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어디서 오는가?
-월호스님-
설날에 즈음해서 어떤 분이 제사에 관해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환생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이미 어딘가에 갔을 텐데, 굳이 현세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또한 제사음식을 드시러 조상께서 오신다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그리고 현세의 나도 과거의 누군 가였을 텐데, 나를 위해 누군가가 제사를 지내는 곳에 간 기억이 없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변을 하지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제사는 죽은 사람을 위해 지낸다기보다는 산 사람을 위해 지낸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말하자면 죽은 사람을 빙자해 산 사람 공부를 하는 것이지요.
조상의 공덕을 기리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는 시간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제사 지낸다’는 말보다는 ‘재(齋) 지낸다’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재(齋)’는 제계 한다는 의미로,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 영혼이 온다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예컨대, 성냥불을 켰을 때 그 불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단지 연(緣)따라 왔다가 연(緣)따라 갈 뿐입니다.
영혼도 연이 닿으면 올 것이고, 연이 닿지 않으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연(緣)이란, 중음신의 형태로 현세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다거나, 제사 지내는 이의 지극정성이 통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별 일 없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거나 좋은 일이 생기거나 혹은 막혔던 일이 순조롭게 진행 되거나 한 적은 없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한다거나 공덕을 드린 거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궁극적으로 영혼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의 분별식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분별식은 윤회의 근본이 되며, 궁극적으로 해탈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예화가 있습니다.
파조타 화상(당나라 스님)이 숭악에 있을 때였습니다.
산 중턱에 묘당 하나가 있었는데 심히 영검하였습니다.
그 모당 안에 조왕단(부엌 신을 모신 곳으로 절의 부엌 뒷벽에 만듦)하나가 있는데, 원근에서 와서 제사를 지내면서 살생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선사가 어느 날 시자를 데리고 묘당에 들어가서 주장자를 가리키면서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본래 진흙과 기왓장으로 합쳐서 이루어진 것인데 영검은 어디서 왔으며 성스러움은 어디서 생겼는가?” 그러고는 몇 차례 두드리고, 다시 말하였습니다.
“깨졌다(破也)! 떨어졌다(墮也)!” 그러자 조왕단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후, 푸른 옷에 높은 관을 쓴 이가 나타나서 절을 하면서 말하기를, “저는 본디 이 묘당에 있는 조왕신입니다.
오랫동안 업보에 끄달려 있다가 이제 화상의 무생법(無生法)을 듣고 해탈을 얻었기에 일부러 와서 사례를 드립니다.” 이에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이는 그대가 본래 지니고 있는 본성이다.
내가 억지로 한 말은 아니다.” 그러자 신이 두 번 절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일체중생의 몸과 마음은 모두 꿈과 같습니다.
몸뚱이는 사대(四大)로 이루어져있고, 마음은 육진(六塵)으로 돌아갑니다.
사대인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이 흩어지면 무엇이 ‘나’이겠습니까? 내 마음의 모든 분별심을 깨트려 버리십시오.
그리고 본마음으로 보십시오.
이 세상에 부처가 아닌 이가 없고, 부처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나의 분별심을 깨트려 버리고, 떨어뜨려 버릴 때 우리는 그 본연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