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내 모습
-법륜스님-
과거 집착해 질책하면 망상의 늪에만 빠질뿐 있는 그대로 알아보고 내려놓는 것이 참 수행 부처님 법을 만나 공부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서 죄송하다는 생각에 참회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내 모습이 못마땅하게 느껴져서 의기소침해 지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많습니다.
무의식 깊숙이 죄책감이 있다는 생각도 들고, 나를 심판하는 내가 있어서 나를 질책하고 억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모습 그대로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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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하는 나, 질책하는 나, 지켜보는 나, 지켜봐지는 나, 지금 ‘나’가 너무나 많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나를 끌고 다니면서 복잡하게 만듭니까.
부모님을 원망하다가도 ‘그래, 부모님이 이렇게 많은 것을 나에게 주셨는데 내가 그동안 바보 같이 원망만 했구나.
부모님, 감사합니다’하고 참회하게 되었다면 거기서 끝나면 됩니다.
원망했던 나를 원망하는 것은 병을 고친 게 아니라 화살이 부모님에게서 나에게 옮겨진 데 불과합니다.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듯이 이미 지나간 어리석음을 움켜쥐고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을까, 나한테 문제가 있었구나,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이렇게 스스로를 질책하는 것도 수행이 아닙니다.
자꾸 자기를 질책하는 생각 속에 머무르다 보면 우울한 마음이 병으로까지 깊어질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깊은 늪 같아서 한번 망상을 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빠져들게 되고, 그러면 그 생각이 현실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땐 머리를 흔들고 거기에서 탁 빠져 나와야 됩니다.
앉아 있을 때 그런 생각이 나면 벌떡 일어나고, 서 있다가 그러면 움직이고, 목욕도 하고, 산책도 하고, 절을 하든지 일부러 육체노동을 찾아 해서라도 생각에 빠질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죽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서 벌떡 일어나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그 순간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얼떨결에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곤 전화한 친구와 가벼운 몇 마디를 농담처럼 주고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샌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 다고 합니다.
마음의 변화는 그렇게 찰나 찰나 변하며 일어납니다.
망상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현실의 부모님이 내가 그려놓은 부모의 상에 미치지 못한다고 원망했던 것처럼, 내가 그려놓은 나의 상이 강하면 현실의 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책하게 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돼야 한다, 나는 짜증내면 안 된다, 나는 미워하면 안 된다, 나는 수행자다, 이런 식의 자기규정은 다 허상입니다.
자꾸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각오하고 다짐할 게 아니라 짜증 내고 있는 나, 화내고 있는 내 모습을 알아차리는 게 시작입니다.
그리고 다만 알아차릴 뿐이지 미워하면 안 됩니다.
나는 짜증내지 않아야 한다고 정해 놓았기 때문에 짜증내는 내 모습이 싫고 내 자신이 미워집니다.
나에게 화내는 상대를 미워하지 않듯이 화내는 나를 미워하지 마세요.
수행자는 화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화가 났을 때 화내는 나를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사람 입니다.
길을 걷다 넘어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서 가던 길을 가되, 다음에는 넘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또 조심할 뿐이지 넘어진 나를 문제 삼지 마세요.
담배피우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몇 시간만 지나면 담배 생각이 나고 시도 때도 없이 피우고 싶은 마음에 시달리는 게 당연합니다.
피우고 싶어 하는 나를 알아차리고 내려놔야지 피우면 안 된다는 다짐에 매달리면 안 됩니다.
해야 된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니까 결심한 대로 잘 하지 못하는 자기를 미워하는 겁니다.
바람직한 자기 모습을 마음속에 규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어 살려고 하면 힘이 듭니다.
일어나는 그대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보고 알아차리고 나아가면 됩니다.
그래도 전보다는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긍정적으로 보고 자긍심을 갖고 부지런히 정진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