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모두 버린 뒤에 오는 밝은 지혜

모두 버린 뒤에 오는 밝은 지혜

-법상스님-

우린 모두 나름대로의 인생관,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치관을 토대로 생활 속에서 ‘나의 생각’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네 중생들의 삶일 것입이다.

그러나 가만히 한 번 생각을 다그쳐 보면 어떨까요? 그 나의 생각, 가치관이라 규정지은 것들은 진정 나의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껏 인생을 살아온 내 주위 환경의 산물이라고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사람들의 가치관도 그 나름의 각기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인 것입니다.

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우리들의 가치관도 서로 다른 것입니다.

이 평범한 사실을 명상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옳고 그르다는 ‘나의 생각’ 에 대한 고집 때문에 갈등하게 되고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일이 참 많기도 합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만 있어도 우리의 번뇌는 훨씬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다른 이의 잘못된 모습을 대할 때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내 생각에 대한 고집을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대방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갈등도 싸울 일도 많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상대방의 ‘잘못된 모습’이란 사실 절대적이게 잘못된 것으로 정해진 모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잘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어느 한 쪽으로 생각을 고정시킨다면 그것은 내 생각에 대한 고집과 집착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직장 상사의 잔소리, 잔심부름에 화부터 나는 마음을 버리고 ‘내가 상사었더라도…’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친구들에게 답답하고 얄미운 마음이 있더라도 그 마음 표현하기 전에 내 마음을 돌리는 연습을 해 보는건 어떻겠습니까? ‘내가 저 입장이었다면…’ 하고 말입니다.

언제라도 분노를 일으키기 전에 ‘저 입장에서는 충분히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는 연습을 해 보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하면 상대방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옳고 그름이란 없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옳을 수 있다면 상대방의 생각도 옳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옳다’라는 고집은 자라 온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며 우리는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 자신의 잣대를 꽉 움켜쥐고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붙잡고 사는 삶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놓으라고 하면 큰일 나는 일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단 다 놓아봅시다.

일단 다 버려봅시다.

옳고 그른 것을 가려서 그른 것만 버리는 것이 아니고 몽땅 전부를 버려야 합니다.

무소유…

무집착…

그 밝은 정신위에 맑고 향기로운 진리의 가치가 새록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온갖 분별심을 모두 버렸을 때 본래 가지고 있던 지혜의 등불은 환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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