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창조하는 세 가지 방법
-법상스님-
근본 불교의 가르침에 보면 ‘나’라는 존재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온(蘊)’이란 ‘모임’의 뜻으로 일체는 다섯 가지가 모여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오온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다섯가지의 요소인데, 이 가운데 ‘색’은 물질적인 육신을 가르키고 ‘수상행식’은 마음을 가르킨다.
즉, 마음이란 곧 ‘수상행식’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수상행식이 일체 모든 것을, 나아가 나의 삶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먼저 ‘식(識)’이란 마음(心)과 동의어로 ‘수상행’의 도움으로 대상을 아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수상행’에 대해 교리적이기보다는 조금 단순화시켜 살펴보고자 한다.
‘수상행’의 작용을 알면, 그 세가지 마음 작용을 근거로 ‘식’, 즉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수온(受蘊)이다.
수온은 ‘느낌, 정서, 감정’을 말한다.
즉, 느낌과 감정이 세상을 만들어낸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느끼며 사는가 하는 것이 바로 내 미래의 삶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기쁨을 주로 느끼며 사는 이에게는 기쁠 수밖에 없는 삶이 만들어지고 풍요로움을 느끼며 사는 이에게는 더 많은 풍요를 누릴 수밖에 없는 부유한 삶이 창조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언제나 ‘중립’이지만 분별과 판단이 좋거나 싫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택은 외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의 상황을 자기 스스로 ‘좋은 느낌’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좋은 느낌을 받으면 바로 좋은 느낌의 삶이 창조된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그동안 좋은 상황일 때 좋은 느낌을 받는다고 생각해왔을 뿐, 거꾸로 좋게 느낄 때 바로 좋은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간과해왔다.
무엇을 느끼며 사느냐가 일체유심조의 핵심 원리이다.
지난 일주일 간, 한 달간 나는 주로 무엇을 느끼며 살아왔는가.
기쁘고 행복했는가 아니면 슬프고 괴로웠는가.
바로 그 결과대로 나의 미래와 삶은 창조되는 것이다.
지난 세월을 우울하게 살아온 사람은 동시에 우울한 삶을 창조해왔던 것이다.
두 번째, 삶을 만들어내는 마음 작용은 상온(想蘊)이다.
수온은 감정적인 데 반해 상온은 사상, 지식, 견해, 신념과 같은 이지적인 사고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즉, 생각하고 사고하며 지견으로 만들어낸 것들이 곧 미래의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평소에 무엇을 생각해왔는가, 똑같은 현상을 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지가 그 사람의 삶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안에는 생각이라는 필터가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이라는 필터가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와 삶을 바라보는 데에도 쓰인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반복적인 생각은 에너지를 가진 채 자신의 삶을 창조해낸다.
생각 또한 느낌처럼 실체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각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인지,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인지는 습관 같아서 스스로 바꾸어 갈 수 있다.
이처럼 생각이란 하나의 창조 에너지로서 내 삶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마음이다.
세 번째, 삶을 창조해내는 것은 행온(行蘊)이다.
물론 행온은 수온과 상온 이외의 모든 심리적 작용들을 의미하지만 행온의 가장 전통적인 해석은 의도적인 욕구, 바람,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즉,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연금술사)에서 말하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바로 이 행온의 작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순수하게 원하되 집착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원하되 집착하면서 원하면 그것은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
‘집착’이야말로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인가, 오히려 원하는 것을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인가로 나뉘는 중대한 분수령인 셈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며, 집착 없이 원하고 바랄 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 진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집착 없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창조의 힘이다.
욕망하지 않고 단순히 원할 수 있다.
집착 없이 행하고 욕망 없이 원하라.
이상에서처럼 세 가지 마음 작용을 잘 사용할 때 일체유심조의 이치를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행복을 먼저 느끼고 생각하며, 순수하게 바랄 때 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세상 또한 공한 것이다.
오온개공(五蘊皆空)이 아닌가.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방편의 힘을 자유롭게 사용하되, 그 자체에도 얽매이면 안 된다.
원한다면 삶을 뜻대로 창조하되 그 또한 꿈이며 환상임을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