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광스님─집착을 버리면 번뇌와 고통이 떠난다

집착을 버리면 번뇌와 고통이 떠난다 -능인선원 지광스님 – 모든 것은 무상하다.

변하며 사라진다.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가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모든 것을 놓아두고 가는 것인데 무엇을 그리도 욕심을 내는가.

이 몸뚱이도 허깨비가 아닌가.

찰나지간에 세상이 바뀌고 차원이 달라진다.

모두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물거품이요, 번갯불이다.

공이다.

물거품을 잡으려하는가.

허깨비를 잡으려하는가.

집착이란 얼마나 큰 고통인가.

집착을 버리면 고통이 떠난다.

이 세상에 진정으로 내 것이라 할 것이 있는가.

이것을 깨달을 때 갖가지 고통과 액난으로부터 벗어난다.

수없이 많은 시체를 접하다보면 욕심도 재물도 권력도 한바탕의 바람이다.

바람을 잡을 수 있는가.

모든게 사라지는 것이기에 고(苦)다.

집착과 욕구를 제어하지 않고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집착과 욕망을 다스리고 무아(無我)가 되는 길이 수행의 길이다.

수행은 결국 얼마나 버리고 비울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소유욕과 집착은 끝없이 나를 속박한다.

왜 무아여야만 하는가.

나를 버리면 버릴수록 아름다운 세계가 열린다.

극락이 있고 열반이 있다.

번뇌와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이다.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무아여야만 한다.

이기심이 강할수록 분노, 질투, 집착, 불만이 강해진다.

무상과 무아가 세상의 본질이며 물질세계에 영원은 없다.

결코 애착하지 말라.

집착하지 말라.

무상과 무아를 모르기에 괴로움이다.

무상이기에 고통이다.

고통은 그래서 이기심을 치료하는 영약이다.

최고의 불법수행이다.

고통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며 악업을 정화하는 빗자루다.

역경이나 질병, 고통을 겪을 때 남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하라.

그 같은 생각 가운데 고통을 이겨내면 강한 수행자가 된다.

고통을 겪어내는 것은 악업을 정화하고 큰 공덕을 쌓는 좋은 수단이 된다.

항상 고통과 역경은 나의 나쁜 업을 씻어내는 기회다.

만약 우리가 안락하면 과거에 쌓아놓은 공덕을 모두 탕진할 것이다.

고통을 만나는 것, 역경을 만나는 것은 스승의 축복이다.

칭찬받는 것보다 비난받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라.

안락보다 불편스러움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라.

역경이 항상 나를 돕는다고 생각하라.

장애가 나타날 때마다 기뻐하자.

이 장애를 잘 이용하면 불법수행이 더욱더 강화 될 것이라 생각하자.

고통과 역경은 우리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확실히 이해시키고 윤회를 벗어나야할 이유를 명확히 가르쳐준다.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삼보에 귀의하라.

부처님의 가피를 느끼리라.

기만하지 않고 완전히 보호되는 귀의처는 삼보뿐이다.

고통을 통해 자만심은 사라지며 그를 통해 인생은 개선된다.

난관이 나를 가르치며 고통이 자비심을 기른다.

내 마음에 이기심이 없으면 상대방이 없다.

모두가 사랑이다.

내 마음이 악마일 때 악마의 눈에 띄게 되고, 내 마음이 천사일 때 천사의 눈에 띄게 된다.내 마음이 부처일 때 부처의 눈에 띄게 되고, 내 마음이 보살일 때 보살의 눈에 띄게 된다.

우리가 무상의 세월을 통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이렇듯 마음 닦는 일이며, 번뇌를 녹여 내리는 일이다.

정진을 계속하면 아주 위급한 상황에서도 부처님의 기운의 보호를 받는다.

평소에 부단히 닦으면 어떤 어려움도 피해갈수 있다.

설혹 부딪치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무상한 존재들이 항상 해야만 할 일은 그저 꾸준한 정진뿐이다.

무상이기에 고이기도 하지만 끝없이 정진하는 자에게는 축복이기도하다.

변하기에 수행이 중요한 것이고, 변하기에 그 무엇도 소중하다.

그 무엇도 무시할 수 없다.

무상이기에 고통도 즐거움으로, 질병도 건강으로, 가난도 풍요로 변할 수 있다.

무상이기에 행복이고 변하기 때문에 불행도 행복이 될 수 있으며 고락불이(苦樂不二)다.

이 모두가 부처님의 위대한 가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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