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광스님─우란분재와 왕생의 원리(2)

우란분재와 왕생의 원리 (2)

-지광스님-

5.

극락과 천도

특징이 있는데 아미타부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극락토의 주민으로 받아들이시는 고하니 “내가

성불해서 필히 중생을 제도 하겠다” 이른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으로 필히 중

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가진 사람들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락에 가서

성불하신 다음엔 꼭 다시 중생세계로 오시게 되어 있는 게 법칙입니다.

그것을 “왕상환상(往相還

相)”이라고 합니다.

갔다가는 틀림없이 우주 곳곳에 중생들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어느 곳에나 몸

을 나투십니다.

그러니까 천도와 극락은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들이 성불해

서 딸가닥 가신 분들도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게 사실입니다.

한 은하

계 우주에 부처님은 한 분밖에 안계신데, 한 분 나오시고 우주를 진동하시고, 또 석가모니 부처님

이 가신 다음에 누가 오신다는 겁니까? 미륵님이 오셔서 우주를 진동하시다 또 가시고 합니다.

러므로 우리의 선조들은 성불하지 못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므로 그 분들에게 간절히 아미타불을 염

하게 하는 겁니다.

저도 “선”을 하고 살고 선방에 스님들도 많이 계시고 조계종이 선종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참선을

안 하고도 종파를 유지하는 종파가 많습니다.

일본 불교는 아마 참선하는 종파 정토종, 정토진종

몇 개를 빼놓고는 전부 다 염불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이 첫째로 왕생극락의 조건은 극락은 존

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믿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극락의 실존을 믿어라.

둘째로 자신이 왕

생극락, 극락왕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믿어라 입니다.

극락왕생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의 조건

이 선결되어야 됩니다.

극락의 실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경전마다 극락의 양상을 아주 많이 그리고 있습니다.

공덕장엄이

니 하여 극락의 장엄에 대해서 나오는데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삼종장엄이라고 하는데 잠

깐 말씀드리면 극락세계에는 삼종공덕이 있는데 이 극락국토의 장엄이라는 것은 우리가 가 보질

못했으니까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또 가서 구경을 했다 하더라도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됩니

다.

제가 가끔 법회를 할 때도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제가 저쪽 세상에 가 본적이 있다고 얘기를

하면 말로 설명이 되질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은데다가 또 들으시는 분들이 미심쩍어 하니까 재미

가 없습니다.

게다가 “스님 말씀 하시는 게 진짜인가? 공갈 아니야?” 합니다.

물론 과거엔 많이 죽

어 보셨겠지만 이 세상에선 자기가 안 죽어 봤으니까 그게 실감이 잘 안되고 저 세상의 상황이 이

세상의 말로는 잘 설명이 안됩니다.

예를 들어서 요즈음엔 임사체험이라고 해서 죽었다 깨어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잡지에도 나오고 책에도 있고 제 경험에 비추어서 어떤 공통점이 있는데

양상이 여럿입니다.

능인불교대학에서 그런 얘기를 드릴 때마다 가끔 찾아오는 분이 계십니다.

“스님하고 비슷한 체험

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 중에 한 분인 광업진흥공사 화신탄광에 근무하시던 유 박사님인데,

갱도가 막혀서 구조반들을 끌고 들어가 구조를 하다가 공기가 제대로 공급이 안 되어서 거기서 질

식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모양입니다.

질식을 했는데 기가 막힌 것은 순간적으

로 자기의 몸이 떠 있어서 다른 구조대가 끌어내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몸이 어

떻게 되었습니까?” 제가 물었더니 그 분 말씀이 제가 체험한 것과 비슷한 점이 죽었다 깨어났더니

이 껍데기 피부가 완전히 다 벗겨졌고, 머리카락이 싹 다 빠져 버리고, 피부가 다 일어났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죽었던 겁니다.

죽었으니까 그 피부가 새로 생명력이 돌아오면서 죽었던 피부가 비늘

벗는 것처럼 다 벗겨지는 것입니다.

그 거사님은 제가 체험한 것과 흡사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기록이 나온 것을 보면 미심쩍은 것이 많습니다.

자기가 죽었다 깨

어난 다음 그 후의 양상들에 대한 얘기는 별로 안 나오는 것입니다.

오직 몸의 변화나, 여러 의식

의 변화나, 몸 껍데기가 뱀이나 매미가 껍데기 벗는 것처럼 싸악 다 벗겨지거나, 머리카락이 다 빠

져 버립니다.

한 번 죽었던 것이니까, 공급이 안 되었던 세포들이니까 싸악 완전히 다 벗겨집니다.

하여간 저 세상에 대해서는 표현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극락에 대한 공덕에 대해서 부처님

께서 삼종장엄 가운데 전체장엄의 극락국토의 실재에 대해서 반이상 공덕장엄을 40종정도 나오는

데 한 17,8종 정도를 극락국토의 장엄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정말로 극락이라는 곳은 실재하는

곳입니다.

“나무서방정토극락세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이고 극락은 비욕계 비색계 비무색계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은하계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입니다.

이 은하계 우주를 떠나야 됩니

다.

욕계 색계 무색계를 떠나야 됩니다.

그 다음에 여덟 종은 항상 부처님을 만나며 살 수 있다는

팔종장엄, 불장엄이 나옵니다.

우리는 지금 부처님을 만나보았자 쇠 부처님 밖에 더 만나요? 간절

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가끔 부처님을 친견하는 수가 있지만 진짜일까? 거짓말일까? 자기도 가늠

을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수행의 깊이 따라서 부처님을 느끼는 감도가 다르다고 나오기는 합니

다.

그런데 극락국토에 가면 언제나 아무 때나 부처님을 친견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원아속견아

미타(願我速見阿彌陀)” 그 다음에 관세음보살이건 어떤 보살이건 보살들을 아무 때나 만날 수 있

으니 참 기가 막힌 것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에다가 아무 때나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아무

때나 보살들을 만날 수 있고 그것만 하더라도 굉장한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되는 것은 기정사

실입니다.

결정정각원이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천당에 태어나면 부처님이 된다는 얘기는

안나옵니다.

극락에 태어나면 결정코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분명히 나옵니다.

그리고 극락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원력을 “원아광도제중생(願我廣度諸衆生)” 이렇게 마음 먹고 있습니다.

극락

에 살다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그 곳에 취해서 그 곳에서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천당에

는 다른 데가 없으니까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의 설명에 보면 천당은 끝나

는 곳이니까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6.

색, 소리, 마음이 아름다운 극락

공덕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청정공덕이 넘쳐 난답니다.

그 다음에 장엄하기가 도저히

상상을 못한다니까 말씀드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규모도 어마어마하겠지만 그 장엄성은 탄성

이 절로 일어나고 환희심 그 자체라는 겁니다.

극락에는 소리와 색깔이 아주 아름다운가 봅니다.

극락에 대한 큰 스님들의 해설서에 보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지성과 이성 모든 것이 최고

도의 상태라고 나옵니다.

소리에 대해서도 ‘무량수음원, 무량광’ 이렇게 나오고 미타행원 48원-아

미타부처님의 48종대원에 나오는 것을 보면 첫째로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게 분명

합니다.

그 음악과 색채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으며 굉장한 곳인가 봅니

다.

감각과 지각을 떨어트리지 않은 곳이 분명히 색과 소리에 대한 것이 너무너무 어마어마하게 아

름다운가 봅니다.

둘째로 아미타부처님세계에 사는 주민들의 마음은 아름다워 그 마음을 서로 바

라보면서 사는 것조차도 극락이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정말 마음들이 아름다웠으면 좋겠

습니다.

우린 마음을 바라보기가 너무나 괴롭고 힘겹지 않습니까? 상대방과 더불어 살면서 항상

마음이 극락이 되고 가정을 극락으로 좀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죽어서 극락 가자는 것을 떠나서, 설명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극락세계는 사

는 사람들이 완전히 평등관계입니다.

이것도 천당하고 다른 점입니다.

천당은 하나님 아버지가 있

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만들어졌다니까 상하관계가 있지만, 극락은 아미타부처님과 내가 전부 다

평등하고 계급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대의가 충만하고, 무제난-일체 난이라는 것은 떨어져 버렸

고, 소구하는 바는 모두가 다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할 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세계에 사는 주민들의 마음 가운데는 오로지 중생 제도하는 것, 오로지 이 우주의 무

량한 세계를 극락처럼 만들고자 하는 발원, 회향발원심으로 꽉 차 있다고 합니다.

그저 자비심이

넘쳐 나옵니다.

그들은 우선 태어날 때 축복받고 태어나는 게 정각화라고 해서 연꽃도 아니고 깨달음의 꽃입니다.

이 정각화 가운데서 태어나면서 부처님이 되시는 분이니까 그들의 감각기관과 지각기관들이 수승

할 것은 분명하고, 그들은 오로지 무엇을 먹고 사는가? 삼매식-삼매를 음식으로 한다는 겁니다.

매를 음식으로 삼고, 무량불국토를 그저 생각으로 마구 움직여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뚱

아리는 금광불괘지심으로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몸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그들에게는 해당이 없

습니다.

그들은 죽고 사는게 끝나버렸기 때문에 부처님이 되는 거고 언제 어느 곳에나 몸을 바꿔

나는 게 아무 걸림이 없습니다.

극락의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이 최선의 환경, 최선의 심적인 상태, 최선의 지적인 상태, 최고의 즐

거움의 상태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께서 왜 이 극락을 건설 했는가를 설명해 주셨

는데 극락이라고 하는 곳은 이 우주의 무량한 중생들을 제도하는 대비심의 발로이고, 보살의 양성

소이고, 부처의 양성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중생들은 극락에 나기를 발원하라고 나옵니

다.

정토왕생의 원리 극락은 또 어떻게 다스려지는가? 자신의 뜻과 남의 뜻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

누구의 뜻도 절대 존중입니다.

완전히 평등관계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하는

데만 마음을 씁니다.

대자대비심만이 가득 차 있지 차별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주인이면서 하나이면서 절대입니다.

7.

공덕과 장엄의 극락세계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큰 깨침에 돌아가려면 지혜와 공덕을 쌓아야 하고, 끊임없이 이 우주

를 윤회하는 중생들의 긴 꿈은 금방 깨어나지 못함으로 성인이 제도하시는 방법은 같지가 않다.

나 석가모니는 10선을 권하고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권하노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지금 긴 꿈을 꾸고 있지만 꿈을 깨고 보면 이쪽도 저쪽도 없다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될 것입니

다.

생사가 있으니까 여기가 있고 저기가 있지, 생사가 끊어진 사람에게 여기저기가 무슨 상관입니

까? “극락에 가서 깨침을 얻은 자들은 이쪽도 저쪽도 없다.

정토와 예토가 한 마음이요, 생사와 열

반이 둘이 아닌 경계로 사는 곳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꿈을 꾸고 있으니까 여

기가 있고 저기가 있고, 극락 간다 천당 간 이렇게 얘기를 하지만 우리가 완전히 꿈을 활짝 깨버리

면 즉 무명을 다 타파해 버리고 극락에 가서 완전히 깨달음의 문을 열어버리면, 그 다음에는 여기

도 저기도 없고, 생사도 열반도 없고, 정토와 예토도 없고, 다 주인이고 하나라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긴 꿈을 꾸고 있으니까 죽어서 가느니 마느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탁 깨닫고 보면 극락세계에서 결정정각이라, 완전히 깨닫고 보면 아무러한 차별이 없는 세계입니

다.

부처님께서 뭐 거짓말 하셨겠습니까? 극락의 주민들의 양상을 설명하셨습니다.

극락이라는 곳

을 너무나 사실 그대로 그리셨기 때문에 “꿈을 깨고 보면 이쪽도 저쪽도 없나니” 꿈이 있으니까 이

쪽도 저쪽도 있지, 꿈을 깨고 나면 꿈을 깨기 전과 꿈을 꾸고 난 후가 다릅니다.

정토와 예토라는

것이 다 부처님께서 시설해 놓은 것이고, 생사와 열반이 전혀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부처님

께서 하신 말씀, “장엄”이란 말입니다.

정리하면 극락세계를 “공덕장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엄이란 말을 한번 마음에 그려 보십시

오.

제가 요전에 “신은 곧 이름”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염불, 명호보살위력으로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부르면 정말 내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 되어집니다.

이름이 갖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런데 장엄이란 말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말로는 설명을 못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인생을

장엄하게 사십시오.

부처님께서 부탁하신 게 공덕장엄으로 된 곳이기 때문에 인생을 좀 장엄하게

살라는 겁니다.

정말로 애착을 떠나지 못하는 이런 존재들에게 장엄함을 얘기하고 자신도 장엄하

게 살아 보십시오.

저 같은 미물중생도 보잘 것 없이 애를 쓰고 삽니다만 우리가 장엄이란 단어를

갖고 우주가 화장장엄세계라고 하지 않습니까? 항상 장엄이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무아미타

불” 그것을 생각하고 사십시오.

그러면 아마 극락 비슷하게 점점 그렇게 되어져 갈겁니다.

꼭 말씀

드리겠는데 《정토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말씀 가운데 장엄이란 말을 마음에 탁 새기십시오.

토왕생의 원리는 이 장엄성을 항상 음미하시고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하시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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