 누구도 못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 첫 번째 성취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힘겨운 일을 당해서도,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스스로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마음은 버려야 할 첫 번째 관념입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나약한 마음이 반복되면 그 마음은 점차 실체화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대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보기 전에 ‘나는 교수다’라고 5분간 상상을 하도록 시킨 뒤 시험을 보았더니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점수가 올랐다고 합니다.
또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라디미르 라이코프 박사는 한 사람에게 최면을 건 뒤 ‘나는 렘브란트다’라고 상상하게 했더니 렘브란트 뺨치게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합니다.
이렇듯 자신이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천재라고 상상하면 실제로 그 천재성이 자신에게 나타나는 효과를 ‘라이코프 효과’라고 합니다.
마음도리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본래 한정된 것,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마음 일으킨대로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본래 우리의 마음속에는 모든 것이 원만하게 구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한정짓지 않고 텅 비어 무엇이라도 다 담을 수 있도록 밝게 열린 마음을 연습 하세요.
‘된다’ ‘된다’ 하는 마음 담아 두면 절로 되어지고, ‘안된다’ ‘안된다’ 하는 마음 담아 두면 될 일도 그르쳐지는 것이 바로 마음의 이치입니다.
혹시 사업이 잘 안 되더라도 왜 이렇게 사업이 안되지 하는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누가 묻더라도 ‘잘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잘 될 수 있도록 하는 마음공부, 마음연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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