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삶의 문제를 푸는 방식

삶의 문제를 푸는 방식

-법상스님-

음을 간절하게 내면 그것은 현실로 나타난다.

어떤 것이 필요할 때, 그것에 대한 욕심이 없고 다만 간절한 마음 냄이 있다면 때때로 그것은 필요에 따라 응해 주곤 한다.

청정한 마음이 깊게 일어날 때, 내 안의 마음과 모든 세포들이 함께 마음을 일으키고 불어 내 밖의 모든 존재며 생명들이 법신으로써 서로 통하여 그것을 만들어 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맑음’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여기서 맑음이란 말은 욕심이 없어야 하고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며, 또한 그 일으킨 마음에 대한 바람과 집착까지도 다 놓아버리고 한 생각 일으킬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불사를 할 때도 욕심으로 너무 과하게 하다보면 되려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고, 다만 ‘필요’에 의한 불사를 집착 없이 부처님께 맡기고 하면 어느새 인가 인연 따라 필요한 것이 저절로 생겨나게 마련이다.

모든 일이 그렇다.

일에 대한 욕심을 놓아버리고 인연 따라 턱 맡겨 놓고 시작하면 되어야 할 일은 법계에서 되도록 이끌어 준다.

삶 속에서의 수많은 의문들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풀 수 있다.

이를테면 의문 나는 것들을 마음속에서 간절히 알고자 하면 이 법계 어디에선가 그 답을 알려주곤 한다.

어느날 이름모를 야생화를 보았을 때 그 궁금한 마음을 화두 던지듯 내 안에 턱 던져 놓으면 얼마 안 있어 문득 책이나 신문에서 본다거나, 혹은 그 꽃을 아는 분께서 알려 주신다거나, 때때로는 문득 열어 재낀 책 속에서 알게 된다거나 그렇게 자연스레 그 답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불교를 공부할 때도 그렇다.

의문이 드는 것이 있을 때 내 안에 그 의문을 턱 던져 놓으면 내 안에서 경계를 마주하면서 문득 ‘아 그렇구나’ 하고 알아지기도 하고, 때때로 어떤 선지식 인연을 만나 답을 듣기도 하며, 문득 손에 잡은 책 속에서 그 답을 만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의문을 푸는 방법은 내 안에 턱 맡겨 놓고 그 안에서 답을 찾도록 하는 것이 가장 근원적인 방법이다.

농사 짓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농사에 대해 아직도 많이 서툴지만 그래도 이만큼 텃밭이라도 가꾸게 된 것도 다 이 공부를 통해서 얻은 소득이다.

처음 농사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마침 그 시기에 농사짓는 신도님께서 새벽예불을 나오게 되셨고, 약초며 나물에 대해 궁금할 때 새로 옮긴 도량에서 그 방면의 전문가이신 신도님을 만나기도 했다.

늘 그런 방식으로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곤 한다.

그렇다고 이 말을 마음 내면 법계가 다 알아서 해 준다고 고정 짓고 들으면 안 된다.

무조건 마음 내면 다 된다는 말이 아니다.

되도 되는 거고 안 되도 되는 것일 수 있어야 참말로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삶의 모든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내 안에서 항상 진리의 답이 물음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삶의 문제의 해답은 항상 내 안에 있고, 그것을 푸는 방법 또한 늘 내 안에 있다.

안으로 맡겨 놓으면 나와야 할 것이 나온다.

불법을 공부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경전을 보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화두를 품듯 안으로 질문을 던지고 맡겨 놓으면 어느 정도 꽉 막히는 시간을 지나 문득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내면에서 드러나게 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이 수행자가 삶의 문제를 푸는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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