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쉽게 닦아가는 생활수행법

쉽게 닦아가는 생활수행법

-법상스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냥 그냥 산다고 답하고, 사는게 힘드냐고 물으면 그냥 그냥 괜찮다고 하고 갈 일입니다.

수행하는 ‘일’을 버리셔야 참된 수행입니다.

수행을 하나의 일로 알고, 깨달음을 하나의 목표로 알고, 마음의 평온을 얻기위해 애를 쓴다면 그 사람은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공부해 나갈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쉬운 것이 공부입니다.

너무 쉬워서 다들 너무 어려워 하니 문젭니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놓으세요.

행복해 지려는 마음을 놓으세요.

부자 되려는 마음도 놓고 무엇이든 ‘어떻게’ 되려는 마음이 있다면 바로 그 마음이 놓아야 하는 마음입니다.

어떻게 될 것도 없고, 무엇이 될 것도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니고, 불성을 찾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그 자체를 드러내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불성으로 주인공으로 자성부처님으로 그냥 살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이 온전한 순간이며, 이 순간이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임을 부처님의 숨결임을 느끼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애쓰지 마세요.

힘 들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고민하지도 말고, 질책하지도 말고, 조급해 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편안히 두고 항상 물 흐르듯 순리에 따르면서 이 세상의 흐름에 턱 내맡기고 따라 흐르게만 내버려 두세요.

그것이 전부입니다.

더 무엇을 할 것이 있겠어요.

깨닫겠다고 행복해 지겠다고 어찌 어찌 되겠다고 애써 고민하고 생각하지 마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아무것도 잡지 말고 그저 내맡겨 흐르면 됩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가 자성부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온전히 믿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렇게 부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온전히 믿고 맡기면서 따라 흐르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 되기 싫어도 부처님되고, 깨닫기 싫어도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아니 그 순간 순간이 바로 부처님인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잘 안 풀리는 일들도, 괴로운 일이든, 힘겨운 일이든, 외로움이든, 서글픔이든 그 모든 일들이 다 자성부처님께서 이끄시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지요.

이 현실의 흐름에 나를 내맡겨야지요.

그렇게 내맡기고 함께 따라 흐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흐름을 믿지 못하고 이런 현실을 믿지 못하고 애써 거부하려 하고, 믿지 않으려 하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어요.

다 받아들이고 굳게 믿고 맡기면서 편안히 가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그러니 수행자의 얼굴은 늘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어찌 어찌 해 보려고 애쓸 일이 없고, 안 된다고 답답할 일이 없고, 그저 평온하게 다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거닐 뿐입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여여하고 평온한 삶인 것이지요.

수행이 안 되는 이유는 한 가지 이유 뿐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내 앞에 펼쳐진 이 현실이 부처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 깨달음으로 이끌고 가시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니 괴롭고 답답한 것입니다.

현실이 조금 힘들고 괴롭더라도 아니 너무나도 많이 힘겹고 죽고 싶을 정도일지라도 그 현실은 자성부처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가시려는 자비로우신 이끔입니다.

부처님은 괴로운 것 안 받게 하고, 즐거운 것만 받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거든요.

받을 것은 당당하게 받게 하시는 것이 자성부처님의 자비로우신 이끔인 것입니다.

또 그렇게 받을 것은 받고 가야 받음으로써, 그래서 조금 괴로움으로써 그 괴로움의 경계는 녹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녹여 주시는 것이지요.

바로 그 점을 온전히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조금 괴로운 현실이라도 거부하려 하지 말고, 다 받아들이고 자성부처님의 자비로운 이끔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놓으면서 이렇게 일어나는 현실을 비추어 보시면 됩니다.

그것 말고 따로 수행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가는 길이 수행자의 길인데, 중생의 길은 현실을 받아들일 때, 즐거운 것만 받아들이고, 괴로운 것은 거부하려 든단 말입니다.

지을 때는 나쁜 짓도 하고 좋은 일도 했으면서 받을 때는 나쁜 짓의 과보는 안 받으려 애쓰고, 좋은 일한 과보만 받고 싶어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거부하려는 자신의 의지 때문에 업을 짓게 되고, 삶이 고단해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꾸 쌓는 일이지요.

지었으면 지은대로 받아야 놓고 가는 길이 되는데, 지어 놓고 받지 않겠다고 하고 도망치니까 지은 것들이 자꾸 쌓여 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괴로움으로 만드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제 마음을 돌이키셔야 합니다.

애쓰는 삶에서 순응하는 삶으로, 거부하려는 삶에서 받아들이려는 삶으로, 내가 사는 삶에서 자성부처님께 맡기고 놓고 가는 삶으로 말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이라는 것은 온전한 부처님의 자비로운 이끔입니다.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억지로 애쓰고 거부하려 하지 않는 이상 늘 그렇듯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자성부처님의 자비로운 이끔으로 충만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아무런 고민도 없이 평화로운 웃음만 지으면서 어머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며 가듯, 우리들 또한 아무런 고민도 하지 말고, 애쓰지도 말고, 무엇이 되려 하지 말고, 어떻게 되려 하지 말고, 오직 평화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지금의 이 현실 그대로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며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맡기며 자성부처님의 이끔대로, 지금의 현실 그대로 살면 우리는 깨달음을 향해 가는 것이 되고, 순간 순간 깨달음의 숨결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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