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광스님─현재에 헌신하며 법신에 귀의하라

현재에 헌신하며 법신에 귀의하라

-지광스님-

배부르고 편한 자가 도를 닦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악마는 그에게 재앙을 주어 수행을 하도록, 법을 가까이 하도록 일깨운다.

악마는 그의 적이 아니라 그의 도반이다.

욕망에 의해 타오르는 불길을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

오직 법의 단비로만 그것을 끌 수 있다.

진리를 갈구하는 자, 부처님을 따르라.

부처님의 축복이 마음깊이 스며들 때 해탈은 그의 품안에 있다.

모든 인연의 사슬을 걷어내라.

혈족마저 벗어나라.

나무뿌리를 자르면 잎들이 마르듯 인연의 뿌리를 끊으면 윤회는 끝난다.

등불의 불빛이 밝혀지는 순간 아승지겁의 어둠이 사라지듯, 깨달음의 강한 불빛이 번쩍이는 순간 억겁무명의 베일은 걷혀지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과 감각에만 신경을 쓸 뿐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다.

본성에 대한 자각과 복종은 무조건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항상 부처님께 헌신하라.

과거의 죄업을 참회하라.

미래는 지금 내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결정되기에 현재에 헌신하라.

현재에 열중하라.

부처님과 자신의 본성에 헌신하는 자는 ‘지금 여기에’ 모든 것을 걸라.

이들 거룩한 헌신자는 이 순간 물질계에 살면서도 물질에 얽매이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니고 임시로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맹인이 눈앞의 태양을 보지 못하듯 물질에 눈먼 자들은 여기 이 순간 법신을 보지 못하고 온 세상을 찾아 헤맨다.

나그네가 저녁노을이 질 때 낯선 마을에서 하룻밤 지내고 아침이면 떠나듯 그렇게 살다 떠나라.

부처님께 대한 믿음만 투철하다면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 속에 있더라도 두려운 것이 없다.

법신에 귀의함 없이 집안에 안전하게 있다 하더라도 사마가 그들을 데려가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세상 어느 것에도 크게 집착하지 말라.

스스로의 본성을 자각하고 기쁨도 슬픔도 초연하라.

수행자는 모든 존재 속에서 부처님을 본다.

법신을 본다.

범부중생은 무명의 눈으로 껍데기만 보기에 법신을 알 수 없지만 헌신자는 존재의 내면에 있는 참법신을 본다.

사람들은 산을 산으로 보고 돌을 돌로 보지만, 깨달은 자는 지혜의 눈으로 일상에서 법신을, 부처님을 본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신에 귀의해서 자나 깨나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은 자는 법신과 하나다.

업장이 낄 염려가 없다.

그는 이미 죄업이 소멸된 법신의 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법신의 가피가 있어 만사형통이다.

법신에 대한 헌신이 깊어질수록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한다.

마치 보름달이 떠오르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듯이 법신불에 대한 헌신을 통해 법신의 자비와 축복의 단비가 내린다.

육체가 운동과 음식을 먹지 않으면 나태해지거나 기아에 허덕이는 것과 같이 법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혹 속에 살리라.

모든 성인들은 하나같이 부처님 법신의 현현이다.

법신의 가피는 법계에 무량하여 지성으로 기도하면 무한한 바다와도 같은 은덕을 힘입을 수 있다.

헛되이 백년을 사느니보다 단 하루만이라도 법신과 하나로 살라.

허공을 보라.

그리고 법신을 보라.

탁한 시대를 사는 헌신자들은 오로지 법신에 의지하고 그에 접하라.

법신에 대한 헌신이 결여된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약효를 알건 모르건 간에 약을 먹으면 효과가 있듯이 기도를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헌신적 기도의 효과는 자명하다.

독실한 헌신자도 때때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는 더욱더 헌신적으로 혼신을 다해 매달린다.

이때 헌신자는 법신의 가피력을 평소보다 뼈저리게 체험하고 그 결과 해탈의 완성도도 빨라진다.

진정 그대와 부처님 법신과의 관계는 영원한 축복이다.

법신과 자비를 따르지 않고 되는 것이 없다.

법신 부처님의 가피력을 모르는 삶은 가치가 없다.

오직 법신에 귀의하라.

법신의 거룩함을 항상 기억하라.

언제 어디서건 법신의 가피를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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