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랑을 얻으려면 더 크게 사랑하라
-지광스님-
입에 맞는 떡은 없다.
자신의 마음에 꼭 맞는 조건은 언제 어디서건 만나기 어렵다.
조건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사람들이 진실로 일을 효과적으로 해내겠는가?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 좋건 나쁘건 가리지 않고 몸과 마음을 던지는 헌신 가운데 부처님께서 함께 하신다.
아무리 거칠어도 부처님께서 주시는 것이요, 아무리 괴로워도 부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감사하게 생각하면 모두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현실의 처절한 고통에 너무 괴로워 말라.
인생은 으레 그런 것.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가능한 한 감사의 삶을 살라.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모두가 순간이다.
모두에 감사할 때 몸과 마음의 건강이 담보될 수 있다.
고통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고통을 이기지 못할 때 몸과 마음도 해치게 된다.
감사가 없는 곳에 건강도 없다.
감사를 모르는 마음은 이기적 마음이요, 감사를 아는 마음이 보살의 마음이다.
우리들은 정녕 얼마나 감사한가? 생명력 그 자체이신 부처님의 위신력이 우리의 조상님들을 통해 부모를 거쳐 나에게 흘러들었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부처님, 조상님, 부모님 그 모두가 내 주변에 존재하는 감사의 화신들인데 어찌 감사함의 삶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감사할 때 모든 어려움은 눈 녹듯 사라진다.
모두가 감사의 대상일진데 상대방 그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해서 가슴 아픈 말을 던지지 말라.
감사함만 생각하고 웃으며 이기자.
그대의 삶은 틀림없이 즐거워지리라.
이 세상에 악은 없다.
고통도 없다.
다만 업이 있을 뿐이다.
모두는 업의 발현이요, 업의 드러남이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이 사라지지 않는다하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 부처님 나라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항상 부처님과 함께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부처님을 생각하라.
『금강경』에 “천대받고 모욕 받는 즐거움이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인생은 모두가 업장소멸의 길이다.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이다.
좋고 나쁘고, 고통스럽고 아니고를 너무 따지지 말라.
잔잔한 바다에서는 탁월한 항해사가 나오지 않는다.
무쇠는 용광로를 여러 번 거쳐야 견고한 강철이 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고통스러운 것만큼 성장한다.
고통을 과감히 받아들일 때 앞날이 밝아진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하지 않는가? 너무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 말라.
자기를 자꾸만 이기면 즐거움이 온다.
누가 나를 아프게 하면 그때 그를 향해 찡그린 얼굴을 하지 말라.
그를 향해 웃어주기 어려운가.
그 마음이 참 자비요, 참 사랑이다.
끊임없이 이겨라.
끊임없이 웃어라.
아픔을 이겨낸 만큼 사랑이 된다.
자비가 된다.
구경무아가 아닌가.
업을 녹이려면 많이 웃어라.
부처되려면 많이 웃어야 한다.
보살이 되려면 사랑이 되어야 한다.
자비가 되어야 한다.
위대한 사랑을 얻으려면 크게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기심을 수반하지 않는 사랑과 친절하고 관대한 사랑은 상대방을 그대에게 묶는 강력한 쇠밧줄이다.
상대방에게 강한 정신적 유대감을 갖게 한다.
상대방에게 강렬한 사랑의 마음을 일게 하라.
그 누구에게도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일게 하라.
모두를 부처로 보라는 가르침은 왜인가? 그들과 내가 하나임을 인식케 하시려는 동체대비의 배려에서가 아니겠는가? 진정 부처님과 하나임을 자각하는 정도만큼 감사함을 느끼게 되고, 그 정도에 따라 번창한다.
부처님의 아들딸이라는 생각을 놓치지 말라.
부처님과 조상님, 부모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라.
항상 보은의 마음이 되라.
부처님은 모든 것의 근본이시기에 나에게 내재함과 동시에 보편하신다.
그를 자각해서 감사와 찬탄으로 그를 불러 모시면 언제라도 필요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그것이 참 가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