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주고 받는 마음

주고 받는 마음

-법륜스님-

줄 때는 뿌듯하다가도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고, 받을 때는 고맙다가 그 고마움이 날이 갈수록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이런 갈등이 커지면 ‘차라리 주지도 받지도 않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이럴 때 불자로서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욕구가 충족될 때 기쁨을 맛봅니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괴롭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그 욕구가 충족될 때도 있지만 충족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행복할 때보다는 불행할 때가 더 많습니다.

불평이 많고 불안하고, 남을 미워하고 화나고 외롭고 슬픈 이것이 다 무엇 때문일까요? 자기가 바라는 대로 안 되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슬퍼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맞춰주지 않으면 보기 싫어지고, 그래도 눈앞에 자꾸 보이면 ‘꺼져’하고 고함치고, 그래도 안 없어지면 죽여 버리고 싶지요.

그런데 현명한 사람은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려면 나도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주는 것이 있어야 받을 것이 있고, 복을 지어야 복을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주고받는 것은 베풀되 받으려는 욕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복을 지을 때도 받기 위해서 짓고, 사랑할 때도 사랑받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죠.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라고들 합니다.

그런 부모도 힘들면 ‘내가 너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에는 ‘내가 너를 키우는데 이만큼 애를 썼으니 너도 나한테 보상하라’고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원망하게 됩니다.

바라는 마음이 바로 모든 ‘고(苦)’의 근원입니다.

만약 이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미워할 일이 없고 원망할 일이 없어요.

‘베풀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는데 바라는 마음 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주상 보시’의 뜻입니다.

그러면 절대로 안 받아야 하느냐? 그것 또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남의 은혜 속에 사는 것인데 어떻게 받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남의 은혜 속에 살고 있으면서 나는 늘 베풀기만 하지 받지는 않는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저 태양의 은혜, 물과 공기의 은혜, 땅속에 있는 수많은 박테리아의 은혜, 곡식의 은혜, 농부의 은혜, 노동자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고, 남편과 아내의 은혜, 부모와 자식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체중생의 은혜 속에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면 은혜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물질이 없으면 마음으로라도 감사하고, 몸뚱이밖에 없으면 가서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위축되거나 빚진 기분이 드는 게 아닙니다.

빚졌다는 생각은 네 것, 내 것이 있다고 하니까 생기는 것이지요.

우리는 누구나 필요하면 햇볕을 쬘 수 있고, 공기로 숨 쉴 수 있고, 물을 마실 수 있어요.

그처럼 내가 필요해서 다른 사람을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나 또한 쓰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쓸모가 있는 삶이에요.

쓰고 쓰이는 관계라는 것을 알면, 도움을 받으면 고마운 마음을 내되 위축되지 않고 내가 남에게 도움을 주되 바라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쓸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베풀 때의 마음가짐, 받을 때의 마음가짐입니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