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운명은 어제의 습관에서 결정된다

운명은 어제의 습관에서 결정된다. …

법륜스님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걷다가 새끼줄을 발견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옆에 있던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에 썼던 새끼줄인지 알겠느냐?” “네.

생선을 엮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비린내가 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길을 떠난 일행이 이번에는 종이를 발견했습 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종이는 어디에 썼던 것인지 알겠느냐?” “네.

향을 쌌던 종이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겠느냐?” “종이에서 향내가 납니다.” 이렇듯 길거리에서 버려진 새끼줄조차도 어디에 썼는지 흔적이 남습니다.

생선을 엮었던 새끼줄은 비린내가 배어서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비린내가 납니다.

반면 향을 쌌던 종이는 버려진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종이에 향내가 남아 향을 쌌던 종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인간도 이와 같이 흔적을 남기며 하루하루를 살아 갑니다.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처럼 비린내가 나는 사람도 있고, 향을 쌌던 종이처럼 향내가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나간 인생은 다 흘러가 버린 줄 알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쌓이게 됩니다.

이처럼 쌓여서 누적된 것이 바로 각자의 카르마(업) 입니다.

쉽게 말하면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에 밴 습관,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지요.

또 다른 측면에서는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에 어떤 습관이 생기면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불쑥 튀어나옵니다.

“왜 그랬지?” “예, 저도 모르게 그랬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무의식적으로 그랬다는 말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말하고 행동하는 순간에 무지했다, 앎이 없었다, 알아차림이 없었다는 뜻도 됩니다.

그렇다면 왜 그 순간에 알아차림이 없이 무지의 상태 에서 행동하게 되었을까요?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해온 것이 쌓여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내가 알아 차리지 못했고, 내가 깨어서 내 의지를 갖고 행동한 게 아니란 겁니다.

우리는 매순간 깨어 의지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살아갑니다.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내 습관, 카르마가 삶의 주인이지 내 자신이 삶의 주인은 아닌 거예요.

이렇게 볼 때 내 운명이란 바로 카르마의 흐름이라 할 수 있어요.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운명의 흐름에 떠내려가는 존재에 불과해요.

바로 이런 존재를 중생이라고 합니다.

카르마의 흐름에 떠다니며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 바람이 멈추면 어느 개울, 어느 골짜기에 떨어질지 모르는 존재예요.

이런 인생을, 육도를 윤회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카르마가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해요.

습관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늘 깨어서 삶을 살아야 해요.

그런데 습관에도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이 있어요.

나쁜 습관은 부처님의 비유대로 표현한다면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좋은 습관은 향을 쌌던 종이에서 향내가 나느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나쁜 습관보다 좋은 습관을 많이 가질 때 자유롭고 행복 해지는 데 도움이 돼요.

우리의 인생은 계속 흘러갑니다.

그러나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의 운명은 이리저리 휘둘리며 괴로움속에 살게 돼요.

마음의 눈을 뜨고 실상을 보세요.

이때 비로소 우리는 지혜로워지고,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스님의 주례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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