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
월호스님
“生도 일시적 모습이요, 死도 일시적 모습” 목숨은 ‘한 호흡’ 간의 찰나생멸 삶과 죽음 ,두려워할 필요없어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달렸느냐?” 사문이 대답했다.
“며칠 사이에 달렸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달렸느냐?” “한 끼의 밥을 먹는 동안에 달려있습니다.” “너도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달렸느냐?” “한 호흡 간에 달려있습니다.” “그렇다.
네가 도를 아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다.
‘나’ 혹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는 별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죽음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그래서 갑자기 다가올 때 당황하게 된다.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주변을 살펴보면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함을 알게 된다.
이른 바 40대 남자의 사망률과 교통사고 사망률이 세계 1위인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형사건과 사고도 심심치 않게 터지곤 한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남의 일로만 여기고 있다가 막상 자신주변의 일로 닥치게 되면 그 때서야 대성통곡한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내게 생겼는지 의아해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어도 자신의 주변만은 무사할 걸로 착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
부처님께서는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을 잃고 거의 실성하다시피 헤매는 여인에게, 지금까지 아무도 죽은 일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오도록 했다.
죽음에 관한 착각에서 깨어나 현실에 눈뜨게 했던 것이다.
실로 목숨은 한 호흡 간에 달려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이쉬지 못하면 가는 것이며, 숨 한번 들이쉬었다 내쉬지 못하면 가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번 숨 쉬고 한번 눈을 깜짝하는 사이에 중생의 수명은 400번이나 나고 죽는다고 한다.
이른바 찰나생멸하는 것이다.
찰나생멸의 입장에서 보자면 생(生)도 일시의 모습이며, 사(死)도 일시의 모습이다.
일시의 모습이지만 살아있는 때는 온 세상이 지금의 삶에 다하고 있으며, 모든 시간은 살아있는 지금에 다하고 있다.
죽은 때는 온 세상이 지금의 죽음에 다하고 있으며, 모든 시간은 죽어있는 지금에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생으로부터 사로 옮겨 간다는 것은, 생으로부터 사로 연속하여 가는 것이 아니다.
생도 일시의 모습이며, 사도 일시의 모습이다.
이를테면 겨울과 봄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겨울 그 자체가 봄으로 변한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봄 그 자체가 여름으로 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봄은 처음부터 끝까지 봄이며, 여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름이다.
그러므로 생으로부터 사로 움직여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생이라고 하면 완전히 생이 되어져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생이다.
멸도 한 때의 위치로서 또한 처음이고 끝이다.
생이라고 하는 때는 생 이외의 어떠한 것도 아니며, 멸이라고 하는 때는 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생이 오면 다만 생에 마주 대하고, 멸이 오면 멸에 향할 따름이다.
생이라고 해서 바랄 것도 없으며, 사라고 해서 두려워할 것도 없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갈 땐 살아갈 뿐! 바로 지금 여기에서 죽을 땐 죽을 뿐! 쌍계사 승가대학 강사/